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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3

       “으, 으헿!?”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다.

        

       뭐야, 언제 잠들었지?

        

       손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내 몸이 무언가에 단단히 묶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묶여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아가 양팔로 나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양다리로 내 한쪽 다리를 확실하게 끌어안고 있어서 다리도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어…… 그러니까……

        

       어제 그 상태에서, 수아는 몇 번이나 나에게 입을 맞추었던 것은 기억한다. 손은 끝까지 잡고 있었다. 다만, 그 이후로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나는 아마 그대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 상황에서 어떻게 잠이 들 수 있지?

        

       그러게. 그 상황에서 어떻게 잠이 들었을까.

        

       사라가 빈정거렸다.

        

       뭐라고 할만한 말이 없었다.

        

       “일어났어?”

        

       그런 소리가 들려서, 바싹 붙어있는 수아와 입술이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며 억지로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눈이 퀭한 소희와 하늘이가 방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우리를 보고 있었다.

        

       “지금 몇 시야?”

        

       “아홉 시.”

        

       소희가 커피를 홀짝이며 대답했다. 머리카락이 살짝 젖어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씻은 모양이었다.

        

       “아, 학교는……”

        

       “오늘은 토요일이야.”

        

       아, 그랬지, 참.

        

       시험이 일주일 하고도 며칠 안 남은 상황이었다. 손아름은 그 핑계로 우리 집에 들렀었던 거고.

        

       “으응…….”

        

       내가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수아가 더 달라붙었다. 그 힘에 나는 그대로 침대에 툭 몸을 뉘었다. 수아는 고개를 내려서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사실 파고들 만큼 깊이가 있지는 않았지만.

        

       야!

        

       사라가 그렇게 소리쳤다.

        

       “쟤 정말 자는 거 맞냐?”

        

       소희가 의심했다.

        

       “…….”

        

       하늘이도 눈을 가늘게 뜨고 수아를 바라보긴 했지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수아를 믿어보기로 한 모양이다.

        

       “그, 얘들아? 나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하늘이와 소희는 눈을 마주치더니, 하아, 하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한데, 우리도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거든.”

        

       “너무 세게 움직이면 다칠까 봐 그대로 두고 같이 잤는데…… 아침까지 그러고 있을 줄은 몰랐지.”

        

       소희와 하늘이가 각자 그렇게 말했다.

        

       “…….”

        

       그러니까, 밤새도록 이러고 잤다는 말인가? 수아는 팔다리가 아프지도 않은 걸까?

        

       “어, 그럼 나는 언제까지 이러고……?”

        

       “아마도, 수아가 일어날 때까지.”

        

       “그렇지, 뭐.”

        

       하늘이와 소희가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협약을 조금 조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하늘이는 소희에게 그렇게 넌지시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아?”

        

       소희의 대답은 그랬다.

        

       “어, 협약이라니? 무슨 말?”

        

       “응, 아, 아냐. 그런 게 있어.”

        

       내가 다시 고개를 억지로 들고 묻자, 하늘이는 바로 손을 파닥파닥 흔들며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거라니, 잠깐—”

        

       “으응.”

        

       내가 둘에게 따지기도 전에, 수아가 몸을 뒤척이며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가슴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는 게 느껴진다.

        

       “……봐, 쟤 깼다니까?”

        

       소희가 거의 확신한 듯 말했다.

        

       “아냐, 조금만 더 양심에 맡겨보자.”

        

       하늘이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아니, 너무 무서운데요.

        

       나는 그냥 서로 공평하게 기회를 나누어줬을 뿐인데! 일이 영 이상하게 굴러가고 있다.

        

       아니, 그보다.

        

       “협상이 대체 뭐냐고!”

        

       물론, 두 사람, 아니, 아마도 깨어있는데 자는 척을 하는 중인 수아까지 총 세 사람에게서는 대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

        

       세 사람은 사라를 너무나 좋아한다.

        

       하지만 동시에, 세 사람은 서로 친구이기도 했다.

        

       물론 만약 사라와 친구 관계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사라를 선택하긴 하겠지만, 웬만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 같았다.

        

       무엇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 세 사람이 너무나 좋아하는 사라가 제일 상처받을 테니까.

        

       그렇기에 세 사람은 협약을 맺었다.

        

       물론 그게 완전히 딱 정해진 규칙 같은 것은 아니었다. 직접 정한 것도 있지만, 무언의 합의도 섞인 유동적인 약속.

        

       세 사람 모두, 할 수 있으면 사라와 같이 있을 기회를 공유한다. 하지만 만약 사라가 단둘이 대화하고 싶다면 일부러 막지는 않는다. 즉, ‘사라가 준 기회’는 사라의 의지로 보고 막지는 않는다.

        

       만약 상대가 사라와 신체접촉을 하고 있다면, 억지로 떼어내지는 않는다.

        

       그렇다. 사실, 조항 대부분은 ‘나에게 기회가 왔을 때 절대로 놓치지 않기 위해’ 정해진 것이다. 친구 관계를 위하니 뭐니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사라와 제일 오래 있도록 하겠다’는 마음이 그 밑바닥에 질척하게 깔려있었다.

        

       물론 세 사람은 모두 그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아는 그 허점을 이용해 제일 마지막 순번을 잡아 사라와 딱 달라붙어 버린 것이다.

        

       단둘이 있는 타이밍에. 두 사람이 어떻게 제지하거나 끼어들 타이밍을 만들지 않고.

        

       ‘사라가 준 기회를 방해하지 않는다.’

        

       자신의 차례를 백 퍼센트 보장받기 위해 만들어둔 그 조항이, 두 사람이 사라에게서 수아를 떼어놓지 못한 진짜 이유였다.

        

       물론 그런 사실을 사라에게 직접 말할 수는 없었기에, 두 사람은 수아가 더 심한 단계로 넘어가지 않도록 번갈아서 잠자는 두 사람을 지켜본 것이다.

        

       두 사람의 눈 아래가 퀭한 이유였다.

        

       참고로, 그 후로도 거의 한 시간 후에 일어난 수아의 얼굴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다른 두 사람에게도 보일 정도로.

        

       세 사람이 같이 있을 때 협약에 대해 대놓고 말하는 것은 금지.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동의하면 협약을 바꿀 수는 있지만, 회의에는 반드시 세 사람이 다 참여해야 함.

        

       일견 공평하기 위한 규칙을 넣었던 것은, 협약을 다 정할 때 쯤이 되어서야 마지막에 의견을 제시한 수아였다.

        

       수아가 사라 옆에 붙어있는 한은, 협약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다.

        

       두 사람은 그제야 수아에게 당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

       결국 그렇게 거의 한 시간 정도 수아와 더 갇혀있다가 겨우 탈출한 뒤 나는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나, 완전히 망한 거 아닌가?

        

       내가 세 사람을 완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채찍과 당근을 쓰려고 해도 내가 채찍을 쓰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고, 사실 나도 세 사람이 좋아서 완전히 놓아버릴 수도 없으니까.

        

       그래도 서로 볼 수 있는 곳에서는 나름대로 폭주하지 않고 있지만, 이렇게 아예 한 사람씩 만날 때는 그거대로 무섭다. 정말로 선을 넘어버릴까 봐.

        

       ……아무리 이런 상황이라도, 나에게는 아직 도덕적인 선 하나는 남아있었다.

        

       적어도, 미성년자와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될 수는 없다.

        

       아니, 뭐, 이제 와서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는 한데, 이건 사실 재앙이나 재해 같은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렇다면, 세 사람을 최대한 이용해야 하나?

        

       일 대 일로 만날 일은 무조건 피하고, 되도록 최소 두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상황을 조정하는 거다. 그러면 적어도 막 덮쳐져서 갈 데까지 가 버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꿈속에서는?

        

       사라가 나를 놀리듯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애써 무시했다.

        

       ……꿈속에서 도망 다니는 법이 있을까?

        

       찾아봐야지.

        

       무슨 육식동물 사이에 떨어진 초식동물도 아니고.

        

       “……사라?”

        

       “어, 응.”

        

       멍하니 생각에 빠져있다가, 내 앞의 아이가 말을 걸어 겨우 정신을 차렸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학교에 가는 날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참 성실하게도 손아름은 오늘도 우리 집에 찾아왔다.

        

       문을 똑똑 두드리고 양혜인이 들어와 손님이 오셨다고 말하고 나서야 나는 겨우 수아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손아름이 나의 은인이기도 했다.

        

       “고마워.”

        

       “……어?”

        

       내가 뜬금없이 감사 인사를 전하자, 손아름은 잠깐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냥, 공부 도와주는 거.”

        

       “아. 그거.”

        

       내가 핑계 대듯 덧붙이고 나서야 손아름은 조금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뭐, 친구 좋다는 게 이런 거 아니겠어?”

        

       참 착하네.

        

       분명 하늘이도 처음 볼 때는 이런 이미지였던 것 같은데.

        

       …….

        

       음, 뭐, 그렇다고 하늘이가 싫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시선을 슬쩍 돌려보았다. 여전히 조금 퀭한 얼굴의 하늘이와 소희, 그리고 얼굴에서 빛이 반짝반짝 나는 수아가 있었다. 뭐, 빛이야 세 사람 다 나긴 하지만, 유독 오늘의 수아가 그렇게 보였던 건 그만큼 생기가 넘치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내가 흘끗거리는 걸 눈치챘는지 그 시선은 슬쩍 따라가며 손아름이 물었다. 손아름의 눈이 얼굴이 퀭한 두 사람과, 엄청나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는 수아, 그리고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 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있었지, 응.”

        

       나의 대답을 듣고, 손아름은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세 사람이 학교에서 나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매일 두 눈으로 똑똑히 보는 손아름이었다. 매일 밤 같은 방에서 나와 함께 자는 세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표정들이 밤을 새운 표정들이었으니까.

        

       역시 이 세상에서도, 선도위원이야말로 가장 음란한 캐릭터라는 규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얘는 아직 내 하렘이 편입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려나.

        

       ……얘만은 무조건 친구 사이로만 남아야지.

        

       나는 속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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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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