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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2

       

       

       『으하하! 다시 봐도, 참 예절도 바르고 훌륭한 녀석이야. 음!』

       

       고급스러운 지나(支那; 중국) 요릿집에서 함께 식사를 마친 백철연이 먼저 돌아간 이후, 무라사끼 종로경찰서장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붉어진 얼굴로 흡족하게 말했다. 

       

       『자처해서 불량학생을 잡겠다니! 학업만 해도 바쁠텐데, 그야말로 스스로의 안위는 도외시하고 오로지 일본의 평화와 안전을 위하는 마음가짐이 아닌가? 훌륭해! 우리 일본에 저런 생도가 많다면, 이 경찰직에 몸담은 나도 걱정이 없을 텐데 말이야!』

       

       그 말에, 서장의 아들 무라사끼 겐지가 투덜거렸다. 

       

       『흥! 대단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래봐야 조선인.』

       『하아? 고라(이놈)—!』

       

       철썩-!

       

       서장은 테이블 너머로 팔을 뻗어 아들의 뺨을 냅다 후려치고는 외쳤다.

       

       『자세를 바르게 해라, 겐지! 내지인 중에서도 쓰레기같은 녀석이 얼마나 많은데, 조선인이라는 것이 뭐가 문제냐! 오히려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나 애국적인 생도라니, 일본인으로서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겐지 너도 본받도록 하거라!』

       『쳇……』

       

       괜히 한마디 했다가 따귀를 맞고 잔소리까지 들은 무라사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수련을 하고 오겠습니다.』

       『좋아. 너무 늦지 않게 오거라.』

       

       그렇게 요릿집을 떠나 혼자서 무도관으로 간 무라사끼는, 도복으로 갈아입고 검을 휘두르며 생각했다. 

       

       ‘쳇! 건방진 조선인 녀석.’

       

       백철연. 한때는 무라사끼도 그를 조선인이라고 업신여기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불의를 참지 못하는 녀석의 태도는 무라사끼에게 꽤 깊은 감명을 주었다. 당시 불량학생들과 어울리던 무라사끼도, 백철연 덕분에 다시금 정의(正義)에 대해 생각하게끔 된 것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대동아공영회라는 불법 테로-집단에 맞서 싸우는 동료까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건방진 조선인’이니 뭐니 말은 하면서도, 무라사끼는 이미 백철연을 한 명의 사나이로 인정한 것이다.

       

       그를 보고 있자면, 마치 과거 명치유신(明治維新)을 이끌었다는 지사(志士)들과도 같은 풍모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자신보다 큰 세력에 대항해 큰 일을 도모하려는 사나이……. 그것은 과연, 함께 남자로서의 일을 해볼 만한 사내인 것이다. 

       

       ‘나도 더 강해지지 않으면.’

       

       무라사끼는 생각했다. 그런 백철연과 함께 큰 일을 이루자면, 자신도 더욱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밤 늦게까지 검을 휘두르고, 느즈막한 시간이 되어서야 무라사끼는 무도관에서 나왔다.

       

       그렇게 초승달 아래, 경찰 관사로 돌아가기 위해 가로등 켜진 길을 걷다가, 으슥한 길목을 지날 즈음— 

       

       ‘……음!’

       

       무라사끼는 뒤에서 한 무리의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고, 곧장 번개같이 검을 뽑으며 외쳤다.

       

       『누구냐!』

       『우왓, 잠깐! 우리라고.』

       

       그 목소리를 들은 무라사끼는, 뽑았던 칼을 칼집에 납도하며 중얼거렸다.

       

       『……너희들이냐.』 

       『쿠헤헤…… 오랜만이야, 겐지.』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무라사끼와 동일한 교복을 입은 세 명의 남학생이었다. 그런데 놈들의 교복은 징을 박아놓거나 사슬을 달아놓은 등 개조되어 있었고, 교모(校帽)는 일부러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곳곳에 구멍까지 뚫어놓았다.

       

       딱 봐도 불량학생같은 모습의 삼인방을, 무라사끼는 잘 알고 있었다.

       

       ‘미도 히데미(三戶秀實), 다까시마 요시오(高島義雄), 도모다 이찌로(友田一郞)…….’ 

       

       어떻게 모르겠는가. 중학생 시절부터 어울리던 패거리였지만, 경성엽사전문학교에 입학한 뒤 학기초에 다른 반으로 갈라져버린 이후로 소원해진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은 무라사끼로서는 이제 다시는 가까이 할 생각도 없는 녀석들이었고 말이다. 그래서 무라사끼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날 기다린 모양인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

       『아아, 다름이 아니라……』 

       

       불량학생 중 한 녀석이 짧은 잭나이프를 마치 손버릇처럼 손바닥 안에서 굴리며 대답했다. 

       

       『들어 봐. 일전에 시내에 있는 카훼-에 갔는데 말야, 못생긴 여급을 내놓는게 마음에 안 들어서 우리가 좀 날뛰었거든.』

       『날뛰다니.』 

       『별 건 아니고, 가게 주인을 좀 두들겨 패 줬지. 그런데 그 놈이 젠장, 경찰에 신고를 한 것 같단 말이지…….』  

       『그게 너희들이었냐!』

       

       무라사끼도 자기 아버지로부터, 경성 부내에서 불량학생들이 설친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 불량학생들이 각성능력자라고도 들었기에 설마일까 했는데, 정말로 옛 친구들이었다니.

       

       잭나이프를 깔짝거리던 불량학생 다까시마는 비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겐지 네가 좀 덮어줄 수 없는지 부탁을 좀 하러 왔지. 그래, 예전처럼 말이야. 예전에는 너도 우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이런 일이 있으면 네 아버지의 권력으로 덮어버렸잖아? 그러니—』

       

       철썩—!

       

       다까시마의 말은, 무라사끼가 뺨을 호되게 후려치는 바람에 이어지지 못했다. 무라사끼는 휘청거리는 다까시마를 확 밀치고는 불량학생 패거리들에게 외쳤다.

       

       『너희들, 정신을 차려라! 난 그런 한심한 짓은 이제 그만두었다! 지금이 어느 시국인데 불량한 짓거리냐! 옛 우정을 생각해 아버지에게 이르지는 않겠지만, 너희들을 도와주지도 않겠다!』 

       『이봐, 겐지……』

       『더는 듣지 않아! 사라져라!』

       

       무라사끼는 그렇게 호통을 치고는 자리를 떠났다. 무라사끼가 화를 내며 떠나간 이후, 불량학생들은 어둠 속에 쪼그려 앉으며 투덜거렸다.

       

       『쳇…… 더럽게 아프군. 히데미, 담배 좀 줘.』

       

       무라사끼에게 따귀를 맞은 다까시마가 그렇게 말하자, 포마드로 머리를 넘긴 불량학생이 담배를 한 개피 건네주며 말했다.

       

       『옛날부터 손이 무서운 녀석이었으니까, 겐지는……. 그나저나 이거 큰일이군. 겐지 녀석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린 곤란하다고.』

       

       그 말에, 옆에 앉아있던 통통하고 멍청한 인상의 불량학생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겐지 녀석은 왜 저렇게 된 거야? 그 천하의 무라사끼 겐지가, 이제는 마지메(真面目; 성실함) 그 자체가 되다니!』 

       

       그러자 부어오른 뺨을 부여잡고 담배를 들이마시던 다까시마 요시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아…… 아직도 모르냐, 이찌로? 겐지 녀석이 변절한 이유야 뻔하잖아. 시라바야시인가 뭔가 하는 조선인 놈과 어울린 뒤부터라고나 할까.』 

       『아! 시라바야시라면, 옆 반의 가다부쓰(堅物; 샌님)같은 그 녀석 말이지. 조선귀족의 자식이라던데.』

       『그래. 그 놈이 겐지에게 헛바람을 넣은 게 뻔해!  하지만…… 흥! 그래봐야 조선인 놈이지. 두고 봐.』 

       

       다까시마 요시오는 어둠 속에서 쭈그려 앉은 채, 잭나이프를 혀로 핥으며 말을 이었다.

       

       『겐지로부터, 그 시라바야시라는 조선인 놈을 떼어놓을 테니까…….』

       

       

       

       ***

       

       

       

       “유하~”

       “……철하.”

       “이젠 척하면 척이네.”

       “……이제 그것 좀 안하면 안 되오?” 

       “왜?”

       “왠지 부끄럽소만……”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찌감치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며, 오늘도 우리 분대원들을 위해 인간 에어컨 역할을 수행해줄 이유하와 인사를 나눴다.

       

       “부끄러울 게 뭐가 있냐. 얼마나 사이좋아보이고 좋아. 어우, 덥다. 유하야, 냉기 좀.” 

       “그대라는 사람은……! 후우, 됐소. 그나저나,” 

       

       나에게 찬 바람을 몰아주던 이유하가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물어왔다.

       

       “그대 팔뚝에 그것은 대체 무엇이오?” 

       “아아. 이거 말이지.”

       

       나는 웃으며 팔뚝에 찬 완장을 쓸어만졌다. ‘警察(경찰)’이라는 한자가 노란 글씨로 또렷하게 새겨진 청록색 완장.

       

       어제는 서장과 무라사끼 녀석과 함께 청요릿집에서 단란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이 완장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이 완장을 차고 등교한 것이다.

       

       그러니 지나가던 학생들이 모두 나를 힐긋힐긋 쳐다보고, 복도에 몰려있다가도 길을 비켜주는 것이 아닌가. 

       

       ‘뭐지, 이 든든함은……?’

       

       단순히 대동아공영회 소속 교수들을 견제하기 위해 차고 온 것 뿐이었지만, 그 효과는 내 생각보다 굉장했다. 모두가 나를 조심하고, 내 눈치를 보는 것이다……!

       

       완장!

       

       완장에는 그런 힘이 있다. 비록 남에게서 권위를 빌려온 것에 불과하지만, 뭐라도 된 듯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저기, 시라바야시 군……? 내 거랑 비슷해서, 시라바야시 군이 나 대신 급장이 된 줄 알았어…… 근데 경찰이라고 쓰여있네……?』

       

       소심한 성격이지만 출석번호 1번인 탓에 지금까지도 級長(급장) 완장을 차고 있는 아이까와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고,

       

       『나니나니(뭐야뭐야)? 시라바야시 군, 설마 경찰이 되어버린 거야? 아하! 드디어 소오 군을 체포하려는 거구나!』

       『뭣이라? 제, 제길! 날 잡아가려는 생각일랑 말게! 이제는 불온한 책도 읽지 않으니……』

       

       양복자의 실없는 농담에 송병오가 지레 겁먹고 질색했지만, 뭐, 내가 우리 분대원들을 체포할리가 있겠냐. 

       

       나는 교실 시계를 슥 쳐다보았다. 아직 수업이 시작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나는 분대원들에게 말했다.

       

       『음. 잠깐 나와 봐.』

       

       나는 분대원들을 이끌고 본관 뒷편의 공터로 향했다. 어제 렌까와 이야기를 나눴던 장소였다.

       

       『별 건 아니고, 명예경찰이라는 건데…… 불량학생을 잡겠다는 핑계로 종로경찰서장에게서 받아왔어.』

       『허억…… 자네, 서장에게서…… 불량학생을……!』

       『뭐, 사실 그건 핑계고, 대동아공영회 소속의 교수들이 나한테 엄한 짓 못하게 하려고 완장을 찬 거야. 설마, 내 뒤에 경찰이 있다고 이렇게 광고하고 있는데 놈들도 나를 건드리지는 않겠지.』

       『과연! 그런 이유에서인가!』

       

       내 설명을 들은 송병오는 그렇게 감탄하더니 곧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헌데, 그러면 정말로 불량학생을 잡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 괜히 피곤한 일을 떠맡은 것이 아닐까 모르겠네그려.』

       『서장에게는 내가 불량학생을 잡기 위함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정말로 불량학생을 잡고 다닐 필요는 없겠지.  ‘찾아봤는데 없더라~ 우리학교 학생이 아니더라~’ 라고 하면 그만이야. 물론, 만약 우리학교 녀석이라면 겸사겸사 잡으면 좋은 일이고……』

       

       그렇게 설명을 마친 나는 문득 무라사끼에게 물었다.

       

       『잠깐, 무라사끼. 그 불량학생이라는 거, 혹시 네 예전 패거리 아니야?』

       

       내가 그렇게 묻자,

       

       『뭐라고!』

       

       무라사끼 녀석은 펄쩍 뛰며 깜짝 놀란다. 놀라는 걸 보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나는 재차 물었다.

       

       『그 불량학생들이라는거 각성능력자일지도 모른다는데, 혹시 네 예전 패거리 아닐까 해서. 너 학기 초에만 해도 불량배들하고 어울렸었잖아. 물론 걔네들하고는 다른 반으로 갈라졌지만 혹시 아직 알고 지내지 않을까 싶어서.』

       『뭐…… 젠장! 나는 모른다!』

       

       무라사끼 녀석은 그러더니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 나에게 묻는지 모르겠군! 내가 알까보냐! 한때는 나도 불량한 놈들과 어울렸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를 일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네 놈은!』

       

       혹시나 뭐라도 알까 싶어서 물어봤건만, 돌아오는것은 녀석의 과민반응 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불량학생들이랑 알고 지내냐고 묻는게 기분 나빴나.’

       

       뭐, 스스로 생각하기에 흑역사 같은 것이려나.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화를 내다니,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아니면 아닌 거지, 왜 화를 내냐.』

       『흥! 네 녀석이 헛소리를 하니까다! 이 건방진 조선인 녀석이……!』

       

       무라사끼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하여간……

       

       이 녀석이 발끈하는 포인트는 당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여기까지!

    어느새 6월의 마지막 날이네용!! 세상에! 시간이 왜이리도 빠른지…… 무섭읍니다……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는 내일 다시 돌아오겠습니당! 맛저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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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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