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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3

   지금인가.

   

   전위와 중위를 오가며 다른 이들을 지원하는 데에 주력하던 세실이 두 손으로 자신의 대검을 거머쥔다.

   

   숨을 들이켰다가 내쉼에 따라 검은 색의 마력이 흘러나오고, 머잖아 그의 대검이 검은 색 마력으로 뒤덮인다.

   

   오러. 일정 경지를 넘어선 무인의 전유물이자 기사의 자격과도 같은 기술.

   

   아카데미의 2학년쯤 되면 재능 있는 자들이 오러에 각성하고는 하지만 그는 그저 오러를 흉내 낼 뿐인 수준.

   

   세실이 다루는 짙고 두터운 오러는 그 따위 것들과는 격이 다르다.

   

   현직의 기사들조차 견디기 버거워하는 그의 오러는 이미 완성되었다 해도 무방할 지경이니까.

   

   “왕자님!”

   

   일격의 준비를 끝마친 세실은 자기 부하의 외침을 따라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 쿠오오오!

   

   여지까지 그들이 던전을 오르는 것을 방해했으며 지금에 와서는 약화된 채 보스로써 이들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예티는 세실의 검에 위협을 느꼈지만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은 존재치 않았다.

   

   예티의 양 옆을 지키고 있는 세실의 파티원이 예티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가겠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의 머리를 노리는 것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세실의 검이 허술하진 않았으니.

   

   그가 내지른 일검은 당연하다는 듯 예티의 머리 정중앙에 닿아 적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역시 2왕자님!”

   “일격이라니.”

   

   두터운 가죽 탓에 잔상처 이상을 내기 어려웠던 상대를 일격에 쓰러트린 것이다. 다른 이들이 2왕자를 보고서 감탄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정작 이 위업을 이루어낸 장본인인 세실은 손맛이 좋지 못하단 생각에 혀를 찼다.

   

   더 어려운 편이 좋았다. 그래야 루시 알른이 이 곳에 도달하는 속도가 현저히 늦어질 테니.

   

   “바르손. 10층 공략을 끝마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지?”

   “35분입니다.”

   

   35분이라. 평균적으로 생각해보면 차고 넘칠 정도로 빠른 속도이지만 세실은 이 상황이 그리 머뜩찮았다.

   

   이번의 상대는 그 루시 알른이다. 던전에 관해서라면 형님보다도 뛰어난 앎을 지닌 녀석이란 말이다.

   

   “모두들. 아직 쉴 필요는 없겠지?”

   “물론입니다. 왕자님.”

   “바깥의 던전에 비하면 산책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저희가 공략한 던전이 몇 개인데 이 정도에 지치겠습니까.”

   

   강행군을 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지만 2왕자의 파티원들은 모두들 그 강행을 반겼다.

   

   이 곳에 있는 이들은 세실과 함께 온갖 던전을 공략해 보았던 멤버들이다.

   

   아카데미 2학년에게 요구되는 던전 공략 횟수를 넘어서 자신들의 한계를 시험하듯 실적을 쌓아온 이들에게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움직임은 몸풀기조차 되지 못했다.

   

   “좋아. 오늘 최소한 아카데미 던전의 절반 이상을 공략한다.”

   

   루시 알른. 그대와 그대의 주변인들이 여지까지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모른다.

   

   허나 그대가 지녔다고 소문이 난 축복, 던전의 모든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을 나도 지니게 된 이상 다른 모든 것은 내가 우위에 서 있을 터.

   

   이 승부. 그대의 참패로 끝맺음지어질 것이다.

   

   *

   

   아서는 루시 알른의 객기에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 셋을 골라 함께 들어가도 모자랄 마당에 혼자서 던전을 공략하겠다니!

   

   그것도 평범한 상대와 대결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작은 형님과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그런 기행을 벌이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작은 형님은 결코 얕잡아 보아도 될 상대가 아니다!

   

   그 옆에 큰 형님이 존재하기에 비교당할 뿐.

   

   현 기사단장이 천재라 인정할 만큼의 압도적인 무재와, 아카데미 2학년에 들어와 수많은 던전을 공략해 본 작은 형님은 분명 위압적인 상대란 말이다.

   

   루시 알른 아무리 그대라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릴 상대가 아닐 지언데 왜!

   

   “…하아.”

   

   물론 아서도 루시 알른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고 있다.

   

   평소 하는 거칠다 못해 눈살이 찌푸려지는 여러 발언이나 앞뒤를 생각하지 않는 듯한 행동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루시 알른은 자신의 주변을 신경 쓰는 사람이다.

   

   부탁 같은 것도 잘 들어주고, 어울려야 할 때면 순순히 따라와 주고, 도움을 부탁하면 가장 적절한 도움이 무엇일지 고민해 그 사람에게 내밀어주고, 무엇보다 주변인이 위기에 빠진 순간이면 나타나서 목숨을 걸고 도와주는 것이 루시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될 것 같다면 도움을 청하지도 않고 오롯이 홀로 그를 감당하려는 것이 그녀란 말이다.

   

   지난 번 큰형님에게 모욕을 가했을 때를 보라.

   

   그녀는 곤경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손을 내밀지 않았다. 오롯이 모든 것을 감당하려 했다.

   

   이번에도 분명 똑같을 것이다.

   

   루시 본인은 단순히 자기 혼자서 공략을 하는 것이 더 빠르고 편할 뿐이라 이야기했지만 아서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상식이라는 단어와 저 멀리 벗어나 있는 단어이지 않나. 당연히 변명이겠지.

   

   아서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괜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꺼내는 변명.

   

   자신이 저지른 일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은 좋다. 허나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는 사실도 알아주었으면 좀 좋겠군.

   

   아니 애초에 말이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럼 주변의 걱정을 살 일도 민폐를 끼칠 일도 스스로가 감당할 일도 없을 터인데. 어찌하여 자꾸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이더냐.

   

   그대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현명한 판단이 무엇인지 알고 있잖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일이 좋게 풀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 터.

   

   그런데 어찌하여 사건과 사고를 일으키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구는 게냐.

   

   

   “페이비. 걱정 되지 않으시나요?”

   

   미간을 꾹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던 아서는 조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알른 영애 말씀이시죠?”

   “네. 페이비는 알른 영애를 아끼시니까 분명 많이 걱정할 거라고 봤는데 생각보다 태연해서요.”

   

   조이의 말대로 최근 페이비는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루시 알른을 따랐다.

   

   식사를 할 때면 항시 그녀의 옆에 있고 지나갈 때마다 환히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심심찮게 말을 걸고. 오죽하면 루시 알른이 성녀의 편애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을까.

   

   그런 페이비이니만큼 루시를 걱정하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 그녀의 표정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이래뵈도 속으로 엄청 걱정하고 있는걸요?”

   “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알른 영애를 믿기 때문에 평온할 수 있는 것 뿐이에요. 전 그 분이 아무 이유 없이 이런 판단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걸요.”

   

   페이비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 아서의 머릿 속에 한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만약. 아주 만약. 그녀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라면?

   

   모든 이들에게 미움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래. 차라리 이 쪽이 상식적이다. 충분할 정도의 현명함을 갖춘 그녀가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이 쪽이.

   

   “등수 나오고 있어.”

   

   빠르게 가속하던 아서의 사고는 프레이의 목소리에 끊어졌다.

   

   아카데미 던전을 공략 중인 이들의 등수.

   

   현재 선두를 달리는 이들의 이름.

   

   맨 아래의 등수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올라오는 이름을 살피던 일행이었지만 그들이 찾고 있는 이름이 나올 때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루시 알른과 세실 솔라딘.

   

   두 가지 이름 중에서 먼저 나온 것은 세실의 이름이었다.

   

   맨 위에 적혀 있는 그의 이름은 경쟁의 상황이 어떤 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역시나 2왕자님.”

   “마음을 먹고서 아카데미 던전을 공략하시면 저 정도인 건가.”

   “혼자서 들어갈만큼 자신만만하더니 루시 알른의 이름은 보이지도 않는군.”

   “내. 내 돈이! 내 역배가!”

   

   현재 층 수 28층.

   

   던전에 들어간지 채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았거늘 던전 4분의 1을 돌파한 것인가.

   

   아서는 주변이 웅성거리는 이유를 이해했다.

   

   저는 너무도 압도적인 수준의 기록이었다. 어쩌면 아카데미의 역사에 새겨질 만한 속도란 말이다.

   

   아무리 루시 알른이 뛰어나다 할 지라도 혼자서 저 기록을 따라 잡는 건 불가능 할.

   

   

   “…허?”

   

   던전 입구 인근에 자리하던 웅성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적막으로 바뀌었다.

   

   세실 솔라딘이라는 이름이 한 칸 아래로 내려옴과 동시에 그 위에 새로운 이름이 새겨진 것이다.

   

   루시 알른.

   

   현재 층 수.

   

   57층.

   

   “뭔가 잘못된 거 아냐?”

   “오류…인가?”

   “이거 관리하는 교수님께 여쭤봐야 하나?”

   

   압도적이라는 단어를 뛰어 넘어 저 기록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숫자.

   

   “푸하하하!”

   

   그를 본 이들이 눈을 끔뻑이는 가운데에서 아서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적막의 한 가운데를 지나치는 소란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지만 아서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해였나?

   

   착각이었나?

   

   그대는 진정 혼자일 때가 더 빠르기에, 우리라는 짐덩이를 떨어트려야 제 속도를 낼 수 있기에 혼자 들어간 것 뿐이었나?!

   

   우리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을 때에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 짐작도 안 가는 군!

   

   …그래도 물어보기는 할 것이다.

   

   현명함을 갖춘 그대가 어찌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것인지. 기분에 따라 저지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인지를 말이야.

   

   *

   

   <이런 건 던전 공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할아버지.’

   <이게 어떻게 던전 공략이더냐! 이건 던전을 겁탈하는 것이고, 던전을 구상한 자를 모욕하는 행위다!>

   

   내가 던전을 진행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50층을 지나칠 즈음에 할배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할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몬스터의 공격을 이용한 슈퍼 점프.

   

   용암으로 막아둔 길을 뚫어서 최단 루트를 개척하기.

   

   거대 늑대 폭주 패턴을 이용해서 숲을 횡단하기.

   

   보스 패턴을 이용해 쓰러트리지도 않고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몬스터들의 습성을 이용해 보스룸에 들어가기도 전에 보스 죽이기 등.

   

   게임 안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쓰던 여러 테크닉을 현실에서 펼쳐보였으니 할배의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여태까지 내가 메이스를 휘두른 적이 손에 꼽을 지경인데 벌써 난 60층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이딴 게 던전 공략이냐는 소리가 절로 나오겠지.

   

   근데 할배가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존재한다.

   

   이게 게임이었을 적엔 지금보다 더 기상천외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다는 것.

   

   이 세상은 현실이라서 게임에서 쓰던 버그성 플레이를 그대로 할 순 없더라고.

   

   벽을 뚫는다거나, 갑자기 몇 층 위로 텔레포트 한다거나, 한 걸음 걷는 걸로 보스를 죽인다거나.

   

   그런 게 가능했더라면 이미 던전을 클리어하고도 남았을 텐데 참 아쉽단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60층 보스룸 안으로 들어온 나는 여러 생명체가 뭉친 키메라의 모습을 마주하고는 방패를 치켜들었다.

   

   ‘할아버지.’

   <무어냐.>

   ‘이번에는 저 녀석이 자기 패턴에 자살하는 걸 보여드릴게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던전을 모욕하는 사상최악의 메스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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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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