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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4

       “만약 저를 두고 가겠다고 하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르겠어요.”

        

       “……그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

        

       나는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내가 남자였다면 아주아주 큰 효과가 있었을 거다. 여러모로 보수적인— 특히 성적으로 어마어마하게 보수적인 이 세계에서 남녀가 단둘이 방 안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이슈가 될 텐데, 심지어 여자 쪽이 비명을 질렀다면 그 비명 자체가 증거가 되겠지.

        

       여자 쪽의 신분이 지나치게 낮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양쪽 다 왕가와 황가의 피가 흐르고 있다면 그 땅의 주인 되는 가문의 피가 흐르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

        

       그런데 우리는 둘 다 여자잖아.

        

       “제 방에 들어오기 위해 폭탄을 썼다면서요? 절 암살하고자 왔다고 둘러대면 다들 믿지 않겠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무시한 소리를 하는 샤를로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곳까지 따라가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여기까지 와서는 가지 말라는 소리를 하는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의 질문에 샤를로트는 다시 질문으로 대답했다.

        

       “아, 위험하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요. 제 평생 ‘위험’이라는 건 그리폰의 발톱에 긁혔을 때 다 겪었다고 생각하니까.”

        

       “…….”

        

       음. 그건 그렇긴 한데.

        

       “아니면, 제 실력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냥 잘 싸우는 기사들을 뽑아서 가면 되는 일이라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맞는 말이기는 했다.

        

       생각해봐라. 우리가 아무리 나이 먹었다고 해도 이제 만 15세다. 성인은커녕 꼬꼬마 취급받지 않는 것이 이상한 나이라는 소리다.

        

       물론 이 세계에서는 법적으로는 미성년자라도 사회적으로는 사실상 성인 취급이라는 여러모로 복잡한 나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존망이나 세계를 움직이는 음모의 중심에 들어갈 나이는 또 아니었다.

        

       게임에서 주인공 일행이 목숨을 걸고 최종결전에 임하고, 결국 세상을 구하는 것도 ‘게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실이었다면 그냥 엄청나게 잘 훈련된 특수부대를 보냈겠지.

        

       사실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지금도 나는 그게 그렇게까지 나쁜 생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내 사고방식도 이 세계식으로 변화했다는 소리겠지.

        

       “당신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치적인 상황이—”

        

       “이번에도, 똑같이 되물어 볼게요. ‘인제 와서?’”

        

       “…….”

        

       “애초에 생각이 있었다면 다짜고짜 왕궁에 찾아와서 아버지— 국왕 폐하께 그런 소리를 하지도 않았을 거고, 친구들로 침투조를 꾸려서 지하로 내려갈 생각도 안 했겠죠. 애초에, 아버지가 왜 당신의 말을 따랐는지 알아요? 그 상황에서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니에요. 상대가 당신이니까 체념했던 거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상대가 ‘당신’이잖아요. ‘실비아 팬그리폰’.”

        

       샤를로트는 다시 한번 강조하듯 말했다.

        

       “고작 열 네 살의 나이에 두 나라의 대표를 만나 군사동맹을 미리 방지하고 나아가 그 관계마저 애매하게 만들어낸 존재. 황제가 철저하게 신임하고, 벨부르 왕국조차 모르던 비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알고 있고…… 당신이 어떤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것대로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도록 둔 거죠.”

        

       “…….”

        

       “그럼, 설마 아버지가 당신의 그 계획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고 생각해서 당신의 말에 동의했다고 생각하세요?”

        

       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나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다른 방법이 없는’ 이유는 그냥 내 존재 그 자체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제 와서 이게 더 낫다느니, 이게 더 성공 가능성이 크다느니 하는 것을 따지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러니 저는 이 이야기의 끝을 직접 봐야겠어요. 중간에 억울하게 떨어져서 소문으로나 들을 바에는.”

        

       목숨이 위험해지는 것도, 그리고 정치적인 위협에 시달리게 되는 것도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일에 휘말렸고, 그 끝이 보고 싶어졌으니 그저 끝까지 직접 가서 확인하겠다.

        

       샤를로트의 말을 요약하면 그것이었다.

        

       “그리고, 말 했잖아요.”

        

       샤를로트는 조금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친구라고. 어차피 저는 정치적인 위치에서 태어났어요. 무슨 일을 해도 정적은 생길 수밖에 없고, 정치적인 이유로 만나는 지인들도 생길 거고, 개중에선 스스로 저의 친구라고 말하며 접근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죠. 뭐, 그런 존재를 보고 친구라고 생각할 수는 있을 거예요. 친구라고는 해도 그 정의가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

        

       홍차를 내려다보던 샤를로트의 시선이 올라와 내 눈과 딱 마주쳤다.

        

       “하지만, 설령 둘 중의 한 사람이 너는 친구가 아니라고 외쳐도, 서로 정치적인 의견이 맞지 않거나 하나의 이득을 두고 경쟁하는 것을 상상하더라도…… 이상하게 그 이후에도 계속 ‘친구’라고 느낄 것 같은,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상대는 제 인생에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제게는 여러분이 그래요.”

        

       샤를로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 말했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은 아카데미 바깥에서는 다시는 만들 수 없는 종류의 친구겠죠.”

        

       그러니 잃어버릴 바에는 끝까지 함께 해보겠다.

        

       “……저희가 만난 지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계십니까?”

        

       “어머, 그럼 당신은 우리가 만난 지 고작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가 ‘친구’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나도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곳에 갔다가는 어떤 일을 겪을지 모르는데, 고작 일생에서 몇 개월 본 친구를 위해서 그 뒤를 따라가겠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정 생각이 그러시다면, 저도 더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말려도 따라갈 생각이었으니 별로 고맙지는 않네요.”

        

       결국 나는 샤를로트의 말에 다시 한번 설득되었다.

        

       *

        

       “……어디서 격하게 구르고 온 것 같은 모습이네.”

        

       앨리스의 방으로 들어가자, 앨리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면서 물었다.

        

       그야 진짜로 굴렀으니까.

        

       샤를로트의 방에서 대화를 너무 오래 나누었는지, 지붕 위의 저격수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온 뒤였다. 안 그래도 왕도 지하에 비밀기지가 있었던 건 때문에 경계가 잔뜩 강화되었는데, 샤를로트의 방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터뜨린 폭탄 때문에 경계 수준이 그야말로 최대치를 찍어버린 모양이었다.

        

       다시 밧줄을 타고 올라가서 회수하고, 저격수들의 서슬 퍼런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지붕 위에 딱 달라붙어 기어 다니고…… 시간을 몇 번이나 되돌렸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굴러다니기도 했고.

        

       그래도 애초에 저격수들은 지붕 위에 올라온 인간들을 상대하기보다는 지붕 위로 올라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있는 존재들이었다. 상대한테 들켜서는 안 된다는 점은 저격수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대부분의 저격수는 지붕 위에 납작 엎드려서 왕궁 주변을 감시하는 중이라 들키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능력이 없었다면 진작 잡혀서 구금되었겠지만.

        

       “그러고 보니 아까 바깥에서 폭발 소리가 들렸는데.”

        

       “샤를로트 왕녀님의 방에 들렀다 오는 길입니다.”

        

       “…….”

        

       앨리스는 하고 싶은 말이 엄청나게 많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구태여 사정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는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 사고 치는 나를 옆에서 쭉 보아왔으니, 뭐.

        

       “레오와 클레어는 아직 안 왔어. 그러니까 그 두 사람 오기 전에 옷매무새 정도는 조금 만지는 게 어때? 지금 네 꼴을 보면 엄청나게 걱정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앨리스의 말에, 나는 바로 앨리스 방에 딸린 샤워실로 들어갔다.

        

       *

        

       테이블 위에 올려둔 지보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줄기의 빛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앨리스와 클레어 쪽으로 향한 채였다.

        

       “……그러니까, 클레어가…….”

        

       “내 친자매야.”

        

       레오는 앨리스의 확인 사살을 듣고,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럴 거 같더라.

        

       “하지만 나는 팬그리폰이 아니라 그레이스야. 누나를 잃을 걱정은 할 필요 없으니 안심하라구.”

        

       클레어가 농담하듯 그렇게 말했지만, 레오는 새파랗게 변한 얼굴로 입술만 달싹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이 이야기를 제게 알려주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다시 존댓말이 되어버렸네.”

        

       앨리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요즘에는 아카데미 내에선 슬슬 말을 놓는 레오였는데, 그 관계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버린 느낌이었다.

        

       앨리스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뭐, 어쩌겠어’하고 이해하고 넘어가려는 듯.

        

       “너는 클레어랑 남매지간이니까. 적어도 너는 알고 있는 쪽이 좋을 것 같아서.”

        

       “클레어는 팬그리폰이 아니라 그레이스로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핏줄과는 상관없이, 당신은 클레어의 남매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앨리스와 내가 레오에게 그렇게 말하자, 레오는 클레어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클레어는 그런 레오의 눈을 잠깐 피했다가, 이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레오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내가 누나인 건 변하지 않으니까.”

        

       “……아니, 둘 다 그레이스 가라면 당연히 내가 오빠지.”

        

       클레어의 말에 레오가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그래도 관계가 박살 나지는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기후원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 덕분에 오늘도 힘내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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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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