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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3

   EP.233

     

   세상을 살다 보면 나의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뉴스를 보면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라거나 자신이 저지른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그땐 내가 왜 그랬지?’ 싶은 흑역사들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생긴 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모든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한다고 해도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탑의 주인이 된다?”

     

   백색 성좌의 말을 되풀이 하니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말을 반복한 이유는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우선 내가 방금 그의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고, 방금 던진 말이 진담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아니, 아니…… 제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롭니다. 우리는 당신이 탑의 주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가 말에 쐐기를 박았다.

   납득은커녕 오히려 더 혼란스러운 기분.

   순간 ‘빠른 납득’ 스킬이 발동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이게 정신 계열의 마법이나 환상도 아닌 것 같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더더욱 의심이 되었다.

     

   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나보다 고차원적인 존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나의 의문을 잠재우려는 듯, 그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태도 때문입니다.」

     

   “네? 태도라뇨?”

     

   「끊임없이 의심할 수 있는 태도 말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심하는 게 뭐가 그렇게까지 특별한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가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고 나는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저 의심하는 것만으로 당신을 지켜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의 그 의심하는 태도와 성격 뒤로 나타나는 행동과 판단력을 높게 산 것입니다.」

     

   “그건 그리 특별한 게 아닐 텐데요. 저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도 많고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도 많아요. 물론 전투력을 비교하더라도 저보다 강한 성좌는 분명 있을 겁니다.”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16층에서 당신을 도왔던 성좌들만 봐도 알 수 있죠. 장막 뒤의 감시자는 머리가 정말 좋습니다. 가히 이 탑에서도 그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혜롭죠. 순간적인 판단력만 따지자면 살아 있는 무공서 만한 분도 거의 없고 전투력 면에서 봐도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는 자신의 이명 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편이죠. 하지만…」

     

   그가 잠시 말을 멈춘다. 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는 것을 보니 내가 그의 말을 들으며 뭔가를 눈치채 주기를 바라는 뉘앙스였다.

     

   「당신은 어떻죠?」

     

   “음… 놀리시는 건가요?”

     

   「사실 제가 다 안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저는 보기와 달리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서 스스로 성장을 해야 한다거나 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그의 말에 나는 그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제가 성장하는 존재라는 걸 말씀하고 싶으신 건가요?”

     

   「더 특별하다고 볼 수 있죠. 앞서 말한 세 성좌만 봐도 각자의 목표가 뚜렷해요. 그리고 자신이 보고 있는 목표가 아니라면 애초에 관심조차 없죠. 하지만 당신은 좀 달라요.」

     

   그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어린아이처럼 얼굴에 홍조를 띠며 빠르게 말을 잇는다.

     

   「이 탑을 오르는 수많은 플레이어, 화신, 성좌들을 봐 왔지만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 당신만큼 승부욕이 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누굴 만나든 이겨야 직성이 풀리고 어떤 문제든 눈앞을 가로 막으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해결하려 들었죠.」

     

   “그건 그저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강해지는 길을 선택한 것뿐이다.

     

   나는 편법 따위를 모른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았기에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때마다 돌아오는 후폭풍이 두려워 왕도에 가까운 정석을 찾아 움직였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함이라고 했죠? 그런데 그거 아시죠? 당신과 같은 선에서 시작한 그 누구도 당신과 같은 선상에는 어울릴 수 없게 됐다는 거요.」

     

   정론.

     

   그는 노력의 본질을 꿰뚫어 지나간 나의 시간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세상에 쉬운 길 같은 건 없어요. 만약 당신이 쉬운 길을 걷고 있다면 그건 아마 내리막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 게 좋아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존재가 더 힘겨운 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요?」

     

   지금까지 수많은 노력이 있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꾸준히 검을 휘둘렀고 괴물을 죽이고 임무를 완수하며 거침없이 탑을 올랐다.

     

   함께 탑을 오르기 시작한 사람들이 10층 언저리에 머물 때, 이곳에 가장 먼저 도달했고 모두가 화신으로 만족할 때, 성좌들과의 전쟁에서 당당히 승리를 쟁취했다.

     

   솔직히 말해 단 한 번도 꺾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죽을 뻔한 경험도 수차례 있었고 자리를 박차고 도망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쓰러진 이후에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나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들었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낮은 곳에 있었기에 위로할 수 있고 높은 곳에 올랐기에 자격이 있는 자. 그리고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모든 고통을 다시 한 번 감내한 자.」

     

   나는 나의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조차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백색 성좌가 보여 준 영상이 사실이라면 나는 가장 깊은 후회의 순간에 미래… 아니, 과거를 바꿀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해 지금의 내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혹시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제가 개입한 과거였던 거죠?”

     

   나의 물음에 그가 짧게 손짓했다.

   영상이 떠올랐던 무대 위의 스크린. 잠시나마 꺼져 있었던 화면이 다시금 재생되며 나의 과거를 비추었다.

     

   “저건…?”

     

   「네. 저것도 당신이 설계한 겁니다.」

     

   화면 속의 나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매일 똑같은 버스를 타며 반복되는 길로 회사로 출근했고 그 길에서 나는 항상 경복궁에 솟아오른 탑을 바라보았다.

     

   익숙해지기 위해.

     

   임무가 떠오르는 순간, 메시지가 가리키는 탑이 저곳임을 인지하고 곧장 달려갈 수 있게.

     

   화면이 넘어간다. 그곳에서 나는 나의 흑색검을 백색의 성좌에게 넘기고 있었다.

     

   —

   [주인 없는 무명검]

   종류 : 무기

   랭크 : ?

   설명 : 평범하게 생긴 검이다. 내구성이 좋아 잘 부러지지 않는다.

   —

     

   튜토리얼 때부터 사용해 왔건만 단 한 번도 부서지지 않은 검.

   약간의 흠집은 있었지만 이가 빠지거나 닳아 없어진 흔적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투박한 검이었다.

     

   「당신이 저에게 부탁한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좌표의 최초의 각성자가 될 테니 그때 이걸 특전으로 건네 달라고.」

     

   공중에 떠오른 무명검이 나의 손에 들어왔고 나는 튜토리얼 더미라 부르는 괴물의 머리통을 파괴했다.

     

   「참고로 코인이나 능력치가 떠오르는 시스템은 당신이 저에게 제안한 개념입니다. 그 튜토리얼 더미의 디자인 또한 당신이 제시한 거였고요.」

     

   “하, 하하…”

     

   나의 허탈한 웃음 뒤로 또 다른 영상이 스쳐 간다.

   등단이라는 이름의 갑작스러운 미션을 받아 스카이 게임즈의 1층에서 20층까지 미친 듯이 뛰어올라 갔던 기억.

     

   그저 죽고 싶지 않았기에 미친 듯이 달렸건만.

     

   「그 임무도 당신이 저에게 미리 부탁했던 부분입니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죽게 되는 페널티는 결과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목숨을 담보로 사람들을 구하도록 했다.

   탑까지 도달하도록 길을 제시하며 목숨을 걸어라 다시 한 번 요구했다.

     

   “하,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저는 아주 미친 새끼였군요.”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라 말했다.

   성장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냥 죽으라고 소리쳤다.

     

   아니… 어쩌면 나는 내가 그냥 그 자리에서 죽기를 바랐을지도 몰랐다.

   앞으로 있을 고통과 분노를 다시 경험할 바에 죽음으로 모든 이야기를 끊어내는 것이 나을 것이라 여겼을 지도 모른다.

     

   “젠장… 원망할 대상이 없어졌네.”

     

   「하하… 웃을 상황은 아니지만 유감입니다.」

     

   나에게 [탑을 오르라 협박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과거의 나 자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더 이상 원망할 이유도 없지 않나 싶었다.

   나는 결국 모든 것을 해냈고 지금의 나든 과거의 나든 상관없이 내가 원했던 바를 이룬 존재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저에게 바라는 것이 뭡니까?”

     

   나의 물음에 그가 미소를 지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탑의 주인이 되라고요? 저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까부터 ‘우리’라고 표현하신 것을 보니 탑의 주인이 한 사람인 것 같지도 않고요.”

     

   「예리하시네요.」

     

   그가 잠시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며 상념에 잠겼다.

   어떤 이야기로 운을 띄우면 좋을까 생각을 정리하는 모양.

     

   하지만 이쯤 되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의문이 하나 피어올랐다.

     

   “그나저나……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뭐든 물어보시죠. 다음 층으로 가기 전에 개인적으로 털고 싶은 질문은 뭐든 던지셔도 좋습니다.」

     

   다른 존재들에 비해 특별함을 지녔다 할지라도 결국 그는 성좌였다.

   그리고 그 말인 즉, 이 흰색 밖에 보이지 않는 성좌 또한 성좌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특색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당신은 이명이 뭡니까?”

     

   튜토리얼 이전부터 나를 지켜봐 왔다던 그.

   그리고 그의 이명은 튜토리얼의 시작부터 익히 보아왔던 이명이었다.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

     

   나에게 스킬인 ‘빠른 납득’과 고유 스킬인 ‘업데이트’를 선물했던 자.

     

   「그게 성좌로서의 제 이명입니다.」

     

   그것이 백색 성좌의 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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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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