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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1

     

    “하앗!”

     

    리셰가 성검으로 언데드를 베어 넘겼다. 이제는 검을 쓰는 모습이 거의 물아일체의 경지다.

     

    “잔당은 맡겠습니다. 용사 파티께서는 복귀해 주십시오.”

     

    연합군 여단 대장이 말했다. 몇 시간의 전투를 마친 우리는 성채로 돌아갔다.

     

    “그렇게 많았던 언데드 군대도 끝이 보이는구려. 리치가 없으니 오합지졸이외다.”

     

    앰브로시아가 숨을 돌리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에 붙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친절하시구려. 꼭 고트베르크를 보는 기분이로군.”

     

    “그가 다 제게서 배우지 않았겠습니까.”

     

    “음, 파우스트 선생이 합류해줘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소.”

     

    성채 안으로 들어서니 곳곳에 있던 병사들이 우리를 보고 반겨주었다. 신뢰의 눈빛을 보내주니 나도 마음이 편하다.

     

    멀쩡한 용사 파티라는 게 이렇게나 전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요소였나. 다시 체감했다.

     

    “아셀라 전하는?”

     

    “좀 더 안정을 취하라 했습니다. 마법의 반동이 상당합니다.”

     

    “그러시군. 권유도 아니고 명령이라. 신선한 경험 아니겠소. 언제 또 제국의 황녀에게 그리 말해보겠소?”

     

    “그도 그렇군요. 파티의 치유사를 맡고 있으니 제 말씀에는 착실히 따려주셔야지요. 물론 성녀님도 말입니다.”

     

    “소녀에게 무슨 짓을 시키려고?!”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으음… 살살 부탁하오.”

     

    앰브로시아를 치료할 일이 생기면 물론 살살 해 줘야지. 내의원의 아이돌이신데.

     

    “어차피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면 전하가 필요하오. 그간 전투가 이어졌고, 승기가 확실해졌으니 우리도 조금 쉬어도 괜찮겠소이다.”

     

    “네. 파티는 한 명이라도 빠지면 움직일 수 없게 되니까요.”

     

    리셰가 동의했다.

     

     

    휴식을 취하러 가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이가 있었다.

     

    “오랜만이오, 용사 파티.”

     

    다름 아닌 헤이케였다. 그녀를 비롯해 연합군의 수뇌진이 몇 모여 있었다.

     

    “황녀 전하, 존안을 뵙습니다.”

     

    앰브로시아를 선두로 전원이 인사했다. 예법을 모르는 발렌만 예외였다.

     

    “공성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리치를 토벌하였다고 전달받았다. 고생하셨소.”

     

    “의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자랑스럽게 리셰의 어깨를 두드리며 치하하는 헤이케.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대가 새로 합류한 의사로군. 후국에서 보냈다고 했던.”

     

    “파우스트입니다.”

     

    헤이케와 악수를 나누었다. 전보다 손힘이 훨씬 좋아졌네.

    아셀라가 여기 있다는 건 지금 제국은 사실상 그녀 혼자 통치하고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마음가짐도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어떤가, 앰브로시아. 그 고트베르크의 스승다운 실력을 보여주던가.”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닥터 파우스트는 훌륭한 의사입니다.”

     

    “고트베르크가 선별한 인재이니 의심할 여지는 없겠지. 그럼 본론일세.”

     

    헤이케가 문서를 내밀었다.

     

    “출정 명령이다.”

     

    리셰가 그것을 받아 내용을 살폈다.

     

    “마계에 마도사 부대가 도착했군요. 침투에 성공한 부대는… 다섯.”

     

    “그렇다. 첫 부대의 텔레포트 게이트 설치가 이틀 후에 완료될 예정이다.”

     

    헤이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잠입할 수 있다네. 마왕의 바로 턱밑까지.”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스멀스멀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승기를 잡을 수 있는 비장의 수가 준비됐다.

     

    “적에게도 우리 군세의 동향은 전해지고 있겠지. 용사 파티가 최전선에서 리치와 언데드 군대와 싸웠다. 이건 이미 확정된 사실일세. 우리가 방어에 급급하다고 여기겠지.”

     

    “허를 찌르려면 지금이군요.”

     

    “설마 횡단에 몇 달이나 걸리는 중간계를 단숨에 뛰어넘어 마계에 나타날 거라곤 생각지 못할 겁니다.”

     

    타냐의 의견이었다. 나도 동의했다.

     

    “파우스트, 그대의 의견은 어떤가.”

     

    헤이케가 내게 물었다.

     

    “라스 고트베르크의 전략에 의하면.”

     

    여지없이 내가 가면을 까딱이며 대답했다.

     

    “출발이 빠를수록 이점이 많아집니다.”

     

    헤이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생각이다. 마계에 뛰어들 준비는 되었는가, 용사 파티.”

     

    “언제든지요.”

     

    리셰가 헤이케에게 명령서를 돌려주었다. 검집 끈을 고쳐 묶으며 의지를 내보인다.

     

    “좋다.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부르지.”

     

    그리 말하고는 꾸벅, 헤이케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륙을 맡기겠다, 영웅들이여.”

     

     

     

    ***

     

     

     

    “마계로 가는구나.”

     

    파우스트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셀라는 채비를 했다.

     

    전장에서는 하나하나 직접 해야 한다. 평생 시녀들이 목욕부터 옷을 갈아입는 것까지 모든 걸 다 해줬던 황실과는 아예 다르다.

     

    어리광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불편함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다만 외롭다면 조금 외로웠다.

     

    그나마 반평생을 함께해온 시녀장이나 기사단장도 없이,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타지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다.

     

    타냐가 있긴 했지만 전처럼 함께 차를 즐기며 잡담을 나눌 여유 따위는 이곳에 없다.

     

    아니, 그게 아니지.

     

    알고 있다.

     

    밤마다 사무치는 외로움에 이불보를 더 동여매는 건 그가 없어서다.

     

    벌써 3년이 넘었지만 단 하룻밤도 적응한 날이 없었다.

     

    최근에 닥터 파우스트를 보니 더더욱 라스가 보고 싶어졌다.

     

    그는 자신이 이러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이나 할까.

     

    당장에라도 반지를 통해 여기에 있다고 알리고 싶은 욕망을 꾹 참아낸다.

     

    “파우스트.”

     

    아셀라는 그에게 좀 더 라스에 대해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모르는 라스를 알려줄 수 있을 것이었다.

     

    몸짓이나 걸음걸이, 목소리도 체형도 하나 라스와 닮은 건 하나도 없고 틱틱대는 말투가 속을 긁어놓는 남자지만.

     

    그와 비슷할 정도의 의술을 선보여서 그럴까. 어쩐지 라스와 있었을 때처럼 조금은 안심이 됐다.

     

    “일단 눈앞의 일부터.”

     

    분명 라스라면 그렇게 행동했겠지.

     

    그가 알려준 호흡법으로 침착함을 돌려놓고, 아셀라는 지팡이를 챙겼다.

     

    “파티의 이동은 내게 달렸어.”

     

    그녀가 손을 쥐었다 펴 보았다. 파우스트의 실력 좋은 치료 덕에 마력회로의 부상은 거의 다 나아 있었다.

     

    이 정도면 혼자서도 충분하다. 아셀라는 방을 나섰다.

     

    “아셀라.”

     

    그런 그녀를 부르는 이가 있었다.

    제국의 1황녀, 헤이케였다.

     

    사담을 나누고 싶은 것인지 호위기사도 동행하지 않고 혼자 찾아온 모습이었다.

     

    “헤이케.”

     

    “마계로 떠나는가.”

     

    “그래.”

     

    “지금이라도 다른 마도사에게 맡기고 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는가?”

     

    아셀라는 비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헤이케도 더 묻지 않았다.

     

    “아셀라, 나와 너는 모친도 다르고 지금껏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던 사이다. 이제와 형제 노릇을 할 생각은 아니다만.”

     

    헤이케가 품에서 한 장의 종이와 아티팩트로 보이는 무언가를 꺼내고는 그것을 읽었다.

     

    “게오르크, 라우가와도 의견을 합치했다. 제국은 월광궁의 3황녀가 임무를 완수하고 온전한 몸으로 황실로 귀환하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이에 그대에게 제국의 비보를 맡긴다.”

     

    헤이케가 덤덤하게 문장을 전하고는 들고 있던 아티팩트를 아셀라의 목에 걸어주었다.

     

    ‘태양의 호신부’, 제국의 황제가 차고 있던 세계급 아티팩트였다. 일반인도 영웅의 강인한 몸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강력한 보호 효과를 지녔다.

     

    황제가 평소 차고 있던 아티팩트 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물건 중 하나였다. 초대 황제부터 내려온 그야말로 비보 중의 비보였다.

     

    아셀라는 코웃음을 치고는 그녀에게 등을 돌리며 대답했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니.”

     

    높게 묶은 머리를 살랑이며 헤이케를 떠나가는 아셀라.

     

    목걸이를 예장 안으로 넣으며 아셀라가 입꼬리를 올렸다.

     

    나 참. 이제 와 형제 노릇 하기는.

     

    황실은 정말 마음에 안 드는 곳이다.

     

    아셀라는 보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파티원을 향해 걸었다.

     

     

     

    왕국령에 설치된 임시 텔레포트 게이트에선 이미 파티원의 준비가 끝나 있었다.

     

    그들을 전송하기 위한 연합군도 잔뜩 나와서 열을 맞추었다.

     

    마도국 마도사들이 이미 밑 준비는 마쳐놓았다. 제국의 대형 게이트와 달리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법한 소형 게이트에는 마나가 충분히 넘실대고 있었다.

     

    “텔레포트.”

     

    아셀라가 진을 그려 주문을 시전했다. 미리 파장을 맞춰놓은 마석이 짝이 되는 문을 찾아 공명한다. 물론 반대편은 마계의 파견부대가 설치한 게이트다.

     

    좌표를 찾아 지정을 마치는 아셀라.

     

    넘실대던 마나가 형태를 이루고, 파아앗!

     

    게이트에 구멍이 뚫리며 활성화가 완료됐다.

     

    “갈게요.”

     

    리셰가 가장 먼저 게이트 너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어 한 명씩 마나의 터널로 사라져간다.

     

    아셀라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만든 터널로 들어가자 중력이 사방으로 튀며 머리를 흔들어놓았고.

     

    ―화악!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어두운 정글 속에 들어와 있었다.

     

    “용사 파티, 전원 이동 성공했습니다. 게이트를 닫겠습니다.”

     

    반대쪽에서 대기하던 마도사들이 주문 시전을 완료한다.

     

    “여기가 마계군요.”

    “숲인가? 캄캄하네.”

    “얼핏 보기엔 큰 차이가 없네요.”

     

    아셀라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인간계 어디에 있는 조금 기분 나쁜 수해 안이라고 해도 믿을 풍경이었다.

     

    물론 서식하는 나무나 풀은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모양에 따라서는 상당히 기괴해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저희는 게이트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용사 파티 여러분은 작전에 임해주십시오.”

     

    연합군 대장과 짧은 해후를 마친다.

     

    더 시간을 지체할 일도 없이, 용사 파티는 탐색에 나서기로 했다. 그들이 한 명씩 마계의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주는 오늘 연재하고 내일 휴재입니드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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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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