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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1

    미니 사신 정원 깊숙한 곳.

    이곳은 일종의 병원처럼 변해있었다.

    세희 연구소 안뜰을 통해서 끊임없이 옮겨지는 미니 사신들과 납 인형이 되어버린 미니 사신들을 간호하는 검은 사신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엄마가 싸우는 동안 검은 사신들이 열심히 미니 사신들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모든 다친 미니 사신들을 옮기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은 사신은 미니 사신을 옮기기만 했을 뿐,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떡해!’

    검은 사신들은 서로서로 쳐다보며, 당황하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엄마랑 같이 TV를 즐겨보던 검은 사신이 손을 번쩍 들고 의지를 퍼트렸다.

    ‘붕대!’

    ‘?’

    붕대가 뭔지 모르는 검은 사신들이 많았지만, 붕대를 아는 검은 사신에게 순식간에 정보를 전달받았다.

    그리고 수많은 검은 사신들이 흩어져서 붕대를 구해온 뒤, 미니 사신들을 미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니 사신 정원 안에, 붕대로 만들어진 둥근 공들이 잔뜩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뚜방뚜방.

    시끄럽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녹색 옥인을 향해서 천천히 계속 걸어 나갔다.

    아무것도 소용없음을 깨닫고, 공포에 질리길 바라면서.

    녹색 옥인은 불길하긴 했지만 격이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떤 짓을 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어 보였다.

    “본 모습으로 돌아가라, 납 인형.”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미니 사신들을 무력화한 파장이 나를 덮쳤다.

    끼긱. 끼긱.

    피부가 다시 납으로 변하면서 마치 기름칠하지 않은 기계 소리가 내 몸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본 모습으로 돌아가라.”

    “본 모습으로 돌아가라!”

    “본 모습으로 돌아가라!!”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다가가자, 녹색 옥인은 굉장히 당황한 느낌으로 끊임없이 파장을 뿜어냈다.

    소용없어.

    나는 대량의 장작을 태워 가며, 납으로 변한 부분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리고 다시 걸어 나갔다.

    뚜방뚜방.

    내가 다가가는 만큼, 희미하게 느껴졌던 무력감과 당혹스러움이 점점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미니 사신들을 괴롭힌 만큼 절망하려면 아직 멀었어.

    순조롭게 절망을 쌓아가던 도중, 녹색 옥인이 공격방식을 갑자기 바꿨다.

    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구체.

    그리고 그 안에 모여드는 막대한 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 구체의 목적은 금세 깨달을 수 있겠지.

    광범위한 파괴. 

    주변의 인간을 모두 죽이기 위한 장치였다.

    물리적인 폭발이라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꽤 많았다.

    공간을 격리해서 폭발을 차단할 수도 있었고, 미니 사신 정원을 불러내서 폭발을 역류시킬 수도 있었다.

    그리고 웬만하면 쓰기 싫은 방법도 있었다.

    그 방법은 능력을 모두 무효화하는 헤일로를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폭발이 생각보다 빨리 준비되어서 당황한 나는 가장 확실하면서 가장 쓰기 싫은 방법을 사용해 버렸다.

    헤일로를 뒤집어쓰자, 몇 번을 겪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 찾아들었다.

    온몸이 타오르고, 산산이 부스러질 것 같은 고통.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폭발 대신 강렬한 빛을 뿜어낸 옥 구체가 덩그러니 허공에 남아버렸다.

    그리고 주변을 완전히 지워버릴 폭발은 하얀 불꽃이 되어 서울 전역에 귀여운 눈송이처럼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물리력이 없어서 만질 수도 없고, 쌓이지도 않는 하얀 눈이었다.

    어둑어둑해진 밤하늘을 하늘에서 하늘하늘 떨어지는 불꽃이 은은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어… 어째서?”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불꽃을 보고 잔뜩 당황한 녹색 옥인.

    나는 그 녹색 옥인을 헤일로의 고통만큼 노려보았다.

    ***

    내 표정을 본 녹색 옥인은 조금 겁에 질린 것처럼 살짝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이내 공포를 떨쳐내려는 것처럼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녹색 옥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옥구슬을 벽으로 바꾼 뒤, 수많은 광선을 쏘아 보내거나.

    녹색 옥을 뭉쳐서, 망치처럼 내리치거나.

    온갖 종류의 수많은 공격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그것을 계속 무표정한 얼굴로 무시하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능력을 막는 헤일로는 발생한 능력을 지우는 게 아니라, 능력 사용을 막는 것 아니었나?

    저 녹색 옥인은 헤일로 영역 안에서 능력을 사용할 수가 있네. 

    대신 발생한 능력이 하얀 불꽃으로 변해서 무효화 되고 있어.

    뭐가 다른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녹색 옥인의 공격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좁은 범위의 파괴를 노리던 광선이 점점 그 범위를 늘려가더니, 지금은 연구소 일대를 전부 붕괴시키는 광선포를 마구 날려 보내고 있었다.

    아직 내 헤일로를 이겨낸 공격은 없었지만, 나는 슬슬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헤일로가 내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예상 밖의 사태가 발생할지도 몰라.

    거대 해파리처럼 격이 높은 공격은 아니었지만, 파괴 범위만큼은 굉장히 넓었으니까.

    인간은 격이 아주 낮은 공격에도 죽어버려.

    여기는 미국같이 먼 곳이 아니라, 예린이 근처라서 위험해.

    더 이상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나는 손을 뻗어서 그대로 움켜쥐었다.

    뀩.

    그러자 단단한 옥이 부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녹색 옥인의 일부가 공간 너머로 사라졌다.

    와그작. 와그작.

    내가 주먹을 잼잼 움켜쥘 때마다, 녹색 옥이 부스러지며 사라졌다.

    “안 돼! 안 돼, 안 돼!”

    마치 사라진 옥을 찾는 것처럼 자신의 사라진 상처를 더듬는 녹색 옥인.

    순식간에 재생하길래, 별 가치가 없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소중한 거였나 보구나?

    나는 입가를 씩 끌어올리고 웃으며, 끊임없이 공간을 쥐어뜯었다.

    녹색 옥인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거대한 녹색 벽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그렇게 녹색 벽이 모두 사라지자, 녹색 옥인은 절망한 것처럼 무릎을 꿇고 엎어져 버렸다.

    “….”

    그리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언어가 성립되지 않는 소리로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어떤 존재가 홀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계속 이 근처에 있었던 것처럼 위화감 없이.

    [부족하다.]

    [턱없이 부족하다.]

    불길하고 흉측한 무언가였다.

    눈앞에 있는데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고.

    눈앞에 있는데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짓이겨진 살점과 불길한 붉은 옥으로 이루어진 인간 형상의 괴물.

    너무나 불길해 보여서,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사용했다.

    <■ ■ ■ ■ ■>

    하지만 내 눈에는 그것의 파괴 조건이 제대로 비치지 않았다.

    ***

    파괴 조건이 보이지 않는다니.

    이제까지 파괴 조건은 수수께끼 같은 면이 있기는 했어도, 방법은 제대로 알려주고 있었다.

    강철탑의 <Nostalgia>나 아귀의 <시작의 오브젝트가 만든 돌.>처럼 말이다.

    파괴 조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파괴 조건이 변한 강철탑.

    파괴 조건이 아예 보이지 않는 나.

    마지막으로 파괴 조건이 ■로 가려진 저 불길한 존재.

    파괴 조건이 보이지 않는 오브젝트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저런 고민하면서 대치를 하던 도중,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으적으적.

    단단한 무언가를 마구 물어뜯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료로 보였던 괴이하고 붉은 존재가 녹색 옥인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차근차근.

    “어… 어째서?”

    녹색 옥인은 머리를 붙잡힌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용서해 주십시오! 신이시여!”

    녹색 옥인은 처음에는 마구 발버둥을 치고 있었지만.

    머리 부분을 먹히면 먹힐수록 그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마지막에는 미동도 하지 않고 축 늘어져 버렸다.

    “살… 살려줘.”

    마지막 순간에는 나를 향해 손을 뻗으며 살려달라고 작게 말했다.

    마치 뇌를 파먹힌 괴인들처럼 머리 윗부분만을 전부 먹힌 녹색 옥인은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변해버렸다.

    뭔가 근원적인 것을 먹힌 것인지, 재생도 되지 않고 옥으로 만든 조각상처럼 널브러져 버렸다.

    [부족하다.]

    [턱없이 부족하다.]

    녹색 옥인의 뇌를 먹어 치운 적색 괴인은 나를 바라보며 부족하다고 중얼거렸다.

    [네 녀석의 피와 살이 필요하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좀비처럼 비틀거리면서.

    손을 앞으로 뻗고 천천히.

    흐릿한 존재감을 가지고 천천히 나아가던 중,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부족하다.]

    그리고 내 바로 뒤에서 나타나 중얼거렸다.

    내 머리를 붙잡는 것이 느껴지자마자, 나는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놀랐다.

    “!”

    정말 너무 깜짝 놀라서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도 잊고,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를 뻔한 순간이었다.

    물론 폐가 없는 내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고, 깜짝 놀라서 사용한 공간 장악이 주변을 마구 찢어발겼다.

    하지만 공간이 찢어지는 순간에도 그 괴물은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아예 홀로그램이나 환각, 허상처럼 공간이 부서지는 그곳에서도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깜짝 놀란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온갖 기술들은 전부 효과가 없었지만, 딱 하나만이 영향을 미쳤다.

    미니 사신 정원 소환!

    정원이 내 발밑에서 펼쳐지자, 괴물은 공간 밖으로 주르륵 밀려나 버렸다.

    후, 깜짝 놀랐네.

    거리가 좀 벌어지자, 놀라서 마구 요동치던 장작이 조금 얌전해졌다.

    나는 심장에 손을 얹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파괴할 수 없는 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괴물은 마치 미니 사신 정원 안에 있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게다가 괴물은 마치 미니 사신 정원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미니 사신 정원 서쪽에서 걸어 들어가면, 어느새 동쪽에서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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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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