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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3

       저벅저벅.

         

       나의 귓가로 투박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시야 너머,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

       힘이 느껴지는 발자취가 깊게 새겨졌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듯한 발소리지만, 묘한 진동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필시 태어나면서부터 강자였기에.

       패배라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는 녀석이기에, 보일 수 있는 여유였다.

         

       나는 혀를 찼다.

       설마 이런 별거 아닌 계기로 옛날 생각이 날 줄은 몰랐다.

         

       어린 시절.

       아직 아버지의 손에 거두어지지 않았던 별거 없는 꾀죄죄한 고아.

         

       그런 내 주변을 돌아다니며 한가락 한다고 거들먹거렸던 놈들.

       이름도, 얼굴도 기억 안 나는 녀석들.

       모두 어이없는 이유로 죽어서 시체가 된 녀석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의 품에서 하이에나처럼 물건을 뒤지던 옛 기억.

         

       나는 약간 불쾌해진 감각을 떨치고 전방을 바라보았다.

         

       “…음?”

       “크르륵!!!”

         

       곧이어 등장한 것은 주홍빛의 털과 검은색 줄무늬를 가진 호랑이였다.

       당연하지만, 보통 호랑이는 아니었다.

       크기도 덩치도 훨씬 컸고.

       사람처럼 이족보행.

       하체에는 제 동족을 죽여서 만든 걸로 추측되는 호피 가죽 바지를 입고 있었다.

         

       잘 발달한 인간형의 몸체와 허리춤에 달린 염주로 만든 허리띠까지.

         

       틀림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가 대체 왜 여기서 나와?’

         

       A급 던전 보스, <호천>이었다.

       <야생의 부름>이라고 불리는 백두산에 있는 던전에서 나오는 보스였다.

         

       수인족은 아니지만.

       수인 특유의 우수한 신체와 재빠른 속도를 통해 강력한 권법을 펼치는 녀석.

       원래라면 쉽게 볼 수 있는 보스가 아니었다.

         

       잠깐의 의문.

       곧 한가지 추측.

         

       ‘아, 혹시 <검제의 탑>에서 얘가 출몰하나?’

         

       그럴지도 모른다.

         

       애도 배경설정 같은 걸 보면, 과거 선인에게 도움을 받았다니 뭐니 하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알고 보니 선협 계통 몹이었다라고 하면 앞뒤가 맞는 법이다.

         

       곧, 나를 발견한 녀석은 두 눈에 전의를 불태웠다.

       바로 전투 자세를 취하는 호천.

         

       “크와아아아-!!!”

         

       호천의 입에서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단순한 외침이 아닌, 호랑이 특유의 초저주파를 이용한 사자후.

       영웅(Hero) 등급 스킬, [호웅맹]이였다.

         

       범위내에 있는 대상의 평정심을 깎고,

       추가로 능력치를 감소시키는 매우 좋은 스킬이었다.

       물론, 나에게는 여파가 없었다.

         

       [‘흔들리지 않는 통찰력’이 발동됩니다.]

       [‘인내의 고통 내성’이 발동됩니다.]

       [상태이상: 혼란, 능력치 감소에 저항합니다.]

         

       내가 아무렇지 않아 하자 녀석은 약간 주춤거렸다.

         

       “크르륵…”

         

       그것도 잠시,

       다리를 놀리며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A급 보스인 <호천>은 무시 못 할 상대였다.

       순수하게 버프 없이 기본 능력치만 보자면 나보다도 더 높을 거다.

         

       긴장해야 한다는 건 알았다.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왜일까.

       나는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왜지.’

         

       마치,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는 걸 보는 느낌이랄까.

       약간 하찮다는 생각.

       물론 경계는 계속하였다.

       우습게 여기지도, 방심하지도 않았다.

       그저 놈이 움직이기를 먼저 기다렸다.

         

       그런 내 뜻을 알았던 걸까.

       콰득-!

       양다리에 힘을 준 호천이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크와아아!!!”

         

       다리에 2개 이상의 <이동 속도> 능력이 발동되었다.

       양 손톱을 날카롭게 뽑아, 강렬한 마력을 머금었다.

       영웅(Hero) 등급 스킬, [호쇄참]이 틀림없었다.

         

       <호천>은 전형적인 근력, 속도에 특화된 물리 타입 보스.

         

       실제로도 놈의 손톱이 나에게 닿기까지 2초도 걸리지 않을 거다.

         

       그러나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느렸다.

       너무나도 느렸다.

         

       잠깐의 의아함.

       곧 깨달았다.

       나는 이미 눈앞의 녀석과 비교도 안 되는 속도를 가진 강자와의 싸움을 겪었다.

         

       머릿속에 절로 한 남자가 상기됐다.

       헤진 무복과 삿갓을 머리 위에 두른 낭인이 상기됐다.

         

       ‘쾌.’

         

       <호천>은 그와 비교해서 느렸고, 형편없었다.

       그가 휘두르는 신속의 칼날에 비하면 녀석의 손톱은 굼벵이나 다름없었다.

         

       찰나의 시간.

         

       나는 눈을 감았다.

         

       [미증유의 감]을 펼치자, 팽배하게 퍼져나간 붉은 기운이 내 몸을 덮는 갑주처럼 뭉쳐졌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졌다.

       기억 속의 단말처럼 남아있던 존재가 뚜렷해졌다.

         

       ‘과거, 훈련장에서 팽진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훈련했던 것처럼…’

         

       나는 더욱더 강해지고 확연해진 [미증유의 감]을 기반으로 ‘쾌’의 모습을 투영했다.

         

       일렁-!

         

       곧, 형태가 뒤바뀌는 붉은빛 기운.

       그것은 틀림없이 낭인 그 자체가 되어있었다.

         

       [‘미증유의 감’이 극한으로 발휘됩니다.]

       [‘쾌검’의 묘리가 당신의 전신을 타고 흐릅니다.]

       [‘흑철’이 새로운 주인의 부름에 응합니다.]

         

       어느새 내 손에는 [성자의 검]이 아닌,

       낭인이 사용하던 [흑철]이 들려있었다.

         

       나는 그를 생각했다.

       그가 펼쳤던 일격을 떠올렸다.

       부딪치고 서로 돌아보는 그 순간을 상기했다.

         

       ―훌륭했소.

         

       [흑철]의 검신이 짙은 검은빛으로 물들어 갔다.

       무구에 대한 이해와 자격이 되었기에 보여주는 현상.

         

       어느새 나는,

       낭인 그 자체가 되어있었다.

         

       나는 흑철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베었다.

         

       스릉-!

         

       <호천>의 양팔이 깔끔하게 절단되며 허공을 맴돌았다.

         

       “크…륵?”

         

       호천은 피를 뿜으며 당황하였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느낀 녀석은,

       고통도 느끼기 전에 몸을 뒤로 빼려 하였다.

         

       하지만 나는 더는 녀석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손을 뒤로 당겼다.

       단 한 걸음도 미동하지 않고, 흑철에 마력을 모았다.

         

       파바박-!

         

       목덜미.

       심장.

       마지막으로 미간 넘어 뇌까지.

         

       오랜만에 펼친 [3연 찌르기]가 깔끔하게 호천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쿵-!

         

       호천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뒤룩하고 눈동자가 뒤집혔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혀를 쭉 내밀었다.

       이 모든 순간이 고작 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역천의 눈동자’가 당신의 천재성을 타고 흐릅니다.]

       [‘쾌검’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 높아집니다. 이러한 과정이 몇 번 더 반복될 때 ‘쾌’가 가진 스킬 일부를 영구적으로 습득합니다.]

       [‘3연 찌르기’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파생스킬: ‘일섬 찌르기’를 습득합니다.]

       [‘검술’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총합 레벨 보상으로 근력이 1, 속도가 1 상승합니다.]

         

       *

         

       “후우…”

         

       시험을 마치고, <검천동부>에 대한 입장 자격을 따낸 직후의 일이었다.

         

       밖으로 나가자,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다들 아까 여러 가지 의미로 나를 바라보았던 헌터들이었다.

         

       “방금 보았나?”

       “아니 잘은…”

       “와, 검속 봤어? 진짜 빠른데…?”

       “검후 언니가 데려와서 혹시나 했는데…설마 드디어 제자를 받으신 건가?”

       “에이, 지금까지 한 번도 제자 안 받으셨잖아.”

       “…저 정도 재능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밑에 두어야 하지 않아?”

       “조금 전 사용했던 검술. 도대체 무슨 검법이지?”

         

       여러 가지 말들의 웅성거림.

       그 중, 선글라스를 쓴 한 여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 기억났다! 저 사람. 그 사람이잖아. 이번에 S급 괴수 기린에게 한 방 먹였다던!”

       “…뭐? 아니 분명 젊은 영웅이라며 저건 그냥 애잖아.”

       “저리 어린애가 S급 괴수를 쓰러트렸다고?”

       “…다들 소식이 늦네. 들어오자마자 알아차려야지 그런 건.”

        “아니, 듣기는 했지만, 헛소리라고 여겼지…근데 지금 보니 오히려 소문이 과소평가 된 것 같기도…?”

         

       으음.

       절로 부담될 정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여기저기 기대와 호승심으로 가득한 눈빛이 쏟아졌다.

         

       그러던 도중 뒤늦게 떠오른 의문.

         

       ‘어라?’

         

       잠깐만, 이들이 어떻게 내가 싸운 모습을 아는 거지?

       난 조금 전까지 <탑> 안에 있었는데?

         

       그러자 들려오는 소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 이런 미친?’

         

       거대한 전광판.

       조금 전 나와 <호천>이 싸웠던 장면이 고스란히 촬영되어 있었다.

         

       심지어 눈을 감고 멋진척하는 모습까지!

         

       ‘오우 쉣!’

         

       *

         

       한편, 조금 떨어진 테이블.

       팽진아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하는 유세하를 바라보았다.

         

       자랑스러움이 가슴속에서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유세하라면 당연히 해낼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이리 잘 해낼 줄은 몰랐다.

         

       역시 자신의 수.제.자다웠다.

         

       “흠흠!”

         

       약간의 헛기침.

       팽진아는 어깨를 폈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검후에게 은근슬쩍 제자 자랑을 하기 위해 돌아보았다.

         

       “……!”

         

       이내 움찔했다.

         

       매화검후.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유세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별다른 감정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어린 시절부터 같이 지낸 팽진아는 잘 알고 있었다.

       저건 오히려 강한 욕망을 느낄 때 나오는 그녀만의 버릇이라는 걸.

         

       ‘설마…?’

         

       불현듯 떠오르는 옛날 생각.

       유세하의 빛나는 재능이라면 사저라도 탐낼지 모른다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마디.

         

       꿀꺽-!

         

       팽진아는 침을 삼켰다.

       턱.

       검후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음? 진아?”

       “…사저. 유세하 생도는 제 제자입니다.”

         

       갑작스러운 말이지만, 팽진아는 진지했다.

         

       영문을 몰라 눈을 끔벅이던 검후는 ‘쿡’ 하고 웃었다.

         

       사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무슨 소리냐는 듯 웃어댔다.

         

       “우리 진아~제자 바보네 완전?”

       “노, 놀리지 마십쇼!”

       “농링지망싱쇼~”

       “이이이익!!!”

         

       검후는 귀엽다는 듯 웃었다.

       이내 팽진아의 등을 밀었다.

       어서 유세하에게 가자는 제스쳐.

         

       “……”

         

       그러면서도 그녀의 가느다란 실눈은, 유세하에게 고정된채 떨어지지 않았다.

         

         

       *

         

         

       30분 뒤.

       나는 얼떨결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유세하 생도. 우리들은 필요한 물품 같은 걸 좀 정리하고 오겠다.

       -아, 저도 가겠습니다.

       -괜찮다. 그 아무래도 여자들만의 물건도 좀 있으니…보여주기 부끄럽군.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서 쉬고 있어라.

         

       그 말을 남기고 짐과 필수품을 사러 떠난 세 사람.

         

       나는 뻘쭘함을 느끼며 망부석처럼 앉아있었다.

       주변에는 아직도 관심을 보이는 자들이 우글거렸다.

       접근해 오지는 않고, 그저 어슬렁어슬렁.

         

       ‘…이 정도 되니 좀 부담스러운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기다리는 것도 잠시.

         

       ‘음?’

         

       나는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쳤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여성은 특이하게도 중세 로마 시대에서나 볼법한 황동색 갑주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등 뒤에 몸 크기만 한 원형 방패를,

       어깨에는 기다란 접이식 창까지.

         

       ‘음, 어라?’

         

       묘한 기시감.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1초 정도의 고민.

       이내, 기억났다.

         

       ‘아, 분명…’

         

       이사장 유능해가 보여주었던…

         

       ‘그 명단의 사람이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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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사기급 먼치킨 5★ 캐릭터가 되었다
Score 6.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onis Archive Life》 ‘GAL’ for short. I found myself possessed into the world of this game. Not only that, but I became a 5★ character from the very start, The only male character with ridiculously OP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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