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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0

        

       “봐봐, 내가 왜 왔는지 알겠지?”

         

       윌리엄은 당당한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놀라운 예언 능력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아그네스는 그러한 윌리엄의 당당한 모습에도 그림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고,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이것만으로 확신을…?”

         

       그러더니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엘라에게 언니가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안거죠? 확신하는 것 같은데?”

       “크흠, 그건.”

         

       윌리엄은 아그네스의 질문에 뭔가 꺼리는 태도로 입을 꾹 다물었다. 게다가 찔리는 것이 있기라도 한 듯 슬쩍 시선을 돌리기도 했고, 맥주를 물처럼 꿀꺽꿀꺽 마시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본 아그네스는 눈초리를 좁히며 물었다.

         

       “당신, 내 뒷조사한 거야?”

       “크흠!”

         

       윌리엄 같은 망나니가 동양이나 러시아에 관심을 가질 리도 없고, 거기 긴밀한 인맥을 만들어서 정보를 자주 공유할 리도 없었다. 여자 꼬시고 노는 것만이 삶의 보람인 인간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엘라에게 언니가 생겼다고 확신할 방법은 단 하나.

         

       뒷조사밖에 없다.

         

       “입양했더군. 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 무례하고 역겨운 망나니 놈이…!”

       “어어, 잠깐. 진정해 네스.”

       “네스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아그네스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위치크래프트를 눈앞의 윌리엄에게 날려버릴 기세로 생명력을 끌어올렸다.

         

       끼융!

         

       덜컹!

         

       하지만 아그네스의 분풀이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녀를 유심히 보고 있던 윌리엄의 소환수와, 그를 호위하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일제히 움직인 것이다.

       소환수는 윌리엄을 지키듯 그의 앞에 선 뒤 몸집을 불려 윌리엄을 시야에서 가려버렸고, 경호원들은 훈련받은 대로 움직여 아그네스를 중심으로 한 진법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리곤 허리에 차고 있던 삼단봉을 뽑아 들고 기를 불어넣었다.

         

       “하.”

         

       아그네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윌리엄을 지키겠다는 듯 나서는 소환수와 경호원의 모습에 기분이 상하기라도 한 듯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소매를 툭툭 털었다.

         

       투둑.

       투두둑.

         

       그러자 랩에 쌓여있는 자그마한 붉은색의 열매가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바싹 말라 있었다. 하지만 바싹 말라서 손톱만 한 크기가 되었음에도 그 빛은 피를 연상시킬 정도로 붉었고, 랩을 뚫고 매캐한 냄새를 폴폴 풍겼다.

         

       “이게 뭔지 알아?”

         

       그녀는 위치크래프트를 끌어올려 열매에 생명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진동이라도 가하는 듯 열매는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수분이라도 한껏 흡수해서 불어나기라도 한 듯 물풍선 크기로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빨간 면에 악마 같은 얼굴이 새겨지고, 초록색 꼭지 끝부분이 심지라도 되는 것처럼 자그맣게 빛을 발했다.

         

       그렇게 살아있는 폭탄처럼 변해버린 열매들은 통통 튀면서 아그네스를 호위하듯 원을 그렸다. 하지만 자그마한데다가 어린애 장난감 같은 모습 때문인지 경호원들은 그것을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아그네스가 그 ‘장난감’의 정체를 알려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캐롤라이나 리퍼(Carolina Reaper)라고 들어봤니?”

       “뭐?”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경호원들은 경악하며 거리를 벌렸다.

         

       캐롤라이나 리퍼.

       평균 스코빌 지수가 160만을 넘긴다고 하는 미친 고추의 이름이었다.

         

       캐롤라이나 리퍼보다 스코빌 지수가 낮은 고추인 부트 졸로키아(Bhut Jolokia)가 최루탄의 재료로도 쓰인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위치크래프트의 힘으로 살아 움직이게 된 저 고추들의 ‘폭탄 모양’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경호원들은 긴장에 침을 꿀꺽 삼켰다.

         

       저 폭탄 모양의 고추가 터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정말 엄청난 폭발력으로 충격을 받을 수도 있고, 최루탄처럼 어마어마한 고춧가루가 사방으로 번지며 모두를 무력화 시킬 수도 있으리라.

         

       어느 쪽이든 그들에게 있어서는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경호원은 긴장을, 아그네스는 비웃음과 짜증을 품은 채 서로가 대치했고….

         

       그 정적의 끝에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모두 진정하고 자리에 앉아주셨으면 합니다.”

         

       진성이었다.

         

       그는 맥을 탁 풀리게 하는 목소리로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을 느슨하게 바꾸어놓았고, 그렇게 그들의 신경이 자신에게 쏠리자 그들이 진정해야 할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여기 저와 프라우 빈터도 자리 잡고 있음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대치를 끝낼 수 있는 명분이었다.

       아그네스는 엘라와 진성을 위해, 윌리엄 측은 아무런 죄도 없음에도 휘말리게 될 ‘무고한 피해자’를 배려해서 힘을 거둘 수 있게 된 것이다.

         

       “흥.”

         

       아그네스는 이러한 명분이 세워지자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경호원들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던 캐롤라이나 리퍼들은 쪼르르 그녀의 앞으로 모였고, 무언가를 토하려는 듯 볼을 뽈록 부풀렸다.

         

       투욱.

       투두두둑.

         

       그렇게 부풀린 볼에서 튀어나온 것들은 씨앗들을 힘을 주어서 뭉쳐놓아 만든 것 같은 구슬이었다. 구슬은 또르르 굴러가 캐롤라이나 리퍼가 나왔던 비닐 안으로 몸을 쏙 집어넣었고, 캐롤라이나 리퍼들은 그것들이 제대로 자리를 찾자 자신들의 할 일이 끝났다는 듯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렸다.

         

       파스스.

         

       그렇게 고추는 가루조차 남지 않은 채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씨앗을 남긴 채.

         

       그리고 그 씨앗은 아그네스의 손길을 따라서 핸드백 안에 얌전히 들어갔고,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경호원들은 안심한 듯 윌리엄의 근처로 돌아갔다. 하지만 소환수는 아직도 경계를 풀지 않은 것인지 몸을 부풀린 채 아그네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윌리엄이 몸을 톡톡 두드려 신호를 주자 그때야 몸을 줄이고 그의 발치로 다가가 쉬었다.

         

       “어우, 이렇게 화를 낼 줄은 몰랐는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음에도 윌리엄의 태도는 변화하지 않았다.

       그는 능글맞았고, 뻔뻔했으며,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용건이 우선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아나스타시아의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했다.

         

       “일단 진정하라고. 예언을 위해서 조사를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잖아? 모든 예언자가 하는 일이라고. 안 그래? 그리고 뭐, 여자 하나 존재 알게 된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 뻔뻔한 태도에 아그네스는 다시 분노가 솟구쳐올라 왔지만, 자기 손을 잡아주는 엘라 덕분에 간신히 진정했다.

         

       “…더 이상 당신이랑 얘기하기 싫으니까 빨리 용건이나 말해요.”

       “알았어, 알았어. 쯧. 누가 여자 아니랄까 봐 예민하기는.”

         

       그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는 아그네스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고는 자그마한 종이 하나를 하나 꺼냈다.

         

       종이에 그려져 있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술이었다.

         

       “막걸리로군요.”

         

       그것도 어디 장인에게서 직접 받아온 것 같은 것이 아니라,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흔히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유명한 브랜드의 막걸리였다.

       생막걸리라는 단어와 밤을 넣었다는 글이 대문짝만하게 박혀있었으며, 정겨운 느낌을 주는 초록색의 페트병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막걸리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

         

       제조 일자와 유통기한이 반쯤 지워진 상태로 그려져 있었다.

         

       “흠. 성년의 날 행사 근처로군요.”

         

       하지만 흐릿하지만, 대략적인 날짜를 못 알아볼 수준은 아니었다.

         

       “연도는 내년이고…. 2월? 아니, 3…? 지워져서 알아보기가 힘들군요.”

         

       대략 내년 초 같았다.

         

       “그래. 예언자의 능력으로 미래를 봤을 때 말이야, 내가 이 술을 손에 들고 있었단 말이지. 잘 기억은 나지는 않지만, 온갖 방법을 이용해서 쥐어짜서 이렇게 복원했다고.”

         

       막걸리라는 것은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은 술이다.

       그것이 생막걸리라면 더더욱.

         

       그렇다면 그의 예언은 내년 초에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뭔가 착각한 거 아닐까요?”

         

       그것은 바로 예언에 묘사된 아나스타시아의 모습이었다.

       단 몇 달 만에 아나스타시아가 초등학생의 모습에서 성인이 될 리가 없었다.

         

       아그네스는 당연한 의문을 품었고, 윌리엄은 그런 아그네스의 모습에 ‘또 시치미를 떼네.’라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 그건….”

         

       하지만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었던 엘라는 아그네스에게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 있던 진성이 그녀의 손을 콱 붙잡더니 다른 손으로 검지를 들어 그녀의 입술에 대었다.

         

       그리고는 입 모양만 움직여 말했다.

         

       쉬잇.

         

       엘라는 갑자기 자기 입술을 검지로 막은 진성의 모습에 얼굴을 붉혔고, 하려던 말을 잊어버린 채 진성의 말에 따라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진성은 그게 옳다는 듯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곤 시선을 돌려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아, 네스.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어. 하지만 말이야, 이건 알아줬으면 해. 엘라의 언니라는 이 여자가 예쁘기는 한데 말이야, 나는 네스가 더 좋다고.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네스를 위해서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시아? 어쨌든 이 여자를 포기하기로 했다고. 내 이 진심 어린 마음을 알아줬으면 해.”

       “하, 참 잘도 그러겠네요.”

       “이런. 지금 질투하는 거야?”

       “뭐라고요? 너 돌아버린 거야?”

       “흐. 귀엽기는.”

         

       윌리엄은 아그네스에게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아니, 전달했다기보다는 그냥 일방통행으로 쑤셔 박았다.

       그는 아그네스의 반응도, 말도 무시하고 대화를 그대로 종료해버렸다. 그리고는 진성과 눈이 마주치자 피식 웃더니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사위. 주술사라며?”

         

       그는 진성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나에게 감사하라는 듯 오만한 표정을 짓더니 시계를 풀어 그의 앞으로 던졌다.

         

       “요새는 주술사도 꾸미고 다닌다고 하던데. 거 곱상하게 생겼는데 그렇게 치장하고 다니면 여자가 좋아하겠어?”

         

       그러더니 그의 옆에 앉은 엘라를 슬쩍 눈동자로 훑었다.

         

       “특히 온갖 귀한 거 먹고 귀한 거 입고 자란 저 애새끼랑 사귀는 거면 더하지. 패션에도 신경을 쓰라고. 돈 없는 집안도 아니고, 재주 없는 것도 아니잖아? 칙칙하게 하고 다니기는.”

         

       칭찬보다는 욕에 가까운 말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그러한 윌리엄의 평가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고, 자신의 앞에 던져진 시계를 윌리엄 쪽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이런 귀한 것을 그냥 받을 수는 없습니다.”

       “아, 그냥 받으라니까. 지금 장인 될 사람 선물 거절하는 거야?”

       “너무 값비싼 선물을 그냥 받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지요. 너무 과분한 선물입니다.”

       “하, 누가 주술사 아니랄까 봐 말 하는 거 봐라?”

         

       윌리엄은 선물을 거부하는 진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가,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다시 진성에게로 시계를 던졌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럼 그거 복채하고, 남는 거는 가져. 어디 주술사 사위 점술 솜씨나 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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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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