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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3

       회의실 밖에서 샤를로트를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대화가 거의 결여되어 거의 앨리스 쪽에서 매달리다시피 하던 관계인 황제와 앨리스 사이와는 다르게, 샤를로트와 국왕 사이의 관계는 꽤 양호한 부녀관계였다. 일반 서민 가정집만큼 훈훈한 관계는 아니라고 해도 가족애 자체는 확실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국왕은 샤를로트가 나를 도우려고 할 거라고 파악한 모양이었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내가 샤를로트와 마주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물론 나한테 그런 ‘방법’ 같은 것은 먹히지 않는다. 내 능력이 마비되었다면 모를까, 시간을 몇 번이나 돌릴 수 있는 나였으니까.

        

       게다가 원래 살던 세상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방법을 지금의 나는 생각해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서, 슬슬 아랫배가 나오기 시작한 삶에 찌든 회사원이었던 나와는 다르게, 이곳에서의 나는 나름대로 온갖 훈련을 받아왔으니까.

        

       남들 모르게 샤를로트의 방이 있는 쪽의 지붕으로 올라가 밧줄을 묶어 창문까지 타고 내려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

        

       샤를로트가 딱히 방에 구류되어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 아이들과 만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은 정도겠지.

        

       방안 의자에 앉아있는 샤를로트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어딘가 야위거나 해 보이지는 않았다. ……당연한 소리인가? 마지막으로 본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세상에 친구 얼굴 보자고 지붕을 타는 황녀는 당신 하나뿐일걸요.”

        

       나에게 창문을 열어주며 샤를로트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굳이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창문 안으로 훌쩍 들어왔다.

        

       샤를로트의 방은…… 깨끗했다. 뭐, 사실 내가 황궁에서 쓰던 방도 꽤 깨끗하긴 했다. 사실 왕족이나 황족이 쓰는 방이 더러울 이유가 없긴 했다. 시간마다 하인들이 와서 치워줄 테니까.

        

       다만, 분위기 자체는 나나 앨리스의 방보다는 조금 더 포근하고, 여성스러웠다. 음, 소녀다운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이 시대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빅토리아풍의 디자인이었으니까. 실제 빅토리아시대보다 조금 더 현대 감각으로 다듬어진 디자인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예스러운 느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손님맞이용 의자에 꽃이 수놓아져 있다든지, 테이블에 여러모로 장식이 많이 달렸다든지…… 그래도 과하지는 않아서 고급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지금 밖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왔나요?”

        

       말없이 샤를로트의 방 안을 둘러보는 나에게 샤를로트가 물었다.

        

       “그보다는, 괜찮은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제 고향에서, 제 방에 있는데 괜찮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 표정을 보면 딱히 괜찮아 보이지는 않는데.

        

       안 그래도 고민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많을 텐데 그런 말을 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이런 대낮에 지붕을 통해서 왕녀의 방에 침입하는 인물이 있는데 들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별로 괜찮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네 표정이 괜찮지 않게 보인다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나름대로 농담을 던졌다.

        

       “…….”

        

       그리고 농담은 아주 훌륭하게 나쁜 방향으로 작동했다.

        

       “조금 전에 밖에서 폭발 소리가 들리던데요.”

        

       “…….”

        

       음.

        

       사실은 지붕 위에도 저격수가 몇 명이나 올라가 있어서 그 저격수들의 눈길을 빼앗기 위해서 작은 폭발을 일으키긴 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리고 왕궁 밖에서 일어난 폭발이니 그냥 작은 소동으로 끝날 겁니다.”

        

       내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샤를로트는 나를 흘겨보았다—

        

       —그리고 그 흘겨봄은 피식, 하는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푸흣, 하고 터져 나온 웃음소리는 어이없어서 나는 헛웃음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그 뒤에 이어진 웃음소리를 들으면 샤를로트는 이 상황이 정말로 웃긴 모양이었다.

        

       “……하아.”

        

       한동안 소리 내서 웃은 샤를로트는, 그런 자신을 보고 굳어버린 나에게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참 어이도 없네요. 보통 이런 상황에서 방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공주와 사랑에 빠진 왕자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

        

       “폭탄을 터뜨린 것도, 창문을 타고 들어온 것도 제 잘못이라고 한다면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만, 그거 하나만큼은 제 잘못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도 존나 잘생긴 남자 되기 vs 존나 예쁜 여자 되기라는 선택지가 있었다면 당당하게 남자 쪽을 선택했을 거라고.

        

       *

        

       회의장에서 소란이 있기는 했지만, 사실 왕국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어쨌든 ‘누군가는’ 확인해야 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오늘, 혹은 내일 당장 쳐들어갈 것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 전에 대충이라도 수습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왕국의 입장이나, 왕실과 귀족의 입장 차이, 제국에서 서서히 피어오르는 혼란, 통수권자가 갑자기 사라진 제국군의 혼란, 그런 것들이 ‘법국으로 가자’라는 것이 결정되자마자 바로 사라질 리가 없다.

        

       게다가 왕국 귀족들도 내 앞에서나 별다른 반박을 못 한 거지, 내가 방을 나가고 나서는 자기네끼리 대판 싸웠다고 하기도 하고.

        

       ……뭐, 그래도 선택지는 없다.

        

       법국에서 솟아오르는 빛이 금방 사라지고 황제가 멀쩡하게 걸어 나오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해프닝으로 끝나겠지만, 솔직히 왕국 수뇌부에선 그렇게 희망적인 관측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모양이었다. 법국과의 관계니 뭐니 하는 말을 하긴 하지만, 결국에는 ‘다른 나라’일 뿐이다. 아무리 왕국에 여신교도가 많아도 그렇지 않은 이들의 세력도 상당하니까.

        

       그 작은 나라의 눈치를 보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자존심 상할 일이지.

        

       “게다가 이벨리아 왕국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샤를로트는 내 쪽으로 종이 한 장을 밀었다. 종이에는 멀리 보이는 법국의 상황을 찍은 사진 한 장이 인쇄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이벨리아 왕국에 대한 소식이 몇 줄 쓰여 있었다.

        

       법국은 벨부르 왕국과 이벨리아 왕국의 사이에 끼어있는 작은 도시국가였다. 이벨리아 왕국도 벨부르 왕국 못지않게 여신교의 영향을 받는 나라이긴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법국의 상황을 ‘확인’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모양이다.

        

       물론 법국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벨리아 왕국이 조사하는 것보다는 벨부르 왕국이 조사하는 쪽이 더 명분이 서긴 한다. 일단 그 자리는 벨부르 왕국과의 타협 끝에 법국의 땅이 된 곳이니까.

        

       하지만 시간을 끄는 것은 불리하다. 시간을 끌수록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이 법국의 상황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될 테니까.

        

       “신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벨부르도 중요한 부분에선 이미 선진적인 기술을 도입하고 있어요. 이렇게 보여도 비행기도 몇 기는 있으니까요. 우리가 자고 있던 몇 시간 사이라면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해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죠. 이벨리아 왕국에도 대사관은 있으니. 제국 수준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들고 읽던 종이를 샤를로트 앞으로 다시 밀어주며 말했다.

        

       “제국은 황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맡기고 있으니까요. 제국에 정보부가 없는 것은 아니고, 각 군이나 귀족들의 정보수집 능력이 떨어진다는 생각도 하지는 않습니다만…….”

        

       결국 가장 중요한 정보를 가진 존재는 황제였고, 황제는 그 정보를 남들에게 거의 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정보를 수집하는 존재들도 제국의 첩자들보다는 황제가 직접 파견한 인물들인 경우가 많고.

        

       “그런가요?”

        

       내 말에 샤를로트는 보기 드물게 조금은 기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제게 보여주셔도 되겠습니까?”

        

       “이런 정보를 듣고 싶어서 찾아온 게 아닌가요?”

        

       샤를로트의 말에 나는 한순간 입을 다물었다.

        

       음…… 그보다는 정말로 괜찮은지 알아보기 위해 온 건데.

        

       국왕의 말대로라면 샤를로트는 우리를 따라오지는 못할 거다. 원작에서는 벨부르 자체가 혼란 그 자체였기에 왕국 측에서 샤를로트의 위치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 오히려 샤를로트가 일행들과 함께 다닐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제국보다 벨부르의 상황이 덜 혼란스러울 정도였으니까.

        

       데리고 가지는 못해도, 일단 그 전에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좀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샤를로트뿐만이 아니라 함께 온 일행들 전부.

        

       “…….”

        

       생각에 빠진 나를 보고 뭔가 느꼈는지, 샤를로트의 미간이 다시 좁게 모였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라는 말을 들어도 그냥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거니까요.”

        

       앨리스 수준의 독심술은 아니었지만, 샤를로트는 역시 분위기 읽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뼛속까지 왕족이라 그럴까?

        

       “왕녀님께서 가지 못하도록 왕국 측에서 기를 쓰고 막을 텐데요.”

        

       내가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자, 샤를로트의 시선이 살짝 움직였다.

        

       아직도 밧줄이 늘어져 있는 창문 쪽을 향한 시선이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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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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