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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1

       

       

       

       

       

       231화. 파급 ( 1 )

       

       

       

       

       

       “왜 나쁘게 살면 안 되는가?”

       

       머리 좀 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스스로에게 물었을 질문이다.

       

       제국의 공무원은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서라 말할 것이고.

       성도의 사제는 영적인 순수함과 내면의 평화를 말할 것이다.

       

       밭 가는 농부는 처형장의 한 줌 이슬이 되고 싶지 않아서.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라면, 그냥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할 테지.

       

       악행(惡行).

       악행을 저지른 자는 벌을 받는다.

       

       누가 그 죄를 심판할 것이며, 처벌하는가?

       

       조슈아가 집필하고, 레온 팔라딘이 정리하고 엮은 한 권의 책.

       단 한 권의 책에는 인류의 오랜 물음에 대한 대답이 적혀 있었다.

       

       도합 325장이나 되는 이 책은 온 세상에 커다란 물결을 일으킬 물건이었다.

       

       레온이 던진 물결은 이제 막 시작하여 미약하기 그지없었으나.

       넓고 강렬하게 온 세상을 덮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이이, 이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이!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세기의! 아니!! 영원토록 남을 그런 일이에요!”

       “그것 참 머리 좀 치워봐요! 안 보이지 않습니까!”

       “잠깐잠깐! 나 아직 못 읽었어! 넘기지 말아봐! 아악! 넘기지 말라고오!”

       

       눈이 벌겋게 충혈된 대사제들이 책 한 권에 다닥다닥 달라붙어서 서로 소리치고 밀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신앙에 평생을 바친 대사제들이기에 이따금 귀한 고서 따위가 새로 발견되면 이따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으나.

       오늘은 그 일의 중대함이 남달랐다.

       

       세 명의 팔라딘 중 가장 나이 많은 팔라딘, 라이언하트.

       그가 얼마 전, 북부의 지옥에 다녀왔다는 통보식의 전언과 함께 한 권의 책을 보내온 것이다.

       

       그 이름도 거창하여라.

       ‘네크로마니콘’, 죄 지은 자의 감옥이라는 뜻이었다.

       

       살아생전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이들의 영혼은 여섯 번째 신에 의해 지옥에 간다는, 또 그러한 지옥에 대해 상세하게 적힌.

       기행문.

       

       그래, 기행문이다.

       직접 보고 듣고 걸으며 적은 글.

       

       ‘레온 이 친구야…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건가!’

       

       대사제들 사이에 얼굴을 내밀고 있던 안토니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지만, 여전히 레온의 행동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은 노인네 하는 짓이 여전히 철부지 어린아이 같았으니…

       

       복잡한 심경과는 반대로 그의 눈동자는 착실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학구열과 신앙이 뒤섞인 눈동자가 이글거린다.

       

       이는 대사제들 모두 그러했다.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평생 동안 신학에 매진하며, 신을 위해 인생 모두를 바친 사람들이다.

       신앙이란 곧 인생이요, 인생이란 곧 신에 대한 봉사였다.

       

       한참이나 모여서 책을 탐독하던 대사제들은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될 무렵에서야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물론 간신히 억눌렀다 뿐이지,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뿌리 깊은 신앙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일단, 이 책에 대한 사실은 함구하도록 합시다.”

       “예, 그럽시다.”

       “…이건… 정말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런 만큼, 철저한 확인과 검증이 따라야 하는 사항이에요.”

       

       대사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은 커다란 파란을 몰고 올 물건이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지옥이 실존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악인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자신의 끝에 영원한 고통과 파멸이 예견되어 있다면?

       

       과연 그가 마음을 고쳐먹고 속죄하며 착하게 살려고 노력할까?

       아니면, 이미 파멸이 예견되었기에 더욱 거리낄 것 없이 악행을 저지를 것인가.

       

       이는 지혜로운 대사제들도 쉬이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여 그들은 라이언하트 팔라딘과 그의 탐험대를 성도로 호출하고,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진지한 토론을 이어갔다.

       

       …계획은 그러했다.

       허나, 세상만사가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

       

       자신이 공들여 꾸민 장소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은,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면.

       

       더더욱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

       

       

       

       

       

       “흐음…”

       

       톡, 토톡, 토토톡.

       

       스마트폰 액정을 손가락 끝으로 두들긴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실려 그립톡으로 고정한 화면이 조금씩 넘어지기 시작했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심경이 상당히 언짢은 와중이다.

       

       “……도대체 왜…?”

       

       며칠이나 공들여서 만든 ‘탄탈로스’에 첫 손님들이 왔다 간 것이 벌써 며칠이나 지났다.

       

       이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면 ‘탄탈로스’에 대한 반응이 진작에 나왔어야 정상이다.

       

       내가 꾸몄지만 진짜 장난 아니게 스케일도 크고, 볼거리도 풍부했으니까. 확신할 수 있다.

       

       거기에 방문객 중 한 명이 꾸준히 기록하는 것도 똑똑히 봤다. 분명 기록으로 남겼으면, 밖에 있는 사람들도 ‘탄탈로스’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텐데.

       

       “…이건 너무 반응이 없지 않나?”

       

       성도의 길거리부터 제국의 황궁이며 북부의 공작가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곳에서도 탄탈로스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존재를 모르는 수준에 가깝다. 이건 누군가 일부러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수준.

       

       그렇다면 용의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함께 온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흘러 나가는 정보마저 통제할 수 있는 거대 집단은 내가 알기로 몇 없었으니.

       

       주정뱅이 팔라딘, 라이언하트.

       그가 탄탈로스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혹은 그의 소속인 만신전에서 통제하고 있던가.

       

       주정뱅이 팔라딘이 탄탈로스에 대한 정보를 통제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녀석은 자신의 무용담에 대해 떠벌리기 좋아하는 스타일 같았으니까.

       

       그렇다면 용의자는 하나, 만신전이다.

       

       “그럼 못 쓰지… 내가 이걸 만드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이걸 숨겨?”

       

       하우징이라는 컨텐츠가 참으로 묘한 것이, 하다 보면 자꾸 스케일이 커지고 욕심도 생기는 것이다.

       

       각기 다른 컨셉의 지옥을 자그마치 스물네 개나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가?

       분위기에 맞게 종유석이며 이끼와 장식들을 배치하고, 적절하게 용암이 흐르도록 하는 것은 어떻고.

       

       나의 온갖 노력과 피, 땀, 눈물과 재화의 결정체.

       

       이 멋진 공간을 온 세상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나만의 작은 지옥으로 만들 수는 없어.

       

       “그래, 여기 있었구나…”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 만신전을 찾아 헤매하다가, 마침내 두꺼운 책 한 권을 찾아냈다.

       검붉은 가죽 양장본에 금 자수로 제목이 새겨진 한 권의 책. 괘씸하게도 만신전의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둔 모양새라니.

       

       띠링ㅡ!

       

       《지옥 기행기 ‘네크로마니콘 : 죄 지은 자의 감옥’을 습득하였습니다.》

       

       “…이름이 왜 이래?”

       

       제목이 이러니까 사람 피부로 만든 책 같잖아.

       

       인벤토리에 들어온 검붉은 책 한 권.

       나는 그걸 조심스럽게 드래그하여, 세상에 풀어놓았다.

       

       

       

       

       

       *****

       

       

       

       

       

       성도의 어두운 골목길에서부터 북적이는 시장에 이르기까지.

       낮고 은밀하게 퍼지는 발 빠른 소문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둘이 모이면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셋이 모이면 소문에 대한 저마다의 의견을 토론했으며, 넷이 모이면 정보를 공유했다.

       

       “자네 이번에… ‘그 책’에 대한 소문 들었나?”

       

       소문이 퍼진다.

       악행을 고통으로 속죄하여야 하는 지옥에 대한 소문이.

       

       어느 순간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 읽고 나면 감쪽같이 사라지는 신묘한 검붉은 책에 대한 소문이 퍼진다.

       

       기이하게도 그 책을 읽은 자는 있어도, 하룻밤 이상 소유한 자는 없었으니.

       실로 기이한 책에 대한 소문은 온갖 살과 뼈가 붙어서 덩치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책을 적은 팔라딘께서 지옥에 있는 악인들의 뼈를 발라내어 펜처럼 만들어서 글을 적었다더라… 아니다, 악마의 피를 쥐어 짜내서 잉크로 사용해서 책을 적었다더라… 악마와 악인의 피부를 벗겨내 책으로 만들었다더라…

       

       온갖 자극적인 조미료가 소문 위에 뿌려지고 살을 덮었다. 이윽고 무엇이 진실인지도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단 하나의 명제만큼은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

       

       ‘악행을 저지른다면, 죽어서 그 죗값을 치른다.’

       

       그것만큼은 누구라도 동의할 내용이었다.

       

       낮고 은밀한 곳부터 퍼진 소문은 이윽고 콧수염이 멋들어지게 자란 프리우스 후작의 귀에 닿기까지 이르렀으니.

       

       이에 흥미를 느낀 프리우스 후작은 평소 그와 친하게 지내던 화가에게 ‘소문의 책’에 대해 말해주었다.

       

       수인이라는 종족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는 했으나, 아직 인간과 수인의 결합은 보기 드물었고, 수인에 대한 애호는 꺼림칙한 시선을 받는 사회였다.

       

       바깥에서 말하기는 좀 부끄러운 취향을 가진 화가와 프리우스 후작이 고용인과 고용주의 사이를 넘어서 돈독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자네도 그 검붉은 책에 대한 소문, 들어보았는가?”

       “검붉은 책이라고 하시면… 팔라딘께서 기이한 곳을 다녀오고 쓰셨다는 책 말씀이십니까?”

       

       심혈을 기울여 수인의 꼬리 부분을 붓질하던 화가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꾸했다. 한낱 화가가 후작 앞에서 보일 태도는 아니었으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사람 앞에서 불쑥불쑥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그 책… 얼마전 내가 우연히 기회가 닿아 그 책을 읽어보았네만, 참 인상 깊더군.”

       “그러십니까?”

       “묘사 하나하나가 매우 생생했어. 검붉은 용암이 흐르고, 유황 내음과 죄인들의 비명… 마치 눈으로 보이는 듯하더군. 아주 인상적이야.”

       “그렇군요.”

       

       화가가 설렁설렁 대답하며 꼬리 부분의 미세한 털을 붓질했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살짝 뻗친 듯 올라가는 잔털이 생명이다.

       

       “내가 그 책을 읽다 보니, 작은 욕심이 생겨서 말이야.”

       

       프리우스 후작이 넌지시 운을 뗐다. 그제야 후작의 의도를 파악한 화가가 고개를 돌려 프리우스 후작을 바라봤다.

       

       “어떤 걸 바라십니까?”

       “내가 묘사해 주는 풍경을 자네가 그림으로 그려줬으면 하네.”

       “…풍경화를요? 저는 인물화가 전공입니다만.”

       

       슬쩍 대꾸한 화가는 후작의 눈동자를 보더니 붓을 내려놓았다. 프리우스 후작의 눈동자 깊은 곳에 예술에 대한 갈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자네는 인물화를 유독 잘 그리는 것이지, 풍경화를 못 그리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지요.”

       

       꼬리는 나중에 완성해야겠군.

       

       화가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프리우스 후작에게는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앞뒤 가리지 않는 기질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탄탈로스의 풍경화를 꼭 갖고 싶은 모양이었다.

       

       …

       

       

       그렇게 화가는 날밤 새워가며 프리우스 후작이 말하는 풍경을 그림으로 담아냈고.

       

       “마음에 쏙 드는군!”

       

       훌륭한 탄탈로스의 풍경화 한 장이 프리우스 후작의 컬렉션에 추가됐다. 프리우스 후작은 탄탈로스의 그림이 잘 보이도록 소중하게 보관했고.

       

       “프, 프리우스 님! 큰일입니다!! 헉! 허억!”

       “아침부터 이게 무슨 소란이냐?”

       “그, 그림이! 탄탈로스의 그림이!”

       

       그리고 다음날.

       

       탄탈로스의 그림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치 검붉은 네크로마니콘이 그랬던 것처럼.

       

       그림 대신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 자리에 고양이의 귀가 달린 머리띠만을 남기고.

       

       

       

       

       

       

       

       *****

       

       

       

       

       

       “캬, 이 그림 마음에 쏙 드네.”

       

       띠링.

       

       《탄탈로스를 묘사한 그림, ‘잔혹한 감옥’을 습득하였습니다.》

       

       이게 파밍이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케넬름은 각성하여 켄텐츠의 볼륨을 확장하라…!! 탄탈로스가 더욱 번창하면 1000장의 책이라니…!! 그것은 책을 넘어선 둔기, 아니… 방패에 가까운 무언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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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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