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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2

       

       

       구절엽을 따라 숲을 거닐길 얼마 뒤.

       

       비연섬은 숲의 중심의 다다를 수 있었다.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던 입구와는 달리.

       

       중간쯤으로 다다르자, 드디어 인기척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짙다.’

       

       이에 대한 감상은 짤막했다.

       

       하나 가볍지는 않았다.

       

       주변을 이르는 내기가 하나같이 농도가 깊고 짙었으니.

       전선 입구 쪽에 있는 맹의 쉼터에서는 느끼지 못한 수준이었다.

       

       구절엽의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러자 저 멀리서 누군가 보초를 서고 있는 게 보인다.

       잘 보이진 않으나 구절엽과 같은 무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같은 세가의 사람인 모양.

       

       “멈춰라.”

       

       하지만 어째서인지 보초를 서고 있는 이는 구절엽에게 칼끝을 겨누었다.

       

       거기에 구절엽도 당연하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전투 의사가 없음을 표한다.

       

       이에 덩달아 비연섬도 따라서 손을 들었다.

       이를 확인한 무인은 구절엽에게 한 걸음 걸어오는데.

       

       뚜벅.

       

       “…!”

       

       순간 보초를 서던 무인에게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기운에 비연섬이 흠칫 놀라야 했다.

       

       생각보다 훨씬 진득한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비연섬은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무인은 벽을 넘은 이라는 것을 말이다.

       

       벽을 넘었다는 말은 곧, 절정급 무인이라는 얘기.

       

       ‘절정의 무인이라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경우란 말인가.

       

       절정급 무인이 보초나 서고 있다고?

       

       느끼기만 해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투기에.

       비연섬은 마른침만 꿀꺽꿀꺽 삼키고 있어야 했다.

       

       지독하리만큼 날카로운 내기는, 비연섬의 몸을 스치며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이렇게 섬세한 조절이라니….’

       

       말도 안 되는 내기 응용력이었다.

       

       검을 뽑아 든 무인은 구절엽과 비연섬을 힐끔 살핀다.마치 위험분자인가 확인하는 모양.

       

       다만 의외인 것은, 만일 구절엽이 이들의 소속이 맞다면.

       이토록 경계하며 확인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하물며 복면도 아니고 얼굴도 다 드러낸 상태인데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확인하던 중.

       

       “…나비.”

       

       살 떨리는 침묵 속에서 구절엽이 나지막하게 단어를 내뱉었다.

       참으로 뜬금없고 생뚱맞은 단어였지만.

       

       비연섬은 저 단어를 왜 구절엽이 뱉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암구호인가.’

       

       아무래도 암구호인 모양이다.

       

       더불어 이에 대해선 이미 저쪽 무인이 시작을 던졌겠지.

       

       ‘나는 듣지 못했지만….’

       

       그렇다면 전음인가.

       아마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흠….”

       

       구절엽이 뱉은 말이 맞았는지.

       무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투기를 줄였다.

       

       주변을 가득 압박하던 강렬한 기운이 사라지니.

       

       갑갑하던 속이 풀리며 그제야 겨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픽.

       

       그게 기점이었을까.

       

       무인이 구절엽을 보며 굳어있던 표정을 풀더니 웃음을 머금는다.

       

       그 웃음을 마주한 구절엽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다.

       

       “…웃지 마십시오.”

       “하하! 어찌 안 웃을 수 있겠습니까.”

       “끙….”

       “이번 달만 들어서 벌써 세 명입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세 명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혹, 열협검이 구해준 이들의 숫자인가?

       그런 의문이 들 때 무인은 구절엽에게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인의 물음에 구절엽이 한숨을 푹 내쉰다.

       

       세상에 있는 모든 근심과 걱정이 그 한숨 안에 담겨있었다.

       

       “…안 괜찮습니다.”

       “그럼에도 공자께서는 항상 데리고 오시네요.”

       “…”

       

       무인의 말에 구절엽이 힐끔 비연섬을 쳐다본다.

       

       “…그냥 내버려 두고 올 수는 없으니까요.”

       

       구절엽이 떨떠름하게 뱉은 말에 무인이 다시 한번 웃음을 머금는다.

       

       그걸 바라본 비연섬은 생각했다.

       

       어쩐지, 비연섬이 봐왔던 절정의 무인들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었다.

       그들 특유의 경지에 올랐다는 거만함과 오만함도 없고.

       

       겸손함과 선의가 가득해 보였으니.

       

       ‘아까 투기를 끌어 올렸을 때와는 너무나 다르구나.’

       

       어찌 저렇게 다른 사람처럼 보일 수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비연섬이 놀라움을 느끼는 사이.

       

       구절엽은 어째서인지 살짝 눈치 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묻는다.

       

       “…공자님께선 지금 뭐 하고 계시는지요.”

       “아! 아마도 사냥을 나가셨을 겁니다. 오전에 대주님께 보고를 올리고 가시는 걸 봤거든요.”

       

       무인의 말에 구절엽의 표정에 활기가 살짝 돋는다.

       

       “후…. 그나마 다행이네요.”

       

       와중에 비연섬은 구절엽이 뒤에 아주 조용히 뱉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땀 좀 빼고 오는 거면 좀 덜 패겠지.

       

       고개까지 끄덕이며 하는 말이 상당히 살벌했다.

       

       대체 아까부터 왜 저렇게 벌벌 떠는 걸까.

       비연섬은 너무나 궁금했다.

       

       슬쩍 물어볼까 싶은 찰나.

       

       “소협.”

       

       보초를 서던 무인이 비연섬에게 말을 걸었다.

       이에 비연섬은 자신도 모르게 바짝 긴장하는 몸을 느껴야 했다.

       

       아무래도 상대는 절정급 무인이었으니까.

       하나, 비연섬의 긴장과는 다르게 들려온 목소리는 자못 상냥했다.

       

       “실례가 아니라면, 성함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아! 저, 저는 비선문의 비연섬이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비선문, 아마 저 무인은 들어본 적 없는 곳일 것이다.

       시골 산골짜기에 있는 소문파를 어찌 알겠는가.

       

       묘하게 돋아나는 자격지심이 비연섬의 속에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이를 애써 죽여야 했다.

       

       무인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싱긋 웃으며 비연섬에게 말한다.

       

       “저는 무연이라고 합니다.”

       

       비연섬은 저 말투 속에 돋아있는 자신감과 알 수 없는 협의심이 부러웠다.

       

       “잘 부탁드립니다. 비 소협.”

       “…예, 예! 잘 부탁드립니다.”

       

       무연이 먼저 손을 뻗자.

       어찌할 바를 모르던 비연섬이 조심스럽게 손을 맞잡는다.

       

       잡는 순간까지 두 손으로 잡아야 하나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으나.

       일단 한 손으로 잡았다.

       

       이를 지켜보던 구절엽이 무연에게 묻는다.

       

       “교대까지 얼마나 남으셨습니까?”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혹, 볼일이 있으신지요?”

       “아, 별건 아니고…. 이따 대련을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 해서요.”

       

       구절엽의 말에 무연이 씩 웃는다.

       

       “저는 괜찮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혹시 같이 좀 변명 해주시면….”

       

       무연은 구절엽의 말에 웃음을 잃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긍정의 의미인가? 

       

       구절엽은 순간 믿고 있었다는 듯 무연에게 표정으로 찬사를 보내지만.

       

       “그건 안됩니다.”

       “…”

       

       서글서글한 얼굴로 생각보다 훨씬 단호한 답이었다.

       무연 또한 제 몸은 소중했으니 말이다.

       

       

       

       

       

       ******************

       

       

       

       

       

       숲 안쪽에 차려진 쉼터는 예상보다 훨씬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전선, 그것도 중심지라 불리는 숲에서 이 정도로 꾸릴 수 있나 싶을 만큼 말이다.

       

       ‘사뭇 다르구나.’

       

       맹과는 어쩐지 차별화된 분위기도 이에 한몫하고 있었다.

       

       딱딱하고 차갑던.

       그러면서 서로를 못 미더워하던 맹의 이들과 달리.

       

       이곳은 조금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굳건하다.

       

       어째서 이런 차이를 느끼는가에 대해선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비연섬이 여기저기 살피며 걷는 사이.

       앞서 걷던 구절엽이 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에는 주변에 보이는 곳 중 가장 큰 막사가 보였는데.

       아무래도 이곳이 이 주변을 관리하는 이가 머무는 곳인 모양이다.

       

       조심스럽게 들어가지만, 막사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어찌하나 싶을 즈음, 구절엽이 말한다.

       

       “…대주께서 안 계시는군요. 우선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계십시오.”

       “예?”

       

       구절엽의 말에 비연섬이 상당히 당황했다.

       

       아무리 구절엽이 자신을 구했다지만, 신분이라곤 무림맹 소속이라는 것 말고는 모르는 자신을 이렇게 혼자 두고 간다는 건 이상한 일이니 말이다.

       

       ‘내가 뭘 할 줄 알고.’

       

       이런 곳에 혼자 덜렁 둔단 말인가.

       

       하지만, 비연섬의 고민은 신경도 쓰지 않는지.

       구절엽은 옆에 있는 의자를 가져와 비연섬에게 건네주었다.

       

       “앉아 계십시오. 금방…은 아닌가? 아무튼, 돌아오겠습니다.”

       “예…? 차라리 같이…!”

       “아니요.”

       

       너무도 단호한 거절이었다.

       

       “…외인한테 보여주기 좀 그런 상황이라서 말입니다.”

       “아…. 예.”

       

       저런 말이라면 할 말이 없었다.

       비연섬은 도움받는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잠시만 기다리고 계십시오.”

       

       말을 끝낸 구절엽이 막사 밖으로 나가고.

       

       홀로 남은 비연섬은 목 끝까지 차오르는 긴장감을 유지한 채 구절엽이 건네준 의자에 앉아 눈동자만 굴렸다.

       

       

       

       

       

       ******************

       

       

       

       

       

       구절엽은 비연섬을 막사에 던져놓고 숲의 뒤편으로 걸어갔다. 

       찾고자 하는 이는 이 넓은 숲 어딘가에 있을 테지만. 

       

       그를 찾는 데에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파삭.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쉼 없이 울던 풀벌레 소리가 사라지고.

       

       은근히 느껴지던 마물의 존재감이 종적을 감추었다.

       그 틈에서 오로지.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열기 뿐이다.

       

       ‘뜨겁군….’

       

       걸음을 조금 옮기자마자 느껴지는 지독한 열기는 분명 ‘그’ 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 일터.

       

       마찬가지로 비슷한 열기를 품고 있는 구절엽 조차 숨이 막힐 것 같은 뜨거움이었다.

       

       이에 구절엽은 어쩔 수 없이 내기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열기는 짙어진다.

       

       생생한 푸른색으로 가면을 쓰고 있던 숲 또한 점차 깊숙이 들어갈수록 정체를 드러낸다.

       

       스으으-!

       

       “흡….”

       

       훅하고 들이닥치는 탁기에 구절엽은 내기를 더 끌어올렸다.

       

       이곳은 이런 괴팍한 기운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면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내기를 끌어올리며 언젠가 그가 자신에게 해준 말을 떠올린다.

       

       -죽기 싫으면, 이 숲 자체도 마물이라 생각해라.

       

       라고 했던 말을 말이다.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만큼 이 숲이 위험하다는 말이겠지.

       

       정작 말을 뱉은 본인은 제 집처럼 이 숲을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말이다.

       

       “…후.”

       

       구절엽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이 노을이 진듯 얕게 붉어진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제 고작 정오를 넘긴 시간이었으니.

       해가 지기엔 너무나 일렀다.

       

       하면, 저것은 무엇일까.

       

       “볼 때마다 이해가 안 가는 수준이야.”

       

       저건 노을이 아니었다.

       

       노을이라면 저곳만 하늘이 붉어진 것도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저건 오로지 열기와 화기로 이루어진 공간이라는 증거였다.

       

       수준이 가늠이 안 가는 말도 안 되는 내기량과. 

       무공으로 만들어낸 불꽃이 하늘을 특유의 색으로 적시고 주변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

       

       그걸 보면서 구절엽은 쓰게 웃었다.

       

       지난 일 년.

       

       전선에서 구르며 구절엽의 수준은 말도 안 되게 올라갔다.

       

       단조롭기만 하던 검로에는 자신의 뜻이 담기기 시작했고.

       자연스러워진 기운의 조절은 기다렸다는 듯 검명을 일으키는 수준까지 올랐다.

       

       남들은 이를 보고 구절엽에게 말했다.

       

       분명 재능이 있다고.

       천재가 맞다고 말이다.

       

       이 짧은 시간에 그만한 수준을 끌어올렸으니. 

       재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나.

       

       구절엽은 이에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아주 가까이에 있는 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지난 이 일 년간 가장 성장한 이는 자신이 아닌 그였으니까.

       

       더불어.

       

       자신을 가장 괴롭히고 굴려 가며 여기까지 끌어올린 이도 다름 아닌 그였다.

       

       그의 말을 거부하지도 못한 채 바닥을 구를 때는 엿 같았지만 지나 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가 있었기에 자신이 여기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을.

       

       물론 그것과 별개로.

       

       잦은 폭력과.

       비아냥이 담긴 깐족거림을 온종일 받다 보니 구절엽의 성격이 좀 변하긴 했지만 말이다.

       

       “…꿀꺽.”

       

       영역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절엽은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가서 좋은 꼴을 안 당할 거란 것쯤은 지난 시간의 경험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냥 돌아갈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 돌아가자.

       

       일이야 돌아가서 수습하면 되지.

       이런 잦을 일을 그가 알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고개를 단호히 끄덕인 구절엽은, 애써 옮기던 걸음을 돌려 다시금 막사가 있는 방향으로 틀었다.

       

       오는 걸음보다 가는 걸음은 두 배쯤 더 빨랐다.

       

       “…냅다 돌아가서 적당히 맹에 서찰을 보내고 끝내면….”

       “어디 가냐?”

       

       멈칫.

       

       재빠른 걸음으로 벗어나려던 구절엽이.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몸을 흠칫 떨었다.

       

       “어디 가냐고.”

       

       두 번 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구절엽의 고개가 고장이라도 난 듯 끼기긱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분명 아직 가기에 거리가 있었거늘.

       대체 어느 틈에 여기까지 온 거지?

       애써 돌린 시선 끝에는.

       

       여전히 사나운 눈매에.

       

       몸의 열기가 식지 않아 한껏 붉어진 눈으로 구절엽을 바라보는.

       

       마귀, 아니 구양천이 서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_ _ )

    한 편 더 올라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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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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