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31

     자식을 정치적 도구로 삼는다.

     노스트럼 왕국 대부분, 그리고 제국의 유력 기업-상회들은 그러려니 할 것이다.

     정략결혼이라거나 신분상승을 위한 가문간 결합이라는 건 사회적으로 높은 권력을 가진 이들일수록 더욱더 확고해지는 일이니까.

     간혹 반목하는 가문 사이에서 서로 사랑하게 되는 두 남녀가 죽음으로써 맺어지는 비극적인 상황도 발생하고는 하지만, 적어도 90%의 정략결혼은 개인의 사랑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맺어지기 마련이다.

     나머지 10%.

     

     가문 중에서 꼭 정략결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저 가문 사이의 우정과 친애의 표시로서, 자식들이 화목하게 지내다가 서로 눈이 맞으면 진짜로 사돈 관계를 맺는 그런 경우가 있다.

     사실상 상대측을 ‘이 자와 부인이라면 내 사돈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라고 인정하는 친애의 증거.

     보통 이런 경우는 자식들이 어려서부터 선남선녀로 만나 진짜로 맺어지게 되겠지만, 꼭 항상 맺어지는 건 아니기도 하다.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

     아기 때부터 자주 만난 소꿉친구라고 해서, 무조건 맺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으니까.

     따라서.

     “아스타시아. 당신과 저의 자식이 반드시 나리아와의 자식과 결혼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그런 관계를 맺어놓았다, 정도로 정치적 화합을 추구할 뿐.”

     나는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했지만, 무조건 나리아의 자식과 결혼시킬 생각은 없다.

     “나리아가 왕궁으로 돌아가 그레이 지브롤터 백작과의 협상 결과를 선포하는 즉시, 온 대륙이 안심할 겁니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제국의 황녀와 결혼한다고 해도, 첩을 들이는 게 아니라 그 자식끼리 약혼시키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대에는 둘 다 공주라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만일 성별이 다르게 태어난다면 다들 그 생각 분명히 하지 않겠습니까?”

     왕국과 제국.

     두 나라가 국경을 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기어이 혈연 관계를 맺는다면?

     “어떤 이들은 나리아가 여왕에 등극한다면, 제국의 황제와 결혼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누가요?”

     “충성병자들이.”

     “으아, 싫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함부로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게 말이나 되나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사실상 대륙은 통일이다.

     서로 지배체제는 다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협곡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지고 대륙은 하나로 통일될 것이다.

     “남의 자식을 가지고 함부로 결혼을 시키니 마니.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죠.”

     “남의 자식은 안 되지만 내 자식은 괜찮다?”

     “내 자식이 아니라 우리의 자식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한 건 죄송합니다.”

     “……흥.”

     아스타시아는 볼을 잠시 부풀렸다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아요. 나리아에게 대충 상황은 듣고 왔으니까.”

     “나리아가 뭐라고 한 겁니까?”

     “본인은 낳지도 않을 자식이니까, 자식으로 거래를 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공수표로 거래를 하는 거라서 딱히 문제되지 않을 거라고.”

     “…….”

     망국의 공주는 나라를 부활시킨다는 명목 때문에라도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았기는 했지만, 지금은 상관이 없지 않나…?

     “결혼 안 한답니까?”

     “아직까지는 자기 몸을 허락해줄만한 솔로인 남자가 눈에 안 보인다고 하던데요?”

     “그러다가 나이가 오래 차버린다고 한다면….”

     “나리아에게는 나리아의 인생이 있는 거죠. 제국 여성들 중에서도 나이가 제법 찰 때까지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성들도 있으니까.”

     “골드미스, 말입니까?”

     “그렇긴 하죠. 물론, 나리아도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 거예요. 아직 그녀는 18살이니까.”

     18살에 결혼하지 않겠다고-

     

     정정.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했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나리아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노스트럼의 핏줄은 끊어지게 되겠군요.”

     “당신과 한 약혼 문제도 결국에는 의미가 없어지게 되겠죠. 그레이 지브롤터와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10명이든 100명이든, 나리아가 낳은 아이가 없으면 약혼은 무효니까!”

     “100명까지 낳을 겁니까?”

     “1000명 낳을까요?”

     “그건…그 때 가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죠. 당장은 자식들의 약혼을 공수표로 던지는 게 아니라, 제 약혼이 더 중요하니.”

     아스타시아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진다.

     이제야, 조금 만족해하는 눈빛이다.

     “그러니 오해는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나리아와 약혼한다느니 그런….”

     “오해, 처음부터 안 했는데요?”

     아스타시아가 싱글벙글 웃는다.

     “제가 설마 당신이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을까봐 겁이 나서 질투심이 나서 이렇게 달려왔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예.”

     “맞아요. 설마 그럴 일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이렇게 달려왔답니다. 잘했죠?”

     “잘 하셨습니다. 안 오셨다면, 제가 당신을 만나러 아카데미로 찾아갔을 테니.”

     “히힛.”

     처음부터 그런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에 장난기가 서서히 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스타시아. 아카데미 학기 중인데도 이렇게 짐까지 챙겨와도 괜찮은 겁니까?”

     “결석은 2번까지는 괜찮아요.”

     아스타시아는 자신이 가져온 캐리어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학점은요?”

     “아카데미에서 배우고 익히는 것보다 밖에서 더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아카데미 교수들도 인정해주실 거예요.”

     아스타시아는 막무가내로 결석을 하여 바르셀로나로 달려왔다.

     그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수 없었고, 누군가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아스타시아는 단숨에 내 앞에 도착했다.

     “제국 유학생들은 뭐라고 하덥니까?”

     “쪽지는 남겨두고 왔으니까, 다들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마도자동선을 타고 여기에 왔다는 것도 알고 있을테니까.”

     “수행인원도 없이?”

     “수행인원이 따라와봐야 객실에 머무르면서 골드캐슬 청소하고 막 그럴텐데, 굳이 부를 필요까지는 없죠.”

     그것도 단신으로.

     “그렇게 제가 나리아와 둘이서 만나는 게 걱정되었습니까?”

     “나리아가 걱정되는 게 아니라, 그것 때문에 제가 오해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어느 한 백작님이 걱정되어서 이렇게 찾아온 거죠!”

     “잘 맞추셨습니다.”

     나는 두 팔을 벌렸고, 아스타시아는 그대로 내게 점프하듯 안겼다.

     풀썩.

     침대에 그대로 쓰러진다.

     나는 내 위를 덮친 아스타시아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다행히 여기는 천장에 핏자국이 없군요.”

     “그냥 태워버리고 새로 짓는 건 어때요?”

     “여기 영지민들의 반감이 너무 클 겁니다. 찝찝하기는 하지만, 마법사를 불러서 청소하는 쪽이 성을 새로 짓는 것보다 예산이 훨씬 덜 소모되기도 하고.”

     골드캐슬 곳곳에는 아직도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제국 그림자들이 남기고 간 핏자국이 사방팔방에 가득했다.

     “제국 잡지사들 사이에도 공공연하게 소문이 돌았어요. 제국에서 사라진 흡혈귀들이 노스트럼의 내전에서 나타났다고. 바르셀 후작이 제국의 흡혈귀들이랑 손을 잡고 노스트럼을 망하게 하려고 했다고.”

     “언론통제를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봐버렸으니까요.”

     전투 이후.

     시신을 수습하는데 있어, 시신 중 절반 가량이 아침해가 뜨자마자 바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너무나도 기이한 현상에 시신을 수습하러 왔던 이들이 나자빠졌고, 민간인들도 봐버린 이상 어떻게 정보를 은폐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바르셀 후작가는 멸문했다.

     그냥 단순히 왕가를 능멸하고 지브롤터를 자극한 것만으로도 극형이지만, 그 전쟁을 위해 제국의 폐세자-흡혈귀들을 끌어들인 죄목까지 더해져 형량이 늘었다.

     “다들 두려워하고 있어요. 영지전을 펼치면서 민간에 녹아들어있던 이들이 흡혈귀로 죽었으니, 혹시나 자기 주변에도 흡혈귀가 있는지 걱정하고 밤을 두려워하고 있죠.”

     “낮에 활동하지 않는 자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긴 한데.”

     “밤에 흡혈귀에게 살해당할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죠!”

     “흡혈귀들도 마냥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건 아닌데 말이죠.”

     흡혈귀들이 인간의 피를 빨아서 살아가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즉시 자기 목숨이 날아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노스트럼에서 흡혈귀는 쉽게 행동할 수 없는 존재이며, 제국보다 더 약화된 상태에서 움직이는 이들이니까.

     “흡혈귀들을 좀 상대해봐서 알겠던데, 노스트럼 땅에서도 밤에는 제 힘을 낼 수 있더군요. 대신, 눈의 색이 뒤집히고 송곳니가 날카로워지고,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되어버리고.”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제로스 바르셀 후작이 그렇게 된 이유도, 황금여명 기사들이 전부 이상한 행동을 한 이유도 전부 흡혈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왕국 제1 기사단을 흡혈귀로 만들어버린 배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네. 제국에서는 그들을 제국에 합병된 왕국의 몰락귀족들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왕국 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당장…이곳, 바르셀로나만 하더라도 그렇고요.”

     “……나리아의 발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쉽게 봉합되지는 않을 겁니다.”

     흡혈귀에 대한 불안감은 결국 제국에 대한 불안감으로 승화될 것이다.

     

     “이전까지 흡혈귀에 대한 두려움은 기껏해야 세빌리야 옆 오염지대에서 마수를 사냥하던 이들이 가끔 느끼던 것들인데, 그게 노스트럼의 전체-심지어 정계까지 영향을 준다고 하니 다들 겁을 먹게 된 거죠.”

     “사실, 제일 두려워하는 건 따로 있어요.”

     “뭡니까?”

     “그레이 지브롤터.”

     아스타시아가 내 얼굴을 붙잡더니, 내 입을 벌리게 하여 이를 손가락으로 간질였다.

     “사실은 그 또한, 제국에 의해 흡혈귀가 되어버린 존재가 아닐까?”

     “저는 햇빛 아래에서도 잘만 돌아다닙니다만.”

     “태양을 극복한 흡혈귀인 거죠. 아니면 뭔가 모종의 방법으로.”

     “그레이 지브롤터를 흡혈귀로 만들었다니. 누가 저를 흡혈귀로 만들었다고 그럽니까?”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하. 어처구니 없군요.”

     나는 아스타시아의 머리를 붙잡은 다음, 그녀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할짝.

     “송곳니는 그냥 평범한데.”

     “…저는 손가락으로 했는데.”

     “어차피 이러면서 뒹굴 거, 미리 하면 안 됩니까?”

     “한다면 확실하게 입술도 맞추고 그래야지, 혀로 송곳니만 핥는 건 뭐예요? 변태예요?”

     “변태는 아니지만, 아스타시아를 상대한다고 하니 참을 수 없어서.”

     “흥, 정말이지….”

     아스타시아는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가볍게 쓸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백작님. 이제 뭘 하실 거죠?”

     “아스타시아랑 뒹굴기?”

     “그런 건 당연한 거고, 바르셀로나 백작으로서 말이에요.”

     아스타시아가 창 밖을 가리켰다.

     “저렇게 시끄럽게 굴면, 편히 뒹굴고 싶어도 뒹굴 수 없잖아요.”

     퍼ㅡ억.

     유리창.

     “어우, 혹시 상급 기사라도 숨어있는 걸까요? 어떻게 이 높이까지 토마토를 던지고 그러는 거죠.”

     “상급 기사일 겁니다. 군중 속에 숨어서 토마토 던지는 게 낼 수 있는 용기의 전부인, 한 순간에 근무지가 사라진 전직 황금여명 기사.”

     창 밖에는 수많은 군중이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다.

     “그레이.”

     아스타시아가 진지한 얼굴로 창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레이를 향해서 저렇게 소리지르는 걸까요.”

     “자기들은 죽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

     창 밖.

     “흡혈귀로 죽었든 상급 기사로서 죽었든, 황금여명 기사단의 가족들이 이곳 후작령에 많이 살고 있었던 건 필연이기에.”

     몇몇 군중들이 외치고 있다.

     군중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다른 이름으로 하면 ‘유족’이 외치고 있다.

     “별 거 없습니다. 가장을 잃었으니, 책임을 지라는 거죠.”

     “…….”

     “잘못은 저들의 가장이 했는데, 그 가장만 바라보고 살았던 이들이 저렇게 나서니 어처구니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런 꼴 함부로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누구에게요?”

     “그야 당연히….”

     나는 아스타시아의 머리를 가볍게 눌러 내 품에 안았다.

     “제국.”

     

     바르셀로나 곳곳에,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병력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자신들을 ‘바르셀 후작령’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보니.

     “황궁에 계신 어떤 분이 이 꼴을 보고 모조리 쓸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저들을 수습해야겠죠.”

     “쓸어버린다…?”

     “예.”

     눈 앞에 쓰레기가 떨어져있다면 주워서 버리는 게 인지상정.

     “합스베르크 황제가 말입니다, 저런 장면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하지만 쓰레기가 너무 많다면, 쓰레기를 전부 태워버리거나 어딘가 매립해서 없애야 한다.

     아니면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요인을 제거하거나.

     “노스트럼은 그냥 전부 다 죽여버리는 게 정답이다. 국가가 아니라, 인종 자체를.”

     “방법은….”

     “자기들이 암덩어리라는 걸 모르는 이들이라면, 이곳 바르셀로나에서 쫓아내야죠.”

     “어디로요?”

     “마침 근처에 비어있는 곳으로.”

     현재.

     “왕국 어딘가에는 쓰레기 매립장이 필요합니다. 예. 렘버리 캠프죠.”

     바르셀 후작가와 연결된 귀족 가문 중 일부가, 줄줄이 엮여서 처형대에 오르고 있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