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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1

        

         저 멀리, 아득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작은 방이 솟구친다. 허공에서 튀어나온 바닥재와 마감재가 들러붙고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는 일련의 공정은 공간이 재조립되고 있다 말해도 좋으리라.

         

         그걸 지켜보는. 혹은 지휘하는 건 원흉으로 짐작되는 소녀 아나스타샤.

         

         완성된 방은 육면 중 절반의 벽이 존재하지 않았다. 천장, 그리고 앞부분에 위치했어야 할 두 면. 마치 지켜보는 관객의 편의성을 위해 그 부분만 존재가 도려내진 것 같았다.

         

         내부, 바닥에 주저앉아 싸구려 인형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건 앳되고 어린 시기의 엘렉트라.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모르는 채 그저 소꿉놀이에 열중하는 가련한 바보다. 저항하고 쟁취해야만 하는 게 섭리이거늘 마냥 순응하는 게 미덕인 줄로만 알았던 ‘착한 아이’.

         

         장면이 빨리 감기되고 빛이 사그라든다.

         태양이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으며 자상한 어머니가 그녀의 이불을 덮어주고 떠나시면, 교대하듯 아버지가 몰래 방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아아, 아버지. 바라시는 것도… 비밀도 많은 남자.

         후련한 얼굴을 한 어머니에게 머리가 박살 날 예정이시면서 가시는 끝까지 이기적인 짐승.

         

         “아… 진짜! 혹시 이런 걸 보게 될까 봐 가급적 안 하고 싶었는데.”

         “…….”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이 반은 당신의 피를 이었나 봐요. 저지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질 않으니.

         

         거리라는 개념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영역에서 아나스타샤의 서글픈 독백을 엿들은 엘렉트라의 눈이 길게 째진다. 현실에선 첨단이 으스러졌을 송곳니가 드러나고 가열된 호흡이 토해졌다.

         

         결핍된 게 있다면 채우면 그만이다. 트라우마가 있다면 투영하고 극복할 대상을 고르면 되고.

         

         무력하던 시기는 오래 전에 사멸했으며 이젠 원하는 걸 모두 이룰 능력을 갖춘 게 자신인데, 감히 네까짓 게 뭘 안다고 그런 동정하는 태도로 처연하게 봐?

         

         수십 년에 걸쳐 상영된 단막극의 한 장면만 보고 고개를 끄덕이지 마. 슬퍼하지 마.

         어디서 굴러먹던 건지도 모를 해커 나부랭이가 흙 묻은 발로 남의 상처를 짓밟고 값을 매겨?

         

         “이이이익…!!”

         

         그러나 아무리 정신을 집중하고 의식을 조여도. 아나스타샤의 횡포는 멈춰지지 않았다.

         

         그녀가 했던 것처럼 명확한 적의를 가지고 허상을 지워버리던가, 머물고 있는 공간의 주도권이라도 좀 가져오고 싶었지만 어느 쪽도 쉬운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상대방이 무슨 메커니즘을 이용해서 이런 짓이 가능한지도, 자신이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 트랜스 상태에 빠져들었는지조차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웠다.

         

         절절한 무력감이 전신을 휘감을 것 같았으나 엘렉트라도 뇌파나 전자 관련이라면 이골이 나는 전문가. 프로 중의 프로.

         

         비록 교반 장치나 전문기기도 없이 몸에 이식한 부품들의 도움만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 능숙한 작업은 불가능했지만 그 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멋대로 날 들여다보겠다면 좋아. 이 시건방진 불여우가.”

         

         ‘나도 네 비밀을 있는 대로 파헤쳐주겠어.’ 라는 악에 받친 결의를 다진 그녀가 돌연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멀리. 아나스타샤로부터, 자신의 일부라 생각되는 구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빠르게.

         

         무작정 도망치거나 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관측을 외면하는 게 아니었다. 외려 엘렉트라는 집요한 스토커처럼 역으로 무언가를 따라가고 있는 거에 가까웠지.

         

         소녀가 남긴 족적은, 강대한 제어력을 가진만큼 이 깊은 곳에 오기까지 남긴 흔적도 비례해서 컸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거인의 발자국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건 흡사 무지개가 솟아난 지면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동화를 믿는 것처럼 절박했으며, 어둠으로 휩싸인 낭떠러지 근처를 질주하는 것처럼 무모했다.

         여정의 끝에 목적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 알지, 정확히 찾는 물건의 이름조차 대지 못하는 치기어린 반항.

         

         달린다는 행위와 독하게 품은 목표 모두 감정을 힘으로 치환하는 과정의 일부.

         이곳에서 중요한 건 명확한 이미지와 그에 준하는 의지. 고로 엘렉트라가 가까스로 예의 ‘균열’에 도달해서 넘어갈 수 있었던 건 필연이자 그간의 경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 셈이었다.

         

         찰팍!

         

         피부에 닿는 느낌부터가 다른 공간에 기어이 그녀가 들어섰다.

         이제 남은 일은 외려 간단했다. 아나스타샤가 가장 거리끼는 기억, 세상으로부터 숨기고 싶어하는 정보를 훔쳐보면 된다.

         

         대체 어떻게? 다 요령이 존재한다.

         ‘코끼리를 상상하지 말라.’ 하면 코끼리를 떠올리는 사람의 뇌 구조, 습성을 이용하여 반복적으로 수면에 먹물을 떨어트리듯 일대를 자극하면 얄궂게도 거기로 가는 길을 대령하는 게 무의식이니까.

         

         “하, 어떤 잘난 기억이길래 이런 백 년은 족히 된 단말기 형태로 밀봉까지 했을까. 이 아가는?”

         

         그래서 아무런 의심없이.

         23세기 문명인의 감성으로 보건대, 비밀은커녕 정말 별다른 도움도 되지 않을 데이터만 가득 담겨있을 것 같은 구형 컴퓨터를 들여다본 엘렉트라는. 무참히 튕겨져 나갔다.

         

         “…………아?”

         

         “왁!?”

         

         덧붙여서 미처 그녀의 몸에 원하던 폭탄을 심기도 전에 아나스타샤 또한 반강제적으로 접속이 끊어졌고.

         

         왜 그랬냐고?

         그야… 방금 전까지 멀쩡히 있던 한 사람의 의식은 더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르륵….

         

         “헙!? 소장님, 괜찮으십니까? 어딜 부딪히셨다면 간략하게 응급 처치부터 하고 이동하시지요.”

         

         예고도 없이 갑자기 까맣게 죽은 피가 상사의 코에서 흘러나오는 걸 본 실장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엘렉트라는 침착하게 응대했다.

         잘은 몰라도 일단 현실로 돌아왔다면 자신의 노림수를 보고 화들짝 놀란 상대가 한 발 물러났다는 뜻이겠지.

         

         “…그래, 힐템이나 상태이상 치료제 좀 있으면 얼른 줘 봐. 이상하게 온몸이 피곤하네. 어디서 도트뎀이 들어오는 것 같아.”

         

         “네, 예? 미시즈 엘렉트라? 그게 무슨…?”

         

         상태이상 치료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힐템’에 ‘도트뎀’? 엘렉트라 연구소장이 엉뚱한 부분에서 짜증은 내더라도 이런 식으로 해괴한 어휘를 쓰는 경우가 있었나?

         

         “내 말 못 들었어? 피템 같은 거 있으면 내놓고, 위에서 뒤져 나간 애들 리스폰 하는데 얼마나 걸려? ……아, 메가코프 몹은 우리가 맵을 비워서 다시 로딩할 때까지 부활 판정은 없고 증원만 하던가.”

         

         지끈지끈.

         주변 사람들이 기묘한 느낌에 입을 다물거나 말거나, 일분일초가 흐를수록 두통이 기하급수적으로 심해지는 걸 느낀 그녀는 답답하게 왜 그러냐는 것처럼 혼잣말을 이어갔다.

         

         나름 엘리트들이라는 놈들이 네오 헤이븐 경력이 몇십 년이나 됐으면 대충 말했어도 척하면 척하고 알아 들어야지.

         

         상대방이 버그성 플레이에 가까울 정도로 특성을 악용하고 있기는 해도 이쪽 NPC라고 허수아비가 아닐진대 이렇게 몸 사리고 있을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수의 폭력을 써서라도 진작 찍어 누르던가 했어야….

         

         “……?”

         

         NPC(Non-Player Character;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 그게 뭐였을까, 드로이드를 말하는 거였나? 아닌데? 드로이드는 오퍼레이터나 소유주,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물건이니까 해당되지 않다고 보는 게 맞잖아.

         

         …주륵.

         이번에는 귀에서 검게 변한 혈액이 흘러내렸다.

         

         그제서야 그녀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나쁜 경험과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도,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다며 손가락질 받는 와중에도 자신이 오롯이 자신으로 있을 수 있게 해주던 근원이 오염되었다.

         

         허나 언제? 어디서?? 이걸 고치려면 대체 어느 시점 세이브까지 되돌려야 하지?

         그럼 몇 년 어치 진척도(Progress)를 깡으로 날리라고? 아니, 애당초 마지막으로 저장한 건 언제였는데.

         

         “우읍…!?”

         

         왈칵. 안쪽으로부터 치솟는 토악질에 입을 가린 채 엘렉트라가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중요한 것, 하찮은 것. 현실과 비현실. 지독한 약물 중독에 찌들더라도 온전해야 할 경계선이 일그러졌다.

         

         여지껏 차곡차곡 정성 들여 라벨을 붙이고 분리한 모든 파일들이 한덩어리로 뭉쳐 구분할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서로 얽히고 설켜서 떼어내도 모르겠고, 힘없이 떨어져 나간 파편을 줍는다고 자기 일부가 아니었다 확신하기도 어려웠다.

         

         어째서 이런 진실이 실재하는 걸까. 그리고 그게 하필 지금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뭘까.

         이 모든 걸 아는 채로. 이 세상의 일부가 되어 영락한 저 작은 플레이어는, 모형정원에 갇힌 악마는 어떤 눈길로 미천한 그들을 오시하고 있는 것일까.

         

         “그으윽!!”

         

         이를 악문 엘레트라가 비척이면서 몸을 일으켰다. 구역질과 두통, 얼마나 남았는지 감도 오지 않는 내출혈과 혈관 파열을 전부 무시한 채 억지로.

         

         침착한다고 엎어진 물이 다시 담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믿는 구석이…. 아니, 적어도 실재한다고 착각한 탈출구가 있었으니.

         

         찰칵…!

         

         “엇!? 이게 무슨 짓….”

         

         번개같이 뻗어진 엘렉트라의 손이 실장의 허리춤으로부터 핸드건을 낚아챘다.

         그래, 모든 게 망가지고 어느 것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세이브 포인트’에서부터 다시 하면 된다는 일념 하에 고른 최후의 도피처.

         

         마지막까지 그녀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죽는 것으로 잘못된 걸 전부 고칠 수 있다면 왜 저 소녀는 그렇게도 치열하게 살아남았는지를.

         

         또 자신은 왜 누가 붙잡을 새라 도망치듯 권총을 빼앗아 들었으며, 방아쇠에 걸쳐진 손가락이 이리도 제멋대로 떨리는지를.

         

         “……다음에 봐요. 내 사랑.”

         

         퍼석!!

         

         영영 돌아오지 못할 신혼 여행을 떠난 엘렉트라를 환송하듯.

         붉고, 검고, 하얀 폭죽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리한 이야기를 믿고 싶어한다 말했던 스스로의 설교를 따르는 것처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각 죄송합니다! 연참 욕심에 그만.
    에피소드 마무리가 얼마 안 남아서 자꾸 욕심 내게 되네요. 내일은 제 시간에 업로드할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고! 시간내서 댓글 달아주시고! 추천 버튼 눌러주셔서 영광입니다.
    따듯한 관심과 사랑 덕분에 언제나 힘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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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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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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