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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0

        

         “이런 씨팔, 소장님! 소장…… 야, 엘렉트라! 그만 멍 때리고 정신 좀 차려 봐!!”

         “…….”

         

         끼이이익….

         

         다리에 힘이 풀려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엘렉트라를 질질.

         구두 끝이 바닥을 긁는 그녀를 방송을 듣고 황급히 달려온 보안실장과 함께 반쯤 억지로 부축해 끌고 움직이면서 깁슨이 거칠게 외쳤다.

         

         당장의 안전은 주변의 에워싼 병사들이 보장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고작 몇 분만에 이리 나빠질 수 있나 싶을 만큼 안 좋다.

         간신히 해결을 보나 했더니 돌연 친구 새끼한테서 뺨을 처맞고, 아픈 곳을 부여잡았더니 외부 추가 공세가 이어지고.

         

         게다가 뭐? 이번은 적의 규모나 공격 방식이 비상식적이라 아까보다도 대응이 더 힘들다나? 시설을 포기하는 완전 대피 절차(Evacuation Protocol)를 발동해야 할 수도 있다?

         

         대체 지상에서 무슨 개지랄판이 난 건지 깁슨으로선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저 가진 화력을 퍼부어서 무사히 넘기기를 바랄 뿐.

         

         심지어 겨우 복구되었던 본사와의 연결마저 그 망할 꼬맹이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 조금 지나니 다시 끊어졌다.

         

         이럼 저쪽은 마지막으로 보낸 ‘사태 수습되었음.’ 메시지를 철썩같이 믿고 있거나… 오늘 유달리 자주 말썽을 피우는 통신망을 점검할 정비대나 겨우 보낼 테니 진짜 여기에 배속된 병사들이 실패하면 시설 전체가 함락될 수도 있다.

         

         ……썅, 이게 말인가? 엘리시움이 작정하고 네트워크에다 더티 밤(Dirty Bomb; 재래식 폭발물에 방사능 물질을 혼합한 살상 폭탄) 비슷한 걸 떨구지 않는 이상, 헤이롱과 전면전을 펼쳐도 여유가 있을 엑사테크가 힘싸움에서 밀려?

         

         엘렉트라의 대가 있는 유상의 호의로 현재 직위까지 두세 단계는 고속 승진한 깁슨에게 이 모든 걸 냉정히 파악하라는 건 무리였다. 실적이나 안목보단 다른 걸 쌓는데 더 집중했던 그였으니까.

         

         결국 모든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성격엔 하자가 좀 있고 업무 우선 순위에 사적인 의견을 강하게 반영하는 성향은 있어도 일처리는 확실한 사령탑이 정신을 씨발 차려주면 고맙겠는데.

         

         ‘개 같은!’

         

         이걸 확 뺨이라도 몇 대 갈겨야 하나?

         

         지금에야 다른 애한테 신경과 관심이 쏠려 있지만. 분명 나중에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레오나르가 저렇게 엇나갈 동안 몇 년이나 사랑의 메신저-중간 연락책- 역할을 자청한 너는 뭐했냐며 혓바닥과 손가락을 뽑아버리려 들 법한 여자다.

         

         그 뒤틀린 원한은 옛정이나 친분에 의존해서 풀기도 힘들 게 뻔하니 괜히 자극하는 건 좋지 않다. 자기 보신을 위해서라도.

         

         “미스터 깁슨! 안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침입자는 항복했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소장님이 이런 꼴로….”

         

         “쯧, 직접 위해를 입은 건 타박상 정도밖에 없어! 심리적 요인이 대부분이지! 딱히 혼절한 것도 아니니 우리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있기는 할 텐데.”

         

         “허면 여분 전투 각성제가 있으니 일단 투여부터 진행하겠습니다.”

         

         주입 전까지는 바늘과 실린더가 케이스 안에 잘 감춰진 휴대용 의약품을 품에서 꺼낸 보안실장이 아직도 의미불명한 단어의 파편만 입안에서 웅얼거리고 있는 그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아예 엘렉트라가 의식불명이거나 사망했다면 모를까, 이렇게 애매한 상태여서야 그도 자의적 판단 하에 사태 수습에 진력하기 힘들었고.

         추후에 자칫 하극상으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 차라리 어떻게든 지금 확답을 듣는 게 나았기에.

         

         “……아니야.”

         

         “헙!? 괜찮으십니까? 아니지, 일단 부재 중에 전시 체제로 돌입한만큼 보고서부터 확인을….”

         

         하지만 턱 하고. 드러난 팔뚝에 주사기를 꽂기 직전, 실장의 손목을 붙잡은 엘렉트라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는 제 발로 지면을 디딘 채 그간 속으로 곱씹으며 정리한 감정과 이상을 밖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흐릿하던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질척한 증오가 깃든다.

         까드득! 약간 벌어져 있던 새빨간 입술이 빈틈없이 닫히더니 안에서 이빨 깨지는 괴음이 새나왔다.

         일종의 자해라 묘사해도 될 정도로 손톱이 손바닥 살을 파고들고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낸다.

         

         “아니야.”

         

         다른 이들은 상황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여기고, 온갖 수치들을 짜맞춰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느라 복잡한 모양인데 엘렉트라가 보기에 개요는 간단했다.

         

         적의 전력이 불명이라면 관측 데이터를 쌓으며 지연 전투를 계속하면 된다.

         시설 방위? 인명 피해가 심대하다면 전선을 뒤로 물리고, 나중에 욕을 먹더라도 직원들을 소개疏開하거나 아예 대피 작전을 시행하면 그만. 자잘한 불이익에 집착할 필요가 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들 뒤에는 이런 독립 시설쯤이야 전세계에 깔아 둔 엑사테크가 버티고 있는데.

         

         어차피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한두 가지 실패나 실수에 일희일비하는 것 자체가 낭비하는 것.

         다만 이제 엘렉트라가 이 모든 걸 쿨하게 놓아주려면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으니.

         

         “그 계집애. 여우 같은 년…!!”

         

         아나스타샤는 죽인다. 반드시. 무슨 코스트가 들더라도 죽인다. 필요하다면 이 드넓은 지하층을 일제히 붕괴시켜 생매장을 노리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모로 불가해한 능력이나 표본으로서의 가치. 이 모든 전파 테러의 기점이 그녀라는 확신도 있었지만, 내심 다른 이유를 더 앞에 두고 있었다.

         

         꼬맹이 년만 닥치게 만들면, 구체적으로 ‘로그 에이전트 레오나르’가 엑사테크에 반기를 들었던 사실을 아는 건 세상에 자신과 깁슨밖에 남지 않으니.

         

         따라서 계집은 없애고 미처 품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그를 억류하고 찬찬히… 몇 년 정도 들여서 진심으로 ‘설득’하면 사적인 욕망도 실현할 수 있다는 거다.

         

         이 모든 불쾌한 악몽과 추태를 직관한 걸로도 모자라, 무슨 수를 썼는지 명석한 남편의 판단력을 흐려 이런 폭거에 나서게 한 죄인을 벌하며 얻을 만족감은 부차적인 수확일 테고.

         

         “아니 왜 이 빌어처먹을 엘리베이터가 탑승자 인식을 이렇게 못해!? 그냥 계단으로 가는 게 더 빠르겠네!”

         

         “현재 시설물 유지 관리 부서 직원들의 업무 능력이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는 탓에 복구가 늦는 것 같아서, 우선 소장님이 쓰실 경로부터 정비하라고 연락을 넣었으니 곧 해결될 겁니다.”

         

         퉁, 타다당—!!

         

         깁슨과 실장이 떠들던 와중, 있는 대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적 드로이드 분대의 진격로를 보고받던 병사들이 돌연 통로를 향해 발포했다.

         

         쫓아왔다. 레오나르가 자신을.

         

         여기서 바로 생포할 수 있나? 그렇지만 노골적으로 화력을 억제할 경우, 이 정도 병력으로는 그가 날뛰는 걸 제압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실수로 죽이기라도 하는 건 상상도 하기 싫고.

         

         “……………안 돼. 난 절대로. 그이를 포기 못해.”

         

         하지만 지금은, 아쉽지만 물러나야 한다.

         

         전선에서 쓸데없이 소모되고 있는 병력을 끌어와서 사랑하는 그이를 안전하게 제압하고 격리. 봉쇄 상태에 돌입한 다음 어떻게든 통신망만 복구해서 연락하면 본사에서 파견될 지휘관이 나머진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런 일념으로. 눈물을 머금고 계단으로 움직이겠다는 명령을 내리려던 엘렉트라는 정말 가증스럽고 얄밉게도 레오나르의 매끈한 동체 뒤에 딱 붙어서 이쪽을 힐끔거린 소녀와 시선이 교차했다.

         

         저 요망한 년이 어딜…! 아직 자기도 의식 있는 상태에서 그의 금속 피부를 더듬어본 적은 없는데!

         

         어깨가 부르르 떨리며 팔이 올라간다.

         입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선혈도 개의치 않고 엘렉트라가 입을 연다. 삿대질과 동시에 저 안으로 소형 유탄이라도 박아서 야들야들한 소녀의 살결을 찢어버리던가 하라고 외치려는 순간.

         

         지끈!

         

         “……뭐?”

         

         세계가. 일변했다.

         

         배경이, 풍경이, 경치가, 생김새가.

         지면이, 바닥이, 위치가, 좌표가.

         

         눈을 한 번 깜빡인 순간 견고하게 설계된 엑사테크 지하 통로와 승강기, 조명과 전자기기들.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던 깁슨을 비롯한 보안실 직원들도 모조리 증발했다.

         

         대신 이계異界를 차지한 건 끊임없는 순백의 대지와 공허한 천공.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반대로 끝없는 심연과 무한한 시냅스(Synapse; 신경 세포의 돌기 말단이 다른 신경 세포와 접합하는 부위) 전달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엘렉트라는 여기가 어딘지 안다.

         가끔, 정말 가끔 연결이 충분히 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려 억지를 부리게 되면 도달하는 장소다. 최근 경험이라면, 뇌이식 수술 도중에 레오나르의 기억을 엿보려 하다가 헤맨 적이 있어서 더욱 생생했다.

         

         ……그렇지만 왜? 어떻게?? 뜬금없이 여기에 도달하게 된 이유가 뭐지? 승강기 주변엔 뇌파 실험실이 없어서 배치된 교란기나 교반기가 없었을 터다.

         

         설마, 죽을 뻔한 직후에 깁슨에게 이끌려 도망친 것 모두가 생생한 환각에 불과하고 자신은 아직 수술 기기를 작동 중인가?

         

         아니, 자의식이라면 둘째가기 서러울 정도로 확고한 게 자신이다. 단순한 꿈이나 환각이라면 진즉 파악했을 것이다.

         괜히 실전 뇌의학과 신경학 장비를 부작용이 거의 전무한 수준으로 다루는 그녀를 다른 박사들이 질려 한 게 아니다.

         

         허면 이건 멀쩡히 깨어 있는 사람의 의식을 순식간에 강제로 육체와 분리해서 가뒀다는 건데… 어떻게?

         

         “!!”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럴 여유는 무대의 막이 올라감과 동시에 사라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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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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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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