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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3

     

    다음 날, 용사 파티는 새벽 해가 뜨자마자 이동을 개시했다.

     

    불침번은 타냐, 리셰, 발렌, 내 순서였다. 아셀라가 아침에 약한 편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제때 일어나서는 예장도 챙겨입더라.

    혼자서도 잘 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달까.

     

    가볍게 정비를 하고 출발했다. 원래는 전사가 짐꾼 역도 같이 했는데, 이번엔 내게 아이템박스가 있어서 꽤나 편리했다.

     

     

    전진한 지 얼마 안 있어 리셰가 지도를 펼쳤다.

     

    “저희가 타고 온 게이트는 5부대의 것이었어요. 현재 위치는 마왕성 남부 숲이에요.”

     

    “지도는 어떻게 만들었지?”

     

    “후국에서 특수한 측정법으로 제작했다고 해요. 물론 현지를 보고 대응해야겠지요.”

     

    리셰가 발렌에게 대답했다.

     

    “마왕성은 결계가 있어서 침입이 들키면 20층 내내 강력한 마족을 상대하며 올라가야 해요. 피하는 게 상책이죠.”

     

    “잠입이 필요합니다.”

     

    “몰래 들어가려면 여기저기 흩어진 네 개의 결계석이 필요해요. 일종의 통행증이네요.”

     

    자료에는 네 개의 돌이 그려져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여기 숲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획득하는 즉시 다른 부대의 게이트로 이동해 속전속결로 끝내는 작전입니다.”

     

    마왕성 공략법은 모두 내가 제안한 것이다. 실제로 본래 미래에서도 마계 공략은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리셰와 타냐에게는 전부터 이 공략법을 개인적으로도 알려줬기에 중요성을 잘 알고 숙지하고 있었다.

     

    “저희가 여기에 있다고 마왕군이 눈치채기 전, 적어도 1주일 안에 잠입을 완료해야 합니다.”

     

    “정해졌으면 움직여. 낭비할 시간도 없으니 어서 출발해.”

     

    아셀라가 급하게 걸음을 내딛으려는 때, 내가 검집으로 그녀의 앞을 막았다.

     

    “왜.”

     

    “함정입니다.”

     

    아셀라가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넝쿨이 부자연스러운 모양으로 얽혀 있었다.

     

    그게 이어진 끝을 눈으로 좇아보면 나무 위에 입을 쩍 벌린 거대한 식인식물이 있다.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서두르면 될 것도 안 됩니다.”

     

    “…그렇네.”

     

    “성채에서의 빚은 갚았습니다. 이쪽 길입니다. 따라오십시오.”

     

    체감상 7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지나갔던 길이기에 루트는 기억한다.

     

    물론 시간차가 조금 있어서 지형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그런 점은 즉석에서 대응할 생각이다.

     

     

    검을 뽑아 넝쿨을 헤치며 길을 내고 나아가니 아셀라가 뒤를 쫓아오는 게 느껴졌다.

     

    ‘어제는 별 소리를 다 들었네.’

     

    아셀라가 내게 직접 마음을 전한 적은 한 번 있었지.

     

    그 몇십 배나 되는 사랑 고백을 면전에서 직접 들으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셀라가 마왕과 직접 싸우려는 이유가.’

     

    설마 나 때문이었을 줄이야.

     

    배드엔딩에 관해 상세히 설명할 순 없으니 농담처럼 세계평화라고 얘기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월광궁까지 내팽개치고 이 위험한 최전선에 직접 뛰어들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래도 덕분에 배드엔딩도 하나 지워졌고.’

     

    마왕은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아셀라가 있으면 물론 토벌은 훨씬 수월하겠지만.

     

    ‘내 공략법이 안 통하고 변수가 생길지도 몰라. 그때.’

     

    아셀라가 위험하진 않을까.

     

    주치의로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나로서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

    No. 005 : 마왕군 승리 19% → 14%

    No. 006 : 마신강림 4% → 2%

    No. 100 : 9위계 50%

    ―――――――――――

     

     

    지금까지 했던 대로 내게 주어진 이정표를 따라 행동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한다.

     

    ‘배드엔딩 100번, 9위계.’

     

    마왕과의 최종 승부에서 패배하면 등장하는 엔딩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해도 이 엔딩의 확률은 50%에 고정되어 조금도 변동하지 않았다.

     

    승률은 반반, 이라는 뜻일까.

     

    ‘그때까지 가면은 못 벗겠어.’

     

    어떤 마법을 써서 그런진 몰라도 아셀라도 자기 행동에 대한 확신이 있다.

     

    정체를 들키면 당장 나를 쫓아내려 하겠지.

     

    나중에 엄청 혼나는 한이 있어도 마왕 토벌까지 가면은 써야겠다고 판단이 들었다.

     

    그래도 파우스트가 아니라 라스 고트베르크로서 아셀라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보입니다, 저기 있군요.”

     

    타냐가 걸음을 멈추고 턱짓했다. 숲의 중간, 제단에 마족 흑마술사들이 진을 그리고 있었다.

     

    “교단인가?”

    “마왕성의 결계 주문을 쓰고 있는 거야?”

     

    그들이 결계석을 중심으로 흘리는 마기가 사방으로 튄다.

     

    “조용히 기습할게요.”

     

    “보조하겠습니다.”

     

    내가 리셰에게 플라스크를 건네줬다. 포션을 마신 그녀의 몸을 그림자가 휘감았다. 민첩과 은신도를 올려주는 [도적의 포션]이다.

     

    “파티원은 소녀가 맡겠소이다.”

     

    신성력을 바닥에 퍼붓는 앰브로시아. 근력 강화, 저주 저항 상승, 피해 상쇄 보호막. 온갖 이로운 효과가 포함된 축복이 우리를 감쌌다.

     

    원래 하나 시전하기도 어려운 주문인데, 성녀가 되고는 용량이 달라졌다.

    장하네. 진심으로 그릇을 칭찬해주고 싶어졌다.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리셰. 전원이 무기를 준비하고, 그녀가 손을 펼친 후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주먹을 쥐면서 지면을 박차는 리셰. 바람과 섞여 흑마술사들의 후방을 노린다.

     

    ―스릉!

     

    순식간에 한 무리를 급습해 쓰러트리는 리셰.

     

    “나머지는 맡겨라!”

     

    발렌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손을 놀리며 화살을 연발로 쏘아냈다. 흑마술사들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픽픽 쓰러졌다.

     

    “인간이다!”

    “왜 여기에 있지?!”

     

    반격이 들어온다. 마기가 흉흉한 진을 그리고, 저주가 우리를 잡아먹으려 매섭게 달려든다.

     

    “해주.”

     

    휴고에게 받아온 어둠 화신의 아뮬렛을 가동한다. 단숨에 저주의 조종권을 손에 넣어 제압, 무효화했다.

     

    성능 괜찮은데.

    수술 이후로 처음 써봤는데, 괜찮은 손맛이었다.

     

     

    단숨에 흑마술사들을 제압한 후, 우리는 제단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주문을 해주하겠습니다.”

     

    “이게 마왕성의 결계를 만들고 있는 거지. 건드리면 들키지 않아?”

     

    “시간 여유가 조금 있어요. 그 안에 다른 결계석도 모아서 성안에 잠입하면 돼요.”

     

    리셰가 발렌에게 대답했다. 그녀의 말대로다. 공략법을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파앗!

    내가 잔류해있는 흑마술을 해주하니 제단 중앙에 놓여있던 노란 광석이 드러났다.

     

    “잠시만요. 으음, 설명에 의하면…”

     

    리셰가 지도 뒤에 빼곡하게 적어놓은 글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타냐가 내용을 짚어주었다.

     

    “네 개의 결계석 중 시간의 결계석입니다. 접촉한 사람에게 특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특이한 현상이라니?”

     

    “접촉한 사람을 제외한 세상의 시간이 멈춥니다. 안에서 체감상 며칠 정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고 하는군요.”

     

    “그게 정말이오? 함정인가. 위험해 보이는구려.”

     

    “오히려 이 현상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시간 정지 현상은 일종의 방범장치지만 적절하게 활용하면 공략에 도움이 된다.

     

    “저희 중 한 명이 이 결계석을 든 채로 정지한 시간 속을 움직이면, 다른 결계석도 모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가! 우리가 보기엔 저 돌멩이를 손에 넣은 순간 하나가 더 생긴다는 말씀이오? 과연, 좋은 생각이오.”

     

    “예. 거리를 생각하면 한 개가 한계이겠습니다. 도중에 효과가 끝나 낙오되면 오히려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으음… 누가 그 역할을 맡지?”

     

    “제가 하겠습니다. 마계는 조금 연이 있어서 지형이 익숙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어둠의 결계석을 탈취해 오지요.”

     

    내가 나섰다. 몇 번이고 공략 경험이 있으니 자신이 있었다.

     

    “알겠소이다, 맡기겠소, 파우스트군.”

     

    다른 파티원들이 금방 동의했다.

     

    실패하면 안 되는 작전이다.

     

    나는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고 결계석을 붙잡았다.

     

    ―뚝.

     

    나를 제외한 모든 파티원이 제자리에 멈췄다.

     

    바람도. 방금까지 스산하게 부딪치던 나뭇잎 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럼 출발할까요, 파우스트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리셰였다. 그녀가 은은하게 빛나는 성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고트베르크에게 들으신 모양이군요.”

     

    “네. 성검과 공명하고 있을 때 저는 특이한 마법 같은 여러 부정적인 효과를 안 받는다고 하셨어요.”

     

    “그렇습니다. 효과의 지속시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도 도보로는 하루 정도 걸어야 하니 어서 출발하지요.”

     

    공명한 리셰는 각종 디버프, 특히 시간 관련 효과를 받지 않는다.

     

    리셰가 마왕을 쓰러트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이유이기도 하다.

     

    샤를이 시간선을 넘어왔던 것도 성검의 이 능력과 관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지한 세상에서 리셰와 함께 발걸음을 내딛으려는 때.

     

    “잠깐.”

     

    우리 이외의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나는 왜 움직여지지?”

     

    아셀라였다.

     

    그녀가 지팡이를 든 채 살짝 당황하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황녀님.”

     

    나도 조금 당황했다. 정지한 시간 속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결계석을 처음 만진 사람과 리셰 뿐이다. 그래서 보통 둘이서 작전을 수행하곤 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셀라가 마법진을 그려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마법도 쓸 수 있네. 잘 됐어.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많을수록 좋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대체 어떻게…?”

     

    “그 결계석을 만든 마법사가 나보다 시간을 한참 모른다는 소리 아니겠니. 따라오거라, 파우스트.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모아와야겠어.”

     

    아셀라가 즐거워하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나와 리셰는 눈치를 보다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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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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