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30

   EP.230

     

   천월신공의 마지막 초식 만월과 함께 천지가 개벽할 섬광이 터져 나왔다.

     

   어둠을 몰아내며 하늘로 솟아오른 월광.

   그 빛의 중심에 있었던 혼돈이 스러지듯 소멸하며 괴성을 질렀고 이윽고 얼굴이 사라질 즈음이 되어서야 소음이 잦아들었다.

     

   띠링!

     

   그리고 나의 귓가에 들린 반가운 음성.

     

   [16층의 핵심 성좌가 사망했습니다.]

   [임무, ‘16층 – 만신의 적’을 클리어하셨습니다.]

     

   —

   『16층 – 만신의 적』

     

   성좌 : 없음

   주제 : 섬멸

   난이도 : S+

     

   설명 : 이곳은 당신을 적대하는 성좌들이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발견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공격을 가할 것이며 그들을 어떻게 상대할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적대 세력 ‘만신전’을 조심하십시오. 원한다면 그들과 협력할 수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임무 : ‘만신전’의 척결 / 핵심 성좌의 사망 또는 항복

   제한 : 제한은 없습니다.

     

   보상 : 만신전의 격

   실패 페널티 : 당신에 대한 처분은 만신전이 선택할 것입니다.

   —

     

   임무를 클리어했다는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요괴들이 쪼그라들기 시작한다.

   집채만 하던 거대한 괴물들도, 어깨춤에 오던 사족보행의 요괴나 벌레를 닮았던 요괴들도.

     

   임무의 보상 때문인지 모두가 서서히 수축하며 그 격을 잃기 시작했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이곳이 흔하디흔한 숲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후우…… 이제 보니 이놈들도 다 한낱 짐승들이었던 모양이오.”

     

   남궁명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전까지 주변을 초토화 시키며 난리를 피우던 괴물이 귀여운 다람쥐로 변하니 기분이 묘했던 것이다.

     

   그 순간부터 나의 몸에 소위 ‘격’이라 부르던 기운이 들어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좌들의 사망과 함께 격을 잃은 화신들.

     

   임무 클리어의 보상으로 주어진 ‘만신전의 격’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고 그것은 나뿐만이 아닌 나의 화신들에게도 해당하는 일이었다.

     

   “뭔가 힘이 넘치는데…?”

   “나는 조금 전에 당했던 상처가 완전히 사라졌어. 분명 어깨를 관통 당했는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사람들이 당황하며 변화해 가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훑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보았듯 격이 오른다는 것은 그저 마력이 증가한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었다.

     

   “아저씨!”

     

   멀리서부터 나에게 달려오는 네 사람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발이 빨랐던 사람은 신기하게도 한가민이었고.

     

   와락!

     

   한가민은 별말 없이 나의 허리를 한참 동안 끌어안은 채, 가만히 침묵했다.

   하지만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이 있었다.

     

   보고 싶었다거나 걱정했다거나,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그동안 꾸준히 떠올려 왔던 감정들을 한 번의 포옹으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얼씨구?”

     

   그녀를 뒤따라온 박조철이 코웃음을 흘린다. 하지만 한가민의 감정을 알고 있던 그들은 굳이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첨언을 하지는 않았다.

     

   피식.

     

   괜히 웃음이 나왔기에 나는 가만히 한가민의 등을 토닥였다.

   살짝 훌쩍이는 걸 보니 아마 울고 있는 모양. 그리고 그 코먹는 소리 뒤로 남궁천호가 말을 이어왔다.

     

   “시인 씨, 드려야 할 것 같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저희도 시인 씨와 16층을 클리어하면서 격을 얻은 것 같습니다. 좀 많이요.”

   “그냥 자랑을 하고 싶으신 건 아닌 것 같고…… 뭔가 변화가 생긴 건가요?”

     

   나의 물음에 남궁천호의 옆에 있던 서세영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메시지가 떠올랐어요.”

   “메시지요?”

   “네. 격이 충분히 올랐고 이제부터 성좌의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성좌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16층에 온 모든 인원이 그런 수준의 격을 얻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우선 그 자격을 얻은 대표 그룹은 나와 함께 튜토리얼을 시작했던 이 네 사람,

   그리고 이번 16층에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큰 활약을 보여 준 소수의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성좌가 되실 겁니까?”

   “아니요. 굳이 사서 고생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 중에는 성좌가 되겠다는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씀드리려고 이야기를 꺼낸 거예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말해 성좌라는 것이 마냥 좋은 자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격이 압도적으로 높아져서 성장이 빨라지고 신에 가까운 능력을 각성하게 된다지만 그에 맞춰 의무나 책임 또한 많아지기 때문.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성좌가 되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라는 의미였다.

     

   “혹시…… 다른 메시지가 더 있었습니까?”

     

   사실 나는 특수한 방법으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성좌가 되었었다.

   그랬기에 이들과는 달리 평범한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나 정보를 놓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의 물음에 서세영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 것은 서세영이 아닌 박조철이었다.

     

   “격이 오르며 느낀 고양감과 함께 성좌가 되라는 제안과 함께 탑과 관련된 추가적인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추가적인 메시지요?”

   “성좌가 되면 탑의 정상에 오를 자격을 얻게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성좌가 아닌 자는 탑의 정상에 오를 자격이 없다는 것.

   그의 말에 나는 조금 전까지 전투를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을 돌아봤다.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탑을 오르게 된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현실을 부정했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이 하나의 악몽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고 언젠가 이 이야기가 끝날 때쯤에는 현실로 돌아가 일상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모두의 기대와 소망을 부정하듯 플레이어가 된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여전히 절망을 선사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그들은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월자들에 의해 이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그들은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각자의 의지를 관철하지 못했다.

     

   모든 플레이어들은 인정하게 되었다.

     

   이미 이 지옥이 그들의 세상이 되었다면 이곳에 적응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목숨을 걸고 탑이라는 이 세상의 정점을 보는 것 말고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고.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에 이런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당신은 성좌가 될 충분한 격을 얻었습니다.]

   [성좌가 된 자들은 탑의 정상에 오를 자격이 주어집니다.]

     

   띠링.

     

   —

   『등천 登天』

     

   성좌가 되어 탑의 정상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탑의 끝에 다다랐을 때,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 단, 성좌가 된다면 6층에서부터 다시 탑을 올라야 합니다.

   —

     

   탑을 오르는 모두는 자신이 가진 대부분을 잃어버린 채, 이곳에 들어와 있었다.

     

   가족, 친구, 부와 명예.

     

   그것이 무엇이라 해도 좋았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의 세상을 누군가에게 빼앗겼고 매일을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탑은 그들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탑은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그들에게 주지만 결단코 불가능한 임무를 준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한 만큼 그들을 위해 친절과 자비를 베풀었다.

     

   탑은 약속을 지킨다.

   탑은 탑을 오르는 자들을 지켜본다.

     

   그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으니 탑의 정상을 보지 않을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여러분들은?”

     

   나의 물음에 나에게 안겨 있던 한가민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눈물은 멎었지만 울긴 했던 모양인지 눈시울이 붉은 것은 차마 숨기지 못했다.

     

   그렇게 나온 한가민의 한마디.

     

   “잃고 싶지 않아요.”

     

   그녀의 말에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우리가 가지는 유대감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깊은 곳까지 도달해 버렸으니까.

     

   사건이 발생하기 전, 그들에게도 분명히 소망과 소중한 일상이 있었다.

     

   나는 탑의 4층에서 이들 모두의 과거를 보았다.

   이곳의 모두가 힘든 삶을 살아왔고 결국 고난과 시련들을 이겨 냈다.

   그리고 이제야 꽃이 피어야 하는 때에 모두가 사건에 휘말려 탑을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위로가 필요한 삶이었다.

   누군가의 보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잘하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여줄 누군가의 미소가 필요한 삶이었다.

     

   스윽.

     

   나는 한가민을 조심히 떼어내며 모두를 돌아봤다.

     

   모두의 시간 속에서 그들의 트라우마를 함께 했다고 감히 그들의 소망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

     

   여기 모인 사람들은 어제 보다 오늘이 중요했고 ‘지나간 과거의 나’보다 ‘현재의 우리’가 더 소중했다.

     

   띠링.

     

   [16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17층으로 향하는 문이 열립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나의 말에 남궁천호가 머쓱한 듯 코를 만진다.

   서세영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고 박조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든다.

     

   그리고 한가민이 손을 뻗어 나의 손목을 살며시 잡았고 나는 새롭게 열린 포탈을 향해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띠링.

     

   [당신이 걷게 될 모든 길에 탑의 축복이 함께 하길.]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