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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3

       로테와 레니냐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돈독해졌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다른 엘프와 사귀는 것은 어려워졌다. 특히 하이엘프와의 거리를 좁히기가 어려웠다. 하이엘프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다들 배타적이었다.

       

       그중에서도 로스차일드 가문. 이들은 금안족을 극도로 배척하며 로테까지 경계했다. 

       

       로스차일드가 종족차별주의의 대표주자였다. 민주사회에서도 이들은 여전히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 이는 그만큼 금안족을 혐오하는 엘프들도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레니냐, 앞으로도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

       “고마워…. 너 정말 착한 아이구나.”

       

       레니냐는 귀를 파닥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을 한 날 이후로 로테는 매일 별사탕을 세 개씩 받을 수 있었다.

       

       레니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이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저기,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잠깐 기다려 봐.”

       

       로테는 정령마도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레니냐를 찾아 물어보는 일이 빈번했다.

       

       “…그래서 정령에 든 마력을 측정하는 기준이 마나 에너지 밀도가 되는 거야. 확률밀도함수가 그래서 중요한 거고.”

       

       레니냐는 정령을 다루지 못하는 종족임에도 정령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마법은 못 쓰는데 이론만큼은 완벽한 누군가가 떠오른다.

       

       “내 친구 중에 너 같은 애가 있는데, 소개해 주고 싶어.”

       “금안족이라고 했지?”

       “응.”

       “엘랑카야 출신 금안족이라니, 나도 만나보고 싶네.”

       

       겨울방학 때 에테르를 여기로 데려와 볼까.

       

       그런 희망적인 생각은 얼마 안 가 깨져버리고 말았다.

       

       [‘증기의 비’ : 틸레트 아카데미에 절멸급 마수 4체 출현]

       

       “이, 이게 뭐야…….”

       

       어느 날, 아침 신문을 읽던 로테의 손이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했다.

       

       증기의 비. 해당 사건이 머지않아 엘프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용은 이러했다.

       

       일리야드와 마찬가지로 틸레트에도 절멸급 마수가 침공했다. 반타 토터스. 녀석으로 인해 수많은 학생과 교직원, 마침 축제를 즐기던 민간인들까지 희생되었다. 상당수의 학교 건물이 파괴되었으며, 국가 전반이 한때 마비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현장에는 반타 토터스 말고도 절멸급이 3체나 더 있었다. 이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로베스피에르 이사장이 죽었고, 황제는 붕어하였다.

       

       “아…….”

       

       자신이 없던 사이에, 이렇게나 큰일이 벌어졌다.

       

       청천벽력이었다.

       

       “에테르는, 에테르는 어떻게…….”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떠오르는 고민이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학급 친구들의 상황을 알아야만 했다.

       

       [아직 수습 중이란다. 제대로 확인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렴.]

       

       어찌어찌 받은 아버지의 핫라인은 두 줄이 끝이었다. 이것도 그나마 총장님께 부탁해서 얻어낸 것이다.

       

       증기의 비 이후로 하이엘프들은 로테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저, 묵념하고 추도해 주었다. 한동안 일리야드의 시간은 푸른 물결 속에서 잔잔하게 흘러갔다.

       

       후속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는.

       

       [‘증기의 비’ 사태의 원흉에는 인간형 마수가 있었습니다. 처음 두 명은 블랜튼 공작가에 속한 잭 블랜튼 공작과 로즈마리 블랜튼 공녀였고, 다른 한 명은 현장에 있던 에테르라는 이름의 학생이었습니다.]

       

       [로즈마리 공녀와 에테르 학생은 금안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를 두고 금안족이 마왕군의 수뇌가 아니냐는 추측이 강하게 돌고 있습니다.]

       

       [마수의 피가 검은 것을 고려하여 의료계에선 카우렐리아의 모든 국민이 불시에 채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는데?”

       

       리케는 보도자료를 레니냐의 책상 앞에 던져놓았다. 사나운 눈초리였다. 마치 레니냐가 마수라는 걸 확정 지은 모양이었다.

       

       “혹시 네 피도 시커먼 거 아니야? 네 앞날처럼.”

       “너희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로테는 평소보다 더 흥분하며 일어났다. 레니냐는 제발 좀 그만하라고 말렸다. 그럼에도 로테가 멈추는 일은 없었다.

       

       “그런 걸로 친구를 의심할 거면 자리로 돌아가서 공부나 해!”

       

       평소보다 더욱 강경한 어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로테의 정신상태는 지금 말이 아니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이대로라면 머리가 화산처럼 펑, 하고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인간형 마수에는 에테르라는 이름의 금안족 소녀도…….]

       

       […피가 검은색이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떠났다며 현지 언론은 밝혔다.]

       

       “이것 봐, 이 에테르인가 뭔가 하는 녀석도 결국 마수였잖아. 레니냐라고 다를 바 있겠어?”

       “레니냐는 마수가 아니야.”

       

       에테르는 마수가 아니야.

       

       “나랑 함께 다녀서 안다고. 내가 아플 때 간호해 주었다고….”

       “저기, 로테?”

       “집에 초대해서 목욕도 같이했고, 플레어도 같이 만들었고, 건강검진 받았을 때 피도 붉은색이었다고 했단 말이야. 그런데 왜…….”

       “로테!”

       

       보다 못한 레니냐가 짧게 소리를 질렀다. 로테가 아, 하는 탁음을 내며 어깨를 떨구었다.

       

       “분명 오보일 거야.”

       “오보…?”

       “그래, 오보. 기자 중에도 자료 조사 제대로 안 하고 자극적인 것만 내는 사람들 많잖아. 그런 사람이 낸 오보일 가능성이 높아, 이런 건.”

       “그, 그렇겠지?”

       

       레니냐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일단 상황을 보고 로테를 안심시키기로 했다. 

       

       레니냐가 로테의 모든 면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얘가 그 친구를 많이 아꼈구나.

       

       친구에게 의존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레니냐는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자신도 로테에게 기대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혹시 몰라. 틸레트로 돌아가 봐야 해.”

       “그런데 여기 쓰여있잖아. 블랜튼 공녀하고 에테르라는 네 친구, 지금은 행방불명이라고 하니까.”

       “이것도 오보 아닐까…?”

       “그래, 오보였으면 좋겠다.”

       

       레니냐는 적당한 말을 더 꺼내 로테를 계속 안심시켰다.

       

       그래도.

       

       “도대체가….”

       

       로테는 막막했다.

       

       후속 보도를 받은 이후, 일리야드 아카데미의 분위기는 험악하게 변했다.

       

       우선 레니냐를 매도하는 학생 수가 늘어났다. 리케 로스차일드를 중심으로 본교생들이 뭉친 것이다.

       

       너희 본진으로 돌아가라, 마왕군 끄나풀 새끼야. 그런 소리가 들릴 때마다 레니냐는 괴로워했다.

       

       그렇게 2학기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마무리 지었다. 그동안 로테는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자살 생각을 안 한 것이 용할 정도였다.

       

       왜냐하면.

       

       “…….”

       

       에테르가 준 우정 반지가 있었으니까.

       

       “나는, 너 믿어.”

       

       내가 널 찾지 못하더라도, 넌 나에게 와서 틀림없이 해명해 줄 테니까.

       

       무슨 있이 있더라도 단짝을 믿는다. 심성이 고운 너를 믿는다. 조금은 과격하지만, 항상 올바른 길을 가려고 하는 너를 믿는다.

       

       연구를 좋아하는 너를 믿고, 불행한 과거를 지녔지만 극복하고자 했던 너를 믿고, 함께 궁극의 화계마도를 완성하자고 했던 그날의 약속을 믿는다.

       

       “지금은 돌아가도 아무런 소득이 없을 거야.”

       

       에테르가 아직 틸레트에 있다면, 헤를라인 선생님이나 프레이가 최선을 다해 변호해 줄 것이다. 그 두 사람도 에테르를 크게 신뢰했으니까.

       

       혹시 에테르가 틸레트에 없다면, 그래서 위치를 알아낼 수 없다면. 자기 친구는 틀림없이 자신이 있는 일리야드로 올 것이다.

       

       만약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땐…….

       

       [스트레스 수치가 160에 도달했습니다.]

       [‘정열의 반지’ 효과에 따라 ‘극복’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내가 널 찾으러 갈게.

       

       로테는 그리 다짐하며 겨울방학을 일리야드에서 맞이했다.

       

       

       **

       

       

       [세실 르네이 총장님께선 틸레트와 일리야드를 임시 통폐합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는 비상조치에 근거한 것입니다. 학생 여러분께서는 이 점에 각별히 유의해 주시고 다음 학기 수강 신청을…….]

       

       로테는 일단 일리야드에 남기로 하였다.

       

       “왜 남는데?”

       “네가 걱정돼서.”

       

       에테르를 찾는 것도 문제였지만, 자신이 떠나면 레니냐가 괴롭힘을 더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레니냐는 보기보다 심성이 유약하다. 아닌 것 같으면서도 마음이 여린 친구다. 그러니까 자신이 곁에서 지켜줘야 한다.

       

       고통받는 약자가 있으면 손을 내민다. 이것은 살리에르 가문의 가훈이다. 따돌림받는 친구를 외면하면 살리에르의 일원이라 불릴 자격이 없었다.

       

       “아버님에게는 연락드렸어?”

       “응. 에테르는 아버지가 찾을 테니까 나는 여기서 계속 공부해도 좋대.”

       “그래, 그렇구나….”

       

       레니냐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표정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귀는 알게 모르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맞다. 나 오늘 자원봉사 신청했어. 잠깐 나가봐야 할 것 같아.”

       “그래, 잘 다녀와.”

       

       그렇게 로테가 도착한 곳은 대운동장이었다. 축구장 두 개를 붙여 놓은 크기의 넓은 장소. 이곳에서 아카데미 내년 신입생들과 편입생들이 하루 차이로 시험을 치른다.

       

       현재 일리야드는 교직원 인력이 부족했다. 심지어 학생 자치회로도 일손이 모자랐다. 그 때문에 실기 도구를 나를 자원봉사자를 받고 있었다. 로테는 여기에 지원한 것이다.

       

       이유?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사람을 돕는 게 좋았다.

       

       아니면 이런 일을 하면서 복잡한 생각을 잊을 수도 있었고 말이다. 어느 쪽이든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실례합니다. 오늘 자원봉사 왔는데요, 제가 무얼 하면 좋을까요?”

       “마침 잘 오셨어요. 저쪽 창고 있는 곳 보이시죠? 저기 교수님 한 분 계실 텐데, 가서 조금 도와주세요. 아무래도 혼자서 힘쓰는 일을 많이 하시다 보니 지치신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로테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했다. 이미 들었던 대로 누군가가 창고 안쪽에서 책상을 꺼내고 있었다.

       

       “저기요, 제가 뭐 도와드릴게…….”

       

       거기까지 말하다 말고, 로테의 사고가 뚝 멈추었다.

       

       정갈하게 묶은 검은색 머리카락. 어디선가 본 듯한 키와 체형. 

       

       거기에.

       

       “어어, 자원봉사자니?” 

       

       불과 두세 달 전까지만 해도 숨 쉬듯이 들었던 나긋나긋한 목소리까지.

       

       “우선 이것 좀 바깥으로 가져다 놓아줘.”

       

       여인이 구슬땀을 닦아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로테는 그 자리에서 우뚝 굳어버리고 말았다.

       

       “에, 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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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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