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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1

   ‘그래서 병신왕자님께선 음침 외톨이 왕자님을 이겨보셨나요?’

   

   이겨보지 못했다.

   

   단 한 번도. 그 어떤 분야에서도.

   

   세실 솔라딘은 태어나면서부터 1왕자와 경쟁하기를 요구받았지만 그는 어디에서도 1왕자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우위를 점하지 못한 건 뿐이라면 다행이겠지. 허나 그 뿐이 아니었다.

   

   세실이라는 인간은 언제나 1왕자의 발치에 머무를 뿐이었다.

   

   최선을 다해도.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떤 수단을 빌려도.

   

   패배라는 단어를 모르는 1왕자의 압도적인 재능은 세실이라는 인간을 범재보다 못한 무언가로 만들어버리기 일수였다.

   

   수많은 패배 속에서 세실은 자신을 경쟁상대로도 여기지 않는 1왕자를 증오하면서 동시에 이해했다.

   

   자신이 같은 상황이었더라도 상대에게서 위협을 느끼지 못했을 터이니 말이다.

   

   ‘당연히 이겨보셨겠죠? 저 같은 귀엽고 작은 여자애도 이긴 상대인걸요.’

   

   그랬기에 1왕자가 알른 가문의 영애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세실은 그 소식을 전해 준 이에게 농담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도저히 1왕자가 패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허나 그 소식은 모두 다 사실이었다.

   

   1왕자는 자신이 먼저 승부를 신청했으며, 그리고 그 승부에서 패배했고, 심지어는 알른 가문의 영애에게 모욕까지 듣고 말았다.

   

   절대 패하지 않던, 패배를 모르던, 무적처럼 여겨지던, 만일 저를 무너트린다면 자신이 직접 무너트릴 거라 생각하던, 1왕자라는 성벽에 거대한 흠집이 난 것이다.

   

   세실은 그 소식을 듣고서 웃었다.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가문을 따르는 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1왕자도 인간에 불과하다며 폭소를 터트렸다.

   

   – 보라. 1왕자도 결국 인간에 불과하지 않으냐. 알른 가문의 부족한 아이도 해낸 일이다. 아무리 네가 무능하다 할 지라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터.

   

   부모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느 때처럼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루시 알른이란 아이가 1왕자를 싫어하는 듯 하니 포섭해보라 이야기할 때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겠노라 장담했다.

   

   그리고서 한 밤 중 홀로 남았을 때에. 세실은 생각했다.

   

   자신이 여태까지 1왕자를 이기지 못했던 것은 진정 자신이 무능했기 때문인가에 대해서.

   

   ‘설마 한 번도 못 이겨보셨나요? 그런 주제에 저보다 능력있다고 생각하세요? 진짜로?’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세실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그치지 못했다.

   

   1왕자가 너무도 유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너무도 무능했기에 그를 쓰러트리지 못한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말이다.

   

   ‘그럼 제가 대결을 신청해도 물러서지 않으시겠죠?’

   

   호사가들의 입에서 루시 알른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올 때마다 세실이 지닌 의구심은 점차 커져만 갔다.

   

   누군가는 말했다.

   

   그저 축제의 유희일 뿐이었다고. 1왕자님께서 진심을 내셨다면 그런 꼬맹이가 상대가 되겠느냐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했다.

   

   자신이 그 축제의 풍경을 보았는데 그건 축제이기에 가능한 꼼수였다고. 실전이었다면 상대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나불거리기 좋아하는 이는 이렇게 말했다.

   

   1왕자님께서 베네딕 알른 경의 명예를 위해 배려해 주신 것이라고. 부족했던 딸의 명성을 높이는 것으로 그 공에 보답한 거라고.

   

   저들이 하는 이야기는 서로 달랐지만 엄밀히 따져보자면 같았다.

   

   이것이 정상적인 승부였다면 1왕자가 졌을 리가 없다고.

   

   루시 알른이 1왕자를 이길 수 있었던 까닭은 어디까지나 비정상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을 때면 세실은 저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어졌다.

   

   그대들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 그 어떤 치졸한 수를 써도 1왕자를 이기지 못했던 난 뭐냐고.

   

   그까짓 여자애보다 못한 나는 도대체 무엇이냐고.

   

   ‘그야 병신왕자님께서는 저 따위는 가뿐하게 박살내실 수 있으실 테니. 그쵸?’

   

   “2왕자님?”

   

   겁에 질린 듯한 목소리를 듣고서 눈을 뜬 세실은 길고도 무거운 숨을 내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세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기란 어렵지 아니했다.

   

   저들 모두 세실이 손을 내밀면 루시 알른이 그를 붙잡을 것이라 이야기 했으니까.

   

   1왕자와 각을 세웠으니 당연히 이 쪽에 올 것이라며.

   

   1왕자를 미워하는 게 분명한데 설마 그가 왕이 되는 걸 보고만 있을 리 없다며.

   

   2왕자님의 인품에 매혹될 것이라며.

   

   사자는 사자의 아래에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무인의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무인을 따르는 게 자명하다며.

   

   그 결과는 어떠한가.

   

   단순히 거절을 당했을 뿐 아니라 처참한 모욕까지 곁들여지지 않았는가.

   

   ‘병신왕자님.’

   

   “병신왕자라.”

   

   그는 세실에게 익숙한 단어였다.

   

   그의 부모가 1왕자에게 패배한 세실을 질책할 때면 으레 내뱉는 이야기였으니까.

   

   허나 그를 다른 이의 입에서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군.

   

   등을 뒤로 쭉 빼고서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세실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목소리를 냈다.

   

   “아치.”

   “…예?”

   “이번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

   

   아치라는 이는 루시 알른이 2왕자 파벌에 들어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 중 하나였다.

   

   그는 지적을 당하자 우물쭈물거릴 뿐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진 못했다.

   

   세실은 그를 보고서 들으라는 듯 한숨을 내쉬곤 다른 사람을 호명했다.

   

   “토미.”

   “저어. 2왕자님. 그것이.”

   “설명해봐.”

   “그… 그게.”

   

   이런 호명이 계속되는 가운데 2왕자 파벌이 하는 생각은 대개 비슷했다.

   

   자신들은 2왕자가 바라는 말을 해주었을 뿐이다.

   

   충언을 하면 큰소리로 면박을 주면서, 원하는 말만 하라고 강요하면서, 결국 선택은 한 것은 자신이면서, 왜 우리들한테 무어라 하는 것이냐고.

   

   아니 애초에.

   

   “홀든.”

   “예. 2왕자님.”

   “말해봐.”

   “죄송합니다.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미친년이 왕자에게 병신이라는 소리를 내뱉고, 그걸로도 모자라 나보다 무능한 사람 아래엔 들어가기 싫으니 꼬우면 승부를 겨루자는 말을 할 걸 예상할 수 있겠냐고.

   

   “영애에 대한 조사가 부족했습니다.”

   “그래. 부족했지.”

   “모두들 그럴 겁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2왕자는 입술을 잘근거리다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좋아. 용서하지. 그 대신 후일 나와 함께 훈련을 해야 할 거다.”

   “감사한 일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이 훈련이라는 것은 단련이라기보다는 체벌 혹은 고문에 가까운 것이다.

   

   아카데미 2학년 중에서도 육체적으로 뛰어난 편에 속하는 이들 중에서도 기절하는 이가 심심찮게 나오는 것을 어찌 훈련이라 부를까.

   

   2왕자 파벌 모두 훈련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경기를 일으켰지만 그 중에 저를 거절하는 자는 없었다.

   

   여기에 항의라도 했다간 2왕자와 직접 대련을 하며 하루 종일 괴롭힘을 당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래. 다음으로 넘어가보자고. 루시 알른이 제안한 승부에 대해서 말이야.”

   

   루시 알른은 이야기했다.

   

   자신을 끌어들이고 싶다면 자신보다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승부를 받아들여 자신을 이겨보라고.

   

   ‘아카데미 던전을 누가 먼저 공략하는 지 겨루는 거에요. 당연히 자신 있으시죠? 그쵸?’

   

   세실은 그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해서 동의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세실의 생각은 거기까지 닿지도 못했다.

   

   그가 동의한 이유는 루시 알른이 가한 모욕 때문에 머리에 열이 올랐기 때문이었다.

   

   지위만 세실이 높을 뿐 실상은 세실이 루시에게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루시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을 도저히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도망치셔도 돼요. 음침 스토커 왕자님도 절 못 이겼는데 병신왕자님이 절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1왕자도 못했는데 네가 할 수 있을 리 없다.

   

   넌 패배자니까.

   

   난 패배자니까.

   

   ‘병신왕자님께서 이긴다면 부하가 되어 드릴게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꿈을 크게 가지시라고 특별히 배려해 드리는 거에요.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전 정말 착하다니까요.’

   

   아니다.

   

   나는 패배자가 아니다.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

   

   1왕자를 이길 수 있다.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

   

   나는.

   

   나는.

   

   입 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맛에 세실이 정신을 차렸다.

   

   손을 뻗어 입술 부근을 매만진 그는 피맛의 정체를 깨달았다. 잘근거리던 입술이 찢어진 것이다.

   

   검지에 칠해진 붉은 색을 엄지로 문질러 지운 그는 이내 눈을 치켜뜨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 년을 완벽하게 쓰러트릴 방법을 내놓아라. 당장.”

   

   난 반드시 루시 알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것이다.

   

   그녀를 이기는 것으로 내가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형님이 하지 못한 일을 내가 이루어 낼 것이다.

   

   그럼으로서 인정받고 말 것이다.

   

   반드시.

   

   “더러운 수라도 좋다. 이길 수만 있다면 말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

   

   아카데미의 입구가 열리기 전 마지막 주말.

   

   알새틴의 가게에 찾아간 나는 그가 준비해 온 여러 물건을 넘겨 받았다.

   

   그가 건네 준 물건들은 하나 같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품질을 지니고 있었다.

   

   카리아가 옆에 붙어있다 보니 알새틴의 능력도 같이 늘어난 걸까?

   

   알새틴에게 정보팔이치고는 나쁘지 않았다는 말을 남기고 가게 바깥으로 나온 나는 입가에 싱글거리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야. 이 정도면 생각했던 것보다 던전 공략이 수월해질 것 같네.

   

   던전의 입구가 열리자마자 던전을 공략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는데? 한 번 도전해 볼까?

   

   어차피 할배가 내게 요구한 것은 감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성적이었다.

   

   그래야 2왕자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게 아니라 내 능력에 대한 칭송이 높아질 뿐이라나?

   

   던전이 열리자마자 제패하는 정도라면 그 요구사안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겠지.

   

   뭣보다 빠르게 던전을 공략하면 할수록 허접 주신의 보상이 빠르게 들어오는 거니까 말이야.

   

   이번 보상은 내 입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물건이거든. 그게…

   

   “고용주님.”

   

   머릿속으로 이번에 허접 주신이 내어준 퀘스트를 떠올리던 나는 카리아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골목 안에서 튀어나온 그녀는 내게 따라 오라 이야기를 하고는 골목 안에 널부러져 있는 여러 사내들을 보여 주었다.

   

   “아무래도 2왕자님께서는 엄청나게 고용주님을 이기고 싶나 봐.” 

   

   그녀는 말했다.

   

   “고용주님을 포섭해야 한단 사실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저들이 날 습격하려던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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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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