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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1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였다.

       

       “카우레리카노 한 잔 주세요.”

       

       세실은 카페테리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커피를 홀짝이며 어제 읽다 만 서류를 뒤적거렸다.

       

       [정령과 마소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정령이론을 다룬 실험적인 논문.

       

       이번에 일리야드 아카데미에 교수직으로 지원한 어느 박사가 참고자료로 제출한 것이었다.

       

       세실은 얼마 전부터 이 논문에 눈을 떼지 못하였다.

       

       상상 이상으로 완벽한 논문이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야 더할 나위 없었고,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군더더기가 하나 없이 깔끔했다.

       

       무엇보다 이 아티클의 주제는 세실이 관심을 가지는 ‘정령학’에서 연구하는 것이라서 흥미롭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훌륭한 논문일수록 읽은 사람을 질문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세실은 한시라도 빨리 저자를 만나고 싶었다.

       

       딸랑.

       

       때마침 카페테리아 문이 열리며 검은 머리칼의 여인이 들어왔다.

       

       붉은 눈을 한 여자는 와이셔츠에 슬랙스 차림이었다. 피부는 희고 고왔으며, 뒷머리는 한갈래로 묶어 조랑말 꼬리처럼 내렸다. 단순하고도 격식 있는 차림이었다.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세실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세실은 곧바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아스테야 하이젠버그 박사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귀인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일리야드의 총장님을 뵙게 되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다.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없으세요?”

       “그럼 베릴…….”

       “베릴…?”

       “베리 종류 스무디가 있나요?”

       “블루베리 스무디라면 있어요.”

       

       세실은 아스테야를 키오스크로 안내했다.

       

       “아, 혼자서 결제할 수 있어요.”

       “예전에 사용해 보셨나요?”

       “네.”

       

       세실은 내심 감탄했다.

       

       자동가판대를 이용한 무인 결제는 현재 카우렐리아 수도 주변에서만 운영하고 있는 최신식 제도이기 때문이다.

       

       제국 동남부가 고향인 것도 그렇고, 엘프국에 여러 번 왔었던 모양이다. 틀림없이 잘사는 집안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에, 아스테야가 능숙하게 스무디를 주문한 뒤 자리에 앉았다.

       

       “면접 장소라고 해서 와 봤는데, 이런 카페일 줄은 몰랐습니다.”

       “시국이 시국이라서 그래요. 현재 교수 임용 결정권은 전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위아래로 신임을 받고 계시는군요.”

       “네. 일단은요.”

       

       인사비리 아니냐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교수직에 지원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지금은 오히려 중소기업 사장이라도 된 것처럼 발로 뛰며 인재를 모셔 와야 하는 입장이었다.

       

       “면접이라고는 해도 별다른 건 없어요. 당신은 사실상 채용되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세실은 아스테야가 쓴 논문을 팔랑거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능력이 출중하시니 몇 가지만 물어보고 끝낼 거예요.”

       

       다른 게 아니었다. 해당 논문이 대필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면 될 뿐이다.

       

       세실은 논문을 훑어보며 궁금한 점을 차례로 질문했다. 아스테야는 고민하는 기색 없이 바로바로 대답했다. 

       

       “…그런 이유로, 정령에 관한 라그랑지안 덴시티를 찾아내기만 하면 그 시스템을 온전히 알아낼 수 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현재 화계정령에 대해서만 밀도를 정립하신 거고요. 맞죠?”

       “네 그렇습니다.”

       

       아스테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마소에는 그에 대응하는 정령이 있습니다. 반대로 정령이 없으면 마력도 없습니다. 신학에서 정령은 여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매개체라고 부르며 칭송하지만, 마도학의 관점에서 보면 마력 대칭성을 유지해 주는 물리량에 불과하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논문에선 이 내용을 ‘뇌터의 정리’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왜 하이젠버그도 아니고 뇌터라는 성씨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실은 그냥 그런대로 납득했다.

       

       “후후.”

       

       어쨌거나 궁금한 점을 속 시원히 해결한 세실. 그녀의 입가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르퀴네스 교단의 근본주의자들이 박사님 말을 들으면 환장하겠군요.”

       “총장님은 괜찮으십니까?”

       “마도를 이해하는 것이 곧 여신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칭송하더라도 여신님을 칭송하지, 굳이 정령을 입방아에 올릴 일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세실은 신앙심이 그리 크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여신을 찾는 건 관용적인 표현에 불과했다.

       

       애초에 종교 자체에 의의를 두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다.그런 거 생각할 바에야 마수 하나라도 더 잡아서 족칠 궁리를 하지.

       

       물론 신앙심과 세례는 별개의 영역이라서, 세실은 ‘정령의 샘’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난 다음에 잭팟을 터뜨렸다.

       

       “아무튼….”

       

       세실의 눈동자가 나뭇잎처럼 싱그러운 빛깔로 물들었다.

       

       “면담은 이걸로 끝입니다. 하이젠버그 교수님, 당신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뇨, 저야말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했다.

       

       세실도, 아스테야도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채였다.

       

       

       **

       

       

       아스테야. 아니. 에테르는 연구실에 짐을 풀어놓았다.

       

       다섯 평이 조금 넘는 방. 이 정도면 사람이 살 만하다. 적어도 축사에서 구르던 시절보다는 한참이고 나았다.

       

       기묘한 일이었다.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교수 밑에서 노예로 살던 자신이 교수직에 올랐을 줄이야.

       

       “이제부터 시작이군.”

       

       이러한들 어떠하고, 저러한들 어떠하리.

       

       어차피 세계는 곧 멸망한다. 그런 마당에 직종 따위, 무의미하다.

       

       자신이 여기서 교수로 지내는 건 길어봤자 1년. 그 안에 준비한 모든 계획을 때려박고 세계수를 불태우리라.

       

       만약 목표를 달성한다면, 마왕군이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사이 마음 편히 흑주를 개발할 수 있다. 어차피 마왕군도 쓸어버릴 생각이었으니 그야말로 이이제이. 최선의 계책이다.

       

       상념에 잠긴 사이,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교수님, 시간 되시면 바로 나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가겠습니다.”

       

       에테르는 즉답하며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실례지만 바로 일을 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학교 상황이 말이 아니라서요.”

       

       에테르의 입꼬리가 샐긋 올라갔다.

       

       어차피 그럴 생각이다. 당분간은 일리야드에 잘 녹아드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무슨 일을 맡으면 되나요?”

       “입학 관련한 거예요.”

       

       첫 임무의 형성 배경은 이러했다.

       

       구천지대계 8석, 해룡(海龍) 리바이어던의 습격으로 인해 일리야드가 큰 피해를 보았다.

       

       그 탓에 부족한 건 교수뿐만이 아니었다. 학생도 꽤 많이 죽거나 다쳐 이번 기수에 공백이 생겼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마도사 양성에 차질이 생긴다. 일리야드도 일단은 사관학교였다. 한 해 기수를 맞추지 못하면 심할 경우 남쪽 도련선이 붕괴되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신입학은 경쟁률이 있을 테니 어떻게든 많이 뽑으면 되겠지만…….”

       “편입학이 문제라는 거죠?”

       “네, 맞아요. 특히 2학년이랑 3학년 학생들을 새로 뽑아야 할 것 같은데…….”

       “이런 건 아카데미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 손이 빈 입사관이 없다는 뜻이로군요.”

       “아, 네…. 그것도 맞아요.”

       

       첫 임무답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어째 짬처리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에테르는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답했다.

       

       “아, 그리고.”

       

       어째 총장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다음 학기엔 특별반 담임 좀 맡아줘요.”

       “특별반이요…?”

       

       일리야드 아카데미에 올 때 분명히 조사했다. 일리야드에는 ‘특별반’이라는 개념이 없다. 등수에 따른 차별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별반이라니.

       

       “이번에 편입 후 구성할 학생 중에는 틸레트에서 온 애들도 있거든요. 아파르트헤이트 같은 건 아니고, 교환학생으로 온 애들 중에 여기 남아서 다음 학기도 공부할 친구들도 모으는 거예요. 엘프, 수인, 틸레트에서 더 올 친구들까지 합쳐서 반이 꽤나 혼란스러울지도 몰라요. 그래도 이런 일에는 인족이신 하이젠버그 교수님께서 적당하다고 생각해서요. 죄송하지만….”

       

       머리가 과열되는 것 같았다.

       

       내가 애새끼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적당히 신뢰만 주면서 연구비 타 먹고 흑주 개발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계획 진행하는 시간에 차질이 생긴다. 일정이 미뤄질지도 모르는 상황. 일단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아야만 했다.

       

       “저번 학기 교환학생인데 이번 학기에도 남는다니요? 죄송하지만 전혀 이해할 수가…….”

       “맞다. 이 말을 아직 안 전해드렸네요.”

       

       세실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종이를 하나 꺼냈다. 틸레트와 일리야드의 임시 합병을 추진하겠다는 합의문이었다.

       

       “뭔.”

       

       욕이 나오려던 걸 겨우 참아냈다.

       

       틸레트와 일리야드가 이제 같은 학교라니. 전혀 상정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아까 전 카페에서도 얘기했지만, 시국이 이래서요.”

       

       세실 르네이 총장의 말은 한 마디로 이거였다.

       

       이원화 캠퍼스.

       

       자신은 일리야드 교수로 부임받은 것이지만, 동시에 틸레트의 교수가 된 셈이기도 했다.

       

       “그, 제국은 황제 허가를 받았다고 칩시다. 혹시 통폐합할 때 이쪽 식구들이나 국민들 여론은 신경 쓰셨나요?”

       

       넌지시 건넨 질문에 세실 총장은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졸속행정이시군요.”

       “제가 그런 걸로 욕을 좀 먹긴 해요. 그래도 학생들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선 큰 반발이 없었답니다?”

       “그, 그러면 됐죠….”

       

       이런 식으로 세실이 모든 일을 날림으로 처리하면 오히려 유리해진다. 꼼꼼하고 의심 많은 총장은 골치 아프기만 할 뿐이다.

       

       “덕분에 계란을 맞는 일이 많아지긴 했어요. 어제도 수트 하나 버렸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 정치적인 일 때문인가요?”

       

       다소 무례할 수 있는 발언이었지만 호기심이 동했다. 일리야드 총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계란을 맞는 꼴을 주기적으로 당한다니. 시위대가 의도하고 한 짓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실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마도사가 정치는 무슨. 그냥 누구 좀 보호했다가 역풍 맞은 거죠.”

       “누굴 보호하셨는데요?”

       “금안족이요.”

       

       리바이어던의 습격으로 크게 어두워졌던 엘프국의 분위기는, 제국에서 벌어진 ‘증기의 비’ 사건을 기점으로 일변했다.

       

       처음에는 틸레트도 애도하는 분위기였다. 마수들이 나빴다. 또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구나. 되풀이된 비극에 많은 엘프가 눈물을 흘려주었다.

       

       그런데.

       

       “틸레트 아카데미를 파괴해 놓은 장본인이 금안족이라는 얘기가 돌았어요. 우습게도 말이죠.”

       

       그 순간부터 추모 분위기가 분노와 혐오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마수에게 분노하는 것이라면 상관없었다. 다만 그 표적은 죄 없는 금안족이었다.

       

       카우렐리아에 정착해 살던 금안족들이 혐오범죄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소수종족을 대상으로 한 종족차별은 있었다. 그래도 민주화와 다원화 이후로 많이 사라진 추세였는데.

       

       간만에 큰 사건이 터졌으니. 

       

       이제 하이엘프는 물론이고, 일반 우드엘프들도 금안족이 마왕군과 결탁했다고 믿고 있었다.

       

       정황을 보고들은 에테르는 밋밋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왕군은 참고 참고 참다가, 그러다가 결국 못 참고 뚜껑 열린 금안족들이 모여서 만든 생존권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금안족 전체를 까내리는 건 논리에 맞지 않아요. 혹시 이간계일 수도 있어요. 마수는 보기보다 교묘하니까요.”

       “그런 일 때문에 총장님 정도 되시는 분께서 고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에테르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어차피 다 뒈질 텐데 뭐.

       

       “아뇨. 일리야드의 총장으로서 이런 건 바로잡아야 합니다.”

       “왜요?”

       “재학생 중에 금안족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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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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