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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2

        

         

       진성은 흥미로운 듯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눈앞의 이 남자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술사 혹은 계약자의 표적이 된 것이 분명했으니까.

         

       이렇게 운기 자체에 손을 대서 표식을 남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순수한 인간의 힘만으로는 오랜 고행과 수행을 거친 주술사가 가능할 것이며, 그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영역 밖의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할 수 있는 초월자의 가호를 받는 계약자밖에 없겠지.

         

       하지만 운기라는 것은 쉬이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닌바.

       만약 계약자라고 한다고 쳐도, 운기에 표식을 남길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면 꽤 유명한 사람일 것이다.

         

       ‘알아봐야겠군.’

         

       진성은 진귀한 것을 발견한 학자처럼 탐구열이 솟구쳐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은 보석처럼 반짝였고, 반짝이는 눈에서는 불길한 광채가 돌았다.

         

       “뭐가 흥미로운데?”

       “아,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흥미로운 점괘가 나올 것 같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눈과는 다르게 그의 목소리는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아까와 같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온몸에서 해가 없다고 광고라도 하는 듯 긴장이 탁 풀리는 분위기를 내었다. 게다가 천천히 움직이는 손길을 일부러 경쾌하게 움직여 신비로움은 느껴지되 경외는 느껴지지 않게 하였다.

         

       상대방이 자신과 심리적인 거리를 벌릴 수 없도록, ‘친근감’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는 몸을 느릿하면서도 나른하게 움직여 더더욱 얕볼 수 있게 하였으며, ‘저 사람은 언제든 내가 이길 수 있다.’라는 감정이 들 수 있도록 분위기를 풍겼다. 그로 인해 상대방이 방심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성의 노림수는 딱 맞아들어갔다.

         

       윌리엄은 아까보다도 진성을 더 편안하게 느끼기 시작했으니까.

         

       마치 귀여운 동물을 보고 아무런 위협조차 느끼지 못하고 접근하는 사람처럼, 혹은 맛있는 냄새를 맡고 아름다워 보이는 꽃에 접근하는 곤충처럼 말이다.

         

       하지만 귀여운 동물에게도 세균과 오물이 가득한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있으며, 곤충을 유혹하는 냄새를 풍기는 식물은 곤충을 잡아서 먹는 식충식물일 가능성이 큰 법.

         

       윌리엄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긴장을 놓아버렸다.

         

       “그럼 빨리 점이나 보던가. 이제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으니까.”

       “저런. 그러면 안되지요.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진성은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윌리엄의 모습에 기껍다는 듯 웃었고,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질 좋은 가죽으로 커버가 되어있는 자그마한 책.

       윌리엄에게는 익숙한 물건이었다.

         

       “어? 그거 성경 아니냐?”

       “네. 맞습니다.”

         

       진성이 꺼낸 책에는 ‘히브리어 직역. 구약성서.’라는 글자가 금박으로 박혀있었다.

         

       “점이라는 것은 말입니다. 지역에 따라, 문화에 따라, 사람에 따라 전부 다 다릅니다.”

         

       진성은 성경에 관심을 보이는 윌리엄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상류층들이 사용하는 영어만을 사용한 채 말이다.

         

       “점이라는 것은 사람들과 매우 가까이에 있는 것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인즉 모든 사람은 불확실성에 공포를 느끼고 있고, 오지 않은 미래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미지의 힘을 통해 미래를 엿보는 방법을 만들어내었으니 이것을 바로 점이라고 합니다.”

         

       그는 마치 가정교사가 지식을 전달하는 것처럼 말했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재료로, 수없이 많은 방법을 통해 미래를 엿보고자 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자신의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미래를 엿보고자 하였고, 돈이 많은 이들은 비싸고 귀한 것들로 미래를 엿보려고 하였죠. 어떤 사람들은 재미로 점을 보기 위해서 ‘재미있는’ 재료를 사용했고, 어떤 사람들은 체계적으로 접근하여 상징을 넣어 점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밀알과 지푸라기, 쌀을 이용해서.

       누군가는 부서진 나뭇가지와 이끼, 겨우살이를 이용해서.

       누군가는 저 멀리에서 건너오는 코끼리의 상아와 악어의 가죽을 이용해서.

       누군가는 놀이도구에 불과한 카드를 통해서.

         

       “그리고 당연하게도 성경을 통한 점 역시 존재합니다. 성경을 아무 생각 없이 펼치고 거기 처음 들어오는 첫 구절을 통해 미래를 조금이나마 엿보는 방법이지요.”

         

       진성은 성경을 윌리엄에게 내밀었다.

         

       “물론 제대로 발달한 방법은 아닙니다. 비록 성스러운 책을 이용하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성경과 가장 가까이하며 신을 향한 사랑을 보이는 이들은 점을 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며, 신실한 사람 역시도 성경을 재료로 점을 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성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이단들 역시 성경을 이용해서 점을 치려 하지는 않았으리라.

       당연한 이야기다.

       교회가 이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뭐 얻을 게 있어서 성경을 가지고 다니겠으며, 그 성경의 말씀을 미래라고 받아들일 만큼의 믿음을 가지기나 했을까.

         

       “그렇기에 성경을 이용한 점술이라는 것은 신실하지는 않되 관습적으로, 관성적으로 종교에 속해있는 자. 그저 머릿수를 불리는 것에 불과하며 성경의 말씀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 이단은 아니되 믿음도 그다지 없는 무신론자에 가까운 자. 주술에 재능이 없으되 그 흉내를 내고 싶은 자. 제대로 된 것은 아니나 오직 재미로 미래를 엿보기를 바라는 자입니다.”

       “하, 더럽게 지루하군.”

         

       윌리엄은 진성의 말이 재미가 없다는 듯 투덜대며 그가 내민 성경을 거칠게 빼앗았다. 그리고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보네, 이 역겨운 책.”

       “성경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라도 가지고 계십니까?”

       “하, 그럼 없겠어?”

         

       툭.

         

       그는 성경을 테이블 위에 집어 던지듯 놓고 짜증이 난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꼰대 새끼들이 교회에 날 끌고 간 게 몇 번이고, 웬 머리통에 탈모가 진행된 늙은이들 데려와서 나를 교육하려고 한 게 몇 번인지. 쯧.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

       “그렇군요. 종교의 권위를 이용해서 강제로 교육하려고 했다…. 참으로 고난이었겠습니다.”

       “그렇지. 하는 말은 고리타분한데 눈깔은 반쯤 미쳐있는 족속들이라서. 무슨 내 몸에 마귀가 깃든 게 아니냐면서 아주 지랄을 떨었다니까? 뭐, 신성술사 놈들이 와서 확인해보곤 아무 문제도 없다고 보증해준 다음에는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윌리엄은 말하면서도 짜증이 난다는 듯 맥주병을 집고 꿀꺽꿀꺽 삼켰다.

         

       크으-

         

       “아, 그래서 뭐. 이 성경으로 점 볼 수 있다. 신실한 새끼들은 이 성경으로 점 보진 않는데 나는 가능할 거 같다. 뭐 이런 말이지?”

       “그렇습니다.”

       “뭐 이건 조금 관심이 가기는 하네. 아, 기왕이면 이거 방법이나 좀 제대로 알려달라고. 영국 돌아가서 다른 애들한테도 좀 알려주게.”

         

       널리 퍼뜨려서 종교쟁이 새끼들 엿이나 먹여야 하지 않겠어?

         

       윌리엄은 그렇게 말하며 킥킥 웃었고, 신성모독의 의도를 잔뜩 담아 성경을 아주 조심스럽게 펼쳤다. 허구한 날 여자를 만나기 때문에 바싹 깎은 손톱으로 어렵게 페이지를 선택하고, 혹여 종이가 찢어지기라도 할까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을 내려치며 성경을 펼쳤다.

         

       그리고 그렇게 펼쳐진 성경에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윌리엄이 알 수 없는 글자였다.

         

       “야, 이거 뭐냐?”

       “아. 한국어를 할 줄 모르시지요.”

         

       당연하게도 윌리엄은 자신이 펼친 곳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국어였으니까.

       유럽에서 쓰는 말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인간이, 저 멀리 아시아에 있는 별로 연도 없는 나라의 말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가장 먼저 보인 글귀를 손가락으로 가리켜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렇기에 진성은 손가락으로 가장 먼저 보인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켜달라고 했고, 윌리엄은 ‘그냥 영어로 된 거 들고 오지 왜 동양 놈들 말이 적힌 성경을 들고 왔냐.’라며 투덜거리면서도 진성의 말대로 알 수 없는 문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진성은 그 문구를 보더니 방긋 웃으며 그 뜻을 말해주었다.

         

       “Qui percusserit animal, reddet vicarium, id est animam pro anima.”

         

       라틴어로 말이다.

         

       “뭐, 뭐?”

         

       윌리엄은 진성의 입에서 나온 유창한 라틴어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영어로 말해, 이 새끼야. 교회의 대머리수리 놈들이나 쓸법한 말 쓰지 말고.”

       “알겠습니다.”

         

       진성은 방긋 웃으며 자신이 말한 글귀를 설명해주었다.

         

       “레위기 24장 18절입니다. 짐승을 죽인 자는 생명으로 생명을 갚아야 하니 살아있는 것으로 물어야 할 것이니라. 라는 뜻이지요.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그 뭐냐, 함무라비 그런 건가? 그래서 그 뜻이 뭔데?”

         

       진성은 점괘를 물어보는 윌리엄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단지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뭐? 내 점괘 아니야? 근데 별다른 뜻이 없어?”

       “네. 윌리엄 씨에게는 별 의미가 없어요.”

         

       진성의 말엔 진심이 담겨있었다.

         

       실제로 윌리엄에게 이 점괘는 의미가 없었으니까.

         

       윌리엄의 운기에 손을 대었을 누군가가 진성에게 보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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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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