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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1

    <231 – 쉿>

     

    ‘이런 가혹한 스케쥴을 5일 연속으로 가져가면 아카디아 님이라도 지칠 수밖에 없잖아요…!’

     

    당한다. 아무리 아카디아가 뛰어난 실력자라도 이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아카디아를 말리거나, 그럴 수 없다면 하다못해 지켜주기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분이 아니다.

    재단장학생 자쿠의 신뢰를 사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위기에 빠뜨릴 각오를 한 아카디아가 자신이 말린다고 순순히 참가종목을 줄일 리가 없다.

     

    “프릴, 카닐리언. 염치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부탁이 있어… 아카디아 님이 무리하다가 다치지 않도록 같은 종목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만 혼자서는 너무 많아. 도와줄 수 있을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바보소가.”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잊은 건 아니죠? 저희도 아카디아 님을 따르는 추종자라는 사실을.”

     

    프릴과 카닐리언은 티토소가와 같은 마음이었다.

     

    “공녀님이 가시는 곳이 저희가 따라가야 할 곳이죠. 이 정도로 뜻을 굳게 세우셨다면 의도가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 추종자의 사명 아니겠나요?”

    “게다가 공녀님과 함께라면 추종자인 우리에게 2등 자리를 주실지도 모르고.”

     

    티토소가는 느꼈다.

    공녀님은 자신에게 정말정말 좋은 친구들을 소개시켜주셨다고.

     

     

    * *

     

     

    지젤의 개인실.

    수많은 서류더미가 산처럼 쌓인 그의 방에서 오크노디는 휴식용 침대에 엎어져 발을 까딱거리며 정보지를 들춰보았다.

     

    “흐응. 이상한 회차도 다 있네.”

    “뭔가 신경 쓰이는 구석이라도 있으십니까?”

    “아카디아가 너무 많은 종목에 출전해서요!”

     

    어디서 정보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왔는지 부른 적도 없는데 제 발로 나타난 오크노디.

    이용료만 무려 50포인트에 달하는 정보지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제 것처럼 들춰보는 오크노디의 행동에도 지젤은 그녀를 타박하지 않았다.

    자신도 오크노디가 참여하려는 종목을 듣고 그 정보를 판매해도 되겠냐고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매출의 20% 이상은 학년수석 오크노디가 참여하는 종목을 알고 싶은 이들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오크노디에게는 50포인트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포인트를 줘야 할 마당이었다.

     

    “정 걱정이 되면 같은 종목에 출전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확실히 걱정이 되기는 한다.

    대운동회에는 이상한 기믹이 있어서 출전종목을 하나 늘릴 때마다 부상도가 점점 높아진다.

    플레이어 본인은 물론이고 동료들도 함부로 아무 엔트리나 좋아 보인다고 막 집어넣었다간 심심하면 부상으로 몸져눕기 십상.

    개인전에서 피를 보면 반 대항전과 학년대항전에서 힘을 쓰지 못해 전체적으로는 더 큰 손실로 이어지게 된다.

    심지어 0.1% 억까에 당첨되면 치명상을 입고 이후 아카데미 활동에 중장기적인 페널티가 생긴다.

    방지방법은 간단했다.

    능력치와 요구기능을 아주아주 높게 찍고 <자동결과보기>를 클릭하면 알아서 1등이 찍혀 나온다.

    그만큼 체력과 정신력이 크게 떨어지지만 그거야 준비해둔 포션으로 때우면 그만이지.

    대신 여기는 현실.

    현실에는 <인생자동결과보기> 버튼은 없다.

    이럴 땐 조금 더 귀찮은 방법이 요구된다.

     

    “그런 것보다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재미…?”

    “저 먼저 가볼게요!”

     

    지젤의 표정이 어쩐지 심각해졌지만 저 아저씨는 원래 인생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사는 분이시니 그닥 신경 쓰지 않았다.

     

     

    * *

     

     

    지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런 것보다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재미…?”

    “저 먼저 가볼게요!”

     

    아카디아의 일이다.

    이사벨만큼이나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

    무릎에 상처가 났다는 소리만 들어도 힝힝 거리며 달려가서 호호 바람을 불어야 할 아이가 아카디아의 스케쥴을 ‘그런 것’ 취급했다.

    심지어 그보다 재밌는 생각을 우선시한다며 대책마련은 내팽개치고 사라졌다.

    달라졌다.

    아카디아를 향한 취급이.

    그녀를 향한 의존도가.

     

    “오크노디… 인간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잘못된 길을 걸으며 순수함을 잃으면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유가 사라진단 말입니다.”

     

    미처 그녀에게는 해주지 못했던 말을 중얼거리며 지젤은 씁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 *

     

     

    대운동회의 날이 다가왔다.

     

    자, 오늘부터 대운동회를 시작하겠다.

    한입거리들아. 포인트를 쫓아 헤매라!

     

    드래곤교장의 외침과 함께 하늘 높이 터지는 형형색색의 마법폭죽.

    학생들은 저마다 미리 점찍어둔 종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나는 모두가 달려가는 방향과 정반대의 사람이 없는 교관동으로 달려갔다.

     

    “모자야. 아무도 없는 거 맞지?”

    “…확인했어. 여기 남은 교관들은 아무도 없어. 기껏해야 청소메이드가 전부야.”

    “좋아. 그럼 미리 구해둔 지도대로 침투해!”

     

    대운동회가 다가옴을 고지한 월요일부터 이번 월요일이 되기까지 지난 일주일 간, 나는 오늘이 찾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플레이어 본인과 동료 NPC들의 부상과 억까가 문제라면 부상과 억까방지책을 찾으면 된다!

    실로 간단한 결론에서부터 시작된 계획은 우선 ‘실수’로 인한 부상을 제외한 ‘견제’로 인해 벌어지는 부상과 억까를 구분 지었다.

     

    “실수는 어쩔 수 없어도 견제는 막아야지. 포인트야 어차피 예상보다 엄청나게 벌었고. 운동회 초반에 좀 쉰다고 큰 손실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대답하는 벽>에 빙의했던 원주인인 2대모자씨는 애초에 <영체화>나 <텔레파시>능력을 지니고 있다.

    벽에 집어넣은 1대모자씨가 아무 말도 못하는 이유가 이 텔레파시가 없기 때문이며, 자유자재로 기숙사 벽을 따라 이어진 시설을 염탐하지 못하는 이유 또한 영체화가 없기 때문이다.

    괜히 벽에 빙의된 플레이어들이 사실상 게임오버 취급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벽 자체의 원래 능력으로 탈출각을 재는 것이 아니라 벽에 빙의당한 사람의 능력으로 탈출각을 재는 것이기에 빙의당한 시점에서 능력이 부족하면 꼼짝없이 그대로 게임오버를 당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만한 능력이 있다면 보통은 벽에 빙의를 당해서 다음 신입생을 꼬드겨 몸을 빼앗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할 리가 없다.

     

    ‘벽이야 아무랬건 2대모자씨도 영체화로 염탐이 가능하단 말이지!’

     

    모자에서 잠시 빠져나온 2대모자씨의 영혼이 교관동 내부를 탐색하고 돌아왔다.

     

    “이렇게 생겼어.”

     

    모자에 달린 손으로 바닥에 대고 지도를 그려준 덕분에 매 회차마다 난수생성으로 만들어지는 교관동의 내부구조를 완벽히 파악할 수 있었다.

    목적지의 위치만큼은 매번 고정이었기에 안에서 헤매는 일 없이 침투루트를 찾아냈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다.

     

    “여기 너머로는 엿볼 수가 없었어.”

    “괜찮아요. 그 안에 뭐가 있는지는 제가 알거든요!”

    “뭘 훔치려고?”

    “교관들이 학생들한테서 압수한 물품이요!”

     

    압수물품보관실.

    통칭 압수실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숨은 맛집이다.

    평상시에는 교관들이 워낙 많이 다니는 탓에 침투난이도가 극도로 어려우며 교관들이 자리를 비울 때에도 온갖 보안장치로 인해 적발당하기 쉽다.

    침입자 감지마법에 감지라도 당했다가는 그대로 포박당하거나 기절한 채로 교관들의 손에 질질 끌려가서 지하대감옥 1층에서 최소 며칠은 감금당하게 된다.

     

    ‘흥. 이쪽은 230cm 시절에도 당당하게 압수실 공략에 성공했던 몸이라고.’

     

    [레이저함정 트랩을 유연한 몸놀림으로 돌파했습니다.]

    [균형 경험치+1]

     

    [서바이벌시트를 사용해 체온을 감추어 체온감지트랩을 돌파했습니다.]

    [사고력 경험치+1]

     

    [우당탕탕 바위트랩과 발목포박트랩을 천장을 걸어서 돌파했습니다.]

    [마나제어술 경험치+1]

     

    [가고일석상의 초점을 피해 로비를 돌파했습니다.]

    [감각집중 경험치+1]

    [잠입 경험치+1]

     

    물론 예전에도 이렇게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때는 트랩파손감지기를 주먹으로 쥐어뜯어서 부수고, 레이저함정 트랩도 부수고, 체온감지트랩도 발목포박트랩도 부수고, 바위를 잡아다가 가고일한테 던졌지.

    쑥대밭이 된 교관동을 보고 노스랜드의 마교들이 습격이라도 한줄 알고 메이드들이 달아나는 사이에 거대한 덩치로 압수실의 물품을 자루에 마구 쓸어담았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쳇. 지금은 키가 너무 작아졌어.’

     

    예전처럼 화끈하게 힘으로 밀어붙이지는 못해도 작은 키와 민첩한 몸놀림, 고인물 지식과 2대모자씨의 정보를 적극 조합해서 공략하니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소음페널티로 메이드들에게 들켜서 도망친 메이드들이 교관을 불러올 걱정도 없지.

    느긋하게 챙길 물건 다 챙길 수 있겠네!

     

    “…오크노디. 저기 봐.”

     

    그런데 살금살금 발뒤꿈치를 들어 올린 고양이걸음으로 지나다니는 메이드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가고일까지 다 피하고 압수실에 딱 들어가려는데 맞은편의 교관실에서 메이드와 눈을 딱 마주쳤다.

     

    “!?”

    “!?”

     

    서로가 서로를 보고 당황한 상황.

    하지만 자세히 보니 이 메이드, 뭔가 달랐다.

    입에는 손전등을 물고 있고.

    손으로는 메이드가 건드릴 일이 없는 교관들의 비밀자료를 뒤적이고 있었다.

    아하.

    9.9% 확률로 걸리는 농땡이메이드보다 희소한 확률로 걸리는 0.1% 확률의 스파이메이드구나!

     

    쉿!

     

    손가락을 들어 입에 대고 모르는 체 하자고 신호를 보내니 메이드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게 한쪽에서는 압수실 물품을 털고 맞은편에서는 교관실 서류를 터는 동업자들의 기묘한 교관동 털기가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도둑이 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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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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