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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2

   EP.232

     

   나는 유아 시절의 기억이 없었다.

     

   내가 뭔가를 인지할 수 있었던 때에는 이미 보육원에서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몸을 부대끼며 살고 있었으니까.

     

   「지훈이 너! 또 시인이 괴롭혔니?」

   「아니, 얘가 자꾸 기분 나쁘게 하잖아요!」

   「쌤 지훈이 말이 맞아요! 잘못은 쟤가 했어요!」

     

   나는 교우 관계가 썩 좋은 아이는 아니었다.

   물론 내가 뭔가 크게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어린 애들은 특정 인물에게 불쾌한 감각을 느끼면 본능에 충실한 행동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보기에 거슬린다거나 음침하다는 이유.

   같은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동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아이는 평범한 무리에 낄 자격을 얻을 수 없었다.

     

   「시인아 솔직하게 선생님에게는 말해주면 좋겠어. 지훈이가 왜 시인이에게 화를 낸 거니?」

     

   저학년 아이들을 담당하는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항상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냥 하지 말라고 했어요.」

   「뭘?」

   「거미요.」

   「…거미?」

     

   나의 손짓에 선생님이 바닥에 짓눌러진 거미를 보며 잠시 흠칫했다.

     

   「혹시 지훈이가 거미를 죽였니?」

   「네.」

     

   「시인이는 지훈이를 말리다가 싸우게 된 거고?」

   「말리지도 않았어요. 그냥 하지 말라고 하자마자 걔가 화를 냈으니까요.」

     

   「으음……」

   「제가 잘못한 건가요?」

     

   선생님은 그 상황에 이제 초등학생 저학년인 꼬마에게 뭐라고 말을 해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을 것이다.

     

   그저 생명이 소중하다고 하기에는 본인 또한 시설 내부에 거미가 줄을 치고 있었다면 정리를 했을 테니까.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거미가 아닌 아이들이 싸웠다는 사실 자체.

   별것도 아닌 일에 일일이 어른이 개입을 한다면 아이들의 정서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보호자로서 서로의 관계를 개선시킬 필요가 있었다.

     

   「선생님은 시인이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알겠어요.」

   「…응?」

     

   하지만 나에게 그녀의 말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이것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과정이라면 그것을 실행할 뿐.

   생각이 깊어질수록 늘어나는 건 망설임과 짜증뿐이니 굳이 따지고 들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

   .

   .

     

   “이걸 왜 보여주는 거죠?”

   「끝까지 지켜보시죠. 이 이야기를 보시면 당신이 탑을 오르게 된 이유를 알게 될 테니.」

   “……”

     

   그의 말에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나의 일생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 고등학교 학생 여러분! 졸업을 축하합니다.]

     

   당시의 나는 굳이 사람들과 특별한 관계를 만들지 않았다.

     

   간혹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사귀어볼 생각도 있었지만 내 성격에는 맞지 않았고, 애초에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나의 바운더리 안으로 끌어올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성인이 되었을 때,

   나에게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스스슷-

     

   폭우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던 어느 날.

   PC방에서 알바를 하던 와중, 건물 내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매캐한 냄새가 올라왔다.

     

   [이게 무슨 냄새야?]

   [알바! 여기 뭐 타는 냄새 나는데?]

     

   손님이 나간 자리를 정리하고 있던 나는 슬금슬금 연기가 새어 나오는 화장실을 향해 곧장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화장실의 문을 열었을 때, 나의 시야를 사로잡은 것은 환풍기에서 시작되어 주변의 휴지와 나무문을 불태우고 있던 화마였다.

     

   장마로 인한 잦은 비 때문에 천장에 누수가 있었고 하필이면 환풍기의 선이 합선되어 아래에 있던 휴지에 불이 옮겨붙은 것.

     

   [부, 불이야!]

   [미친! 이게 뭔!]

     

   PC방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나는 불을 잡기 위해 소화기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상황. 혼자 진압을 할 수 있는 수준은 이미 넘었다 판단한 나는 투척용 소화기를 냅다 던진 이후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

     

   운이 좋아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날의 사고는 나의 실수로 일어난 화재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학생이 그날 근무하셨던 김시인 씨죠? 해당 건물주가 김시인 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나는 억울함을 토로했다.

   잘못한 것 하나 없이 일어난 자연재해를 내가 배상을 하라니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사회에 내던져진 20살의 고아는 불합리함에 대항할 능력과 지식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젠장…

     

   나는 그렇게 큰 빚이 생겼다.

   그저 대학을 위한 등록금을 마련하고 일상을 유지할 소소한 돈이면 충분하다 여겼는데 감당해야 할 짐이 산더미처럼 늘어난 것이다.

     

   [일을 하고 싶다고요?]

     

   살아야 했기에 일을 구했다.

   새벽에는 일용직 현장에서 일상을 유지할 돈을 벌었고 저녁에는 편의점에 가 빚을 갚을 돈을 마련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밝아졌고 비로소 목표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에 사력을 다해 이 고통을 내 손으로 끊어내기를 바랄 뿐.

     

   그리고 가까스로 버텨 낸 수년의 고통 끝에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주)스카이 게임즈: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수년을 준비하던 회사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

   .

   .

     

   “……응?”

     

   하지만 당시의 사건에 대한 감상도 잠시.

   나는 영상 속의 세상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변화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건 뭡니까?”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과거의 영상을 보던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저 과거의 일이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내가 겪었던 과거와는 묘하게 흐름이 달랐던 것.

   황당하게도 한참이 흘러서야 시작될 세상의 멸망이 영상 속의 세상에 들이닥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뭔가 이상하죠?」

     

   옆에서 함께 영상을 보던 백색의 성좌가 나를 보며 말했다.

   씁쓸한 미소. 하지만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나의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내가 알던 시기보다 훨씬 빠르게 포탈이 나타났다.

   세상에 탑이 나타나기도 전에 괴물들이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물들을 피해 숨어 살기 시작했다. 간혹 괴물들에게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싸움은 인간들의 패배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세상에 탑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초인적인 힘을 얻고 그 힘을 활용해 탑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고 나는 영상 속의 나와 동료들의 행적을 돌아보던 와중에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건 제가 아닙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세요.”

   「이어서 보시죠.」

     

   영상 속의 나는 마침내 성좌가 되었다.

   내가 행했던 편법이 아닌 정석적인 방법으로 격을 얻고 성좌가 되어 10층을 다스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상 속에 나타난 나의 옆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동료가 죽어 버린 세상. 지구에서 함께 탑을 오르기 시작했던 모든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유일한 생존자인 나를 보며 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강한 허무를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영상 속의 나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괴로운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고 살아남았다 여겼으나 남겨진 자의 삶은 죽음보다 나을 것이 없는 저주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대는 그대의 삶을 후회하는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후회.

     

   충분한 힘이 없었던 것에 후회가 되었고 위기를 피하며 성장하지 않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렇다면 나는 그대에게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주고 싶다. 만약 그대가 지나간 시간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고개를 들었다.

   초월자가 손을 내민다.

   그리고 그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하나의 계약을 제시했다.

     

   [다시 탑을 올라라. 원한다면 그대가 일부 사건과 인과를 조정하는 것을 허락하지. 대신 그대는 탑의 정상에 올라 다시 한 번 나의 제안을 들어다오.]

     

   “……”

     

   그것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나를 바라보던 백색의 성좌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운다.

     

   「이 이후로는 당신이 살아왔던 그 삶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설마 이 말을 다 믿으라는 말씀이십니까?”

     

   나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믿든 안 믿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당신이 우리와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충분히 강해져서 이곳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

     

   「당신의 세상에 탑이 나타난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닙니다. 튜토리얼에서 몇 차례 죽을 뻔했던 것 또한 우연이 아니었고 탑의 저층에서 다른 성좌들과 만나게 된 것 또한 우연이 아닙니다.」

     

   그의 말에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 내가 알아야 할 정보는 따로 있었다.

     

   “……영상 속의 그 존재가 하고자 하던 제안이 무엇입니까?”

     

   시간을 뒤틀고 나를 과거로 보내 다시 탑을 오르게끔 만든 이유.

   나의 후회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동시에 그런 존재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 당신은 당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나는 특별한 존재인가.

   솔직히 말해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침묵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

     

   「우리는 당신이 이 탑의 주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나는 조용히 인상을 찌푸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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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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