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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3

   크라슈의 몸속 내부에 불이 지펴졌다.

   그에 따라 크라슈의 눈동자도 점차 붉은색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천살성과 멸화침식이 동시에 들끓어 오르며 크라슈의 육체를 극도로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기가 뜨겁게 불타올랐다.

   어느새 날아들던 잔상 조각들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져 나갔다.

     

   멸화침식의 세 번째 단계.

   멸화수라(滅火修羅).

     

   펠레이는 어느덧 화끈거리는 얼굴을 느꼈다.

   크라슈에게서 더더욱 많은 양의 열기가 쏟아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속에서 펠레이 또한 크라슈를 따라 웃고 있었다.

   그가 힘을 써야 할 만큼 자신이 강해졌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라슈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펠레이의 강함에 화답하듯.

   그의 몸 내부에서 더더욱 강한 화기가 쏟아나와 전신을 장악했다.

     

   저주 한설아귀의 냉기를 통해 한 번 더 끌어올려진 열기가 주위를 장악했다.

     

   쨍그랑!

     

   펠레이가 만들어낸 잔상 조각들이 크라슈의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깨져 나갔다.

     

   그 광경 속, 크라슈의 천살성의 일곱별들이 일제히 빛을 토해내었다.

     

   멸천수라(滅天修羅)

     

   크라슈가 도달한 네 번째 영역.

   이제는 순간 강화 영약 없이 순순히 자신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

     

   그곳에 도달한 순간 크라슈의 붉게 타오르는 눈과 펠레이의 눈이 마주쳤다.

     

   펠레이는 직감했다.

   자신은 크라슈를 이길 수 없음을 말이다.

     

   그러나 그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펠레이의 검 위에 깨져 나가던 잔상 조각들이 몰려들었다.

   휘몰아치는 잔상 조각과 함께 펠레이는 뒷발을 뒤로 당겼다.

     

   자신의 최강을 크라슈에게 부딪쳐 보고자.

   그의 전심전력이 담긴 오러가 전개되며 주변을 휘몰아쳤다.

     

   “늘 내 앞에 있어 줘서 고마워.”

     

   펠레이는 감사 인사와 함께 거센 빛을 토해내었다.

   일순간 펠레이의 주위로 일대의 공기가 역류했다.

     

   잔상 조각들이 펠레이의 검에서 쏟아나온 빛과 맞부딪치며 마치, 공명하듯 그 힘을 토해내었다.

     

   동시에 크라슈의 검에서도 붉은 천살성의 기운이 모이고 있었다.

   흑염과 더불어 섞인 붉은 기류 속, 크라슈의 머리 위 붉은 달이 천천히 떠올랐다.

     

   붉디붉은 달이 흑염 속에 집어삼켜지며 뇌기가 치솟았을 때.

     

   펠레이는 자신의 검을 든 채 미소 지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검이 동시에 격돌했다.

     

   청호우기(晴好雨奇)

   오식(五式)

   청우(淸雨)

     

   폭풍의 먹구름마저 개게 할 펠레이의 푸른 검이 대기를 가로질렀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오식(五式)

   멸천월화(滅天月火)

     

   붉은 달을 집어삼킨 흑염의 흑검이 세상에 도래했다.

     

   두 검의 격돌이 이어진 순간.

   두 검은 소리조차 집어삼킨 듯 일제히 빛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그 빛이 가시며 건물의 외벽이 무너지고, 연기가 가득 찼다.

     

   그 연기 속에서 누군가 바닥을 박차며 뛰어나왔다.

   그건 옷이 이리저리 찢어지고, 몸도 엉망진창인 펠레이였다.

     

   팔 한쪽과 다리는 전부 화상을 입었고, 근육과 뼈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럼에도 그의 푸른 눈이 이채를 아직 포기하지 않은 채 달리고 있었다.

     

   펠레이의 청우는 분명 크라슈의 멸천월화에 밀렸다.

   크라슈의 멸천월화의 위력은 차원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펠레이의 전력을 담은 청우는 조금은 멸천월화를 밀어내었다.

   그것 하나로 그는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이거면 충분했다.

   자신은 아직 설 수 있었으니까.

     

   망설임 없이 연기를 헤쳐 나간 펠레이의 검이 마지막으로 쥐어짠 오러를 끌어 올렸다.

   동시에 헤쳐 나간 연기 앞, 크라슈의 모습이 비치었다.

     

   펠레이와 마주한 크라슈는 검을 허리춤에 늘어트린 채 자세를 잡고 있었다.

   그 또한 펠레이가 쓰러지지 않았을 거란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펠레이의 눈동자가 환하게 빛났다.

     

   “크라슈!”

     

   그를 부르짖음과 함께 펠레이의 검이 대기를 가르며 크라슈에게 뻗어졌다.

   크라슈도 그에 호응하듯 펠레이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카강!

     

   맞부딪친 검의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펠레이의 검이 크라슈의 검면을 타고 내려가며 마지막 수 싸움을 걸었다.

     

   크라슈도 지지 않고 그대로 검가드를 밀어붙여 펠레이의 검의 진로를 막았다.

     

   카가가가가강-

     

   둘의 힘겨루기 속.

   펠레이는 거친 숨을 반복적으로 내쉬고 있었다.

     

   어느새 검을 쥔 팔에 힘도 거의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러나 펠레이는 악착같이 검을 쥐고 있었다.

     

   “펠레이.”

     

   그러한 펠레이의 마지막 의지 속.

   크라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에 또 덤벼라.”

     

   다음.

     

   그 말을 들은 펠레이가 검 너머 크라슈를 보았다.

     

   더 강해져서 다시 한번 더 부딪쳐와라.

   그때 또 한 번 지금과 같이 전력을 다해 싸워줄 테니까.

     

   크라슈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들은 펠레이는 정말 못 이기겠다며 짧게 웃더니 이내 그대로 검과 함께 자세가 무너졌다.

     

   쿵!

     

   바닥에 무릎 꿇은 펠레이가 그대로 머리를 바닥에 눕혔다.

   하지만 그 상태로도 펠레이는 검을 놓지 않고 있었다.

     

   우뢰성의 검날을 지운 크라슈가 고개를 돌려 펠레이를 바라보았다.

     

   크라슈 또한 꽤나 힘을 쓴 만큼 숨을 반복적으로 내쉬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펠레이는 모든 걸 다 쏟아냈다는 듯 개운한 얼굴이었다.

     

   크라슈는 펠레이의 손에 들려 있던 팔찌를 툭하니 떼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 펠레이를 보며 한차례 피식 웃은 크라슈는 다시 복도를 지나기 시작했다.

     

   멸천수라를 쓰느라 조금 삐걱거리는 몸을 한설아귀로 식히며 말이다.

     

   이제 남은 건 메이리뿐.

   그마저도 코앞이었다.

     

   콰앙!

     

   그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크라슈가 창문 너머를 바라보자 거기에는 검은색 공간이 보였다.

     

   ‘조디악 클로리아.’

     

   시그린이 샬롯을 꺾기 위해 준비한 수겠지.

   더불어 터져 나오는 백룡의 빛을 보건대 시그린도 전력을 쏟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그린은 한 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구태여 크라슈가 샬롯과 둘이서 공세를 취해 모든 것을 박살 내는 것이 가능했음에도 샬롯을 단독으로 시그린과 맞붙게 한 이유를 말이다.

     

   ‘오늘 시그린의 의문을 키운다.’

     

   시그린이 줄곧 가지고 있던 크라슈와 샬롯을 향한 의문.

   샬롯과 크라슈는 둘 중 한 명은 분명 과거를 알고 있는 행보를 보여왔다.

     

   최근에는 시그린도 샬롯이 아니라 크라슈임을 서서히 느끼고 있었겠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크라슈는 그녀에게 늘 저주받이였고, 회귀 직전 자신들을 부르짖으며 죽었으니까.

     

   ‘회귀 전 정보가 있기에 시그린 넌 더더욱 나에게 가진 선입견을 버리지 못하겠지.’

     

   크라슈는 시그린의 마음속에 드리운 불안감을 눈치채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그린은 분명 망가져 가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녀의 앞에 나타나지 않은 아서.

   분명 회귀 전 저주받이였던 크라슈라는 변수.

   샬롯의 과한 참전.

   메리의 배신.

   아벨라의 실종.

     

   모든 것이 회귀 전과는 너무 달라진 지금.

   오직 자신 혼자서 해내 가야 한다는 막막한 상황.

     

   시그린은 지속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그러한 사실들은 착실하게 시그린을 좀먹어 나갔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지만.

   세상은 그녀가 중심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오늘.’

     

   크라슈는 샬롯에게 자신이 쥐여준 것을 떠올리며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시그린을 크게 흔들어 놓는다.’

     

   오늘 글렌에게 벌인 수작질을 보고 크라슈는 확신했다.

   시그린은 멸망을 막는 데 반드시 방해될 것이라고 말이다.

     

   크라슈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 크라슈의 앞에 문 한 짝이 보였다.

   마법을 덕지덕지 발라둔 문은 딱 봐도 보안을 철저히 해둔 듯싶었다.

     

   크라슈는 우뢰성을 뽑으며 일말의 망설임 없이 멸화침식을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문 형태 그대로 우뢰성을 휘둘렀다.

     

   서걱!

     

   두부 가르듯 마법째로 문을 갈라 버린 크라슈가 다리를 들어 올렸다.

     

   쿵!

     

   그러고는 문을 발로 걷어차 버리자 문이 그대로 뒤편으로 넘어갔다.

     

   “우왁!”

   “악!”

     

   그러자 안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크라슈의 인기척을 느낀 이들이 문 앞에서 대기를 하다가 깔려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크라슈는 신경 쓰지 않고, 문을 훌쩍 뛰어넘었다.

     

   챙!

     

   크라슈는 뛰어넘자마자 날아드는 검을 받아쳤다.

   그러고는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른 녀석의 배를 주먹으로 강타하곤 발로 밀쳤다.

     

   “크학!”

     

   나뒹군 그를 두고, 크라슈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메이리를 지키기 위해 배치된 이들이 아직 꽤나 남아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크라슈를 경계 섞인 눈동자로 보고 있었다.

     

   ‘메이리는.’

     

   크라슈는 주변에 메이리가 보이지 않음을 눈치챘다.

     

   ‘숨겼군.’

     

   제 육감에도 걸리지 않는 특정 장소가 있는 모양이었다.

     

   “숨길 거라면 너희들도 여기를 비워두고 도망치지, 그랬냐.”

     

   크라슈의 입가에 스산한 웃음이 걸렸다.

   그 뜻이 무엇인지 눈치챈 백양단 일원들이 오싹함을 느꼈다.

     

   이윽고 곧 그들의 비명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 * *

     

     

   백양단 소속, 감지계 스페셜 리스트.

   메이리.

     

   그녀의 특기는 압도적으로 넓은 감지와 다중과업화 능력이다.

   한 번에 수십 가지의 상황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그녀.

     

   그런 그녀는 백양단의 머리로서 철두철미한 지휘와 적의 위치 및 작전 파악까지.

   상황에 맞는 모든 대처를 내릴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극도로 단련된 감지는 거의 예언과 같다.

   적이 퇴로, 동세, 작전까지 메이리가 있는 시점에서 적의 모든 것은 메이리 앞에서 무력 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약 메이리가 멀쩡했다면 아무리 백양단이었다고 해도 정면 돌파는 무리였다.

     

   그런 그녀가 샬롯에게 당한 이후.

   정신을 차린 것은 크라슈가 펠레이와 맞부딪쳤을 때였다.

     

   그녀는 멍한 정신과 두통을 느끼며 서둘러 감지를 발동시켰다.

   감지 능력이 한 번 샬롯에게 박살 난 만큼 제대로 작동시키는 데 꽤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도 괜히 감지계 스페셜 리스트가 아니라는 듯.

   그 상황에서도 기어코 감지 능력을 발동시켰다.

     

   아래쪽 구역에서 사자단 1기생과 백양단의 주요 멤버가 맞부딪치고 있었다.

   이쪽은 꽤나 아슬아슬한 공방이 오가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인마단의 단장 마학과 1기생 차석 바크람 아리오스와 마학과 2기생 수석 아슬란 이그리트가 맞붙고 있었다.

   아슬란을 따르는 2기생들도 필사의 전투를 반복하고 있었다.

     

   백양단 건물이 엉망진창이었다.

     

   마지막으로.

     

   ‘가까워.’

     

   2기생 무학과 수석, 크라슈 발하임이 기어코 펠레이를 꺾은 뒤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사자단 일원 중 가장 빠른 속도였다.

     

   불과 몇 분이면 이곳에 도달할 상황.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수는 별로 없었다.

     

   남은 인원에게 반을 지킬 것을 부탁하고, 자신은 만약을 대비해 만들어 둔 감지 면역 마법이 걸린 도구함에 숨는 것이었다.

     

   콰앙!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숨음과 동시에 크라슈가 나타났다.

     

   두 다리로 선 채 도구함에 숨은 메이리가 조용히 숨을 삼켰다.

     

   크라슈는 나타난 즉시 백양단 일원들을 전부 박살 내놓았다.

   그 모습은 보는 메이리조차 겁에 질릴 만큼 무자비하기 그지없었다.

     

   더불어 크라슈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아이들을 앉혀놓고 심문했다.

     

   “메이리, 어디 있냐.”

   “모, 모릅니다.”

   “그래.”

     

   크라슈는 모른다고 하자마자 옆에 있는 백양단 일원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평소 제국을 칭송하며 다른 왕국들은 멸망해야 할 머저리라고 자주 떠들던 지독한 제국주의자 단원이었다.

     

   “게흑, 켁.”

     

   자신이 맞을 줄 몰랐던 그가 기침을 토해내고 있자 크라슈는 다시 주먹을 들었다.

     

   “메이리, 어디 있냐.”

   “저, 정말로 모릅니다!”

   “그래.”

     

   그리고 크라슈의 주먹이 또 한 번 제국주의자 단원에게 꽂혀 들었다.

   선명하게 강타하는 그의 주먹은 보는 이도 눈을 꽉 감을 만큼 아파 보였다.

     

   “그, 그만.”

   “메이리, 어디 있냐.”

     

   크라슈의 눈은 무척이나 차갑게 식었다.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백양단 일원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정말로 무자비하기 그지없었다.

   영웅이라 칭송받는 이가 이토록 잔혹해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모습은 두렵기 그지없었다.

     

   더불어 그들의 머릿속에 일괄적으로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마굴 발하임.

   그곳에서 태어난 샬롯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말이다.

     

   메이리를 지키고자 배치된 인원은 전부 백양단의 1기생 일원들이다.

   샬롯에게 저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깨져 보았던 그들의 몸속에 새겨진 발하임의 두려움이 다시금 끌어 나왔다.

     

   “메이리, 어디 있냐.”

     

   크라슈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질문만을 했다.

     

   여기에 관한 답변 말고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듯.

   그는 무감정하게 질문하는 로봇처럼 물었다.

     

   그리고 대답이 없자 크라슈는 또 한 번 주먹을 들었다.

     

   “그, 엑, 사, 살려…….”

     

   어느새 제국주의자 단원은 눈물을 쏟으며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크라슈는 자비 없이 그의 등을 콱하니 짓밟았다.

     

   “시, 시러. 마, 마하게요. 마하게요! 제가 마하게요!”

     

   크라슈의 주먹에 강타당하며 이가 몇 개 빠진 듯 그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크라슈는 그에게 물은 게 아니었다.

   처음 질문을 한 녀석을 크라슈는 똑바로 바라보았다.

     

   “메이리는 어디 있냐.”

     

   질문을 받은 이의 얼굴이 공포심에 질렸다.

   더불어 제국주의자 단원이 애타게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 눈과 마주하자 그는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

     

   콰앙!

     

   그 순간 메이리가 있던 도구함의 문이 열렸다.

   열린 문을 크라슈가 바라보자 거기에는 메이리가 입술을 꽉 깨문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만 하세요. 저 여기 있으니까.”

   

   

   

   

     

   결국 보다 못한 메이리가 제 발로 나온 것이었다.

   메이리는 크라슈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보았다.

     

   지금 하는 것은 전쟁 같은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항전이었다.

     

   물론 정치적으로 많은 것이 엮여 버린 대항전이라곤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크라슈의 방금 행동은 도저히 대항전에서 보일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당신은 영웅이라 칭송받는 이가 일반 학생에게 그런 짓을 하는 건가요?”

     

   크라슈는 그 말을 듣고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곧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내가 언제 한 번이라도 영웅이라 칭해 달라고 한 적 있냐.”

     

   다음 물음을 들은 순간 메이리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 또한 크라슈의 명성을 수없이 많이 들었다.

     

   그런 그가 이런 인물이었다니.

   메이리는 솔직하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메이리, 잘 들어라.”

     

   크라슈는 짓밟았던 제국주의자 단원에게서 발을 떼며 메이리 앞으로 걸어왔다.

     

   “이 썩을 세상은 세상 곳곳이 온통 얼룩진 오물투성이야.”

   “그게 뭔.”

   “그리고 그건 감지 능력을 지닌 네가 가장 많이 접하게 될 사실이다.”

     

   메이리가 멈칫하였다.

   크라슈의 눈동자가 왜인지 모르게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소소, 오한이 들었다.

   이 남자가 자신에게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런 것을 수없이 보다 보면 언젠가 네 손으로 네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싶은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아무리 방을 깨끗하게 만들려고 노력해도 결국 먼지는 쌓이는 법이라는 거다.”

     

   크라슈의 눈동자 속 메이리가 비추었다.

   창공의 세대 소속으로서 감지계 능력에 특출난 그녀는 누구보다 빠르게 위기를 알렸다.

     

   그리고 그녀는 몇 번이고 위기를 경고하며 사람들을 살려 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경고에도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

     

   그것은 돈과 같은 수많은 욕심에 의한 결정이었다.

     

   자신의 경고에도 움직이지 않은 이들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죽어 나간 이들은 대부분 평민이었다.

     

   그녀는 귀족이 아닌 평민.

   귀족보다도 평민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잘 아는 그녀는 그 사실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녀는 제 손으로 자기 귀를 찢고, 눈을 뽑아내었다.

     

   듣고 보며 그것을 알린다 한들.

   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하나 알아둬.”

     

   크라슈의 우뢰성에서 검날이 솟아올랐다.

   흑염이 피어오른 검날에서 오는 위압감은 메이리를 뒷걸음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런 먼지조차 죄다 불태워 버릴 작정인 무자비한 방화광 놈이 하나 있다는 것 정도는 말이야.”

   “읏!”

     

   아직은 크라슈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메이리가 바로 도주를 시도했다.

     

   감지 능력을 이용한 그녀의 회피 능력은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다.

   그러니 어떻게든 도망을 쳐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그것이 무른 생각임을 깨달았다.

     

   메이리의 모든 감지 영역에 크라슈의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의미가 무엇인지 메이리는 잘 알았다.

   자신에게 도망칠 수 있는 수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빠각!

     

   그녀는 목뒤에서 들려온 소리와 함께 자신의 의식이 멀어짐을 느꼈다.

   그녀는 멀어지는 의식 속, 크라슈의 눈동자와 잠시 마주쳤다.

     

   자신을 통해서 뭘 보고 있는지 모를 그였지만.

   그것이 적의만이 아님을 안 채 그녀는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번 화 일러스트를 깜빡해서 넣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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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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