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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4

       인연이라는 것은, 쉽게 잊어버릴 수 없는 것.

       

       로테는 에테르와 반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왔다.

       

       단순히 반년을 같은 학교에서 지냈다는 뜻이 아니다. 말 그대로 4천 시간 넘게 제 몸처럼 딱 달라붙어 지냈다는 뜻이다.

       

       교실에서도,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시장에 갈 때나 잠자리에 들 때조차도. 두 사람은 룸메이트로서 늘 함께였다.

       

       그러니까 알 수 있었다. 단짝이 어떤 외모를 가졌는지. 어떤 목소리와 억양을 지니고 있는지. 또 당황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까지, 전부.

       

       “에테르, 너니…?”

       

       로테는 저도 모르게 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여인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눈을 피했다. 로테는 보았다. 아주 잠깐, 붉은색이었던 여자의 눈동자가 환하게 빛났던 것을.

       

       “맞지?”

       

       로즈마리 공녀가 사실은 금안족이었고, 눈동자 색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뉴스는 이미 접했다.

       

       보도 전체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눈앞의 여인은 홍채만 바꾼 에테르가 분명했다.

       

       “…학생, 미안한데 내 이름은 에테르가 아니야.”

       

       돌아온 건 차분한 대답이었다.

       

       “아스테야, 아스테야 하이젠버그.”

       

       그것이 여인의 이름이었다.

       

       아스테야는 자신을 초짜 교수라고 소개했다. 그러더니 곧 익숙하게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있었지만, 로테의 눈에는 정체를 들켜 횡설수설해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야 그렇다. 에테르는 난처할 때 오히려 말을 정갈하게 하여 제 감정을 숨기려는 특징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연구실에서 늦게 귀가했을 때. 왜 늦었냐며 잔소리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물어보지 않았던 연구 내용까지 줄줄 읊어가며 당황한 것을 숨기려고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여인은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의자를 앞으로 끌었다.

       

       “아무튼 그래. 그나저나 이것 좀 바깥으로 가져다줄래?”

       “아, 네….”

       

       바깥으로 나오면서도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 이건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다. 99.9% 자신이 아는 그 에테르다. 나머지 0.1%? 마도학에서 그 정도는 버리는 숫자로 본다.

       

       그러니까 정말 기적적으로 똑같은 사람이 아닌 이상 에테르가 맞을 것이다.

       

       “이건 이쪽에 가져다 놓으면 되죠?”

       

       “어? 음, 그래.”

       

       로테는 아스테야를 졸졸 따라다니며 물건을 옮겼다. 그러면서 그녀를 유심히 관찰했다. 99.9%의 확률을 99.99%, 혹은 그 이상으로 끌어내기 위해선 몇 가지를 더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앉을 때 자세라든지. 마력초를 피울 때 손의 위치라든지. 수식을 적을 때 어떤 글씨체를 가지는지. 자주 쓰는 감탄사라거나 어휘 등등….

        

       솔직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최근 몇 개월. 에테르와 가장 많이 대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로테 자신이었으니까.

       

       “허어, 힘들군.”

       

       이런 사소한 한 마디조차도 로테의 레이더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저, 교수님?”

       

       “왜?”

       

       그래도 일단은 에테르, 아니. 아스테야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결심했다. 틀림없이 말 할 수 없는 사정이 있겠거니 싶어서.

       

       “교수님께서도 올해 입학시험 감독관을 하시는 건가요?”

       “뭐, 일단은 그래.”

       “제가 뭐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

       “됐다. 공부나 열심히 하렴.”

       

       아스테야는 가져온 의자 중 하나에 앉으며 담배를 물었다. 로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스테야를 향했다.

       

       “……됐다. 지금은 피울 때가 아니지.”

       

       그러더니 다시 일어나는 아스테야.

       

       로테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중지와 약지 사이로 마력초를 끼우는 모습을. 저런 파지법을 지닌 사람은, 자신이 알기론 한 명밖에 없었다.

       

       확신에 쐐기를 박는 순간이었다.

       

       

       **

       

       

       카우렐리아의 기온은 틸레트와는 사뭇 다르다. 온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햇빛이 쨍쨍거리며 등줄기를 훅훅 볶아 놓기도 했다.

       

       마수는 더위에 취약하다. 신체의 각 기관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몸이 시원해야 한다. 이는 기계가 지닌 공통적인 특성이었다.

       

       카우렐리아에 육상형 마수가 거의 없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부분은 비열이 큰 바다에 서식한다. 당장 일리야드를 뒤집어 놓았던 리바이어던도 해양형 마수이다.

       

       에테르는 반소매 와이셔츠 하나만 입은 채로 작업하고 있었다. 그나마 창고 정리는 수월했다. 건물 안이라서 직사광선은 피할 수 있었다.

       

       그래도 더운 건 마찬가지였다. 텁텁한 공기. 체육창고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필 냄새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머리 아프군.”

       

       그렇게 얼마나 작업했을까.

       

       “에테르?”

       

       뒤통수 너머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에테르는 그 자리에서 석고처럼 잠시 굳었다. 금방 평정을 되찾고 뒤를 돌아보기는 했지만, 곧바로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에테르, 너니?”

       

       로테 살리에르. 또 다른 자아가 사귀어 놓았던 인족 소녀가 뜬금없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어깨에서 끊어지는 다홍색 단발. 잘 여물은 레드베리처럼 옹골진 눈동자와 순둥순둥한 인상이 매력적인 소녀였다. 늘 밝고, 사회성 좋고,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여자아이.

       

       에테르는 속이 뒤집히는 감각이 들었다.

       

       순간 크게 동요하고 말았다. 저 소녀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던 까닭이다.

       

       아니, 기억할 필요조차 없었다. 1천 년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그깟 6개월 따위, 인연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으니까.

       

       그런데도 안쪽에서, 누군가가,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다.

       

       뭐 하고 있어? 빨리 인사 받아주지 않고.

       

       “…학생, 미안한데 내 이름은 에테르가 아니야.”

       

       ‘에테르’는 가까스로 다른 자아를 억눌렀다.

       

       그리고 단번에 느꼈다.

       

       당했다.

       

       자신의 또 다른 자아는 처음부터 이걸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테 살리에르라는 소녀가 틀림없이 변장한 자신을 대번에 알아볼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으리라.

       

       그래, 이게 네가 말했던 ‘포석’이라 이거지.

       

       흑주 연구에 혈안이 되어있어서 로테 살리에르를 깜빡하고 말았다. 아니, 알고 있었어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을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로테는 교환학생이었으니까. 틀림없이 이번 학기가 끝나자마자 틸레트로 돌아갔을 것이리라고. 그리 판단하고선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겠지.

       

       “큰일이군.”

       

       에테르는 로테 몰래 중얼거렸다.

       

       세실 르네이 총장은 말했다. 다음 학기부터 틸레트와 일리야드는 통합하여 운영된다고. 틀림없이 이전에 만들어 두었던 친구들도 이리로 올 것이다.

       

       이대로라면 앞뒤로 잡힌다. 세계수를 불태우기 전에 들킬 가능성도 농후하겠지.

       

       어떻게든 눈앞의 불부터 꺼야 한다. 그래서 최대한 태연한 척을 했다. 설마, 아직 완전히 들키진 않았을 테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시치미를 떼기로 작정했다. 몇 번 부정해 주면 금방 ‘아닌가?’ 하고 나가떨어지겠지. 그것이 인간 심리이다.

       

       “저, 교수님. 교수님께서도 올해 입학시험 감독관을 하시는 건가요?”

       “뭐, 일단은 그래.”

       

       로테는 가끔가다 상투적인 대화를 건네왔다. 에테르는 그때마다 평범하게 답해주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일상적인 대화인데, 목 근처가 뻣뻣해지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담배. 갑자기 담배가 마려웠다.

       

       에테르는 헛기침하며 끌고 온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마력초를 꺼냈다. 로즈마리가 준 골든슈타인 품종. 한 모금만 들이켜도 마력이 최대로 충전되는 최상품이다.

       

       그렇게 에테르가 담배를 입에 물으려는 순간.

       

       “…….”

       

       시발.

       

       좆됐다.

       

       지금 에테르의 신분은 인족 교수. 게다가 눈이 붉은색이다. 대놓고 ‘나 화계마도 쓸 줄 아는 사람이요’ 하는 꼴이었는데….

       

       화계마도사들은 라이터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자기가 알아서 불꽃을 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라이터를 꺼낸다면 체크메이트. 아무리 잘 처신해도 의심만 키우는 꼴이 된다. 

       

       “……됐다. 지금은 피울 때가 아니지.”

       

       결국 에테르는 대충 핑계를 대며 흡연을 포기했다.

       

       이미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래도 여기서 멈춘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로테가 자기 손 위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뭔가 놓친 게 있나…?

       

       자신이 담배를 내려놓자 로테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무언가 불안해졌다. 혹시 자신은 모르는 사소한 버릇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로테가 눈치라도 챈 것이라면….

       

       젠장. 이제 이년에게 뒤통수 맞는 건 시간문제겠군.

       

       앞으로 들킬 때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전에 어떻게든 일처리를 해야 한다.

       

       “더 도와줄 건 없어. 이제 그만 들어가 보렴.”

       

       어느덧 해 질 녘. 에테르는 로테에게 손짓하며 귀가를 종용했다. 

       

       “네, 교수님도 조심해서 귀가하세요.”

       

       예의는 바른 아이였다. 저 가면이 언제 벗겨질지가 문제지. 잘못해서 건수라도 잡혔다간 로드스톤 회수 계획은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다른 건 몰라도, 계획이 실패해서 길라흐에게 비웃음당할 수는 없었다. 정말이지, 그건 상상만 해도 개같았다. 그리 생각하니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

       

       “…그래, 아직은 괜찮겠지.”

       

       에테르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차양막을 세웠다. 이것이 마지막 일이었다.

       

       남은 건 아카샤가 어떻게 들어올지 확인하는 건데…….

       

       이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어떤 신분으로 들어올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

       

       

       로테를 만나고 얼마 후.

       

       “뭐야, 네가 왜 입사관인데?”

       “그렇게 됐다. 그보다도 아는 척 좀 하지 마.”

       

       2학년 편입시험에 지원한 아카샤가 수험표를 내밀다 말고 멍하니 속삭였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소녀가 멍청한 표정을 지으니까 목덜미가 저릿했다. 자신도 로테 앞에서 이런 표정을 지었던 건가?

       

       “일단 합격하기나 해라. 내가 성적까지 좌지우지할 수는 없으니까.”

       

       아카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시험장으로 향했다.

       

       자신과 거의 똑같은 존재니까 일리야드의 편입시험 따위, 가뿐히 해결할 것이리라 믿는다.

       

       [합격통지서]

       [성명 : 라키아 에렌페스트]

       

       [위 학생이 일리야드 마도 아카데미 특수편입학고사에 합격하였음을 통지함.]

       [세실 르네이 총장 (인)]

       [마이클 테르먼 입학처장 (인)]

       

       “야, 합격했어.”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카샤는 합격증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제 문제될 건 없었다. 로테가 장애물이긴 했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직접 가서 만나지만 않으면 서로 까먹고 말 테니까. 처신만 잘 한다면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슬슬 세계수가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겠군.”

       “내가 알아.”

       

       에테르는 개학일이 다가올 때까지 일리야드 주변을 답사했다. 사전에 아카샤에게 받은 지도가 있었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세계수는 아카데미와 저기 국회의사당을 잇는 축선에 위치해. 보이지? 저 커다란 나무.”

       “그래.”

       

       훌륭한 장작이다.

       

       에테르는 그런 감상을 품으며 개학 준비를 마쳤다.

       

       마침내 특별반의 위치를 알게 되었고. 남은 건 1년 담임으로서 학생들을 대강 가르치면 될 뿐.

       

       좋아. 최대한 익살맞게 가는 거다. 마수인 걸 들키지 않도록, 학생들에게 거짓 신뢰를 쌓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니까.

       

       에테르는 크게 심호흡하며 문을 열었다.

       

       드르륵.

       

       “…….”

       “…….”

       

       쾅!

       

       “……아, 젠장.”

       

       왜 쟤가 내 반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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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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