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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3

     자신을 마스터 크베르스라고 하는 미친 자가 나타났다.

     마스터는 맞다.

     이름이야 뭐 가명을 쓸 수 있는 거고, 당연히 본명으로 와서는 안 된다.

     “제국의 황제가 지브롤터의 바르셀로나 총독부에 이렇게 늦은 시각에 나타나면 되는 겁니까?”

     “제국의 황제라니. 그 무슨 말을. 나는 마스터 크베르스일세. 자네의 말대로 제국의 황제가 이렇게 이 시간에 지브롤터에 있어서야 되겠는가?”

     

     푸른색 깃털 장식이 달린 파랑새의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이 영 아니꼽기는 했지만, 확실히 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긴. 노스트럼 왕국의 지브롤터령이니. 제국 황제가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도 아니고.”

     “그렇지, 후후.”

     “그렇다면 제국 황제가 없으니, 말 편하게 해도 되는 겁니까?”

     “…….”

     입꼬리를 삐죽이며 ‘어디 할테면 해봐라’라는 듯 웃고 있지만, 이 남자는 내가 실제로 그렇게 하더라도 그냥 웃어 넘길 인간이다.

     대신 그만큼 나중에 내게 정치적 부담감을 짊어지게 만들겠지.

     “차는 하나밖에 없으니, 얌전히 드시죠.”

     “아니. 괜찮네. 자네를 일으켜세웠다가는 밉보일 수 있으니.”

     아스타시아는 내 뒤에 찰싹 달라붙은 채 마스터 크베르스를 노려보고 있다.

     하지만 아스타시아도 나도 바로 눈치챘지만, 마스터 크베르스는 아스타시아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있다.

     

     아마도 대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겠지.

     “내가 이렇게 온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자네에게 ‘군왕’의 자질에 대해 이야기를 하러 왔다네.”

     “제왕학입니까?”

     “굳이 황제가 아니더라도, 어떤 조직의 위에 머무르는 자로서 가져야할 기본적인 마음가짐이기도 하지.”

     “과외를 하러 오셨다거나 훈수를 두러 오셨다거나 하는 건 알겠지만, 때가 좋지 않군요.”

     “…응?”

     마스터 크베르스가 눈을 찡그린다.

     “제왕학이라면 이미 지겹도록 배웠습니다.”

     “하, 나보다도 더 대단한 사람에게 배웠다는 건가?”

     “예. 세상에서 ‘지배’라고 한다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에게 말이죠.”

     슬쩍, 떠본다.

     “흐음….”

     자세한 건 알려주지 않은 채, 마스터 크베르스의 반응을 떠본다.

     만일 여기에서 ‘그런 자가 있다면 소개라도 시켜주겠나?’라고 묻는다면 그나마 괜찮다고 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렇다면, 인정이지.”

     “…….”

     이 남자, 아무래도 ‘아는 것’ 같다.

     ‘위험한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알고 있다면 더더욱 이야기를 하기 껄끄러워진다.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찌르는 것과 나의 최대 무기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찌르는 건 경우가 다르니까.

     ‘억측인 감이 없잖아있지만, 괜히 내 쪽에서 좋게 생각하는 걸로 판단을 그르칠 수는 없으니.’

     어느정도는 인정하자.

     이 인간이라면, 마스터 크베르스라면 이미 진작 눈치를 채고도 남았을 지도 모른다.

     노스트럼 왕가가 가진 최강의 무기, ‘회귀’.

     그 회귀의 권능과 기적이 내게도 베풀어졌다는 것을.

     뭐, 그렇다면 그걸 역으로 이용하면 되는 바.

     “그렇죠? 그러니까, 굳이 이렇게 야심한 시각에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부 다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한 번 들어봐도 되겠는가? 나보다 더 뛰어난 제왕학을 가진 이라면, 최소한 대륙을 지배한 통일대제 정도는 될 것 같은데.”

     “대륙통일대제가 말씀하시길, 야심한 시각에 곁에 둘 수 있는 건 자신의 목숨을 언제든지 내어줘도 될 수 있는 사람 뿐이라고 했습니다.”

     합스베르크 통일대제가 그랬다.

     “…….”

     그리고 그건 합스베르크, 내 앞에 있는 마스터 크베르스 본인도 마찬가지겠지.

     “역시, 내가 끌리던 이유가 있었군.”

     마스터 크베르스가 다리를 꼬며 옅게 웃었다.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 그대는 역시 나의 뒤를 이을 자다.”

     “…….”

     “그러니 더더욱 제안할 수밖에 없군. 아니, 가지시게. 지금 가지지 않는다고 해도, 어떠한 식으로든 자네의 주변에 가득 채워버릴 테니까.”

     “제국의 그림자…당신의 사생아들을 말입니까?”

     짝, 짝, 짝.

     “정답일세, 지브롤터 백작.”

     가면을 벗는다.

     “차라리 처음부터 가면을 벗으시지.”

     “분위기라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그리고 이렇게 가면을 벗었다는 것 자체가 주는 의미가 있기도 하고.”

     “좀 더 진솔하게 말한다는 제스쳐?”

     “잘 배웠군. 누가 가르쳤는지 몰라도, 아주 제대로 가르쳐줬어.”

     마스터 크베르스, 합스베르크 황제가 씩 미소를 짓는다.

     “제왕이 허드렛일까지 할 수는 없는 법. 제왕의 아래에는 열심히 일할 자들이 필요하지. 권력에 대한 열망이든, 야망이든, 재물욕이든, 어떠한 방법이든 강력한 욕구를 가지고 열심히 일할 사람들이 필요해.”

     “그래서 그렇게 폐세자와 그림자들이 황제 자리 한 번 앉아보겠다고 타국까지 넘어와서 내전에 개입하고 그랬던 겁니까?”

     “그건 내가 사과하지. 나도 나름 정리한다고 정리한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과격한 이들이 많았던 모양이야.”

     정리.

     “도움이 안 되는 쓰레기들을 최대한 많이 처리한다고 처리했는데,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들이 설마 협곡의 열린 문 너머로 넘어가서 노스트럼에서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당연히,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

     “그러니, 도와주마. 아니,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할 것이다.”

     “그림자들을 바르셀로나 총독부 아래에 보내서 일하게 만들겠다는 거 아닙니까. 300명을.”

     “남자 100, 여자 200. 안심하게. 자네나 아스타시아를 향해 위협을 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야.”

     “그들이 황태자와 황녀 자리를 노리는 이들인데도요?”

     “자네가 이번에 바르셀 후작가를 밟아버리는 덕분에, 그 그림자들 전원이 감히 함부로 나서지 않게 된 것도 사실이지.”

     황제가 엄지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키득거렸다.

     “제왕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제왕인 법. 조금만 얕보여도 금방 아랫것들이 감히 어떻게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려고 기어오르지. 제왕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 건지 혹시 알고 있나?”

     “글쎄요.”

     워낙 많이도 비유를 해대서 뭐부터 말해야 지금의 황제가 좋아할까, 그리고 굳이 황제의 비위를 맞춰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인간의 정점. 산의 정상. 하늘 꼭대기. 모든 인류를 내려다보는 가장 높은 곳.”

     빨리 황제를 만족시켜야 나도 아스타시아와 같이 편하게 잘 수 있지 않을까.

     “바야흐로, 인류의 정점.”

     

     짝, 짝, 짝.

     

     “정답이네, 백작. 100점 만점에 99점을 주도록 하지.”

     “1점은 어디에서 빼먹은 겁니까?”

     “내가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에서 나오는 사소한 질투일 뿐이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목에 가시가 돋는 것 같아 불편하지만, 나는 속에서 끓는 불쾌함을 애써 억눌렀다.

     “그렇군요. 다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잘 새겨두도록 하겠습니다.”

     내 옆, 아스타시아의 손을 이불 아래에서 꽉 붙잡으며.

     “뜻대로 하소서. 아니, 바라던 바입니다. 바르셀로나 총독부에서 일하는 직원 전체를 제국인으로 가득 채워버린다고 한들, 누가 어떻게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미 지브롤터는 반쯤 제국주의자 매국노 가문인 것을.”

     “반쯤?”

     “전체가 제국주의자였으면 노스트럼 왕국의 지브롤터가 아니라, 진작 성벽에 내거는 왕국의 국기를 회수하여 제국의 것을 달았겠지요.”

     나는 마침 창 너머, 멀리 성벽 쪽에 펄럭거리고 있는 노스트럼의 국기를 가리켰다.

     “지브롤터 가문은 배신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모종의 사유로 지브롤터를 떠난다고 한들, 가문 전체가 노스트럼의 충성병자들에게 모욕을 당할 이유는 없지요.”

     “모욕을 당하는 건 그레이 지브롤터 한 명으로 충분하다?”

     “누군가가 욕을 먹어야 한다면 제가 먹는 게 낫습니다.”

     “그렇다면, 둘의 아이는?”

     

     나로서는 가장 언급하기 힘든 화제를 꺼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노스트럼 왕국의 차기 국왕…이 아니지, 실질적 여왕인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과 약혼을 했지 않은가?”

     “악질이시군요. 약혼을 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다음 대의 이야기입니다.”

     “후후후. 농담일세.”

     농담을 하더라도 이쪽은 그 어느때보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이야기하는 걸세. 총독부에서 일할 300명의 그림자들은 다음 대를 노릴 것이야. 자네와 아스타시아의 아이를 말이지.”

     “소꿉친구라도 노리는 겁니까?”

     “모르지, 그거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그러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지 않겠나. 노스트럼의 충성병자들이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과의 혼인을 통해 낳은 아이를 차기 국왕으로 내세운 다음, 그레이 지브롤터와 아스타시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와 결혼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

     “바르셀로나 총독부에서 일하는 이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수두룩할 수밖에 없지. 황궁에서 일하는 메이드들도 어떻게 황제의 성은을 입어 후궁이 되기를 꿈꾸는 게 황궁이며, 정치인데.”

     “틀린 말이 아니라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군요.”

     사람은 누구나 꿈을 꿀 수 있다.

     “좋습니다. 어차피 제가 막는다고 해서 뭐 다 막을 수도 없을 것이며, 막으려고 기를 쓰면 그보다 몇 배는 더 많은 그림자를 보낼테니.”

     “다 막아내려면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용을 쓰면서 시체 치우고 그럴 시간에 아스타시아랑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

     그림자들 제거하고 아랫것들이 기어오르는 걸 일일이 대응하느라 아스타시아와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흐음….”

     합스베르크 황제가 어딘가 생각에 잠기는 것 같다.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합스베르크 폐하.”

     한 번 낚아볼까?

     “내게 감사하다?”

     “예.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이것 하나. 뭐지?”

     “당연히.”

     도박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진심’이니.

     “아스타시아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주시고, 제 품에 올 때까지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거죠.”

     “그게 감사한 건가?”

     “그럼요. 아스타시아가 없는 세상은, 생각도 할 수 없기에.”

     나는 합스베르크로부터 시선을 돌려, 아스타시아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아스타시아를 바라봤다.

     “이제는 아스타시아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거든요.”

     “…….”

     합스베르크를 바라보지 않는다.

     지금 바라보면 이렇게 말을 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뭐.”

     혼자서 무슨 상상의 나래를 펼치든, 그건 본인의 자유.

     그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고 해도, 그 또한 본인의 오판.

     “알겠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는 그걸 찌르고 들어갈 뿐이다.

     “남자들은 경비로 쓰고, 여자들은 메이드나 집사, 비서 등으로 쓰면 될 것이야. 다 나의 재능을 물려받았으니, 다들 제 한 몸 건사하기에는 충분한 녀석들이지.”

     “햇빛 아래에서 돌아다니지 못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그런 자들은 전부 다 걸렀으니, 안심해도 좋아.”

     안심해도 좋은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쓰다가 더러워지거나 병균 옮길 것 같은 쓰레기가 되어버린다면, 걸레짝처럼 버려버려도 상관없는 이들로만 모아뒀으니 안심하고 써먹어도 좋아. 썰어도 좋고.”

     “아니면 뭐, 흡혈귀로 만들어서 흡혈귀 사냥의 대상으로 만들어도 좋고 그런 겁니까?”

     “…역시.”

     황제가 씩 웃는다.

     “그 또한, 제왕학으로 배운 건가?”

     “아니요.”

    “그렇다면…. 그대는, 역시 나를 닮았군.”

     “영광이군요.”

     “그러면, 좋은 밤 되시게.”

     황제는 사라졌다.

     * * *

     사흘 뒤.

     지브롤터 협곡을 지난 열차를 통해, 바르셀로나 역에 군청색 제복을 입은 이들 약 300명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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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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