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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0

       비무대 바닥에 내리꽂힌 무수히 많은 암기.

         

       그 사이에 널브러져 고통에 신음하는 조원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옥면신룡조와 백우진.

         

       ‘졌다.’

         

       패배.

         

       자신과는 인연이 없을 줄로만 알았던 두 글자가 전신을 짓눌렀다.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그는 생각을 거듭했다.

         

       가장 이상적인 패배, 크게 잃지 않는 패배를 위해선 어찌해야 하는가.

         

       ‘크으…!’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잘근잘근 씹으며 쓰린 속을 달래는 독고천.

         

       이미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잃었다.

         

       고르고 고른 옥석이라 생각한 열아홉의 부하들은 고작 다섯에게 쓰러졌고, 백 년 만에 재등장한 파천제왕신공은 그 처음을 패배로 장식하게 생겼다.

         

       이보다 더한 패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생각해내야 한다.’

         

       그나마 덜 잃기 위한 수를.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싸워야 하나.

         

       아니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는 게 좋을까.

         

       짧은 시간에 수십 가지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결정을 내린 듯, 쥐고 있던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단체전에서 혼자 이긴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것은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

         

       그는 지금의 패배를 혼자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으로 퍼뜨려 분산시켰다.

         

       “우리 조의 패배다.”

         

       구태여 자신이 아닌, 우리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돌아서는 독고천.

         

       끝까지 싸우지 않은 것은 모두 이를 위해서였다.

         

       건재한 상태로 비무대를 내려감으로써 단체전의 패배가 곧 자신의 패배는 아님을 시사한다.

         

       동시에 하오문을 이용해 이러한 사실을 더욱 부각시키면 패배의 굴욕이 어느 정도 가실 터.

         

       ‘…이게 최선이다.’

         

       그는 그렇게 자위하며 널브러진 동료들을 챙겼다.

         

       정확히는 챙기는 척했다.

         

       송구스러운 마음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열아홉의 충직한 부하들.

         

       “죄송합니다, 조장.”

       “잠시 방심하는 틈에 놈들이 그런 수를 쓸 줄은….”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네.”

         

       비무의 내용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시종일관 강세를 유지하다가 도박수에 당했다고 해도 패배는 패배.

         

       ‘버러지 같은 놈들.’

         

       독고천의 눈에 그들은 더 이상 부하로 비치지 않게 되었다.

         

       제게 패배를 경험하게 만든 쓸모없는 버러지일 뿐.

         

       혐오감이 치밀었지만, 그는 꾹 눌렀다.

         

       버러지라곤 해도 그들은 어디까지나 정파 무림을 지탱하는 명가의 자손들.

         

       그들의 쓰임새는 여전히 무궁무진했으니.

         

       피 흘리는 부하들을 독려하고 그들이 의약전으로 실려 가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 독고천은 당당한 보무로 비무대를 내려왔다.

         

       백우진은 히죽 웃는 얼굴로 언진섭을 돌아보며 말했다.

         

       “무언가 빼먹으신 게 있는 것 같은데….”

         

       언진섭은 비무대 중앙으로 묵묵히 걸어나와 외쳤다.

         

       “백흑전에 나서게 될 정무학관의 단체전 대표는 옥면신룡조로 결정되었소!”

         

       와아아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환호성이 뒤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초절정에 이른 젊은 고수 두 사람의 대결에 마지막에는 당가의 비전인 만천화우까지 직접 보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뜨거운 환호와 박수 속에서 선발전의 막이 내렸다.

         

         

       * * *

         

         

       비무대에서 내려와 모두의 열띤 시선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후.

         

       백우진은 이상과는 먼 차가운 현실을 맞이했다.

         

       “스읍…, 분명히 뜨거운 재회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 특히 당선영와 제갈연지가 아주 강조하여 말하기를.

         

       재회에도 준비가 필요하고 하더라.

         

       “대체 무슨 준비를 한다는 건지, 원….”

         

       그래서 시간을 조금 갖기로 했다.

         

       저녁 시간에 맞추어 자주 가던 객잔에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시간이 붕 떠버린 백우진은 오랜만에 기숙사에 들러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 의복을 꺼내 입었다.

         

       활동성이 편하단 이유만으로 주구장창 입어대던 무복이 아닌, 고위 가문 자제들이나 입을 법한 치렁치렁한 차림새로 제 모습을 가꿨다.

         

       “이제야 알겠네.”

         

       꾸며놓고 보니 알겠다.

         

       그녀들이 말한 재회를 위한 준비라는 게 무엇인지.

         

       그가 그녀들에게 잘 보이겠단 생각만으로 불편한 의복을 억지로 입었듯, 그녀들도 오랜만에 본 자신에게 예쁘고 고운 모습을 보이고 싶었으리라.

         

       백우진은 흐뭇하게 웃으며 조금 이른 시간에 기숙사를 나섰다.

         

       “어디 계시려나….”

         

       연무장에 다다른 그는 곧장 기감을 활짝 넓혔다.

         

       광범위한 기감 속에 수백의 기척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곳에 백우진이 찾고자 하는 이는 없었다.

         

       “꽁꽁 숨으셨구만.”

         

       그는 쓰게 웃으며 억지로 넓힌 기감을 다시 축소시켰다.

         

       그녀가 숨고자 한다면 백우진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 혈수마녀는 현경에 다다른 무인이니.

         

       묘한 감각이 그를 에워쌌다.

         

       기감과는 다른, 확신할 수 없는 육감이 그리 말하는 듯했다.

         

       그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하다고.

         

       가까운 곳에 기척을 죽이고 숨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확신.

         

       어쩌면 지금 하려는 일은 다시 없을 창피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백우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후배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왔는데 이리도 안 나타나시니, 실망이 큽니다.”

         

       실망을 운운하는 것치곤 그의 얼굴은 싱글벙글 웃고 있기 바빴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 갑니다만, 밤까지도 모습을 안 보이시면 정말 삐질 겁니다.”

         

       진짜로, 거짓말 아니고.

         

       유치한 말을 몇 번이나 강조한 백우진은 조원들과 만나기로 한 객잔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떠나간 뒤, 아무도 없는 곳에 나지막한 음성이 바람을 타고 흘렀다.

         

       “…썩을 놈.”

         

         

       * * *

         

         

       비로소 조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학관의 생도가 아니라 선발전에 참여하지 못했던 설수연과 송희연까지 일곱에 백우진까지 포함하면 총 여덟 명.

         

       단출하지만, 한자리에 모여앉으면 시끌벅적해질 인원수.

         

       “어, 음.”

         

       그럼에도 그들이 모인 객실은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난데없이 찾아와 무겁게 내려앉은 적막.

         

       이를 깬 것은 다름 아닌 장삼이었다.

         

       “저어….”

         

       뭐라도 말문을 틀 수 있다는 생각에 백우진이 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장삼!”

       “음식 좀 먹어도 되오? 이대로 뒀다간 식을 듯하여.”

       “…먹어라.”

       “잘 먹겠소! 이보게, 광수! 자네도 어서 들게!”

       “…….”

         

       무겁게 내려앉은 적막, 눈치 없는 두 사내놈의 쩝쩝거리는 소리로 대체되었다.

         

       이때 그는 진심으로 고민했다.

         

       잘 왔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음식에만 환장하는 저 두 놈의 뒤통수를 갈길까, 말까 하고.

         

       ‘이 정도면 포청천도 봐주지 않을까?’

         

       식탁 아래 놓여있던 손이 스멀스멀 위로 올라오려 할 즈음.

         

       입에 모조리 구겨 넣은 음식을 술 한 잔으로 말끔히 내려보낸 장삼이 입을 열었다.

         

       “거, 이제 연기 그만해도 되지 않소?”

         

       무심코 던진 그의 말에 여인들의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고불고 난리 치면서 누가 먼저 껴안을지 순서 정하자고 해놓고선….”

         

       마구 주절대던 그에게 날카로운 물체가 날아들었다.

         

       “헙!”

         

       헛바람을 들이켜는 장삼의 옆을 쌩하니 지나쳐가는 비수.

         

       “음식이 싱거운 것 같은데…, 당가 특제의 향신료라도 뿌려 줄까?”

         

       아뿔싸.

         

       자신도 모르게 너무 나불댔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장삼이 어색하게 웃으며 여전히 먹느라 바쁜 구왕수의 목덜미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허험! 우린 밥도 다 먹었으니까 이만 쉬러 가야겠소.”

         

       도망치듯 객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장삼과 구왕수.

         

       그들은 얼굴을 빼꼼 내밀며 백우진과 눈을 맞췄다.

         

       “생환을 축하하오, 조장.”

       “고생했어!”

         

       그 말을 남긴 뒤, 두 사람은 조용히 객실 문을 닫고 떠났다.

         

       이윽고 다시 찾아온 적막.

         

       뭐 때문인진 몰라도 다른 여인들이 우물쭈물한 사이, 제갈연지가 벌떡 일어나더니 백우진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백 공자아…!”

       “으잉?”

         

       일견 담담해 보였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보고 싶었어요오.”

         

       그의 가슴에다 얼굴을 마구 비벼대는 제갈연지를 보고 아차 싶은 표정을 짓는 다른 여인들.

         

       당선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연지, 너 진짜…, 하아.”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듯한 표정.

         

       그러자 제갈연지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당선영을 보며 미안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미안해요, 언니….”

         

       의아한 표정으로 다른 여인들을 바라보는 백우진.

         

       “뭐야, 뭔데.”

         

       다른 여인들의 시선이 전부 당선영에게로 향했다.

         

       뭘까.

         

       서열 정리가 끝난 듯한 이 모습들은.

         

       그 덕분에 백우진은 제 시선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깨달았다.

         

       해명을 요구하는 그의 느긋한 눈빛에 당선영의 얼굴이 점차 붉어졌다.

         

       “오, 오해하지 마. 그냥 당신을 놀래려고 연기한 것뿐이니까.”

         

       아, 그랬던 건가.

         

       비무대 위에서는 그렇게 울먹이더니 지금은 왜 그리 무덤덤한가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아니, 근데 내가 뭘 했다고?”

         

       매우 타당한 의문에 당선영이 날카롭게 쏘아보며 말하길.

         

       “사람 많은 데에서 내 치부를 그리 드러내놓고 무사할 줄 알았니?”

         

       백우진은 억울했다.

         

       “아니, 그거 어차피 당신 귀에다 대고 조그맣게 말한 걸…!”

         

       억울함을 토로하던 그때.

         

       그의 품에 가만히 안겨 있던 제갈연지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아…, 그 오른쪽 가슴 밑에 점이요…?”

       “…제갈 소저가 그걸 어떻게 알지?”

       “그냥 들렸는데요…?”

       “…….”

         

       아무래도 조원들의 경지가 생각보다 더 높아진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원들부터 혈수마녀까지.

    짧은 해후 에피소드가 이어집니다.

    과연 혈수마녀와의 재회는 어떨지,,, 지겨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제부로 혈수마녀 일러스트 제작 들어갔읍니다!!!!

    최대한 예쁘게 가져오도록 할 테니, 그것도 기대해 주십시오!!!

    그럼 저는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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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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