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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3

        

       레위기 24장에서 이르기를.

         

       『 누구든지 사람을 때려 목숨을 잃게 한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Qui percusserit et occiderit hominem, morte moriatur). 』

       『 짐승을 죽인 자는 생명으로 생명을 갚아야 하니 살아있는 것으로 물어야 한다(Qui percusserit animal, reddet vicarium, id est animam pro anima). 』

       『 동족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자기가 한 대로 되받아야 한다(Qui irrogaverit maculam cuilibet civium suorum, sicut fecit, sic fiet ei:). 』

       『 골절은 골절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는다.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대로 자신도 상해를 입어야 한다(fracturam pro fractura, oculum pro oculo, dentem pro dente restituet; qualem inflixerit maculam, talem sustinere cogetur). 』

       『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보상해야 하며, 사람을 때려죽인 사람은 사형을 받아야 한다(Qui percusserit iumentum, reddet aliud. Qui percusserit hominem, morietur). 』

       『 이방인이든 본토인이든 너희에게는 법이 하나일 뿐이다.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로다(Aequum iudicium sit inter vos, sive peregrinus sive civis peccaverit; quia ego sum Dominus Deus vester). 』

         

       법이란 지엄한 것이요, 남에게 해를 끼친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고 하였다.

         

       즉, 알 수 없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윌리엄에게 대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진성은 그 말을 보고 윌리엄에게 개입한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주술사.’

         

       집요한 데다가 대가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아 절대 계약자는 아닌 것 같았다.

         

       ‘주술사라면 앞서 그림도 있으니, 필시 강령술사겠구나.’

         

       그리고 계약자가 아닌 주술사가 윌리엄을 노리고 있다면, 그 주술사는 강령술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그가 가지고 온 책자에서는 귀신 넷이 그려져 있었으니까.

         

       물론 속단할 수는 없다.

       당장 진성도 새타니를 만들고 부리지 않았는가.

         

       주술사를 부르는 명칭이라는 것은 주로 사용하는 특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그것만 사용할 수 있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다.

         

       강령술사라고 할지라도 주술로 불을 피울 수가 있고, 화염술사도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정화의 힘 대신에 사악한 것들을 부리는 주술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그 경지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법.

       전공과 그냥 하는 방법만 아는 것에는 분명히 그 깊이가 차이가 있다.

         

       ‘보자. 귀신이 넷이요. 하나하나가 기괴한 형상으로 말까지 전달할 정도였으니. 필시 강령술에 발만 담근 작자들이 부리는 수준으로는 무리로다.’

         

       죽은 자는 자아를 쉽게 잃어버린다.

       이는 좌표이자 닻이며, 기준이자 틀인 육신이 없기 때문이다.

         

       육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며, 영혼과 정신이 안정될 수 있게 돕고 그들을 감싸는 갑옷이자 보호해주는 집의 역할을 한다. 게다가 육신은 자신의 형상으로 영혼과 정신을 고정해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하며, 흔들릴지언정 부서지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귀신은 이 중요한 육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육신을 가지고 있다면 정신이 흔들리는 것에 그치는 일조차도 정신이 산산이 부서지고 영혼이 흐트러질 타격을 주게 되며, 한 번 끓어올랐다가 가라앉을 감정 역시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영혼과 정신은 순식간에 마모되게 되며, 이성이 없는 짐승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아니면 극단적으로 치달은 감정에 휩싸인 채 이리저리 떠돌며 해를 끼치는 악령이나 악귀로 변하거나 말이다.

         

       이러한 파멸을 피하고자 악령과 악귀는 대부분 사람의 형상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어떤 형태로든 변할 수 있기에, 과거의 형태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리저리 흐르는 물이 자신을 담아놓았던 컵을 그리워하듯이, 녹아내리며 쓸모없이 변한 쇳물이 단단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며 돌아가려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움을 토대로 그들은 육체의 형상에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을 기반으로 자신의 영혼과 정신을 유지하곤 한다. 이것이 바로 죽어서도 악령과 악귀가 사람의 형상과 흡사하게 자기 몸을 만들고 다니는 이유였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사람의 형상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짐승에 가깝다는 이야기이며, 짐승에 가깝고 감정이 극단에 치달아있을 확률이 높은 만큼 경지가 낮은 강령술사는 쉽게 다루지 못한다.

         

       그런데 윌리엄이 가지고 온 그림에 그려진 귀신들은 사람의 형상을 잃어가기 시작하는, 다루기에는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는 존재들.

         

       강령술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지 않고서는 다루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는 존재들이었다. 이런 존재들을 다루고 말까지 하게 만들 정도라면 이 주술사는 강령술사일 확률이 높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으리라.

         

       ‘쯧.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길래 강령술사에게 원한을 샀는고?’

         

       진성은 윌리엄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대체 뭔 짓을 했길래 강령술사가 귀신을 부려 해코지할 정도의 원한을 샀는지 너무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주술사라는 존재는 끓는점이 그렇게 낮지 않은 존재들이다.

       특히나 그 경지가 높을수록 더더욱.

         

       주술을 사용하면서 육체가 개판이 되어감에 따라 고통의 역치가 한없이 올라가며, 당연하게도 고통을 겪고 버티면서 인내심 역시 일반적인 존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딱히 고행이나 수행하지 않아도 주술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고통을 견디고 자신을 담금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정신이 깊어진다.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거듭하며 깨달음을 얻은 고승이 하룻강아지가 왈왈 짖는 것에 성질을 내지 않듯, 그들 역시 어지간한 것에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것에는 말이다.

         

       ‘보자. 운기에 손을 대는 것은 흑주술에 속해있는 주술 같은데….’

         

       주술사라는 존재는 은원관계에 철저한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동안 주술을 사용하며 자연스럽게 ‘대가’라는 것에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받으면 무언가를 줘야 하고.

       무언가를 준다면 무언가를 받아야만 한다.

         

       주술을 사용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면서 살아온 그들의 경험이 삶의 방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딱 대가만큼을 지불한다.

         

       은혜를 받았으면 그만큼의 대가를.

       원한을 샀으면 그만큼의 대가를.

         

       그런데….

       윌리엄에게 걸려있는 이 주술은 아무리 봐도 어마어마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였다.

         

       ‘흐음…. 범상치 않은 흑주술 같은데, 대체 무엇을 대가로 바쳤을꼬?’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할 수 있는 흑주술은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는 편이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는 최소 한 사람 이상의 대가가 기본으로 들어가며, 해코지하기 위해서 사용한다고 치면 신체 부위 몇 군데가 제대로 망가질 각오를 해야 한다. 게다가 흑주술이 모종의 이유로 실패라도 하게 되면 그 대가가 곱절로 튀어 오르는 데다가 저주의 효과까지 자기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야만 한다.

         

       성공해도 엄청난 대가를, 실패한다면 끔찍한 파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바로 흑주술이었다.

         

       그런데도 꽤 수준 높은 흑주술을 날렸다?

       그렇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원한을 샀다는 이야기다.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놈을 조져야만 한다는,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는 원한을 말이다!

         

       “흐음.”

         

       진성은 윌리엄에게 대가를 받아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다른 주술사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달려들 정도의 원한이라면, 그 주술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거 제 능력으로는 제대로 점을 봐 드릴 수가 없겠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점을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진성은 깔끔하게 점괘를 봐줄 수 없다며 윌리엄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타로를 정리해 품 안에 넣고, 윌리엄의 앞에 펼쳐져 있던 성경 역시 회수했다. 그리고 윌리엄이 내민 시계는 당연히 자신이 받아야 가야만 한다는 듯 자연스럽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뭐? 하, 참. 그래. 알았다. 뭐 어차피 기대도 안 했으니까.”

         

       그 모습에 윌리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뭐라 따지려고 했으나, 어려 보이는 진성의 얼굴을 보고 능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겠거니 생각하며 그냥 수긍해버렸다.

       게다가 진성에게 복채라며 시계를 던진 것 역시, 딱히 진성의 점에 대해서 기대했다기보다는 그냥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얌전히 받지 않아서 그냥 핑계를 댄 것에 가까웠다는 이유 역시 있었다.

         

       “제 능력이 부족하여 이렇게 되었으니, 참으로 죄송할 따름입니다.”

         

       진성은 아쉽다는 듯 한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윌리엄은 그 모습을 보며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거만하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뭐.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 앞으로 노력하라고. 알겠어?”

         

       그렇게 윌리엄은 덕담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하고는 진성의 악수를 받아주었다.

       그 과정에서 살짝 따끔거리는 느낌이 나기는 했지만….

         

       “앗 따가. 정전기가 일어났잖아, 빌어먹을!”

         

       그것을 그냥 정전기라고 치부하고는 욕설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는 짜증이 난 것인지 맥주병을 들어 올려 다시 맥주를 마시려고 했지만….

         

       “아, 다 먹었잖아. 젠장.”

         

       맥주병은 완전히 텅텅 비어있었다.

       게다가 그 맥주병이 마지막이었던 모양인지, 윌리엄은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짜증 섞인 말투로 경호원에게 맥주를 사 오라고 명령하려고 했다가, 스마트폰에 온 문자 하나를 확인하고는 슬쩍 아그네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민을 하는 것처럼 턱을 쓰다듬었다가 일생일대의 결정이라도 한 것처럼 아그네스에게 말했다.

         

       “나는 이만 급한 일이 생겨서 가야 할 것 같은데. 나중에 내가 연락을 줄게. 그때는 받아달라고.”

         

       윌리엄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작별을 고한 뒤 그대로 가게를 떠났다.

       아무런 정리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아그네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급한 일은 무슨. 딱 봐도 여자랑 술 퍼마시러 가는 것 같은데….”

       “…하아. 무슨 태풍이라도 지나간 느낌이에요. 너무 피곤해요.”

         

       아그네스와 엘라는 끔찍한 망나니를 상대하며 정신이 많이 고갈되기라도 한 것인지 피곤한 얼굴로 가게를 떠났다.

       그리고 진성 역시 그 둘을 따라서 가게를 떠났다.

         

       ‘과연 어떤 주술을 사용할지 너무나 궁금하구나.’

         

       미약한 기대감을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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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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