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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2

     바르셀 후작가가 역적으로 처형되었고, 그 아래에 있는 황금여명 기사들도 전부 함께 몰살되었다.

     승자는 지브롤터고, 후작성의 꼭대기에 지브롤터의 깃발을 꽂은 자는 그레이 지브롤터다.

     그런 그레이 지브롤터를 상대로 후작성에 토마토 등을 던지는 테러를 하고, 소리를 지르며 시위를 벌인다?

     미친 자들이다.

     그들이 죽은 황금여명 기사들의 가족이라는 걸 떠나서, 막말로 겁대가리가 없는 자들이다.

     만일 당신이 저들을 두고 ‘미친 건가?’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제국인의 사고방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유족들을 동정하고 지브롤터를 음해하고 모욕하는 것이 아닌, 저 유족들이 이상한 걸로 지껄이고 있으니 당장 치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죽일까요, 도련님.”

     “참게, 로버트 경.”

     로버트 경은 단단히 화가 났고, 나는 그가 함부로 검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자제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여차하면 진짜로 로버트가 검을 휘두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군.”

     “저것들 다 자기들 인생 책임져달라고 생떼를 부리는 거 아닙니까.”

     로버트는 시뻘게진 얼굴로 창 너머를 향해 손을 뻗어, 밀대로 창에 묻은 토마토를 닦아냈다.

     하인이 할 일이지만, 당장은 이런 일을 할 하인도 없는 게 현재 바르셀로나 총독부의 실정.

     “맞아. 가장이 죽었으니 어떻게 먹고 살 방법이 사라졌으니 저러는 거지.”

     시위를 못하도록 막아야 하기는 하지만, 저렇게 떠들게 놔두는 건 저들을 수습할 인력이 모자란 것도 어느정도 영향이 있다.

     그리고 저런 이들을 해산시키거나 제압해야 하는 건 나나 로버트 같은 이들이 아니다.

     “도련님. 제가 나설까요?”

     “아니. 그랬다가는 경에게 달라붙어서 우리라도 거둬달라고 그럴 걸?”

     “으윽….”

     사회적 권력층이며, 저들의 입장에서는 황금여명이 사라지고 난 뒤에 달라붙을 새로운 숙주니까.

     “사람에게는 저마다 역할이 있는 법이야. 경이나 나나 저 여자들의 앞에 나선다면, 즉시 바짓단 붙잡고 늘어지는 과부들을 책임져야 될 걸? 흡혈귀가 따로 없지. 아니, 좀 심하게 말하면 기생충이라고 해야 하나.”

     

     말이 좀 심하시는 하지만, 다행히 이 방에는 로버트 경 말고는 다른 사람은 없다.

     “정말로 남편을 믿고 따르는 부인과 자식들도 있겠지만….”

     “그 남편이라는 자가 황금여명의 기사로서 하던 일이 있는데, 살아남은 걸 감사히 여겨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젠장.”

     “그렇지.”

     살아남은 것에 감사해야 한다.

     “역적은 3대가 목이 잘리는데, 그나마 지브롤터가 선처를 해서 바르셀 후작가만 죽여버리는 걸로 살아남았는데도 저런 꼴이니.”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야 하지만.

     “살려줬으니 그 책임을 져라. 대단한 자들이야.”

     저들은 다르다.

     “살려준 걸 감사해야 하는데, 저런 자들은 그런 걸 전혀 몰라. 오히려 더 목을 뻗대고 드러눕는 자들이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 스스로 어떻게 뭔가를 하려는 방법도 모르는 자들.”

     “죽이는 게 제일 빠른 방법일 것 같습니다만….”

     “죽여봤자, 야.”

     나는 알고 있다.

     “죽여서 시체 치우고, 빈 집들 정리하고, 사망처리하고 그러면 얼마나 힘든데.”

     그냥 죽인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특히 사형을 집행하는 자라면 더더욱 신경 써야 할 요소가 많다.

     “자네도 이 영주성에 있던 시신들 같이 치우느라 고생해서 잘 알지 않은가?”

     “그렇기야 하지만, 모르가니아에서 지원을 받으면 어떻게 잘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대공께서도 이런 부분으로 지원하는 걸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으실 거고.”

     “중재하고 수습한다. 좋지. 하지만 우리가 직접 나서지는 않을 거야.”

     나는 솜누스 차가 가득 담긴 찻잔을 들었다.

     “노스트럼의 백성을 수습하는 건 노스트럼 여왕의 몫이지.”

     “…나리아 공동왕이 온 건 다 이유가 있었군요.”

     “그래. 단순히 나와 협약을 맺은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저기 황금여명의 잔여물까지 수습하기 위해서 온 거거든.”

     노스트럼의 백성들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다.

     “바르셀로나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면, 다른 곳으로 떠나게 만드는 수밖에.”

     거주 이전.

     “바르셀로나는 지브롤터의 땅이지. 당장은 지브롤터가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기사의 수가 적어서 그렇지, 조만간 인원이 충원되면 저들은 두려워서라도 떠나기 마련이야.”

     지금은 어딘가 건드려도 되어보인다 싶으니 만만해보이지만, 금방 떠나게 될 것이다.

     “떠나기 싫다면, 진짜로 ‘처리’하는 수밖에.”

     * * *

     그 시각, 후작성 근처 천막 밀집 구역.

     “고, 공주님….”

     여인들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그 옆에 달라붙은 아이들은 어머니, 혹은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함께 바짝 바닥에 엎드려 있다.

     “공주님이 아니라, 여왕이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은 의자에 다리를 벌리며 앉은 채, 자신의 품에 안은 창대를 만지작거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본인이 그레이 지브롤터와의 협상을 통해 그대들의 지아비 곁으로 가지 못하게 막았는데, 그대들은 이런 식으로 협상을 망가뜨리려고 하는 것인가.”

     “그, 그건….”

     “입 다물라.”

     나리아의 말에 막 입을 열려고 했던 여인이 고개를 깊숙이 처박았다.

     “제르시 올리벤사 자작 영애. 황금여명 기사단 간부 자르피안느 올리벤사의 처. 맞지?”

     “예, 예…!”

     “데릴사위로 데려온 이가 역적으로 몰려서 죽었다고는 하지만, 엮으려고 한다면 올리벤사 자작령도 처가로서 함께 몰살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지.”

     “그, 그건…!”

     제르시라고 지목당한 여인은 사색이 된 채 고개를 치켜들었다.

     “억울합니다, 여왕님!!”

     “억울하겠지. 집에서 얌전히 내조만 했을 뿐인데. 남편은 그저 기사단으로서 왕가에 충성을 했을 뿐인데. 하필이면 제로스 바르셀이라는 희대의 역적의 아래에서 일하는 바람에 그의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고 역적과 함께 살해당한 것이 억울하기야 하겠지.”

     “네, 억울합….”

     제르시 영애는 자신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나리아 여왕의 표정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데 억울하다고 해서, 죽은 이에 대한 곡소리가 아니라 다른 소리를 입에 담아서야 되겠는가.”

     “그, 그게….”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죽일 생각이 없어서 안 죽인 게 아니야.”

     나리아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으며, 자신이 어깨에 걸치고 있는 창대에 고개를 기대었다.

     “반역자들의 시체를 치우는데 세금이 허비되는 게 아깝고, 그대들이 죽음으로써 들어올 세수가 줄어드는 것 또한 아까워서 그렇지.”

     “그건…!”

     “유족 연금이 나가는 것도 아니지. 역적과 함께한 기사들이 죽은 거니까.”

     “큿…!”

     일부 유족 여인들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인다.

     황금여명 기사단은 바르셀 후작을 비롯하여 모두가 왕을 능멸한 역적으로 몰렸기에, 국가에 헌신한 군인이자 기사의 유족을 위한 연금과 보상금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런 게 있었다면, 오히려 다 죽이는 게 정답이었을 지도 모르겠군. 자신의 이득과 비리를 위해 왕실을 능멸하는 이들에게 들어가는 세금이 아깝지 않은가.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지방 영주와 영지민들을 생각하면.”

     그 누구도 나리아를 향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저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표정은 다르겠지만, 나리아는 전혀 대수롭지 않게 다리를 꼴 뿐이었다.

     “그래도 그대들의 자식들을 생각하여, 차마 가족이 죽은 땅에서 계속 살게 하는 건 아이들의 미래가 안타까우니 기회를 하나 제공하지.”

     딱.

     “발자크 렘부르 군터 자작.”

     “…예.”

     나리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곧 초췌한 몰골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옷은 낡고 헤졌지만, 그런 것보다 산 송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초췌해진 발자크 자작은 어디 고문이라도 오래 받고 나온 것처럼 망가져있었다.

     실제로 다리가 불편한 듯, 오른쪽 다리를 비틀거리며 나리아의 앞에 서며 고개를 숙였다.

     “발자크 자작은 황금여명 기사단이 그레이 지브롤터를 암살하려고 한 장소, 렘버리 캠프의 책임자였지. 맞나?”

     “그, 그렇습니다.”

     “그대는 암살을 사전에 알고 있었나?”

     “아, 아니오. 전혀 몰랐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몰랐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렘버리 캠프 내부에 있었던 일들도 말이야.”

     나리아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 책임. 이들을 책임지는 걸로 대신하지.”

     “저, 전하.”

     “렘버리 캠프 부지에 새로이 건물을 짓도록. 황금여명의 유족들이 살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이들이 바르셀로나를 떠나 살아갈 수 있게 하도록.”

     “……”

     너무나도 당연해서, 굳이 당사자가 언급할 필요도 없는 말.

     

     “대답은?”

     “왕명에…따르겠습니다.”

     왕의 명령.

     거부하면 죽음 뿐.

     “불만있나? 있다면 여기가 아니라, 그 불만을 들어줄 수 있는 이에게 가서 따지도록.”

     나리아는 검지로 하늘을 가리켰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국왕전하께 말이야.”

     * * *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여왕의 명령에 의해, 유족들은 전원 렘부르 군터 자작령으로 이송되었다.

     실질적 유배.

     

     당연한 수순이다.

     가만히 있기만 했어도 언제 목에 칼이 들어올지 모르는 와중에, 가장 건드려서는 안 될 바르셀로나 총독을 건드렸으니 당연히 그와 평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나리아 여왕으로서는 응당 해야 할 조치였다.

     

     덕분에 바르셀로나 성은 잠시 정적을 맞이했다.

     꽤나 늦은 시간인 것도 있기는 하지만, 방 안에 들려오는 건 오직 아스타시아가 곤히 잠든 소리 뿐.

     “…….”

     바르셀로나는 땅이 제법 넓다.

     바르셀 후작가가 예로부터 황금여명 기사단으로서 찬란한 황금을 반짝이게 만든 원동력이 이 바르셀 후작령이라는 넓은 땅에 있다.

     황금여명.

     노스트럼의 수호룡인 골드드래곤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르셀 후작령에는 두 가지의 황금이 존재한다.

     하나는 밀.

     넓은 평야에 재배되는 밀은 노스트럼 3대 평야로서 막대한 생산량을 책임지고 있으며, 품질도 매우 우수하여 수확되는 밀의 대부분이 왕도로 공급될 정도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말 그대로의 황금-금광.

     바르셀로나에는 산맥이 하나 있다.

     그 산맥의 아래로 제법 큰 광맥이 있고, 그곳에는 막대한 금이 매장되어있다.

     누군가는 그 금이 골드 드래곤이 죽어서 자신의 뼈를 황금으로 만들어 노스트럼의 후손들에게 준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향후 최소 십수 년은 채광을 해도 마르지 않을 양의 황금이 잠들어있다.

     괜히 황금여명 기사단이 갑옷을 황금으로 휘감은 게 아니다.

     그만큼 많이 나오니까 황금으로 떡칠을 했던 것이다.

     인프라, 라고 할 수 있는 자원은 풍부.

     하지만 그 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인력은 현재 부족한 실정.

     

     ‘정확히는 다 바르셀 후작가의 사람들이니까.’

     논밭을 갈던 이들도, 금광을 캐는 이들도 전부 바르셀 후작가의 아래에서 일하던 자들.

     그런 자들이 갑자기 바르셀 후작이 죽었다고 해서 바르셀로나 총독인 그레이 지브롤터를 따를 리는-

     50:50.

     절반은 그냥 영주가 바뀌어서 당황스럽지만 일상이 바뀐 건 아니니 그대로 살아가는 이들이며.

     나머지 절반은 황금여명과 궤를 같이 하는, 제로스 바르셀을 위시한 왕국의 암덩어리들이다.

     전자는 지브롤터든 뭐든 그냥 평범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말 그대로, 법 없이 살아가는 노스트럼스러운 이들.

     법이 있다면 백이면 백 폭력, 상해, 절도, 그 외에 온갖 범죄를 저질러 잡혀들어갈 이들.

     논밭에서 담배를 태우다 불태우거나, 밀포대를 훔치거나, 채굴한 황금을 몰래 빼돌리거나, 사금을 챙겨다가 대장간에서 몰래 금화를 만들거나.

     이곳 바르셀로나에는 온갖 노스트럼식 비리가 판을 치고 있고, 그런 범죄와 비리를 저질러 온 노스트럼의 암덩어리가 뿌리 깊은 곳까지 자리잡고 있다.

     그런 암덩어리를 제거하려면, 일단 인력이 많이 필요한데-

     “……?”

     곤히 자고 있던 아스타시아가 몸을 일으킨다.

     동시에, 나는 침대 옆에 놓아둔 지팡이를 가볍게 움켜쥐었다.

     사박, 사박.

     

     누군가가, 영주성 벽을 기어올라오고 있다.

     정확히 우리가 자고 있는 방을 향해.

     “안녕하신가.”

     “…….”

     테라스를 열어젖히며 나타난 인영은, 수상할 정도로 수상한 청색의 가면을 쓴 푸른 존재였다.

     “본인은 마스터 크베르스. 그대의 고민을 해결해줄, 소원을 들어주는 파랑새지.”

     “…….”

     해로운 새다.

     “혹시, 총독부에서 일할 노예가 필요한가? 지금 한 300명 정도 있는데.”

     도움이 되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신☆캐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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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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