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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2

       “금안족 학생이라니, 보기 드물겠네요.”

       “어찌나 똑똑하고 착하던지. 그렇게 순수한 애가 마수일 리가 없어요.”

       

       세실은 싱긋 웃으며 팔짱을 꼈다. 초록색으로 변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평소 세실의 눈은 오팔이나 투어멀린처럼 여러 색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가끔은 단색으로 빛날 때가 있다. 아마 감정의 영향을 받는 게 아닐까, 하고 에테르는 추측했다.

       

       “그 아이는 엄청 똑똑해요.”

       “금안족이 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직접 보시면 혹하실 거예요.”

       

       세실은 침이 튀길 정도로 그 소녀를 칭찬했다. 그녀의 눈이 더욱더 싱그럽게 변했다.

       

       지금은 흥분하고 있는 건가?

       

       에테르는 내심 큭큭댔다. 자신도 흥분하면 눈동자 색이 원래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기술자가 분명히 이 점을 주의하라고 했지.

       

       조금 전 당황했던 것을 추스르고는 세실의 이어지는 말을 경청했다.

       

       “전 말이죠, 교수님 나라에 있는 하스펠트 공작하고 비슷한 사람이에요. 능력 뛰어난 아이를 무척이나 좋아한답니다. 거기에 인성도 좋아봐요. 후학으로 기르고 싶은 욕심이 안 생기겠어요?”

       

       뭐지. 대학원생으로 만들어도 좋다는 소리인 건가.

       

       “아마 그 아이도 교수님의 반에 들어가게 될 거예요. 그때 되면 잘 부탁드려요.”

       “…명심하겠습니다. 혹시 그 친구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방금 한 질문에 세실은 크게 기뻐하며 학생 이름을 알려주었다.

       

       더불어 그 아이에 관한 정보를 몇 가지 말해주기 시작했다.

       

       

       **

       

       

       ‘증기의 비’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에테르의 충고를 들은 로테는 셔틀버스를 타고 일리야드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날은 하늘이 온종일 어두웠다. 대낮인데도 햇볕 든 적이 없었다. 로테는 손목시계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여러분, 곧 스콜이 내릴 것 같습니다.”

       

       버스를 몰던 기사가 말했다. 그 말은 그대로 적중했다.

       

       조만간 거센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차는 진흙탕에 빠졌고, 꺾인 나무가 도로를 앞뒤로 가로막았다.

       

       “아무래도 비가 그칠 때까지 머무를 곳을 찾아야겠습니다.”

       

       한 승객의 제안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비를 하나씩 걸치고는 쉴 장소를 찾아보았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몸이 휘청거렸다.

       

       다행히도 수도 근교는 도보가 잘 닦여진 곳이 많았다. 얼마 안 가서 로테 일행은 해안만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컨테이너로 지은 집이 수십 채나 줄지어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이 사는 곳 같습니다.”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살다니…. 다들 폭풍에 휩쓸려서 죽고 싶은 건가?”

       “그래도 날아가는 집 하나 없잖아요. 무언가 조치를 해 두었겠죠.”

       “정찰 삼아 갔다 올 분 계십니까?”

       

       마지막 말에 모두가 머뭇거렸다.

       

       누구도 컨테이너에 가려고 하질 않았다. 푹 젖은 모래사장을 단화 하나로 건너기에는 리스크가 컸다.

       

       “제가 가 볼게요.”

       

       손을 든 건 로테 하나뿐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어차피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귀족인 자신이 하리라.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로테는 거절하고 발을 내디뎠다. 땅이 푹푹 꺼졌지만 악착같이 앞으로 나아갔다.

       

       로테는 손에 불씨를 피워서 횃불 대신 사용했다. 얼마간 걷자 가장 가까운 컨테이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똑똑.

       

       “계세요?”

       

       그러자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조만간 판초우의를 뒤집어쓴 소녀가 문을 열고는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

       

       연못가처럼 잔잔하고 평탄한 목소리였다. 동시에 어디선가 들어 본 억양이기도 했다.

       

       “실례합니다. 비 때문에 쉴 곳을 찾고 있어서요.”

       

       소녀는 머뭇거리는 기색 없이 바로 되물었다.

       

       “당신 혼자야?”

       “아뇨, 저 말고도 스무 명 정도…….”

       “전부 들어오라고 해.”

       

       로테의 안색이 대번에 밝아졌다.

       

       로테는 사람들을 불러 예의 컨테이너로 데려왔다. 기사를 포함한 모두가 로테와 소녀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설마 저기서 차가 빠질 줄이야…….”

       

       기사가 한탄하고 있자 소녀가 대꾸했다.

       

       “우기라서 그래. 이 시기엔 진창으로 교통이 마비되는 일이 흔하니까.”

       “아무튼 고마워요. 저, 아가씨 이름이…?”

       “나?”

       

       소녀는 슬며시 웃으며 뒤집어쓴 모자를 벗었다.

       

       다음 순간.

       

       “와….”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로테보다도 짙은 붉은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미소녀였다. 피부는 상투적인 비유가 으레 그렇듯이, 백옥과도 같았다.

       

       그리고 눈.

       

       “아가씨, 금안족이었군.”

       

       등대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는 노란색 눈동자가, 그녀가 미인일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레니냐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소녀는 로테를 바라보며 슬며시 웃었다.

       

       에테르, 아카샤에 이어 그녀가 만난 세 번째 금안족이었다. 다만 귀가 엘프처럼 기다랗다는 것 정도가 나머지 둘과의 차이점이었다.

       

       로테가 넋 놓고 레니냐를 바라보던 사이, 그녀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어. 하나 먹을래?”

       

       로테는 얼떨결에 무언가를 받았다. 하얗게 빛나는 별사탕이었다. 레니냐는 로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잠깐, 이거 독약 같은 거 아니야?”

       

       로테가 멀뚱거리며 손바닥에 놓인 별 모양 사탕을 바라보던 중. 몇몇 사람이 그리 수군거렸다.

       

       “뭐?”

       “아니, 갑자기 호의를 보이는 게 이상하잖아. 아무런 의심 없이 사람을 들여놓고 이런 걸 먹으라고? 수상하지 않아?”

       “그, 그런가?”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별사탕을 입에 털어넣으려고 했던 사람들도 그 말에 멈칫했다.

       

       “뭐야, 기껏 나누어 주었더니. 그럴 거면 먹지 마.”

       

       그녀의 표정에서 불퉁한 기운이 어렸다. 곧 레니냐는 병에서 별사탕을 하나 꺼내 입에 자신의 털어 넣었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 건데.”

       “…….”

       

       사람들은 여전히 의심의 싹을 거두지 못했다.

       

       그때였다. 다른 쪽에서 ‘푸흣’ 하고 웃는 소리가 났다.

       

       로테였다.

       

       “신기한 분이네요. 내가 아는 친구랑 하는 말이 비슷해요.”

       

       이 레니냐라는 친구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미 금안족 친구가 한 명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로테는 의심 없이 사탕을 입으로 털어 넣었다. 역시, 달았다. 그리고 상큼하게 톡톡 튀는 맛이다. 민트향이라도 첨가한 모양이다.

       

       독이나 수면제 따윈 들어있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나도 몸에 별다른 이상징후는 없었다.

       

       “맛있지?”

       “맛있어요.”

       “말 놓아도 돼. 나랑 나이도 비슷한 것 같은데.”

       “응, 맛있어.”

       

       로테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니냐가 귀를 쫑긋거렸다.

       

       이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 날.

       

       “우리 같은 반이네?”

       “그러게.”

       

       로테가 배정받은 반이 레니냐가 있는 반이었다.

       

       사실 레니냐는 일리야드 아카데미의 재학생이었던 것이다.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둘이 일면식이 있었으므로 친해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두 사람은 컨테이너에서의 인연으로 인해 금세 사이가 가까워졌다.

       

       그렇게 함께 지내면서 로테가 레니냐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레니냐가 초면인 사람에게 자꾸만 무언가를 나누려 한다는 것이다.

       

       “먹을래?”

       

       레니냐는 교환학생들에게 별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에테르로 이미 익숙해졌던 틸레트 학생들은 레니냐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사탕을 전부 돌아주고 돌아온 레니냐는 어깨를 들썩이며 로테 곁에 앉았다.

       

       “인간 중에는 좋은 친구가 많네.”

       

       표정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기뻐하고 있다. 그녀의 귀가 위아래로 쫑긋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금안족의 공통된 특성이다. 이들은 항상 차분하고 침착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로테는 어느 순간 에테르를 떠올리고 있었다.

       

       일리야드는 좋은 곳이다. 정령마도로 유명한 학교이니 배울 것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에테르가 보고 싶었다.

       

       “…어라.”

       “왜?”

       “교과서가 없어. 책상 밑에 넣어두었는데.”

       

       레니냐의 귀가 아래쪽으로 축 늘어졌다.

       

       그때 한쪽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노랭이. 이거 찾고 있냐?”

       

       케이프에 고급스러운 배지를 단 여학생 무리였다.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애가 두꺼운 책을 피자 도우처럼 굴리며 다가왔다.

       

       교재는 이리저리 찢기고 낡아 있었다.

       

       이번 학기에 받은 책이다. 벌써 저렇게나 더러워질 리가 없었다.

       

       “너희가 가져갔어? 돌려줘.”

       “어쭈, 얘 봐라. 돌려달래.”

       

       여자애들이 깔깔거리며 책을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레니냐가 낑낑거리며 교탁으로 손을 뻗었다.

       

       툭.

       

       다른 여자애가 책을 밀쳐서 뒤쪽으로 떨어뜨렸다. 레니냐의 입에서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마법도 못 쓰는 미개한 년이 공부는 무슨 공부니?”

       

       가시 돋친 말이었다. 우월감? 열등감? 어떤 감정인지는 알 필요도 없다. 차마 그대로 둘 수 없는 만행이었다. 

       

       로테는 벌떡 일어나 여학생 무리에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잠깐. 너희 너무 심한 거 아냐?”

       

       로테의 날카로운 시선이 여학생 무리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태연자약하고도 무신경한 반응이었다.

       

       “뭐야, 레니냐. 인간이랑 금세 친해진 거야?”

       “친구야, 네가 뭘 몰라서 그래. 이년은 소수 종족 특혜로 들어온 년이야. 원래 일리야드에 있어선 안 되는 멍청이라고.”

       “리케 말 들었지? 명문 틸레트에서 왔으면 이런 잡종 말고 우리 순혈들이랑 놀자.”

       

       순혈. 하이엘프들이 스스로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들었다.

       

       즉 이들은 하이엘프라는 소리이다. 레니냐는 금안족이자 평범한 엘프였고.

       

       어떻게 금안족이면서 동시에 엘프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로테는 이를 갈며 여학생 무리에게 일갈했다.

       

       “너희 하이엘프지? 그러면 오히려 점잖게 행동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얘 뭐래니?”

       

       여학생들이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로테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소수 종족이고 뭐고 친구잖아. 같은 반 학생에게 이래도 되는 거야?”

       “너 생각보다 웃긴 애구나? 틸레트에 평민도 조금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쪽 출신이니?”

       “나는 로테 살리에르, 귀족이야.”

       “흐응, 그래? 난 리케 로스차일드. 앞으로 잘 지내보자.”

       

       로스차일드 가문이라면 들어본 적 있다. 하이엘프 중에서 가장 콧대가 높은 가문. 정치인, 기업가, 전문직 등 수많은 고위직을 꽉 틀어쥐고 있는 자들이 바로 로스차일드였다.

       

       살리에르와는 비교가 안 되는 명문가. 그러나 로테는 주눅 들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떨어진 책을 주운 뒤 잘 털어서 레니냐에게 건넸다.

       

       “학급 친구를 계속 이런 식으로 대할 거라면 너희하고는 친하게 지낼 수 없어.”

       “어쭈?”

       “지금이라도 좋아. 레니냐한테 사과해.”

       “싫은데? 얘들아, 김샜다. 그냥 가자.”

       

       리케는 나머지 여학생들을 데리고 떠났다. 로테는 그들이 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잔뜩 구겨진 책을 확인한 레니냐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고마워.”

       

       로테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그보다도 이거, 학교에 알려야 하지 않겠어?”

       “난 괜찮은데.”

       “그러지 말고. 따돌림당하는 것 같으면 교무처장이나 총장님께 얘기하러 가자. 아니면 자경단에… 아니, 아니지.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자.”

       “쟤들은 로스차일드의 일원이야. 경찰이고 뭐고 다 연결되어 있다고. 신고해도 안 받아줄 걸…….”

       

       레니냐는 귀를 축 늘어뜨렸다. 이것이 에테르와 조금 다른 점이었다. 에테르였다면 진작 쟤네들 머리통을 깨부수고도 남았을 텐데.

       

       물론 그것도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당하고 사는 것보다는 나았다.

       

       “잠깐만 기다려 봐.”

       

       로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레니냐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해당 소식이 총장에게 알려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그래서 그 아이는 많이 따돌림을 받고 있어요. 다행히도 틸레트에서 온 여학생 덕분에 직접적인 괴롭힘은 많이 줄었지만요.”

       

       세실 총장은 말하면서도 계속 한숨을 쉬었다.

       

       세실은 한탄했다.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건 반을 분리하는 것뿐이라고. 로스차일드의 그림자가 너무 짙어서, 따돌림을 주도하는 학생을 쉽게 제재할 수도 없다고. 잘못했다간 자기 자신조차도 총장직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제국보다 더 심하군요.”

       “네, 보이지 않는 신분제죠.”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을 겁니다.”

       “교수님께서는 그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보조해 주시기만 하면 돼요. 다른 반 학생이 들어오면 막아주시고요. 혹시라도 차별받는 일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잘 조율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총장이고 뭐고 직분을 논할 때가 아니었다. 세실은 삼가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에테르로서는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금안족을 괴롭히는 권세가의 따님이라.

       

       그리고 그 권세가에 맞서 학교폭력을 신고해 준 여학생이라.

       

       “혹시 그 여학생 말입니다. 레니냐라는 아이와 같은 반에 들어가나요?”

       “네, 그럴 거예요. 그렇게 두는 게 차라리 낫겠더라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선생님.

       

       자신이 그런 호칭으로 불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에테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세실은 안심하고 다른 일을 보러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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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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