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31

       상황이 말도 안되게 복잡해졌다.

        

       사실 내가 법국의 비밀기지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외교적인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다분했다. 루테티아 자체는 벨부르 왕실의 직할령이니 그 안에서 국왕이 무슨 짓을 하건 다른 귀족들이 끼어들 여지가 적긴 했지만, 문제는 그 비밀기지가 ‘성 라티나 성당’ 아래 있었다는 것이다.

        

       벨부르 왕국의 왕권은 그래도 탄탄한 편이기는 했지만, 제국처럼 막강한 힘으로 다른 귀족들을 완전히 찍어누르고 뭉개버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왕실 자체는 종교에 대해서 최대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귀족 중에는 독실한 여신교도도 많다.

        

       당연히 성지중 하나인 성 라티나 성당을 왕실의 사병들이 직접 공격하면 매우 큰 반발이 터져 나오리라. 오래전 이 땅에서 있었던 여신교에 대한 탄압을 떠올리는 귀족들도 분명 나오겠지.

        

       아이러니하게도, 그 지하 시설을 터는 인원 중 왕국 사람이 샤를로트와 소피아 딱 두 사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전투는 웬만하면 왕국 전체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 성당을 알게 모르게 포위하고 긴장하고 있던 병력이 모두 벨부르 왕실의 사병과 충성파 기사들이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말이다.

        

       그 성당의 지하에서 그리폰이 튀어 올랐다.

        

       덕분에 성당에 있던 법국의 병력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물론 그리폰이 제국의 상징이긴 해도, 제국이 그 그리폰으로 뭔가 대단한 일을 벌인 적은 없었다. 애초에 길들이는 게 불가능하니 군사용으로 쓰는 것도 불가능하니까. 설령 성당에서 그리폰이 튀어나오는 걸 보고 루테티아의 시민들이 제국의 상징을 떠올렸다고 해도,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무시하면 그만일 수 있다.

        

       문제는 그와 동시에 연속적으로 터진 사건들이다.

        

       성당에서 무슨 일이 터진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법국에서도 괴상한 일이 터졌다.

        

       하필이면 그 사이에 제국의 두 황녀가 왕도에 방문 중이었다.

        

       그리고 다시 ‘하필이면’ 제국의 왕좌가 비어있었고, ‘황제의 아이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관련해서 황제가 내린 명령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황제가 자리를 비우면 모든 제국군에 경계 태세를 내리고 바짝 긴장하는 것이 옳을 텐데도.

        

       제국의 귀족들이 술렁거리고 있었고, 왕국 내의 여신교도들이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우선은 조금 자고 일어나도록 하죠.”

        

       그 모든 이야기를 한 번에 들은 내가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우리는 좀 자야 해.

        

       안 그래도 밤새도록 싸웠으니까. 그 회복 장치 덕분에 신체의 피로는 상당히 회복되었지만, 문제는 정신적인 피로였다. 게다가 ‘신체의 피로’와 ‘졸음’은 또 다른 문제였다.

        

       아직 밤을 완벽하게 보낸 것은 아니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긴 했지만, 지금 이 상태로 깨어있어 봐야 두뇌를 굴려서 제대로 된 결론을 내놓을 수가 없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일행은 내 말에 모두 동의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깨워주도록 하겠다.”

        

       국왕은 그렇게 약속했다.

        

       아니, 그러지 말아주셨으면 하는데요.

        

       무슨 일이 생기면 특히 그냥 자는 대로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자고 일어나면 상황이 다 정리되어있도록.

        

       그런데 그럴 일은 없겠지. 아마 제일 먼저 깨울 상대는 바로 나일 테니까.

        

       *

        

       “…….”

        

       그리고 나의 그 안 좋은 추측은 바로 맞아떨어졌다.

        

       “이 시간까지 계속 잠만 자고 있다니, 명상법에 대해 가르친 것이 아까울 지경이야.”

        

       그리고 나를 깨운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검성 프레데릭이었다.

        

       누운 상태로 눈을 몇 번 정도 더 깜빡여 보았다. 커튼 사이로 밝은 햇살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해가 떴다고 하더라도 늦은 시간일 리는 없다. 이 양반이 내가 늦잠을 자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까.

        

       ……사실 내적 친밀감을 느낄 정도로 얼굴을 오래 보고 지냈다는 건 내 시점에서의 이야기고, 검성의 기준으로 봤을 때 나는 얼마 만나본 적 없는 상대였다. 기껏해야 방학 동안 조금 가르쳐 본 재능 없는 꼬맹이 정도일까.

        

       “아니, 따지고 보면 내가 가르쳤다기보다는 이미 너 혼자서 방법을 찾았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을 비빌까 고민하다가 그러지 말기로 했다. 아직 검성 앞에서는 그렇게 터놓고 지내지는 않았으니까. 만약 나를 깨우러 온 사람이 클레어나 앨리스였다면 조금은 다른 반응을 보였겠지만.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기차를 타고 왔지.”

        

       ‘수단’을 물어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도 검성은 씩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

        

       “아, 혹시 ‘왜’에 관해서 물은 것이냐?”

        

       황녀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검성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젯밤에 소문이 들리더구나. 네가 있는 도시에서 그리폰이 날아올랐다고.”

        

       “그 한마디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그리폰 사냥이라도 하려고?

        

       아니, 그보다, 대체 소문이 얼마나 빨리 퍼진 거야?

        

       “뭐, 소문이라고는 해도 아무나 알고 있는 소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통신을 엿들었다.”

        

       “…….”

        

       “그리고 여기로 추가 파견되는 기사단 사이에 섞여 들어왔지.”

        

       “기사단이 파견되었습니까?”

        

       “왕국에서 부른 것은 아닌 모양이더구나. 다만 ‘황제 폐하께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으니 두 황녀님을 보호한다’라는 명분은 붙어있었다. 왕국은 엄청나게 꺼림직하게 생각하면서도 결국 받아들이긴 했지. 덕분에 지금 바깥이 난리다.”

        

       “…….”

        

       나는 입을 다물고 잠깐 생각에 빠졌다가,

        

       털썩.

        

       다시 침대에 누웠다.

        

       “……기껏 일어나서는 왜 다시 침대에 눕느냐?”

        

       “지금 바깥에 나가면 왕도의 성난 군중과 마주하겠죠.”

        

       “군중은 왕국의 병력이 확실하게 막고 있다. 벨부르 왕실은 그래도 꽤 존경받는 이들이니 군중이 무턱대고 담을 넘어오는 일은 없을 거다.”

        

       “……루테티아에 거주 중인 귀족들은 어떻습니까?”

        

       “내가 듣기로는 어제저녁부터 루테티아 왕궁으로 모여들고 있다고 하더구나. 참고로 네가 호텔이 아니라 여기서 밤을 보냈듯, 호텔에 있던 아카데미 학생들 전부 루테티아 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나도 오늘 아침에 와서 들은 이야기다만.”

        

       “역시 그냥 다시 자겠습니다. 기왕이면 상황이 전부 해결된 뒤에 다시 깨워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몇 개월이 걸릴지 모른다만?”

        

       “그럼 몇 개월 뒤에 깨워주십시오.”

        

       “스승한테 못 하는 말이 없구나.”

        

       그래도 제자 취급은 해주는 걸까? 하긴, 검성이라면 충분히 그러고 남을 호인이긴 했다.

        

       “네가 일어나지 않으면 네 자매가 모든 일을 죄다 해결해야 한다만?”

        

       “…….”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뭐, 나라고 정말로 몇 개월씩 잠만 자고 있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나서지 않으면 일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른다. 적어도 애들 옆에 있어야 내가 살릴 수 있을지 없을지, 아니면 시간을 아예 돌려야 할지 판단이라도 하지 않겠는가?

        

       “…….”

        

       그렇긴 하지만.

        

       나는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면서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조금은 더 쉬고 싶었다.

        

       그래, 뭐.

        

       지금 상황에서 내 능력에 대한 확인도 해야 하니까.

        

       다시.

        

       *

        

       법국에서 그 난리가 난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내 능력은 ‘사용할 수’ 있었다.

        

       그 결계가 정말로 결계일 뿐인 건지, 그 안에서는 또 이야기가 달라지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가면녀의 사례를 생각하면 조금 거리가 있어도 내 능력은 바로 사용 불가능하게 되었었는데.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지금 당장은 거기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쓸 수 있는 능력은 죄다 사용하고, 최대한 안전하게 상황을 정리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실비아.”

        

       검성을 따라간 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고 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뻔했다.

        

       지난번에 내가 어떻게든 살려놓은 추기경뿐만이 아니라 벨부르 국왕이 있었고, 학생들을 인솔하기 위해 함께 온 아카데미 선생들, 그리고 벨부르의 유력 귀족들의 얼굴이 전부 보였다. 거기에 아마 ‘황녀’ 자격으로 와 있을 앨리스와 어젯밤에 급하게 넘어왔을 제국 황실 직속 기사단 몇 사람까지.

        

       심지어 그 거의 모든 인물들의 표정이 각자 나름의 이유로 조금씩 화가 나 보였다.

        

       그 화난 얼굴들이 동시에 내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이 모든 상황을 없던 것으로 돌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겠지.

        

       시간을 돌리더라도, 지금 이 상황이 정말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미리 생각해두었던 것이 있다.

        

       나는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바로 입을 열었다.

        

       “법국으로 들어갈 유격단을 꾸려야 합니다.”

        

       문이 열리고 내 쪽으로 시선이 모인 상황이었기에 한순간 굉장히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잠시 뒤에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마구 터져 나왔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