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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2

       우리의 신은 즐거운 것을 보면 만족하고 잠들어버린다네!

       그가 꿈에 취해 잠들어 있는 동안 이 세계는 안전하지.

       하지만 눈을 뜨면, 세상은 모두 끝장나는 거요.

         

       사도들이 말하는 우주적 규모의 공포 앞에 허수아비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저 아래 웅크린 거대한 물체가 내뿜는 존재감이 그를 압박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만큼 놀란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사도들의 설명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엘라는 이런 넉살 좋은 소리를 늘어놓기까지 했다.

         

       “우리 신이 제일 대장인 거 같아서 기분이 좋은데?”

         

       다른 사람들도 그녀의 말에 동감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키르쿠스에 관한 이런저런 농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눈 대부분이 감겨 있네요. 공연이 지루해서 졸고 있는 거 아닐까요?”

       “키르쿠스 님! 직접 만났으니까 부탁 좀 할게요! 제게도 인스피라 좀 주세요!”

         

       마신이건 혼돈이건 어차피 인간에게는 까마득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들이 모시는 신이 공연을 즐기는 자라는 변함 없었다.

         

       루미와 마야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그런 낙천적인 결론에 만족하는 듯했다.

         

       어찌 이렇게 태평할 수 있을까.

       허수아비는 그들의 느슨한 반응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들이 떠드는 태도를 유심히 관찰해보니 그들이 어떤 식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지 느껴졌다.

         

       “몇백 년 뒤 태양풍이 지구를 덮친다!”, “꿀벌이 멸종하면 전 지구적 기아가 찾아온다!”, “대분화가 시작되면 지각의 80%가 소멸!” 등등.

         

       막연한 미래의 재앙에 대한 과학자들의 우려를 일반 대중들이 느끼는 것과 유사했다.

         

       이곳 사람들은 마신과 관련해서는 지구 사람들만큼이나 이러면 세계가 망하니, 저러면 세계가 망하니 하는 이야기를 지겹게 들으며 자랐다.

       사도가 밝힌 비밀은 그들에게 있어서 ‘키르쿠스가 공연이 지루해지면 세상을 때려 부순다’라는 이야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사도들 역시 사람들의 반응에 실망하기는커녕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들 생각하고 사는 게 좋은 거요. 불안감, 의심, 비관적인 마음은 어비스와 세계의 연결을 강하게 만들 뿐이니까. 그래서 이런 비밀은 산 자에게 함부로 가르쳐주면 안 되지.”

       “그럼 우리에게 그럼 이걸 알려주는 이유는?”

         

       마야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질문했다.

       사도들이 막 그것에 답하려는 순간, 누군가 철판 가장자리를 붙잡고 올라왔다.

         

       “엇차.”

         

       그는 우몬만큼이나 커다란 덩치를 지녔고 전신이 푸른색 털로 뒤덮여 있었다.

         

       “오베론?”

         

       루미가 그를 알아보고 앞으로 나섰다. 루엘로도 그를 기억하는지 아빠 뒤로 몸을 숨겼다.

       허수아비도 오베론이라는 이름은 들어봐서 알고 있었다. 클라라와 듀얼 내기를 했던 한여름 밤 서커스단 단장의 이름이었다.

         

       “뭐야, 누님은 또 언제 왔어?”

       “넌 여기서 뭐 하는데?”

         

       그들이 한여름 밤에 머무를 때, 그는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부단장인 퍽과 담판을 지은 것이다.

       그런데 그가 설마 이런 곳에 있을 줄이야.

         

       오베론은 손에 든 자루를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샌드맨 님의 가루를 잠든 혼돈 위에 뿌리고 왔지. 저것이 내뿜는 정신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건 최면과 환상에 능한 나뿐이거든…….”

         

       오베론은 자루를 바닥에 내던지고는 품에서 시가를 꺼내 피웠다. 그러고는 사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시고 온다는 분들이 이 사람들이었군요. 비밀을 다 말해줬습니까?”

       “아니. 이제 막 시작하려는 참이오.”

         

       크레이지 해터는 모자 여러 개를 한 번에 빙빙 돌리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우선 서커스 그랑프리에 관해 설명해야겠군. 그대들도 아시다시피 산 자의 공연이 죽은 자의 것보다 효율이 몇십 배는 좋소. ‘생생함’의 차원이 다르지. 하지만 산 자의 것도 약점이 있소. 키르쿠스에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오.”

         

       그는 철판의 가장자리에 서서 저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잠든 혼돈의 눈 하나가 눈앞에 떠오르는 영상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원더랜드를 배경으로 한 공연들은 화질이 깨끗했지만, 지상을 배경으로 한 공연들은 화질이 흐릿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균형을 잘 유지해왔소. 그런데 몇십 년 전부터 지상의 공연이 키르쿠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게 약해졌소.”

       “왜죠?”

       “그건……우, 우리도 모르오.”

         

       크레이지 해터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어쨌든 그 원인은 중요한 게 아니오. 그 때문에 키르쿠스가 눈을 뜨는 횟수가 늘어났다는 게 문제지. 그래서 키르쿠스는 자신이 세상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보조 도구를 만들었소. 일종의 돋보기안경이라 할 수 있겠군.”

         

       홉스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내뱉었다.

         

       “키르쿠스의 눈.”

       “맞소. 하지만 우리는 그 보석을 ‘트릴’이라고 부르오. 원래 키르쿠스의 눈은 다른 걸 칭하는 말이니까.”

       “다른 거라뇨?”

         

       그 질문에 대답하고 나선 것은 다이아몬드 퀸이었다.

       그녀는 하나밖에 없는 보석 눈을 빛내며 말했다.

         

       “먼 옛날의 일이야. 키르쿠스는 멀리서 공연을 지켜보는 게 답답했던 나머지 자신의 ‘눈’이 되어줄 인간들을 선정했어. 키르쿠스의 눈이란 원래 그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야. 100여 년 전만 해도 컬럼비아 대륙에는 수천 명의 키르쿠스의 눈이 있었어.”

       “있었다?”

         

       사도 스트라우스가 지휘봉을 휘둘러 허공에 숫자를 썼다.

         

       “최근 10년간 그 숫자가 급감했다네! 원인은 알 수 없네! 우리도 키르쿠스의 눈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 키르쿠스의 눈은 겉으로 봐서는 구별할 방법이 전혀 없으니까 말이네! 이 아래에서 전송되는 ‘영상’의 빈도를 헤아려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만 알 뿐이지.”

       “그 일은 트릴은 만들게 된 것과는 무관하오. 트릴을 만든 것은 20년 정도 전의 일이니까. 어쨌든 트릴을 만든 지상의 곡예사들은 ‘서커스 그랑프리’라는 대회를 열어 키르쿠스를 잠재우는 대규모 ‘제사’를 기획했소. 정말 기막힌 묘수였지. 덕분에 키르쿠스는 한동안 깊게 잠들 수 있었소. 하지만…….”

       “테러.”

         

       마야가 눈을 싸늘하게 빛내며 말했다.

       크레이지 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한 분이시군. 맞소. 아시다시피 그 대회는 2회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소. 트릴 역시 파괴되었지. 더 심각한 것은 곡예사들이 떼로 죽었다는 거요. 그 덕에 지상의 공연이 키르쿠스를 달래는 빈도가 급감했지. 덕분에 우리 사도들은 키르쿠스를 잠재우는 의식에 모두 매달려 있소. 지금도 대부분은 저기에 있지.”

         

       그가 공동의 중앙에 뜬 검은 구체를 가리켰다.

       수십 개의 희미한 인영들이 그 안을 헤엄치고 있었다.

         

       “당신들은 왜 나와 있는 거죠? 혹시 짬이 모자라서?”

         

       엘라의 농담에 다이아몬드 퀸이 울컥했다.

       “돌아가며 쉬는 거야!”

       “어어, 이 아줌마 무서워라. 왜 이렇게 화를 내세요.”

       “크하핫, 그녀는 실제로 20년 전까지 막내였거든! 그 이후로 사도가 2명이 더 들어와서 겨우 막내 생활에서 벗어났지!”

       “스트라우스! 그런 것까지 밝힐 필요는 없잖아요!”

         

       다이아몬드 퀸과 스트라우스가 다투는 것을 보며 크레이지 해터는 쓴웃음을 지었다.

         

       “밖에 나온다고 해도 쉬는 게 아니라 행정 업무를 하느라 눈알이 빠지게 일하고 있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까 다이아몬드 퀸이 말했다시피 10여 년 전부터 ‘키르쿠스의 눈들’이 사라지는 일까지 덮쳤소. 그 덕에 우리는 한계에 봉착했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커스 그랑프리가 재개된다는 것이오. 트릴이 복원된 것도 호재고. 덕분에 우리는 한시름 덜었지. 하지만 다른 마신들이 냄새를 맡았소.”

       “다른 마신들?”

       “그놈들이 원더랜드에 공격을 걸어왔다네!”

         

       스트라우스의 말에 엘라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키르쿠스가 눈을 뜨면 다 죽는다면서? 마신들도?”

       “마신들의 행동을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마시오. 그들의 존재는 ‘개념’ 그 자체요. 파괴의 마신, 전쟁의 마신, 침묵의 마신 등은 항상 우주 질서를 무너뜨릴 궁리만 해왔지. 부두교의 마도사들도 자신들이 모시는 신의 명령을 따랐을 뿐, 정확히 뭘 위해서 그러는지는 모르는 눈치였소. 그랬다면 그렇게 선뜻 따랐을 리 없지. 마신과 마도사는 어디까지나 이익을 위한 계약관계니까.”

       “그래도 다행인 건 원더랜드를 돕는 마신들도 있다는 거야. 시간의 마신 루터마인이 대표적이지. 이 안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게 된 것도 그분의 시간 결계 덕분이야.”

       “그리고 그게 바로 자네들이 바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네! 현재 수 많은 결계가 이 원더랜드를 보호하고 있네. 오직 선별된 관객만이 이 안에 들어올 수 있지. 자네들이 어떤 우연을 거쳐서 닫힌 문을 뚫고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문을 열어줄 수는 없네. 결계가 열린 틈을 타서 다른 마신들이 공격할지 모르니까. 지금 저렇게 눈이 많이 떠져 있는 상태에서 공격받으면 너무 위험해.”

         

       그 말에 레이나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럼 우리는 계속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까?”

         

       사도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태도는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 서커스 그랑프리 테러 같은 현실적인 소재가 얽히면서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여기서 바로 우리가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오는 거요.”

         

       크레이지 해터와 다이와몬드 퀸이 스트라우스를 돌아봤다.

       그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지휘봉을 휘둘렀다.

         

       “내가 자장가를 작곡했다네!”

       “자장……가요?”

         

       무거운 이야기 도중에 나온 너무 말랑말랑한 단어였다.

       스트라우스는 두툼한 엉덩이와 배를 뒤뚱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나와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도들이 협력해서 키르쿠스를 잠재울 수 있는 노래 그 자체를 만들어냈네. 하지만 사도의 공연은 키르쿠스를 자극할 수 없어. 그래서 축제를 통해 5명의 연주자를 선발하려고 했지. 오, 그런데 말이지. 이제 더 이상 그 경연을 진행할 이유가 없네. 레이나라고 했지? 자네의 연주는 우리가 상정했던 기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네.”

       “산 자의 연주…….”

         

       루엘로가 여기 와서 몇 번이나 들었던 단어를 중얼거렸다.

       스타라우스는 지휘봉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윙크를 했다.

         

       “맞아! 꼬마 아가씨! 산 자의 울림은 무엇보다 강하지. ‘산 자들이’, ‘원더랜드에서’, ‘자장가를 연주’ 한다면 분명 키르쿠스를 오래 잠재울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 날까지 잠들지도 몰라! 어쨌든 키르쿠스의 모든 눈을 감기게 해준다면, 우리가 집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겠네! 키르쿠스가 숙면하게 된다면 원더랜드에 구멍 좀 뚫려도 한동안은 충분히 버틸 수 있지!”

       “그, 그런데 연주는 꼭 저희가 해야 하나요? 단장님들은요? 그분들이 더 잘하지 않을까요?”

         

       카렌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장들은 무대 경력이 오래되어서 페르소나가 너무 발달했어. 신체에까지 영향을 미쳤지.”

         

       그 말에 홉스와 미노바는 서로의 모습을 확인했다.

         

       홉스는 ‘부동의 홉스’라는 별명답게 발 부분에 나무처럼 사방으로 뿌리를 뻗은 장화 같은 게 신겨 있었고, 미노바의 머리카락과 수염은 진짜 닭 볏처럼 살조각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위에 뻗어 있는 로드 판타스틱의 경우는 요란한 문양을 그리고 있는 콧수염과 팔과 허리 사이에 날다람쥐처럼 황금색 피막이 달려 있었었다.

         

       “그럼 순수한 산 자의 울림이 나오지 않네. 아직 페르소나가 덜 발달된 그대들이 연주하는 게 나을 거야. 우리는 최대한 키르쿠스를 오래 잠재우고 싶거든. 물론 정 안 되면 어른들이 할 수밖에 없겠지만.”

         

       일행은 서로의 얼굴을 둘러봤다.

       마다할 게 없는 선택지였다.

         

       키르쿠스에게 자장가를 들려주는 것.

       그것이 다섯 곡예사에게 내려진 새로운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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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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