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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0

       

       

       

       

       

       

       “아르야, 뚝. 응? 착하지.”

       “뿌에에에에엥!”

       

       아르는 내가 커다란 궁둥이를 한참 토닥여 주고서야 조금씩 울음을 그쳤다. 

       

       “훌쩍, 훌쩍. 아르… 벌써 세 살인뎅, 쀼국…. 생일 추카 한 번두 못 바다써, 삐꾹….”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그치며 중얼거리면서도 계속 딸꾹질을 했다. 

       

       “삐꾹.”

       

       커다란 덩치로 딸꾹질을 할 때마다 어깨가 들썩였다. 

       

       “에고, 미안해. 아르야. 사실 그동안 생일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언젠간 있을 줄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게 지금이 될 줄은 몰랐던 일이었다. 

       

       아르의 생일.

       그걸 챙기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단 내가 아르의 생일을 정확하게 몰랐었어….”

       

       아르의 생일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몰라써…?”

       

       그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는 표정을 짓기에, 나는 급히 덧붙였다. 

       

       “아르 생일뿐 아니라, 난 내 생일도 몰랐어. 내가 말했다시피 난 다른 세계에서 갑자기 레온이 된 거였으니까.”

       

       사실이었다. 

       

       상태창에 생일이 써 있는 것도 아니고, 바냐스 마을 습격 당일에 허겁지겁 하무트교 놈들로부터 도망쳐서 겨우 겨우 목숨을 부지했으니까.

       

       ‘그 이후로 아르를 만나긴 했지만, 아무도 없는 숲에서 며칠을 보내야 했고, 정확한 날짜를 알게 된 것 자체가 한참 후였지.’

       

       당시에는 정말 생존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의 날짜를 신경쓰면서 살 여유 같은 게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날짜 개념이 좀 잡히긴 했지만, 그때는 뭔가 생일을 챙기기엔 너무 멀리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내 생일이라도 알았으면 그냥 아르 생일이 내 생일이라고 치고 함께 축하하는 자리라도 만들었을 텐데.’

       

       내 생일부터 모르다 보니 챙기질 않게 됐고, 그렇다고 갑자기 내 생일은 이제부터 몇 월 며칠이야! 하고 선언한 다음 챙기기 시작하기도 그렇고….

       

       ‘게다가 실비아 씨도 생일 관련 얘기는 꺼낸 적이 없고.’

       

       내 시선이 실비아에게 향하자, 실비아는 살짝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죄송해요. 인간의 풍습 중 생일을 챙기는 풍습이 있다는 걸 저도 까먹고 있었어서…. 엘프 사이에선 생일 같은 건 안 챙기거든요. 대신 다른 특별히 기념할 만한 일이 있으면 다 같이 축하하죠.”

       

       하긴, 천 년 이상 사는 엘프가 전부 매년 생일을 챙기는 걸 상상하면 좀 아득하긴 하다.

       

       “아무튼, 절대 일부러 아르 생일을 챙기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야. 그러니까 울지 말렴, 응?”

       

       하지만 아르는 여전히 훌쩍이며 말했다. 

       

       “그치만, 훌쩍. 구러면 아르한테 물어 밨으면 대짜나. 훌쩍.”

       “어…. 아르는 아르 생일이 언제인지 기억하고 있는 거니?”

       

       이 생각은 못 했는데.

       

       “우응. 정확하게 말하며는 아르가 태어나구 얼마나 지난 곤지 반대루 생각해 보면 알 수 이써.”

       “반대로?”

       

       설마 처음으로 날짜를 알게 된 날부터 반대로 시간을 되짚어서 며칠인지 역산해 보면 된다는 소린가?

       

       “그게 가능하니…?”

       “우응. 아르는 다 기억하구 이써.”

       

       이게 드래곤의 기억 능력인가…?

       

       아르 앞에서 흑역사는 되도록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잠깐만 기다려 바. 정확한 고는 기억을 되짚어 바야 대.”

       

       아르는 눈을 꼬옥 감더니, 자신의 기억 속 영역 깊은 곳을 유영했다. 

       

       그러고는 곧 눈을 떴다. 

       

       “아르 생일은 4월 7일이어써!”

       “4월 7일이면…. 지난 지 얼마 안 됐네?”

       “우응. 구래서 아르 세 살 돼써.”

       

       벌써 아르가 태어난 지 3년이나 지났다니.

       

       ‘시간이 진짜 빠르긴 빠르네.’

       

       하긴, 페룬 대륙에서는 어떻게 보면 시간이 더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여기는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없고 어디 멀지 않은 곳으로 이동만 하려고 해도 기본 며칠이 걸린다. 

       

       게다가 통신도 무려 ‘전보’로 하기 때문에 뭔가 다른 도시와 소식을 주고받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야말로 슬로우 라이프지.’

       

       나 역시 단검술 수련을 하며 조금만 상위 단계로 올라가도 뭐 하나 마스터하려면 시간이 몇 주, 개월 단위로 소모됐다. 

       

       그것도 아르에게 ‘습득’ 특성을 빌려서 그나마 이 정도다. 

       

       재능 없는 기사들이 견습 기사에서 정식 기사가 되는 데에만 최소 몇 년씩 걸리는 걸 생각하면, 나는 이 정도면 정말 초고속으로 실력이 늘었다고 봐야 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정신 없이 굵직한 일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보면 3년 밖에 안 된 셈이었다. 

       

       ‘아르가 세 살이라니.’

       

       어떻게 보면 세 살밖에 안 됐어 싶다가도 어떻게 보면 벌써 세 살이나 됐나 싶었다. 

       

       복잡미묘한 감정이었다. 

       

       “…어쨌거나 생일 못 챙겨 준 건 정말 미안해, 아르야.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진심으로 사과할게.”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최대한 진심을 담아 아르에게 사과했다. 

       영혼의 계약자로서 이 절절한 마음이 아르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훌쩍…. 정말루 미아내?”

       

       이제 거의 울음을 그친 아르는 괜히 코를 한 번 더 훌쩍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응. 대신 아르가 해 달라는 거 다 해 줄게. 그동안 못 줬던 선물 다 준다고 생각하고. 이번까지 해서 소원 세 개, 어때?”

       “소원 세 개?”

       

       소원이라는 말에 아르가 반응했다. 

       

       “진짜루 다 들어 주는 고야?”

       “어, 음. 내가 들어 줄 수 있는 선에서는?”

       

       급 밝아진 표정을 보니 왠지 불안해진 나는 얼른 조건을 추가했다.

       

       갑자기 막 세계 정복 같은 걸 얘기하면 내가 들어 줄 수가….

       

       어, 언젠간 가능이야 할지도?

       

       아무튼.

       

       아르는 잠시 고민하더니, 손을 척 뻗고는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 

       

       “구럼 일딴 하나! 아르 생일 지났찌만, 오늘이 아르 생일이라구 생각하구 생일 파티 해 조!”

       

       아르가 콧김을 뿜었다. 

       

       생일 파티라는 말을 듣고 정말 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건 해 줄 수 이찌?”

       

       살짝 긴장했던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그건 사실 소원으로 말 안 해도 당연히 해 줘야 하는 거지. 오늘 바로 할까?”

       “우응! 내일이며는 레키온 삼쵼이랑 데보라 온니 돌아가자나. 알렉쓰 삼쵼두 곧 가구. 돌아가기 전에 다 가치 파티 하구 시퍼! 아르 생일 추카두 받구.”

       

       며칠 뒤면 다시 나와 아르, 실비아만 남으니 다들 있을 때 시끌벅적한 파티를 즐기고 싶은 모양.

       

       “좋아. 그럼 오늘 당장 파티 준비를 시작해야겠구만. 다들 괜찮으시죠?”

       

       내 말에 레키온과 데보라,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아르의 첫 생일 파티라니, 제가 무조건 무조건 무조건 참가해야죠!”

       “할 거면 돌아가기 전에 하는 게 좋긴 하죠.”

       “저도 좋습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나갔을 때 아르 생일 선물도 사 오는 건데.”

       “지금이라도 빨리 가서 사 올까? 아르 생일 파티 용품도 살 겸 해서.”

       “좋지!”

       “아르는 어떤 선물이 받고 싶니?”

       

       실비아의 물음에, 아르는 손으로 허공에 턱을 괴었다. 

       

       “우음, 아르는 사실 어떤 거든 상관 업써여! 선물은 주는 사람의 마음이랑 정성이 중요한 거자나여!”

       

       아르가 보석을 좋아한다지만, 이미 부자인 데다가 황제가 준 증표까지 가지고 있는 마당에 선물의 액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터.

       

       ‘근데 오히려 그게 더 어렵긴 한데.’

       

       비싸면 땡인 것보다, 상대가 뭘 좋아할지 고민하고 정성을 담아 고르는 것이 더 어려운 법.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선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겠지.

       

       아르도 그걸 원하는 걸 거고 말이다.

       

       “좋아. 그럼 아르 생일 파티는 오늘 저녁으로 하고, 5시 전까지 다들 선물을 골라 오는 걸로 합시다. 세팅 등 이런저런 준비도 해야 하니까요.”

       “오케이!”

       “좋습니다.”

       “출발!”

       

       ***

       

       그 이후, 모두들 흩어져서 아르의 생일 선물을 사 왔다. 

       

       나 역시 아르의 생일 선물을 고르려고 나가는데, 아르가 내 소매를 꼭 잡으면서 따라가고 싶다고 해서 같이 나갔다 왔다. 

       

       그러면 깜짝 선물의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했는데 상관없단다. 

       

       -아르 생일인데 구럼 쓸쓸하게 혼자 두고 가 버릴 고야? 히잉.

       

       이러는데 어떻게 두고 가겠는가. 

       

       그래서 나는 선물을 고르는 김에 아르와 함께 다니면서 생일 파티에 쓸 만한 소품들을 샀다. 

       

       이를테면 깜박이는 행사용 초소형 발광석이라든가.

       

       아르야, 세 번째 생일을 축하해! 같은 커스텀 문구를 넣을 수 있는 현수막이라든가.

       

       그 현수막 옆을 주르륵 장식할 아기자기한 장식품들, 초와 작은 폭죽.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크림으로 아르 얼굴 모양을 크게 그려 넣은 케이크도 바로 주문을 넣어 오후 5시가 되기 전에 수령했다. 

       

       아, 그리고 내가 고른 아르의 생일 선물은 바로, 아르 전용 대왕 배게였다.

       

       ‘커진 머리로 사람용 베개를 베고 자는 모습이 뭔가 좀 불편해 보일 때가 있단 말이지.’

       

       원하는 모양과 크기, 그리고 원하는 무늬로 자수 커스텀을 할 수 있기에, 회색 실로 아르 모양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것도 케이크와 마찬가지로 이따 수령할 테니 최대한 빨리 작업해 달라고 부탁하며 금액을 세 배 얹어 주었다.

       

       모든 작업을 올 스탑하고 이 작업에 몰두하겠단다.

       

       아무튼 아르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아이스크림도 좀 사 주고, 쇼핑도 하고, 마지막엔 케이크와 대왕 베개를 수령했다. 

       

       “쀼우웃! 레온, 아르 이거 넘무 맘에 드러! 잘 때 더 편하게 잘 수 이쓸 거 가타! 고마어!”

       

       아르는 딱 필요한 물건이었다며, 아르 자수가 놓인 부분에 뺨을 문지르며 좋아했다.

       

       “헤헤, 부드러어….”

       

       그렇게 호텔로 돌아가니, 의외로 모두들 먼저 들어와서 거실을 이리저리 꾸미고 있었다. 

       

       “소품은 제가 산다고 했는데….”

       “에이, 그래도 어떻게 빈손으로 옵니까. 아르 생일인데.”

       “레키온이 그냥 신나 가지고 멋대로 마구 샀어요.”

       “그럴 것 같았어요.”

       

       다들 사 온 선물은 생일 축하 노래를 끝내고 나서 한 명씩 주기로 하고, 먼저 케이크를 세팅했다. 

       

       “우와, 그새 이걸 주문 제작하신 거예요?”

       “아르 그림이라니, 귀엽네요.”

       

       나는 케이크 가운데에 초를 세 개 꽂았고.

       

       방의 모든 불을 끈 뒤, 굳이 성냥으로 초에 불을 붙였다. 

       

       팟.

       

       어두운 방 안에서 성냥이 켜지자, 커다란 고깔 모자를 쓴 아르의 얼굴이 불빛에 비쳤다. 

       

       “쀼우…!”

       

       아르는 뭔가 벌써부터 감동 받은 얼굴로 입을 벌린 채 성냥불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초 세 개에 불이 붙고.

       

       모두가 조용해진 후.

       

       내가 조심스럽게 먼저 운을 띄웠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그러자 모두들 함께 박수를 치며 내 노래를 따라 불러 주었다. 

       

       “사랑하는 우리 아르,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르으으으!!”

       “생일 축하합니다!”

       

       짝짝짝짝짝.

       

       박수와 함께 아르가 입을 쭉 내밀고 후우, 하고 바람을 불어 초를 꺼뜨렸다. 

       

       “와아아아아!”

       

       박수와 함께 거실의 불을 켜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소형 폭죽을 터뜨렸다. 

       

       펑! 펑!

       

       “아르야,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축하해!”

       

       모두들 연이어 박수를 치며 아르의 반응을 기다렸다. 

       

       “삐유….”

       “아르야?”

       

       그런데 방방 뛰면서 기뻐할 것이라 생각했던 아르는 의외로 조용했다. 

       

       “어, 아르야? 혹시 뭔가 맘에 안 들었니?”

       “폭죽이 너무 시끄러웠나?”

       “그러게 내가 하나만 하자고 했잖아.”

       “하지만….”

       

       그리고 그때.

       

       “삐유우우…! 모두들, 훌쩍. 정말 고마워여어어어!!”

       

       아르가 모두에게 고맙다고 외치며, 다시 한번 눈물을 터뜨렸다.

       

       하여간, 정말 눈물이 많은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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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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