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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4

       

       

       

       

       

       234화. 파급 ( 4 )

       

       

       

       

       

       사륵.

       

       손가락에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이 매끄럽게 넘어간다.

       그렇게 한 장, 또 한 장.

       

       거침없는 손길에 네크로마니콘이 제 살갗을 저항 없이 벌리며, 꼭꼭 숨기고 있던 속살을 낱낱이 꺼내 놓았다.

       여정의 첫 시작은 지옥의 문지기가 그들을 데리러 오는 부분부터 시작하였다.

       

       ‘살아 움직이는 암석 거인이라…?’

       

       생명체가 아니되 생명체처럼 움직인다니, 실로 기이한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루샨 공작은 슥슥 책을 넘겼다.

       무심하게, 그러나 빠르게.

       

       정신없이 몰두하였다.

       

       거대하고 소름 돋는 외형의 지옥문이 나올 때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고, 세 개의 머리와 여덟의 팔을 가진 심판자 ‘이시디움’이 나올 때는 절로 감탄하였다.

       

       글의 생생한 묘사도 그 이유였으나, 그 바로 옆에 그려진 그림이 눈길을 끌었던 까닭이다.

       

       “호오… 이 그림, 제법…”

       

       예술에 대해 관심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공작으로서 이런저런 작품을 접하기 마련.

       

       루샨 공작은 심판자 ‘이시디움’을 묘사한 그림이 굉장히… 굉장히 수준 높은 그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파랗게 생기 없는 피부는 이질적이었고, 인간의 죄를 살피는 여섯 개의 눈은 마치 태양을 머금은 듯 이글거린다.

       그 앞에 길게 줄을 선 죄인들은 빼빼 마르고 하나같이 공포에 질려 있었으니.

       

       ‘…..당장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것 같군.’

       

       단순한 그림임에도 어쩐지 움츠러들게 하는 박력이 느껴진다.

       

       루샨 공작은 한동안 ‘이시디움’의 그림을 살펴보다 눈길을 돌렸다. 

       범상치 않은 책은, 역시 그 그림마저 범상치 않다고 생각하면서.

       

       꿈틀.

       

       “?”

       

       …방금… 그림이 살짝 움직이지 않았나?

       아주 살짝, 곁눈으로 보인 것이었지만… 루샨 공작은 제 눈을 의심하지 않았다.

       

       분명히… 분명히 그림이 움직였다.

       

       루샨 공작이 고개를 가까이하여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마치 그림과 눈싸움을 하는 우스운 장면이 만들어졌지만, 루샨 공작은 한없이 진지했다.

       분명 그림이 살짝 움직였다.

       

       “…기분 탓인가.”

       

       한동안 봤음에도 변화가 없다. 

       

       ‘탈모 때문에 기가 허한가ㅡ.’ 중얼거린 루샨 공작이 시선을 돌려 다음 페이지를 읽으려 할 때.

       

       화악!

       

       돌연 ‘이시디움’의 그림에서 여덟 개의 팔이 솟아나더니, 책의 사방에서 유황불이 넘실거리며 일어났다.

       

       “무, 무슨ㅡ!”

       

       크게 놀란 루샨 공작이 저도 모르게 책을 내동댕이쳤지만, 책은 부드럽게 허공을 빙글빙글 돌며 두둥실 떠올랐다.

       

       고오오오ㅡ

       

       방 안 가득 유황불이 춤을 춘다. 자욱한 유황 냄새가 사방을 채우고, 위엄 넘치는 시선이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이 느껴진다.

       

       

       다리가 떨리고 고개가 숙여진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공중에 떠오른 책의 위로 거대한 하나의 인영이 떡하니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것 아닌가.

       

       “흐읍…!”

       

       루샨 공작은 대번에 저 존재를 알 수 있었다. 파란 피부, 세 개의 얼굴, 태양같이 이글거리는 눈동자와 여덟 개의 팔.

       

       방금까지 그림으로 봤던 심판자 이시디움이 아닌가!

       

       어째서? 지옥의 심판자가 이 자리에는 왜?!

       

       일단 넙죽 엎드린 루샨 공작은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지옥에서 죄인들의 판결을 맡아야 할 존재가 어째서 자신의 앞에 나타났단 말인가.

       

       “……”

       

       공작은 바닥에 엎드리고, 이시디움은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루샨 공작의 머릿속은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이상함을 느낀 루샨 공작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모습을 보였다면 뭔가 의도가 있을 터인데,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으니 이쪽이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이건?”

       

       그제야 상대를 또렷하게 바라본 루샨 공작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건… 이건 심판자가 아니었다. 그저 일렁이는 유황불이 이글거리며 하나의 형상을 흉내 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마치 불에 드리운 아지랑이처럼. 이것은 그저 하나의 환상이었다.

       

       “큼, 크흠!”

       

       추태를 보였음에 얼굴이 붉어진 공작이 괜히 헛기침을 뱉으며 옷을 정리했다.

       

       “…이리도 실제와 다를 바가 없으니, 내가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닌가.”

       

       머쓱한 혼잣말도 뱉으며 이시디움의 환상을 살폈다.

       

       보면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간혹 흔들리는 불의 너울거림이 없었다면, 루샨 공작은 이것이 환상이라는 걸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실로 놀라운 기적. 루샨 공작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허공에 떠오른 네크로마니콘을 바라보았다.

       

       “과연 소문의 책이로구나.”

       

       허공에 둥실하게 떠오른 책장을 살짝 넘겼더니, 허공에 고고하게 앉아있던 이시디움의 환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팔락. 화르륵! 팔락. 화르륵!

       

       다시 이시디움의 그림이 있는 페이지를 펼치면 환영이 나타나고, 넘기면 사라진다. 공작은 몇 차례인가 이를 반복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마저 읽어봐야겠군. 실로 기이한 책이지 않은가.”

       

       이따금 허공에 나타나는 각양각색의 환영은 루샨 공작의 혼을 쏙 빼놓았다.

       

       어느 때에는 거대한 탄탈로스의 전경이 한눈에 나타나는가 하면, 용암이 흐르는 용암 거인 간수들의 모습이, 또 탄탈로스 최초의 죄수들이 나타나기도 했으니.

       

       루샨 공작은 무언가에 홀린 듯 책장 넘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 내용도 무척 흥미로웠지만, 간혹 튀어나오는 환상은 그의 눈앞에 탄탈로스가 펼쳐지는 것 이상의 몰입감을 선사했다. 마치 두발로 직접 탄탈로스를 다녀오는 듯한 신비로운 여정.

       

       똑똑.

       

       “주인님, 저녁이 준비되었습니다.”

       

       환상적인 여행은 늙은 집사의 노크와 함께 끝을 맞이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그 두꺼운 책을 전부 읽은 것이다.

       

       창밖을 보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들어오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며 책을 덮어 책상에 올렸다.

       

       그러다가 문득 집사에게도 이 책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이리 신비한 경험을 혼자서 겪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무의식중에 공작의 손이 책상 위를 더듬었다. 방금까지 책이 놓여있던 자리였으나, 손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없다고?”

       

       그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네크로마니콘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신께서 교묘하게 손을 뻗어 책을 가져간 마냥.

       책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급히 식사를 마친 루샨 공작은 수십 년 동안 제 곁을 지켜온 집사를 호출했다.

       

       똑똑ㅡ

       

       “들어가겠습니다, 주인님.”

       

       늙은 집사가 조용히 들어왔다.

       루샨 공작은 그를 보자마자 대뜸 용무부터 꺼냈다.

       

       “자네, 마수의 산에 생겨났다는 지옥의 입구에 대해 얼마나 들어봤나?”

       “그저 남들이 아는 만큼은 들었습니다.”

       “그렇군…”

       

       입을 꾹 다문 루샨 공작은 한참이나 침묵을 지켰다. 할 말을 헤아리는 것인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인지.

       

       늙은 집사는 영문 모를 일이었지만, 묵묵하고 끈기 있게 제 주인을 기다렸다.

       

       “나는…”

       

       긴 침묵 끝에 다시 입을 연 루샨 공작의 목소리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그 책을 보았네. 소문의 네크로마니콘을 보았고… 그 책을 통해 탄탈로스를 보았네.”

       “그렇습니까?”

       “아니지, 단순히 보았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군. 나는 그곳에 다녀왔네. 다름 아닌 불꽃의 환상으로! 그것으로 유황불에 타오르는 악마를 보았고, 서로 몸을 씹어먹는 죄수들을 보았으며, 이글거리는 눈의 심판자를 보았네! 네크마니콘의 유황불 환상이 이 모든 것을 생생하게 보여줬지.”

       “…”

       

       루샨 공작의 눈에 이글거리는 것은 무엇일까?

       

       마치 땅속 가장 깊은 곳의 유황불이 두 눈에 옮겨붙은 모양새였다.

       

       “그건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실로 놀라운 것이다. 허나…

       

       “여지껏 소문에서는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 나도 듣지 못했네. 아마 내가 처음인 것이겠지.”

       

       루샨 공작은 침묵했고, 집사는 기다렸다.

       타닥거리는 장작이 바닥으로 낮게 깔리며 방을 감싸 안았다.

       

       “……요즘, 마수의 산에 오르다가 죽거나 다치는 이가 많아졌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탄탈로스의 입구를 직접 보겠다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예.”

       

       루샨 공작의 눈이 허공을 헤맸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헤아리는 사람과도 같았다.

       

       “우리 영지의 사냥꾼 하나와 전사 둘이 탄탈로스를 다녀왔다고 했지. 날이 밝으면 그 둘을 불러오게. 그리고… 자네가 고생해야 할 일이 하나 생길 것 같네.”

       “저는 공작님의 수족이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말씀하신 이들은 날이 밝는 대로 사람을 시켜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이만 가보게.”

       

       깊게 허리를 숙인 집사는 제 주인이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챘다. 조용히 뒤로 물러나며 소리 없이 문을 닫았다.

       

       “…”

       

       이윽고 루샨 공작 홀로 남았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매서운 겨울바람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송이에 그가 봤던 지옥의 풍경이 덧씌워진다.

       

       부글거리는 용암과 자욱한 유황의 연기,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는 죄인들, 비명이 터져 나오는 온갖 지옥들…

       

       ‘탄탈로스…’

       

       지저의 지옥, 악마와 죄인의 감옥, 영원한 고통의 땅.

       

       루샨 공작의 머릿속은 지금 주판알이 바쁘게 퉁겨지며 견적을 뽑아내고 있었다.

       

       영감이 샘솟는다.

       척박한 북부를 먹여 살릴 밥줄과도 같은 사업적 영감이!

       

       ‘이건 기회다. 몬테그로스가 날아오를 기회!’

       

       루샨 공작은 탄탈로스의 입구에서 사업적 기회를 봤다. 드넓은 대륙의 어느 누구도 감히 따라하지 못할 획기적인 상품을.

       

       탄탈로스의 문까지 향하는 안전하고 확실한 순례 상품!

       

       이건 통한다. 무조건 통할 수밖에 없다.

       루샨 공작은 확신했다.

       

       성도에는 성지의 문이 있다.

       

       그로 인한 부수입은 차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그 문 하나를 보고자 찾아오는 신도가 몇이며 그들이 쓰고 가는 돈은 또 얼마인가?

       

       ‘이제 북부에는 탄탈로스의 문이 있지.’

       

       결코 열리지 않는, 지옥으로 향하는 문.

       

       감히 이것을 이용해 장사를 해먹겠다는 발상은 실로 대범하기 그지없었으나, 마초적인 북부 남자의 수장인 루샨 공작의 사고방식은 실로 비범했다.

       

       ‘환상으로 보여주신 정도면 허락의 뜻 아니겠는가?’

       

       아니라면?

       너무 늦지 않게 회개하지 뭐.

       

       루샨 공작의 머리가 바삐 돌아가며 보았단 불로 말미암아 보았던 탄탈로스의 풍경들을 되새겼다.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우후죽순 떠오른다.

       

       산길을 안전하고 편하게 관리하고, 숙소나 식당도 대대적으로 점검하고, 날치기나 소매치기 따위를 단속하고…

       

       먼저 만신전에 허락을 구해야 하긴 하겠지만… 프리가가 도와준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유황불을 통해 이시디움의 형상을 보여주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으니, 조각으로 대체해서 장식해도 좋을 것이다.’

       

       꾸깃.

       

       허나 척박한 북부에서 조각가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날씨도 험하고, 마수의 위협이 일상과도 같은 땅이라 예술가들은 어지간한 광인이 아니면 북부에 오지 않았다.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최대한 많은 예술가를 고용해야 한다. 기념품으로 탄탈로스 그림 같은 것들을 팔면 굉장히 남는 장사가 될 거야.’

       

       신도 주머니 털어먹을 생각밖에 없는 루샨 공작.

       

       이건 상당한 지출을 감수할 만한 사업이 되리라.

       루샨 공작은 성공을 확신했다.

       

       신도 하나가 와서 먹고 자고, 탄탈로스의 입구에 다녀오기까지 쓰는 돈은 분명 적지 않은 양일터. 거기에 각종 기념품까지 판다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다. 몬테그로스는 마수의 땅에서 벗어나 새로운 순례의 중심지가 되리라.

       

       “문제는 예술가들을 어디서 구해오냐… 이건데.”

       

       고심이 깊어져 간다.

       

       해결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돈이 필요할 것 같았던 이 문제는, 뜻밖에도 저절로 해결되었는데.

       

       “공작님! 지금 조각가며 화가들이 줄을 서서 영지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여기가 탄탈로스의 영지입니까? 이런 소리를 하면서!”

       

       루샨 공작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신의 힘을 쓴다면… 온 세상에서 탈모를 없애는 것도! 가능할…까요? 새로운 차원을 만드는 주인공이라면…!! 어쩌면 전력을 발휘한다면 가능…?? 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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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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