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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4

        

       반쪽짜리 예언자와의 불쾌한 첫 만남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아그네스는 역겨운 놈과 얽힌 것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고, 엘라 역시 저 고쳐서도 쓰지 못할 망나니가 자신과 얽혔다는 불쾌감에 더해 아나스타시아에게 무슨 허튼짓이라도 할까 걱정했다.

         

       그리고 저택에 돌아온 아그네스와 엘라에게 망나니 예언자와 예언으로 아나스타시아가 얽히게 되었다고 들은 대마녀 역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아니, 감추기는커녕 필요 이상으로 내보였다.

         

       “뭐라고? 하, 너는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하는 거니? 그런 문자가 오면 몸조심해야지 어딜 생각 없이 밖에 싸돌아다녀서 그런 거랑 아샤랑 얽히게 만드는 거니?”

         

       그녀는 엘라에겐 폭풍 같은 잔소리를 퍼부었고.

         

       “네스. 그 망나니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거기에 간 거니. 나는 네가 참 걱정이다. 어렸을 적부터 왈가닥 같은 면모가 있기는 했는데, 나이를 먹어서도 그 기질이 전혀 줄어들지 않아. 얘, 제발 옛날처럼 나를 놀라게 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옛날 기억나니? 네가 어디서 이상한 방송을 보더니 갑자기 여행 가보고 싶다고 말하고는 나한테 편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진짜로 탄자니아로 갔었지. 심지어 거기서 웬 핏덩이 같은 아기를 안고 오기까지 했으니, 그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단다.”

       “스승님 그만 하세요. 귀에 피 나겠어요.”

       “귀에 피가 나? 나는 그때 정말로 피를 토하는 줄 알았어! 몇 달 만에 나타나 놓고는 애를 안고 들어왔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알기나 하니! 어디서 굴러먹었을지도 모르는 놈팡이를 사위라고 끌고 오지는 않았을지,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안 좋은 일을 당해서 애를 낳게 된 건 아닐지! 그때 온갖 생각이 들어서…!”

       “그때는 제가 잘못했다고 했잖아요!”

       “얘! 어딜 스승님이 말을 하는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아그네스-! 아그네스 A 라이히! 내 앞에 와서 앉으렴! 오랜만에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아그네스에게도 어마어마한 잔소리를 퍼부었다.

       왈가닥 같은 면모가 있는 아그네스가 완전히 학을 떼게 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바탕 잔소리의 폭풍이 지나간 후에야 망나니에 관한 이야기가 아나스타시아에게 닿았다.

         

       엘라와 아그네스, 대마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객관적인’ 시선이 더해져서 말이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들었던 윌리엄의 망나니 같은 행동을 여과 없이 아나스타시아에게 전달했다.

         

       “이 윌리엄이라는 사람은 아주 끔찍한 망나니예요. 이게 얼마나 심하냐면 영국의 사람들이 신문에 윌리엄의 이름이 올라가면 놀랄 정도랍니다. 사건을 저질러서 놀란 게 아니라, 어지간한 짓으로는 ‘저놈은 원래 그런 놈이다.’하고 넘어가면서 신문 기사도 올라가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래요. 그런 망나니 같은 놈이 얼마나 큰 사고를 벌였기에 신문 기사에 이름을 올렸냐 이거죠.”

       “아샤. 나는 많은 사람과 친분을 나눴고, 그 덕분에 윌리엄이 벌인 일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단다. 엘라가 알고 있는 것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이 망나니는 신혼을 즐기는 새신부를 꾀거나, 결혼을 앞둔 신부를 꾀거나, 심지어는 애를 낳고 잘살고 있는 유부녀를 꾀기도 했어. 당연하게도 이 녀석이 손댄 가정은 파탄이 나버렸고, 아르투아 가문에서는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 아르투아 가문이 입막음을 위해 쓴 돈만 하더라도…꽤 커다란 사업 하나를 해도 무방할 정도의 금액이라고 해.”

         

       엘라와 아그네스는 윌리엄의 끔찍한 인간성을 부각해 아나스타시아에게 각인시켰다.

       호기심이 넘치는 아나스타시아가 혹여나 윌리엄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주 끔찍하고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그리고 대마녀 역시 퉁명스럽게 둘의 의견에 동의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놈이 네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만 생각해도 끔찍한데, 아샤 너에게도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하면…. 후. 정말 생각만 해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구나.”

         

       게다가 대마녀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인지 엘라와 아나스타시아보다 시야가 넓었고, 그 덕분에 생각하기도 꺼려지는 가능성을 하나 떠올리기까지 했다.

         

       “게다가 아샤 너는 순무로 만든 버터를 바른, 순무와 톱밥을 섞어 만든 빵만 먹고 자란 것처럼 키도 작고 몸이 비쩍 마르지 않았니? 그 망나니 놈이 너를 보고 딸을 갖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러면 후우, 정말 끔찍한 일이 되겠지. 귀여운 네스를 아내로 삼고 아샤를 딸로 삼고 싶어 하는 망나니라니. 오, 신이시여. 나는 그놈의 극성맞은 짓거리를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구나.”

         

       오딜리아는 생각만 해도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곤 빨간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나스타시아의 양어깨를 붙잡고 신신당부하듯 말했다.

         

       “그러니 얘야. 명심해두려무나. 절대, 절대, 절대! 절대로 그놈 부탁을 들어주지도 말고, 그놈과 말을 섞지도 말고, 그놈과 만나지도 마라. 알겠니?”

         

       그녀는 몇 번이고 아나스타시아에게 신신당부하고는 아그네스를 끌고 그대로 방을 나왔다.

         

       “네스 너도 명심하려무나. 내가 요새 얌전히 지내기는 했는데, 그놈이 내 눈앞에 있으면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으니까! 그 망나니 녀석이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나를 할망구(Hag)라고 부르지 뭐니! 그때 핸드백을 망치처럼 바꿔서 그놈을 흠씬 두들겨 패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치가 떨려!”

       “하아, 벌써 수십 번은 들은 것 같아요.”

       “얘! 내가 그렇게 많이 얘기했는데도 너는 그 녀석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고 오지 않았니? 이래서야 내가 말을 그만둘 수가 있겠니?”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물론 방을 나가는 걸로 대화가 끊기지는 않았다.

       오딜리아는 건수를 잡았다는 듯 사랑하는 제자를 향해 쉼 없이 잔소리를 퍼붓고 있었고, 아그네스는 치를 떨면서도 지금 잔소리를 듣지 않으면 뒤끝이 오래 이어질 것을 알고 있기에 꾸역꾸역 잔소리를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그네스와 오딜리아는 서서히 방에서 멀어졌고, 엘라와 아나스타시아가 머무는 방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엘라가 언제 아나스타시아를 향해 윌리엄에 대한 경고를 늘어놓을지 모르는, 아주 위태로운 평화가 말이다.

         

       그 평화 속에서 엘라와 아나스타시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총싸움하기 직전의 총잡이가 서로를 바라보듯, 긴장감이 넘치는 눈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긴장의 끝에 엘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후우. 언니.”

         

       자그마한 한숨을 내뱉으며 윌리엄에 대한 경고를 각인시키기 위해서.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자기 손에 온기가 느껴져 잠시 말을 멈춘 엘라를 향해 움직였고, 그녀의 품 안에 쏙 들어간 다음 머리를 비벼 그녀의 배를 간지럽혔다.

         

       “꺅!”

         

       본래 서부영화의 총싸움은 총을 늦게 뽑는 사람이 승리하는 법.

       아나스타시아는 그 승리의 규칙이 적용된 것처럼 거침없이 움직여 엘라를 간지럽혔고, 엘라가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오기 위해 바둥거리자 그제야 되었다는 듯 공격을 멈추곤 엘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동생! 걱정하지 마세요! 예언이 뭐든 간에 저는 동생의 뜻을 존중할 테니까!”

         

       그 모습이 어찌나 언니 같던지, 엘라는 순간 아나스타시아를 정말로 자신보다 연상으로 인식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초등학생 같은 모습과 평소의 애 같은 행동을 떠올리고는 그 느낌을 지우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고, 그대로 아나스타시아의 손을 피하고는 침대에 누웠다.

         

       “동생? 듣고 있나요? 동생 뜻대로 그 망나니 안 만난다니까요?”

       “듣고 있어요.”

         

       엘라의 마음은 아나스타시아의 대답을 들으며 갈팡질팡 움직였다.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데, 평소에 하는 행동을 보면 애나 다름이 없으니 묘하게 믿음이 가지를 않는다.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지켜봐야 할 것 같으면서도, 자신이 없어도 대부분의 일은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샘솟기도 한다.

         

       ‘하아, 참으로 복잡하네요….’

         

       엘라는 아나스타시아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렇게 된 거 아나스타시아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 *

         

         

         

       잠들기 전 엘라는 아나스타시아를 믿겠다고 그렇게 결정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을 때, 그녀의 결심은 흔들리고 말았다.

         

       “글쎄요. 프라우 빈터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마 그 예언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예언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진성의 단호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예언이라는 것은 미래를 관측하는 행위. 물론 미래라는 것은 가변적이며, 때에 따라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 역시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반쪽짜리 예언자가 본 예언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프라우 빈터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진성의 그 단호한 말에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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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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