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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0

    파이리스가 무대 위로 기어올라 난입하는 그 당혹스러운 장면에 연주를 하던 연주자의 손길이 멈추었다.

     

    그 모습을 보니 파이리스가 대체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나 걱정이 된다.

    대체 다이튼이나 예르나는 저런 상태의 녀석을 놔두고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건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부터 정신없이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 흐트러진 상태로 경악한 표정을 지은 채 파이리스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까까지만 해도 디저트를 잔뜩 주워먹고 있더니,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런 곳에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얼굴이 붉은 걸 보니, 설마 술이라도 마신 것은 아닐지.

    술에 취해 무대에 올라간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행동거지가 너무나 정상적이다.

    딱히 시루드처럼 비틀거리지도 않고, 얼굴이 살짝 붉을 뿐이라니.

     

    “시루드, 너는 잠시 여기 앉아서 쉬고 있거라. 나는 저쪽에 가봐야 할 것 같으니까.”

    “그래, 그래 보이네…….”

     

    시루드는 어지럽다는 듯이 이마를 짚으며 자리에 앉았다.

    정말 술이 약한 모양이다, 겨우 과일주 반잔으로 저런 모습이라니.

    그러나 시루드의 약의 효과를 더욱 잘 받는 체질상 어쩌면 술의 영향도 더욱 잘 받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루드가 급격히 취한 상태가 된 것도 이해를 할 수 있으니까.

     

    루크는 시루드를 근처 테이블에 앉혀둔 채 곧장 발걸음을 무대로 향했다.

     

    그러자 결국 무대에 겨우 올라간 파이리스가 음악의 연주를 멈춘 연주자들에게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투덜거렸다.

     

    “저기, 갑자기 왜 연주 멈추는 거야? 재미없어.”

     

    그 모습에 당황했던 연주자들은 파이리스를 달래듯 말을 건넸다.

     

    “꼬마야, 아무리 연주가 마음에 들었어도 마음대로 무대에 올라오면 안돼! 방해가 되잖니.”

     

    갑자기 무대로 올라온 아이의 모습이 나름대로 귀엽게 보였는지 그들은 당황했으면서도 점잖게 타이른다.

    무대 바로 아래까지 다가온 루크도 말했다.

     

    “그래, 파이리스. 무대에서 내려오거라! 혹시 술이라도 취한게냐? 혹시 저쪽에 음료수라도 마셨나?”

     

    그 말에 파이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파이리스는 연주자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아저씨는 너무 빨간색이야, 조금 더 노란색이 섞여야 해. 뾰족뾰족한 것도, 말랑말랑해야 더 듣기 좋을 걸. 그리고, 언니는…….”

     

    연주자 한명 한명에게 마치 굉장한 것을 알려준다는 듯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늘어놓는 파이리스의 말에, 연주자들은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뭐라고?”

    “그러니까……. 응?”

     

    연주자들은 아이의 기묘한 지적에 더욱 당황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을 하기는 하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빨간색이니, 노란색이니, 뾰족뾰족하니 말랑말랑하니, 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연주를 해야 한다는 말로는 전혀 들리지 않았기에.

     

    그렇다보니 면전에서 연주의 방식을 문제삼는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은 인식의 뒷편으로 넘어가 버린 것인지, 불쾌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뭔가 지적을 하고 싶은 듯 하지만, 용어를 모르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걸까?

     

    “으음……!”

     

    파이리스는 결국 연주자들이 자신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 한 것이 불만이었는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루크가 자신을 혼낼 때 하던 자세를 따라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보여줘야겠네!”

     

    ————

     

    파이리스는 결국 연주자들 사이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 모습은 무대 아래에서 꽤 많은 시선을 받고 있었으나,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이 곧 연주할 악기만을 가만히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파이리스는 활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옛날부터 직접 쳐보고 싶었어.”

     

    피이리스의 앞에 놓인 악기는 바로 피아노.

     

    과거 악기를 고르던 중에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던 악기였지만, 결국 휴대성을 완전히 내다버린 듯한 거대한 크기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던 악기였다.

    그래서 파이리스가 그동안 직접 만져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거대한 악기를 집안에 들여놓는 경우는, 메리의 집 정도로 넓은 것이 아니라면 거의 없었으니까.

     

    파이리스는 직접 현을 때려 진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법으로 음을 내는 피아노엔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마법 피아노 역시 대안이 아니었다.

    때문에 직접, 현신한 손으로 만져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파이리스는 몇 번 건반을 건드려 소리를 내어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해볼게요! 루크 언니, 생일 축하해! 나, 언니를 위해 연주할게! 이거 내 선물이야!”

     

    갑자기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파이리스.

    그러자 자신에게 갑자기 수많은 시선이 쏠리는 것에 조금 당황하며, 루크는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그래, 그러려무나.”

     

    루크는 그 멘트가 왠지 옛 음유시인들의 작업멘트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 말을 들은 몇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뭐, 파이리스에게는 정말로 직설적인 말이었겠지만 말이다.

     

     

    인사가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파이리스는 곧장 다시 피아노 앞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거침없이 건반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경쾌하고 즐겁게, 통통 튀는 듯 하지만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파이리스가 고른 음들은 자칫 강렬한 인상으로 변질될 수 있는 음들이지만, 부드럽게 연결되며 마치 말을 하는 것처럼 이어졌다.

    게다가 강하게 악센트를 주어야 할 부분은 정말로 아이의 손으로 누르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선명하게 이끈다.

     

    게다가 파이리스는 연주를 하면서 차오르는 흥을 주체하기 어려웠는지, 입으로 노래까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미숙한 인간어 실력 때문에 도저히 가사는 지어낼 수 없어서 ‘랄라라’정도만 흥얼거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충분했다.

     

     

    갑자기 시작된 아이의 연주에 연주자들은 두번 당황했다.

     

    아이가 상당히 당돌하게 연주를 시작했다는 것과, 생각보다 듣기에 좋았다는 것에.

     

    잔잔하게, 때로는 약간 슬프게.

    연주가 계속될 때마다 어쩐지 감정이 고조되는 것에 신기한 느낌마저 들었다.

     

    연주를 업으로 삼아가기 시작하면, 좋은 연주를 들어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대로 즐기기 어렵다.

    듣고 싶지 않아도 연주자의 실수가 들리고, 알고 싶지 않아도 그 음악의 박자와 음정을 분석하게 된다.

    하지만 이 음악은 어딘가 달랐다.

     

    마치, 직접 가슴을 파고들어오는 정말로 즐겁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 음악이었다.

    어떤 생각도 들지 않고 순수하게 음악을 즐길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라서?

     

    연주자들은 곧 그 처음 들어보는 음악의 악보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이런 음악을 어디서 알아와서 이렇게 연주를 하는 것일까 하고.

    제대로 된 악보가 있다면 한번쯤 연주를 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괜찮은 곡이었다.

     

     

    하지만 그 것은 연주를 하고 있는 파이리스조차 잘 모르는 곡이다.

    피아노에서 손을 떼고 시간이 좀 지나면 그대로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마치 친구와 시간 때우기로 떠들었던 잡담내용이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사실은 지금 파이리스는 피아노로 대화를 하는 셈이었다.

     

    아니, 실제로 그러했다고 말할 수 있다.

     

    파이리스의 연주는 정령어로 변환할 수 있는 연주였으니까 말이다.

    대충 내용을 정령어로 변환해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생일축하해! 그런데 나, 생일에는 선물을 줘야 한다는 걸 이제 알았어!

    언니 친구들이 조금 있다가 생일 케이크를 자른 다음에 선물을 주기로 했다는데, 나는 준비한 게 없어, 미안해…….

    그래서 오늘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걸 할거야!

    집에도 피아노가 있으면 좋겠어! 나중에 내 생일에는 피아노를 받고 싶어!

    하지만 놓을 곳이 없어서 너무 슬퍼…….

     

     

    ……정도의 내용이다.

     

    “실로 파이리스다운 내용이로군…….”

     

    일종의 생일 축하 노래로 시작했지만, 결국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그냥 생각나는대로 하고 있는 거였다.

    남들이 듣기엔 꽤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뭐, 듣기에 나쁘지 않으면 그만이려나.

     

     

    파이리스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연주를 마치자 사람들은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그 반응이 썩 기분이 좋았는지, 파이리스는 한껏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제법 하잖아? 피아노 배운 적이 있나보구나?”

    “어떤 곡이야? 되게 듣기 좋던데. 혹시 누가 작곡한 거야?”

     

    연주자의 질문에 파이리스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했어, 듣기 좋았어?”

    “정말? 네가 작곡한 거라고? 아직 어린데도 대단한 재능인데? 혹시 악보는 있어?”

     

    고작 8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그토록 훌륭한 악상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연주자들은 크게 놀란 듯 물었다.

    하지만 파이리스는 음악은 알아도 악보를 보는 방법은 전혀 알지 못했다.

    파이리스는 사람들이 정한 악보의 기호나 음악적 언어들엔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음, 그런 건 없는데…….”

    “악보가 없다니 정말 아쉬운데. 혹시 다른 곡은 더 없니? 아니면 더 연주해볼래? 우리가 한번 거기에 맞춰볼게.”

    “음……. 좋아!”

     

    파이리스는 곧장 흥에 겨워 건반을 쳐내리기 시작했다.

    그 연주는 처음의 잔잔함과는 확연히 다른, 격렬하고 즐거우며, 동시에 행복함이 느껴지는 격정적인 음악이었다.

    이번에도 아니나다를까, 처음으로 들어보는 음악이었다.

     

    하지만 연주자들은 정말 신기하게도, 어느 부분에서 어떤 식으로 연주를 해야 하는지 정확히 떠올릴 수 있었다.

    즉흥 연주도 해본 경험이 꽤 있었지만, 이것은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보통은 즉흥이라고 하면 그저 연주에 발을 맞추어 손이 가는대로 연주를 하는 것이 보통.

     

    즉흥연주에 정확한 악상이 떠올라서 연주를 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게 연주자들은 조금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가 똑같은 느낌을 받고 있는 모양.

     

    신기했다.

    그리고 이 현상의 중심을 차지한 아이의 모습을 보니, 진심으로 피아노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그것은 마치, 처음 자신의 악기를 다루기 시작할 때의 어린 날의 자신의 모습과도 닮은 듯 보였다.

     

    ‘이런 느낌은 정말로 오랜만이야.’

     

    그렇게 즉흥에서 이뤄진 연주는, 파이리스가 혼자서 연주를 할때와는 확실히 다른 풍부한 감정이 느껴졌다.

    고전적인 무도회 느낌의 경쾌하고 발랄한 음악은 사람들로 하여금 몸을 절로 들썩이게 만들 정도였다.

    실제로 음악에 담긴 정령어의 의미 역시 그러한 내용이다.

     

    ‘재미있게, 신나게, 즐겁게.’

     

    절제 따위는 하지 않고, 감정을 그대로 쥐고 흔들어버릴 정도로 흥겨운 음악.

    단지 연주만으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흔들 수 있다니.

    이런 모습을 보면, 파이리스는 확실히 대단한 정령이었다.

     

    하긴, 파이는 5000년 전의 자신조차 그저 전설로만 들었던 ‘현신화’까지 할 수 있는 격이 다른 정령이다.

    그런 정령이 하는 연주가 듣기에 안좋을리 없다.

    애초에, 자신의 음악적인 스승부터가 바로 파이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음악의 무대는 그야말로 파이리스의 놀이터나 다름이 없겠지.

     

    그 모습을 보니 파이리스가 한동안은 무대에서 벗어나지 않을 듯하여 루크는 발길을 돌렸다.

    확실히 어디서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는 것 보다는, 저렇게 연주라도 하면서 가만히 있는 편이 훨씬 낫기도 하니까.

     

    루크는 파이리스의 흥겨운 연주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그나저나, 정령이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가하는 연주라.’

     

    이곳의 사람들은 알까?

    어디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진귀한 연주를 감상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역시 파이리스. 무대를 완전히 뒤집어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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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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