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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1

        

       진성은 명품시계를 ‘복채’로 지불하고 점술을 요구하는 윌리엄의 모습에 방긋 웃었다.

       그는 그런 용도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듯 시계를 챙겼고, 그 대신 품속에서 카드 뭉치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허공을 쥐어 어딘가에 굴러다니던 적당한 천 하나를 끌어와 테이블 위에 덮었고, 그 위에 카드 뭉치를 올려놓았다.

         

       “오, 본격적인데?”

         

       윌리엄은 그 모습이 꽤 그럴듯해 보였는지 흥미를 보였다.

       진성은 어린애 같은 그의 모습에 방긋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꽤 비싼 복채를 주셨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겠지요. 어떤 점을 보고 싶으십니까?”

         

       그는 엎어진 카드 뭉치를 손으로 쓰다듬듯 움직이며 물었다.

         

       “금전운? 연애운? 사업운?”

         

       진성의 손길은 아주 교묘했다.

       닿을 듯 닿지 않았고, 닿지 않을 듯 닿아 카드 뭉치에 분명히 온기를 전달하고 있었으니.

         

       “이봐, 그거 타로 아냐? 얼치기 점술사들이나 쓰는 건데 그거 가지고 되겠어?”

       “괜찮습니다. 이게 보통 타로가 아닌지라 일반적인 타로보다는 더 상세하게, 더 멀리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 그럼 뭐…. 흠.”

         

       윌리엄은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연애운이나 봐주지?”

       “연애운이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군요.”

         

       윌리엄은 연애운을 말하면서 징그러운 눈빛으로 아그네스를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아그네스는 그 징그러운 시선에 짜증이 난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버렸고.

         

       하지만 진성은 개의치 않고 고객이 우선이라는 듯 입바른 소리를 했다.

         

       “연애. 참으로 포괄적인 의미가 담긴 질문이지요. 누군가를 마음에 담아두는 것,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것, 누군가와 인연으로 얽히게 되는 것, 그 인연이 단단하게 결속이 되어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되는 것, 함께 걸으며 자식을 보는 것. 그 모든 것이 이 안에 결집이 되어있으니 말입니다.”

         

       척.

       척.

         

       진성은 천천히 덱을 섞기 시작했다.

       딜러가 트럼프 카드를 섞듯 현란하게 섞기도 하였고, 타로의 절반을 덜고 그것을 이리저리 회전시키며 섞기도 하였으며,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촤악 소리를 내며 늘어놓고는 어지럽히고 섞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연애운이라는 것은 해석이 모호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느 점술사는 누군가를 마음에 넣고 그리워하기 시작했으니 그게 사랑이라며 연애운에 끼워넣기도 하고, 어떤 점술사는 육체적으로 몸을 섞고 정을 나누어야만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점을 보기도 하고, 어떤 점술사는 결혼이라는 계약이 있어야만 연애운이 열매를 맺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지요.”

         

       척.

       척.

         

       “그렇기에 같은 점을 물어보았음에도 점술사마다 다른 답을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듯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지요. 또한 연애라는 것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끼리 하는 것이니, 복잡함도 올라가고 그 해석의 여지도 커지므로 더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진성은 윌리엄에게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렇기에 확실한 것은 예언. 미래를 직접 체험하고 돌아오는 예언자의 능력만큼이나 확실한 것이 없지요. 그에 비한다면 연애운이라는 것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글귀를 해석해 늘어놓는 것과 같으니,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쯧, 주술사라는 족속들은.”

         

       윌리엄은 진성의 말을 듣고 혀를 찼다.

         

       “주술사라는 작자들은 어째 항상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는단 말이지. 나도 점술이 예언의 하위호환인 건 당연히 알고 있어. 그러니까 터무니없는 돌팔이 같은 점괘만 늘어놓지 말라고. 알겠어?”

       “하하, 알겠습니다.”

         

       진성은 실없이 웃으며 섞은 덱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모래성을 무너뜨리듯 손을 마구 휘저으며 덱을 이곳저곳으로 퍼뜨리고,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 듯 어지럽게 만들어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렇게 테이블 위에는 혼돈이라도 자리 잡은 것처럼 카드가 널려있게 되었다.

         

       불규칙적으로 널려있는 수많은 엎어져 있는 카드들.

         

       진성은 혼돈 위에서 물었다.

         

       “자. 그러면 말입니다. 가장 먼저 카드를 열어보겠습니다. 이 첫 번째 카드는 점을 보는 사람, 즉 당신이 미래에 연애운이 있을지에 대한 해답입니다.”

       “그래?”

       “물론 타로가 볼 수 있는 미래의 길이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므로, 그 기간 동안 연애운이 이렇겠구나 짐작을 하면 되겠습니다.”

       “아, 알았어. 빨리 뽑아나 봐.”

       “한 장 골라주시겠습니까?”

       “그럼 이거.”

         

       윌리엄은 하나를 골라달라는 진성의 말에 테이블의 구석진 곳에 있는 카드 한 장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그것을 뒤집을 듯 손가락을 움직였다가, 뭔가 떠올랐는지 다시 바닥에 깔아버리곤 진성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타로에는 정방향 역방향이 있다며.”

       “네. 저는 점을 상대방의 기준으로 둡니다. 점을 보는 사람이 역방향으로 인식하면 역방향, 정방향으로 인식하면 정방향으로 해석하지요. 그러니 편히 뒤집어주시면 됩니다.”

         

       윌리엄은 진성의 말을 듣고 거침없이 카드를 뒤집었다.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하지만 카드를 뒤집은 후 윌리엄의 표정에는 의문이 자리 잡았다.

         

       “야, 너 카드 잘못 들고 온 거 아니냐?”

         

       그가 뒤집은 카드에서 보이는 것은 오직 빈 공간밖에 없었다.

         

       아무런 그림도 상징도 그려지지 않은 채 텅 비어 버린 카드.

         

       진성은 그것을 보며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빈 카드.

       흰색 타로 카드라고도 불리는 카드였다.

         

       크게 중요한 카드는 아니었다.

       타로가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서 추가된, 광고를 위해 찍어낸 카드였으니까.

       그리고 지금에는 타로의 첫 장과 끝을 장식하는, 말하자면 그림과 상징이 있는 카드들을 보호하기 위한 커버 취급당하는 카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이 비어있는 카드가 의미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금지, 비밀.

         

       점술사의 섀도 카드로 나타난 것이라면 점괘의 불확실성과 모호하게 보이는 미래를 경고하는 의미가 될 것이며, 점을 보는 사람에게 나타난다면 이 역시 가변적인 미래와 불확실한 관측, 혹은 점을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을 말하는 알림이 되었다.

         

       “이런. 다시 한번 섞어보겠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기도 했다.

       지금은 확실하지 않으니까 다시 한번 시도해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진성은 카드를 다시 회수해 화려한 손놀림으로 섞었고, 이번에는 마녀의 가마솥처럼 어지러이 카드를 늘어놓지 않고 부채꼴 모양으로 늘어놓았다.

         

       그리고 다시 윌리엄에게 말했다.

         

       “한 장, 뽑아주시겠습니까?”

         

       윌리엄은 진성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카드 한 장을 뽑았고, 기대되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카드를 뒤집었다.

         

       그리고….

         

       “뭐야 이거?”

         

       다시 한번 빈 카드가 나왔다.

         

       윌리엄은 텅 비어있는 카드가 짜증 난다는 듯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너 그거 제대로 된 타로 맞기는 해? 무슨 비어있는 카드만 절반 이상 차 있는 중국산 싸구려 아냐?”

         

       그는 거칠게 소리치며 진성의 말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멋대로 손을 뻗어 카드 하나를 뽑아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자마자 뒤집어보았다.

         

       그렇게 뒤집힌 카드가 보인 것은 또다시 텅 비어있는 모습.

         

       상징도, 그림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비어있는 자그마한 카드.

         

       “하, 씨발 이거 봐라. 이게 말이나 되나? 다른 것들도 다 백지 아냐?”

         

       윌리엄은 세 번 연속 비어있는 카드를 뽑자 어이가 없다는 듯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리곤 카드 여러 개를 쥐고 그것을 뒤집어보았다.

         

       다른 것들 역시 비어있는 카드가 나올 것이라 확신하면서.

         

       하지만….

         

       “어? 아니네?”

         

       그렇게 뒤집힌 다른 카드들은 그림과 상징이 분명히 있었다.

         

       화려한 검이 있었고, 낡아빠진 지팡이도, 후드를 뒤집어쓴 현자도, 뒤집혀 있는 대륙도, 이상한 상징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여자 종교인이 그려진 그림도 있었다.

         

       게다가 그 모든 그림은 정교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묘한 느낌이 들어서, 이 타로가 어떠한 특별한 공정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기에 윌리엄은 이상하다는 듯 진성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야. 이거 뭐냐?”

       “흠.”

         

       당연한 의문이었다.

         

       80장의 카드.

       그중 2개만 텅 비어있었다.

       그것을 세 번 연속 뽑아버린 것이다.

         

       “허 참, 야. 이거 비어있는 거 무슨 뜻이냐?”

       

       그쯤 되니 점술은 그저 어린애랑 여자들이 가지고 노는 헛짓거리라고 치부하고 있던 윌리엄조차도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같은 카드가 세 번 연속으로 나오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다만 그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관심.

       직설적으로 말해서, 잠깐의 흥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흠. 같은 카드가 세 번 연속 나오는 일은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닙니다. 실력 있는 점술사라면 열 번, 스무 번을 뽑아도 같은 카드가 나오는 일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빈 카드라….”

         

       진성 역시 윌리엄에게 관심을 보였다.

       윌리엄의 것과는 다른, 뭔가 더 끈적하고 깊어 보이는 관심이었다.

         

       “빈 카드가 연속적으로 나오는 일은 참으로 드물지요.”

         

       진성은 반짝이는 눈동자를 휘어지는 눈가 속에 숨기며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말입니다. 빈 카드 뒤에 뒤집은 카드들이 저런 것들인 경우는 더더욱.”

         

       진성은 어딘가 서늘하게 느껴지는 웃음을 띤 채 뒤집힌 카드들을 바라보았다.

         

       메이저 아르카나 2번, 여사제(The High Priestess).

       은밀한 지식과 비밀, 신비주의적 지혜를 나타내는 카드가 정방향에 있는 채 빈 카드의 ‘비밀’이라는 상징을 강화해 주었다.

         

       메이저 아르카나 9번, 은둔자(The Hermit).

       안내하는 존재이자 구도자와 수행자를 나타내는 카드.

       이 카드에도 ‘비밀’이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었다.

         

       메이저 아르카나 21번, 세계(The World).

       본래라면 완성을 의미해야 하는 이 카드는 뒤집힌 채 거꾸로 쏟아질 듯 위태로워 보였고, 불완전함과 통찰력의 결여라는 의미를 한껏 뽐내며 앞의 빈 카드의 의미를 강화하고 있었다.

         

       게다가 메이저 아르카나가 끝이 아니었다.

         

       뒤집혀 있는 마이너 아르카나 역시 빈 카드의 의미를 증폭시키는 것들뿐이었다.

         

       검의 시종이 뒤집힌 채 ‘강한 힘 앞에서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으며, 다섯 개의 검이 거꾸로 뒤집힌 채 앞으로의 일이 불확실할 것이라 경고하고 있었다.

       지팡이를 든 기사 역시 뒤집힌 채 미래의 불확실성을 증폭시켰고, 뒤집힌 지팡이의 1번 카드가 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으며 미래를 보기 힘들 것이라고 크게 소리쳤다.

         

       진성은 타로를 보는 것이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저 반쪽짜리 예언자가 몇 장의 카드를 더 뒤집어도 비슷한 뜻의 카드들이 나올 것임을 직감했기에.

         

       미래를 모호하게 만들고, 안개처럼 뿌옇게 만들며, 앞날을 점칠 수 없으며 그 무엇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소리치는 듯한 점괘가 나올 것이 분명했기에.

         

       “매우 흥미롭군요.”

         

       진성은 흥미로웠다.

         

       이러한 점괘는 절대로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손을 쓴 게 아닌 이상은 말이다.

         

       “정말로 흥미로워요.”

         

       진성은 손바닥으로 윌리엄의 미래를 가려버리는 듯한 점괘를 보며 웃었다.

         

       뒤집힌 카드들이, 뒤집히지 않은 카드들이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엄포를 그대로 옮겨놓는 것 같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카드를 통해 진성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놈은 내 사냥감이니 건드리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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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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