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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2

       “정숙! 정숙하시오!”

        

       회의장 상석, 그러니까 기다란 테이블에서 다소 떨어진 곳의 몇 계단 올라간 자리에 놓인 왕석에 앉아있는 벨부르 국왕이 그렇게 외치자, 그래도 회의장은 조용해졌다.

        

       하지만 조금 전의 무거운 침묵과는 다르게, 여기저기서 금방이라도 불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불안한 침묵이었다. 갑옷이 절그럭거리는 소리, 옷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숨을 크게 몰아쉬는 소리나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 조용하긴 했지만 어수선한 광경이었다.

        

       “실비아 황녀. 발언을 허하겠소. 그대가 그런 말을 했다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아듣도록 잘 설명해주실 수 있겠소?”

        

       그렇게까지 잘 설명할 자신은 없는데.

        

       뭐, 국왕도 딱히 기대는 하지 않을 거다. 애초에 귀족 회의라는 것이 다 그렇듯, 누군가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법이니까. 이런 회의장에서 정말로 반대 의견이 나오지 않는 상황은 ‘반대했다가는 죽을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뿐이었다.

        

       “법국엔—”

        

       나는 일부러 조금 뜸을 들이며 말했다. 기왕이면 여기 있는 상대들이 나를 보고 ‘거만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황제 폐하께서 법국에 계실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유격대를 결성하여 법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하지만 그건 제국의 사정이 아닙니까?”

        

       왕국 귀족 중 하나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곳에서 폐하께서 뭘 하고 계시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만약 그곳에서 폐하께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건 제국에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지, 저희가 도울 의리는 없습니다. 황녀님께서 작년에 이곳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생각해 주십시오.”

        

       너희가 우리 동맹을 방해했으니, 우리는 너희를 군사적으로 도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왕국군의 도움을 바랐던 적도 없습니다. 유격대는 어젯밤 루테티아에서 작전을 벌였던 구성에 몇 사람이 추가되는 선에서 완성될 겁니다.”

        

       “그리고 어제 그 상황에서 황녀와 함께 갔던 인물 중에는 샤를로트도 있었소.”

        

       샤를로트는 여기 보이지 않았다. 앨리스도 있는데 샤를로트가 없다는 것은 일부러 자리에서 배제했다고 하는 쪽이 옳겠지.

        

       이건 그저 나의 생각일 뿐이었지만, 샤를로트라면 분명히 그 유격대에 아무렇지도 않게 참석할 것이다.

        

       어제처럼 복잡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고, 엄청나게 불편한 기색을 내비칠 수도 있지만, 샤를로트의 올곧은 성격이라면 ‘그게 옳다’고 판단하겠지. 일단 나를 믿고 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지금 시점에서 내가 가장 크게 사과해야 할 상대도 샤를로트였다.

        

       하지만 샤를로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건, 아버지이자 국왕인 저 사람의 시선으로는 그건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밤에도 나를 믿고 딸을 보냈더니 지하에서 그리폰이 튀어나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국왕 자신이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샤를로트는 그 그리폰의 발톱에 상처를 입기까지 했다. 지금은 치유되어서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젯밤에 찢어진 옷이 멀쩡해진 것도 아니니, 그 밤에 어떤 전투가 있었을지 짐작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빠져야 하는 인원들이 있다면 그래도 상관없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옆으로 걸어 나오는 검성을 보았다.

        

       누가 봐도, 자기가 참가하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 표정이었다.

        

       한참 동안 무료하게 지내던 검성이 산에서 내려온 것은, 자기가 벨만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다.

        

       당연히 목숨 걸고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 전장이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있겠지. 게다가 법국의 기사들은 이미 꽤 유명한 싸움꾼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빠진 학생들 대신 나갈 사람들은 검성 말고도 있었다.

        

       당장 이 자리에 있는 제니퍼라던가, 캐롤린도 훌륭한 실력을 지녔다. 게임에서는 거의 항상 게스트 캐릭터였지만 그래도 최종전에서는 파티로 기용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법국의 접경지역으로 갈 수 있는 허가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왕국의 반대쪽 국경을 제국에게 개방하라는 것입니까?”

        

       이번에는 다른 귀족이었다.

        

       성가시네.

        

       “왕국과 법국은 과거부터 돈독한 관계를 형성해왔습니다. 그런데 제국이 법국을 치는 것을 돕겠다고 나서면 법국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만.”

        

       나는 그 귀족에게 반응하는 대신, 팔 한 짝이 잘린 추기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추기경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자세한 것은 추기경에게 물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만, 그랬다가는 추기경 목에 걸린 마법에 추기경이 사망하게 될 테니 제가 대신 말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 귀족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법국은 이 왕도 루테티아 아래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왕국 몰래. 대체 왕국이 그 사실을 법국에 따지지 않는다면 누가 또 따진다는 말입니까? 왕국과 법국의 관계가 돈독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귀하의 이름은 모릅니다만— 아, 굳이 알려주시려고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습니다. 제가 당신과 대화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까요.”

        

       내 말에 그 귀족이 입을 열어서, 나는 얼른 손을 들어 제지하고 말했다.

        

       “아무튼, 귀하께서는 사이좋은 이웃이 귀하의 집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살아있는 뱀을 잔뜩 가져다 둔 상황을 용납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것은—”

        

       “그래서 저희가 대신 해결해주겠다는 말입니다. 왕국군이 직접 움직일 것도 없이, 왕국 사람이 없는 유격대가 움직여 상황을 살펴보고 해결할 수 있다면 해결하고 나오겠다는 소리인데, 이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십니까?”

        

       “…….”

        

       말문이 막힌 건 내 논리가 완벽해서라기보다는, 내 반응이 생각보다 격했기 때문이리라.

        

       앨리스만 하더라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추가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나는 가슴과 허리를 펴고 당당한 자세로 섰다.

        

       “황제 폐하는 그렇게 보여도 주변 국가에 꽤 유화적인 정책을 펴셨습니다. 국방력을 강화하긴 했지만, 그 비대해진 국방력을 왕국과의 국경에 배치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치국의 국경에 포격 세례를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또 다른 귀족의 말이었다.

        

       “그건 자치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대답한 사람은 제니퍼 윈터필드였다.

        

       “자치국은 이미 이전부터 불법적인 군벌의 난립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대로 제국의 병력이 지나치게 자치국 쪽으로 들어가는 것도 경계하고 있었기에, 제국이 자치국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여러모로 제한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국이 생각한 것이 포격 지원이었습니다. 먼 곳에서, 자국의 병력을 투사하지 않고 적진만을 타격했으니 자치국의 요청을 거스르지는 않은 셈이지요.”

        

       어마어마하게 뻔뻔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렇긴 했다.

        

       “그리고 포격 후에 함대는 다시 후방으로 빠졌습니다. 지금은 제도 근처에 있으니, 내일 당장 그 함대의 포격이 루테티아에 와닿을 일은 없을 겁니다.”

        

       “…….”

        

       나는 그저 황녀이지만, ‘윈터필드’는 군인이다. 그것도 주변 국가에도 명성이 널리 알려진 군인 가문.

        

       그 발언의 공신력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

        

       “왕국도 나름대로 제국에 첩보원을 심었을 텐데요.”

        

       나는 대놓고 물어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그 첩보원들이 넘긴 정보에 ‘제국이 전쟁을 준비 중이다’라는 증거가 단 하나라도 나왔습니까?”

        

       황제는 나한테 직접 말했다.

        

       자기는 전쟁과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차지할 생각이라고.

        

       ……그 말을 백 퍼센트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철저한 성향을 생각하면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진실해 보일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했으리라.

        

       실제로 나도 전쟁의 증거는 찾지 못했다.

        

       제국 가장 깊숙한 곳에서 온갖 정보를 다 찾아볼 수 있었던 내가 정보를 찾지 못했으니, 왕국에서 심어둔 첩자들이 정보를 찾지 못했을 거라는 것은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황제 폐하의 권력은 강력합니다. 어떤 이유로 황제 폐하가 자리를 비우셨는지, 그리고 정말로 법국에 가 계실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 황제 폐하의 권력이 비어버리면 한동안 제국은 혼란에 빠질 겁니다.”

        

       내가 있고, 아직 앨리스도 남아있다. 최후의 수단으로는 황제의 피가 섞인 클레어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셋은 ‘황제’의 위광을 대신하기에는 정치적인 입지가 너무 좁다. 진짜로 제대로 된 힘을 보여주기 전에는 지방 영주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을 거다.

        

       ……그리고 그렇다면.

        

       “만약 제국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 군사력의 일부가 ‘군벌화’한다면, 왕국은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

        

       그렇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엄청나게 급한 거다.

        

       제국군의 일부라도 군벌이 되거나, 아니면 지방 귀족에게 흡수된다면. 그리고 그 지방 귀족이 다른 마음을 먹게 된다면.

        

       그건 그냥 어중이떠중이 테러리스트 단체가 아니다.

        

       제국군의 온갖 첨단무기를 그대로 가지고 군벌화할 테니까.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현대로 치면 ‘탄도 미사일을 가진, 심지어 그 병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이들이 포함된 테러단체’라는, 듣기만 해도 어질어질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제국이 한순간에 무너지지는 않으리라. 그래도 완성된 제도가 있고, 황제 대신 어떻게든 나라를 굴릴 의회도 ‘있긴’ 했으니까.

        

       하지만 그 무너질 가능성이 정말로 ‘0’인가?

        

       나를 포함해서,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을 거다.

        

        

        

       아, 물론 황제가 씨발 그것도 생각 안 하고 거기까지 가 있지는 않겠지.

        

       그런데 쟤들 낚으려면 이 정도 헛소리는 해야 할 거 아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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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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