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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2

        대략적인 사정을 이야기한 푸푸르마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 죄송합니다. 멸천룡 그랑 라그나시여.

       

        = 흠…….

       

        푸푸르마의 사과를 받아들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사실 일반적으로는 내가 이렇게 고민할 거리조차도 아니었다.

        말했듯이 나는 여기에 손님으로 온 것이니까.

        집안일에 손님인 내가 끼어들 필요도 없고, 예의에도 어긋난다.

       

        그런데 집안사람 중 하나가 손님인 나를 집안일에 끼어들게 만든 것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고민하는 이유이고, 동시에 푸푸르마가 나에게 사죄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신계의 파수꾼, 푸푸르마여.

       

        = 네.

       

        = 나와 너희의 계약에 따르면, 나는 이 섬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세부 사항에 따르면, 몇 가지 예외 사항에서는 나 역시 이 섬에서 나갈 수 있다.

        상대방이 먼저 계약을 어겼을 때, 혹은 누군가가 나를 건드렸을 때와 같이 말이다.

       

        = 이 사태는 해석하기에 따라,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가 인간을 이용해 나에게 위협을 가했다고 볼 수도 있겠구나.

       

        = ?!

       

        “?!”

       

        내 말에 푸푸르마와 인간 아케포라스가 기겁하는 것이 보였다.

        신계의 파수꾼 푸푸르마는 자신들이 다스리는 인간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내 앞에 부복했다.

       

        = 멸천의 존재시여! 저의 초월을 걸고, 저희는 절대로 그런 의도를 가진 적이 없습니다!

       

        = 그렇다면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의 독단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냐?

       

        = 그, 그렇습니다.

       

        = 그렇다면 부하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의 무능함 때문인 것이냐?

       

        = 그, 그것은…….

       

        자신들의 주신을 모욕당함에도 불구하고 말을 잇질 못하는 푸푸르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앞에 있는 존재는, 한 무리의 신들을 멸망시킨 전적이 존재하는 신살자(神殺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들은 기본적으로 지성체들의 ‘신앙의 대상’이며, 그렇기에 신들은 기본적으로 ‘하늘’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하늘’을 멸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신’은 나에게 불리한 상성일 수밖에 없다.

       

        그런 내가 이들을 적대하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이들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괜히 내가 이 차원에 도착했을 때,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가 자신 휘하의 다른 신들을 이끌고 나를 맞이한 것이 아니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최대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에서 나를 몰아내기 위해서겠지.

       

        신계의 파수꾼인 푸푸르마가 내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여기서 그가 잘못 대응한다면, 곧바로 멸천의 분노가 이 세상에 내릴 테니까.

       

        = 신계의 파수꾼, 푸푸르마여.

       

        = 예. 멸천룡 그랑 라그나시여.

       

        = 너에게 주어진 권한은 어디까지지?

       

        = ……네?

       

        내 질문에 푸푸르마가 당황한다.

        나는 당황하는 그에게 말했다.

       

        = 나는 이번 일을 그냥 넘길 생각이 없다. 너희 신들은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의 독단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는 감히 나에게 도전했다.

       

        = 그, 그것은 말도 안 됩니다!

       

        =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지 않으냐?

       

        = 그건…….

       

        내 말에 푸푸르마가 말을 잇질 못했다.

        비록 필멸자 따위가 나를 해할 수 있을 리는 없으나, 어쨌든 결과만 보면 그람자의 여신 칼리파가 인간을 시켜 나에게 해를 끼치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피해자로서, 계약에 명시된 ‘자기방어’의 권리를 행사할 조건을 만족했다.

       

        = 허나, 나는 곧바로 힘을 쓸 생각은 없다. 그러니 너희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 가, 감사합니다. 자애로우신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한 번 더 주어진 기회에, 푸푸르마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다.

        나는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 나는 나를 노렸던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의 처벌과, 이번 일로 피해를 본 나에 대한 보상을 원한다. 너는 이것을 결정할 수 있을 만한 권한이 있는가?

       

        = ……저에게는 그만한 권한이 없습니다.

       

        = 그렇다면 돌아가 전하라. 그리고 충분한 권한이 있는 이를 이곳으로 보내거라.

       

        = 알겠습니다.

       

        나의 아주 자비로운 처사에, 신계의 파수꾼 푸푸르마는 고개를 숙인 채 신계로 돌아갔다.

        아마 충분한 회의가 이루어진 후에, 그 결과가 돌아올 것이다.

        그 회의 끝에 나온 결론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때는 더 이상의 협상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 ……이제 숨을 쉬는 것이 어떠하느냐?

       

        “후우! 후우! 하아~!”

       

        내 말에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인간 아케포라스.

        창백한 얼굴로 거칠게 숨 쉬는 인간 아케포라스를 바라보다 말했다.

       

        = 미안하구나.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곳에서 나와 함께 있어야 할 것 같구나.

       

        인간 아케포라스는, 말하자면 ‘증인’이다.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가 아케포라스를 이용해 나를 노렸다는 증거이기에, 저들이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간다면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인간 아케포라스를 노릴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증인을 보호하기 위해, 푸푸르마에게 아케포라스를 데려가라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 사정을 모두 들은 인간 아케포라스는 내 앞에서 넙죽 엎드렸다.

       

        “아닙니다! 오히려 이 하잘것없는 죄인의 목숨을 걱정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야 할 터인데…….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은 ‘의식주’라고 알고 있다.

        그중 ‘의(衣)’는 용금을 이용해 내가 만들어 주면 되고…….

       

        ‘내가 지금 머무는 곳은, 아무래도 인간에게 좋은 주거지는 아니겠지.’

       

        마그마가 펄펄 끓고, 공기 중에는 인간들에게 해로운 유독가스가 가득한 곳.

        그런 곳에서 인간이 편히 쉴 수 있을 리가 없다.

       

        ‘음식은…….’

       

        나의 시선이 바다로 향했다.

        바다에서 이쪽을 지켜보는 정령들에게 부탁하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물고기 정도는 구해주겠지?

        안 되면 다시 한번 푸푸르마를 부르면 될 터.

       

        = 인간 아케포라스여. 의복과 먹이는 내가 해결해 줄 수 있겠으나, 주거지는 힘들겠구나.

       

        “그것만으로도 은혜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야영은 일상과도 같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그렇다면 다행이로구나.

       

        고개를 끄덕인 나는 발톱 끝에 용금을 머금었다.

        그리고 그것을 움직여 아케포라스의 몸을 살짝 건드렸다.

       

        주르륵!

       

        “헉?!”

        

        벌거벗은 그의 몸을 뒤덮는 용금.

        그리고 용금은 나의 의지에 따라 성질을 변화시켰고, 이내 내가 알고 있는 의복의 형태로 변했다.

       

        = 이 세상의 인간들이 어떤 의복을 입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세상의 신들이 입는 의복을 따라 했다. 그래. 불편하지는 않으냐?

       

        “오히려 따뜻하고 가벼울 따름입니다.”

       

        = 다행이구나.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근처의 나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 필요하다면 아무거나 사용해도 좋다. 나를 부르고 싶거든, 나의 이름을 부르도록 하거라.

       

        “아, 알겠습니다. 헌데 신수님의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 아아…… 그렇지.

       

        나는 주거지로 돌아가기 전, 그에게 말했다.

       

        = 나의 이름은 라그나. 멸천룡 그랑 라그나다.

       

       

        *            *            *

       

       

        – 엌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갑자기 멋진척 뭐에욬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

        – 차가운 도시 여자!

        – ㅋㅋㅋㅋ

       

        “멋진 척이라니? 나는 멋진 척을 한 것이 아닌, 원래 멋있는 드래곤이란다.”

       

        자고로 ‘멋짐’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관점이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멋있는 드래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 엌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앜ㅋㅋㅋ

        – 그렇죠. 자기애는 중요하죸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뭐, 그렇게 나와 아케포라스의 생활이 시작되었지.”

       

        아바타의 모습으로 아케포라스를 찾아가고, 그와 함께 집을 짓고, 먹이도 구하고.

        밤에는 아케포라스의 옛이야기를 들어 주고, 때로는 내가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평화로운 생활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 ?

        – 뭐지?

        – 신들의 사과는요?

        – 푸푸르마는 다시 안 왔나요?

       

        “아이들아. 초월자의 일은 너희의 생각보다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단다.”

       

        기본적으로 초월자들의 일 처리는 필멸자들의 생각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명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이고, 그들에게 ‘당분간’이란 필멸자의 5~6년이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시간’이란 무한한 자원이고, 그렇기에 그들은 급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애초에 ‘우주’라는 드넓은 하나의 차원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한한 시간까지 쥐여 주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너희 인간들도 일 처리가 느리게 진행되는 경우가 있지 않으냐? 뭐였더라…… 변호사와 검사, 판사가 나와서 서로 말다툼을 하는…….”

       

        – 엌ㅋㅋㅋㅋ

        – 말다툼ㅋㅋㅋ

        – 재판이 언제부터 말다툼이 되었냨ㅋㅋㅋ

        – 말다툼이 맞긴 함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그래. 그거 말이다.”

       

        내가 알기로, 그 재판이라는 것도 한 번 할 때마다 2~3년은 훌쩍 걸린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일도 그런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 아닠ㅋㅋㅋㅋ

        – 말이 되긴 하넼ㅋㅋㅋㅋ

        – 한국 사람은 복장 터질 듯ㅋㅋㅋㅋ

        – ㅋㅋㅋㅋ

        –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 빨리빨리 가 필요하닷!

       

        시청자들이 웃으며 즐거워한다.

        나는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말을 끊었다.

        이때의 기억이 조금 애매했기에, 그것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이 좀 모호하지만…… 아마 1년에서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가 아닐까 싶구나.”

       

        나는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            *

       

       

        아케포라스의 집.

        나와 아케포라스가 함께 돌, 나무, 진흙으로 만들어 낸 집의 앞.

        아케포라스가 직접 구운 물고기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잘 먹겠다.”

       

        “네.”

       

        그에게 받은 물고기구이를 들고 한입 베어 물었다.

        오독오독 씹히는 뼈와 고소한 살코기의 맛이 훌륭했다.

       

        “오늘도 맛있구나.”

       

        “……네.”

       

        뭔가 이상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케포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모닥불을 뒤적거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향이 그리운 것이냐?”

       

        “…….”

       

        내 말에 그는 침묵했다.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이리라.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초월자에겐 짧은 시간이지만, 필멸자들에겐 긴 시간.

        그가 슬슬 조바심을 드러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걱정 말거라. 슬슬 때가 되었으니.”

       

        “……네?”

       

        우우웅!

       

        그 순간 힘의 파동이 느껴진다.

        봉인으로 억눌렀으나, 필멸자인 아케포라스는 그 힘을 느끼는 즉시 몸을 떨어야 했을 정도의 힘.

       

        툭!

       

        “식사 중에 미안하오. 멸천룡 그랑 라그나여.”

       

        “어서 오시게.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여.”

       

        마침내 신들이 도착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고기를 굽고 싶은데, 고기 구울 시간이 안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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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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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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