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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0

       결국 손아름은 우리가 지내는 방까지 따라왔다.

        

       이 노트를 보여주겠다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사실, 노트 자체가 탐났던 것은 아니다. 엄청나게 잘 만들어진 필기 노트인 건 사실이고, 당연히 이걸로 공부하면 엄청나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몇 번이나 말했듯, 나는 공부에 별다른 열의가 없었다.

        

       성적을 더 이상 뇌물로 처리할 수 없게 되었으니 공부하긴 해야 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하기 싫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그냥 평범한 가정에서 살던 고등학생이면 어쩔 수 없이 하긴 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공부같은 것은 하지 않고…… 아니, 아예 일하지 않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았으니까.

        

       그저 그 노트를 일부러 보여주겠다는 손아름의 정성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만족스럽고 뿌듯한 표정이라, 내가 거절한 뒤에 지을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면 그만큼 죄책감도 클 것 같았다.

        

       “언제 봐도 큰 집이네…….”

        

       집 앞에서 손아름은 내 저택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맞는 말이다. 사실, 고작 몇 사람 지내기에는 지나치게 큰 저택이었다. 심지어 정문 경비용 숙소조차도 좁은 경비실보다는 하나의 작은 집이라고 하는 쪽이 더 맞을 정도로 규모 있는 곳이었다.

        

       “원래는 백화점으로 쓰이던 곳이니까.”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등록문화재까지 되었으니까. 뭐, 국보나 보물보다는 한참 못한 등급이긴 했지만, 그래도 자가에 ‘등록문화재’ 딱지를 붙이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손아름이 나를 따라 오는 것이 그렇게 불만이었는지, 하늘이, 수아, 소희 이 세 사람은 여전히 손아름을 조금은 경계하는 눈으로 보았다. 다행히 손아름 본인이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지만…… 기왕이면 그런 표정은 좀 지워줬으면 좋겠다.

        

       초대한 내가 불편해지잖아. 혹시라도 이게 계기가 되어서 싸우게 되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하다.

        

       친구 사이에 등급 같은 것을 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나로서는 결국 세 사람을 버릴 수 없을 테니까. 물론 내가 부탁하면 세 사람도 들어주겠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겪을 일을 생각하면 벌써 몸이 떨렸다.

        

       “……일단은 들어가자.”

        

       “응!”

        

       손아름은 또 손아름대로 엄청나게 신난 것 같다. 먼저 들어가는 내 뒤를 따라오는 발걸음이 엄청나게 경쾌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손아름은 엄청나게 도움이 되긴 했다.

        

       물론 하늘이가 손아름보다 못하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둘의 공부 스타일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원작에서의 유하늘이 대체 어떻게 그런 성적을 유지하나 싶었는데, 사실 그건 유하늘이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았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원작에선 모든 능력치가 1부터 시작하지만, 그건 그저 작중에서 주인공인 유하늘의 성장을 보기 쉽게 나타내기 위해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아예 장학생으로 시작하는 주인공의 머리가 나쁠 수도 없지.

        

       아, 물론 손아름의 머리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손아름도 똑똑했다. 학원이나 과외 없이 그저 교재와 문제집 몇 권, 그리고 공영방송국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강의 정도만 듣고 성적을 언제나 상위권으로 유지하는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둘의 공부 스타일은 극과 극으로 달랐다.

        

       하늘이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다 보니, 조금 복잡한 수식이나 어려운 단어가 있으면 그냥 외워버렸다. 중요한 단어나 숙어, 수식 같은 것을 보기 좋게 깔끔하게 정리하는 건 잘하지만,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한 노트를 그대로 머릿속에 넣어버리는 것이다.

        

       하늘이의 머릿속은 그만큼 넓고 깊었으니까. 생각해보면, 게임에서도 선생의 질문에 답하는 선택지를 고를 때 그냥 선택지를 클릭하는 식이었으니, 문자 그대로 ‘암기’이긴 했다.

        

       반면에 손아름의 공부법은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필기 자체가 사실을 요약하고 나열한다기보다는, 남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예를 들어, 특정한 순서를 가진 여러 단어를 외워야 한다면 그 단어들의 앞글자들을 딴다. 그리고 그 앞글자들에 스토리텔링을 해서 쉽게 잊어버리지 않게 한 것을 다 필기에 적어놓는 식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중간에 생각나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잖아.”

        

       하늘이는 손아름의 그런 암기를 다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중간에 몇 개가 기억나지 않아도 앞이나 뒤는 기억나니까. 문제를 통째로 틀릴 일은 잘 없어. 어려운 문제라도 선택지를 좁힐 수 있고. 앞이나 뒤를 쓰다가도 도중에 생각나서 빈칸 채우기도 수월하니까.”

        

       “그러니……?”

        

       하지만 하늘이는 여전히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꼭 ‘그렇게 하면 더 길어져서 외우기 어렵지 않나?’하는 표정이었다.

        

       이래서 천재는 범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까.

        

       ……아니, 반대던가? 뭐, 그렇다고 하늘이가 완전히 천재라서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는 기분이 든 적은 없지만.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 이 방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는 천재보다는 범인의 범주에 드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예를 든다면,

        

       “오, 진짜. 아예 문장형으로 만드니까 더 머리에 잘 들어오는 것 같아. 중학생 때도 이런 식으로 외운 적이 있기는 한데, 보통은 진짜 어려운 것만 그런 식으로 외웠으니까. 이렇게 하나하나 다 꼼꼼하게 만든 건 또 처음 본다.”

        

       진짜로 감탄하고 있는 소희라던가.

        

       아마 이 방에서 제일 공부 못하는 사람 둘을 꼽으라면 나와 소희 둘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소희도 겉보기와는 다르게 꽤 성실한 편이고, 그래서 성적이 많이 밀리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순서를 정하자면 나와 소희는 중상위권인 수아보다 성적이 낮았으니까.

        

       “하긴, 예전에 같이 공부하던 친구 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공부하던 애들이 있긴 했어.”

        

       수아의 말에 손아름은 조금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학원이나 과외 같은 건 안 받아?”

        

       내가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수아도 한국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수준으로 큰 회사 회장의 외동딸이었다. 하긴, 학원이나 과외를 받지 않는 것이 조금 신기하기도 하다. 화영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생활이 모두 제각각이긴 했지만,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좋지 않은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사교육에 의한 선행학습 때문이었으니까.

        

       “응. 그보다는 친구들이랑 모여서 공부하는 쪽이 좋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이 더 편해.”

        

       “그렇구나…….”

        

       손아름은 조금 감탄한 것 같았다.

        

       의외로 수아의 집안은 꽤 털털한 편일지도?

        

       뭐, 나랑 놀지 말라고 했던 것을 보면 나름대로 소문에 대해서는 꽤 신경 쓰는 집안이었던 것 같지만.

        

       “…….”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손아름의 공부 스타일에 감탄하던 중에도 불만을 가진 사람이 한 명 있는 것 같긴 했지만.

        

       바로, 손아름이 오기 전까지 우리들의 공부를 책임지고 있던 하늘이였다.

        

       턱을 괴고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하늘이를 보니, 조금 죄책감이 일었다.

        

       ……이건 나중에 따로 달래줄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

        

       인기가 많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내가 이런 말을 몇 번이나 하게 될 줄은 진짜 몰랐지만, 그래, 막상 이런 처지가 되고 나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정말로 내가 그저 ‘인기가 많은’ 수준에서 그쳤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끔 인터넷에서 보던 ‘여자들한테 식사하자는 카톡 엄청나게 받는 인간의 카톡 인증 내역’같은 걸 올리는 사람 수준이라면 오히려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을 거다. 대부분은 나와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은 아닐 것이고, 식사 정도는 거절하면 되는 일이니까.

        

       문제는, 나에게 고백을 한 세 명이 모두 나와는 떼어놓을 수 없는 친한 친구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세 명은 우리가 같은 성별이라는 것도 극복하고 고백을 해왔다. 그만큼 큰 결심을 하고 고백했다는 소리다.

        

       그렇게 고려해야 할 관계와 상황이 얽히고설켜서, 안 그래도 연애 경험 없는 내가 더욱 당황하고, 실수하게 된다. 상대를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피하던 상황이 오히려 다른 상대를 상처입히는 일이 생긴다.

        

       이번처럼.

        

       게다가, 나는 아예 그 세 사람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같은 방을 쓰고 있다.

        

       “…….”

        

       쏴아, 하고 머리 위로 쏟아지는 물을 받으며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하늘이와 단둘이 대화하고 싶다. 오늘 저녁에 있었던 손아름과의 대화에 대해서 악감정은 없고, 너에게 받은 도움도 크게 감사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여기에 개인 공간은 없다.

        

       세 사람과 같이 지내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불편함을 크게 실감했다.

        

       “후우.”

        

       얼굴로 물을 받다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숨을 크게 내쉰다.

        

       “좋아.”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세 사람은 모두 나와 붙어 지내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서로 질투하기도 한다.

        

       그러니, 한 사람과 대화하면, 나머지 두 사람과도 대화해 줘야겠지. 아침마다 포옹하고 키스해주는 것처럼.

        

       ……좋아, 오늘 저녁은, 개인 면담을 하기로 하자.

        

       ……그러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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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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