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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4

     회귀자인 걸 들켰다.

     ‘8년이면 제법 오래 끌었지.’

     사실 이전부터 들켰을 수도 있는데, 이번에 사실상 확인사살을 날린 감이 없잖아 있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회귀자인 걸 들켰다?

     그래서 그게 지금의 황제에게 중요한가?

     중요하다.

     중요하지만, 지금까지의 나의 행적을 돌이켜보면 딱히 회귀했다는 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상할 정도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싫어한다.

     수상할 정도로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과 대립한다.

     수상할 정도로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을 사랑한다.

     아.

     그렇구나.

     그레이 지브롤터는 노스트럼에서 태어났지만 테르시안의 황녀를 사랑한 나머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서도 다시 황녀를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존재로구나.

     어떤 계기나 무슨 방법으로 회귀한 건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며, 왜 회귀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국에 해가 될 사람은 아니다.

     황제가 그렇게 판단을 내리게 모든 상황을 유도했고, 그 결과가 지금 내 앞에 있는 300명의 제국 그림자들이다.

     만일 내가 해가 될 존재였다면 이런 지원군 아닌 지원군조차도 보내지 않았겠지.

     오히려 나를 적으로 생각하고, 내가 아닌 차선의 후계자를 찾아내어 급하게 키우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누가봐도 제국 사람이라는 티가 나는 이들을 내게 보내줬다.

     그것도 ‘행정관료’로서.

     “너희들은 오늘부터 바르셀로나 총독부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불과 일주일 전에 수많은 시신이 쓰러졌던 영주성 중앙 홀에 제국의 300 행정관이 찾아왔다.

     “누군가는 제복을 입고 순찰을, 누군가는 제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메이드 일을, 또 누군가는 제복이 아닌 작업복으로 식당이나 창고를 다니게 되겠지.”

     대답이 없다.

     내가 하는 말이 곧 명령이라는듯, 황제가 직접 엄선하여 보내준 이들은 사실상 내가 내리는 명령이 무엇이든 그대로 따르는 사역마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마법을 통한 제약을 걸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스스로 그런 마음가짐으로 이곳에 왔다.

     마스터는 없다.

     300명 모두를 훑어봤지만, 아는 얼굴이 있다거나 마스터급 실력을 가진 이들은 하나도 없다.

     “이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나를 죽이려고 시도한 자들은 전부 죽었지.”

     몇몇 그림자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서로 눈치를 본다.

     나를 죽일 생각도 없고 죽일 용기도 없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음으로 인해서 살해당할수도 있으니까.

     “도전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단, 나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한다면 자신의 목숨도 걸어야 할 것이다.”

     “…….”

     “확실히 바르셀로나 총독을 살해한다면 차기 총독의 자리는 노려볼 수 있겠군. 그만큼 능력이 된다는 말이니.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면, 얌전히 나의 아래에서 바르셀로나를 발전시킬 관료가 되어라.”

     도전자든 뭐든, 제국 그림자든 뭐든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데, 괜히 트러블 일으키지 마라. 내게 필요한 건 나를 대신하여 손과 발이 되어줄 이들이지, 내가 검을 뽑고 베어야 할 시체가 아니다.”

     해야 할 일은 하나.

     “너희들은 지금부터 바르셀로나 총독부의 관료들이다. 제국의 그림자들이여, 알겠느냐?”

     “””예ㅡㅡㅡ!!”””

     우렁차다.

     딱히 대답을 바란 건 아니지만, 그림자를 키우는 교관들이 말하는 것처럼 말하고 대답을 바라는 타이밍에 정확히 대답을 한다는 건-

     ‘대놓고 말해봤더니, 역시 못 알아듣는 애들은 아니네.’

     그림자 출신이라는 것.

     그 그림자 중에서도 황제가 엄선한 ‘애매한 능력’을 가진 이들.

     ‘실력은 대부분 하급기사에서 중급기사 사이.’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암살을 시도하기에는 그 실력이 일천하지만, 바르셀로나 영지의 주민들을 상대로 기사로서 겁을 주고 무력을 과시하기에는 딱 적당한 실력.

     ‘황제가 엄선했다는 말이 괜히 그런 게 아니네.’

     상급 기사 수준의 실력자가 5명 정도 보이기는 하지만, 딱 그 정도다.

     ‘번외로구나. 숫자조차 부여받지 못한 아이들.’

     황제는 일부러 능력이 애매한 이들을 보냈다.

     자신이 번호로 관리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능력이 애매한 이들이 이곳에 모여있다.

     ‘300명의 노예라고 하더니, 딱 그 소리가 알맞아.’

     말 그대로 경비나 메이드와 같은 허드렛일을 하기에 딱 좋은 이들.

     이들을 키워서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언젠가 황제와 내가 적이 되었을 때, 이들은 무조건 황제의 편을 들 사람들이다.

     지브롤터 보육원에서 자란 화이트들처럼 수 년에 걸쳐 지브롤터에서 지낸 이들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그림자들은 지브롤터와 제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무조건 제국의 편에 설 이들이다.

     그렇다.

     이들은 잠재적 폭탄이다.

     바르셀로나의 관료로 일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즉시 내란을 일으키는 제국군 중하급기사 300명으로 변모할 수도 있는 이들이다.

     참 여러 가지로 황제의 의도가 엿보이는 인선.

     ‘제국군 300명. 이걸 받아들인다? 반역으로 몰아도 이상하지 않아.’

     이들을 쫓아내지 않고 수용한다는 것 자체가 노스트럼 왕국보다 제국에 더 손을 들어주겠다는 신호다.

     ‘써먹어주지. 걸레짝이 될 정도로, 쥐어짜도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을만큼.’

     사실상, 황제가 내게 개인적으로 선물한 제국군이다.

     이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바르셀로나 총독에 대한 세상의 시각이 또 달라지기 마련.

     “너희들에게 각자 역할을 배분하기 전,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내 뒤로 넓은 천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퍼뜨려라. 소문을.”

     천에 적힌 두 개의 숫자를 본 300명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70이 0이 된다고.”

     * * *

     기사, 로버트는 적당히 변장을 한 채 바르셀로나의 상업구역을 돌아다니며 귀를 쫑긋 세웠다.

     거리에는 우울함이 가득하다.

     본래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가득해야 할 장소는 우울함, 절망, 좌절만이 가득해보였다.

     “에휴. 이러다가 우리도 다 죽는 거 아닌가 몰라.”

     “설마 우리까지 죽이겠어? 잘못한 건 황금여명이잖아.”

     “자네나 나나 황금여명 기사단에 사촌이 있었는데, 엮으면 그냥 다 같이 소시지처럼 모가지 잘려나가는 거 아니겠어.”

     “에이, 설마. 그래도 지브롤터인데?”

     “우리가 알던 지브롤터가 아니잖나. 제국의 지브롤터인 걸.”

     “쉿. 조용히하시게. 그런 거 함부로 말하면 잡혀간다고…!”

     로버트는 떠올렸다.

     도련님이 11살 때였던가, 제국 신문의 내용을 말하면서 ‘공포에 의한 통치’는 통제에는 효과적이지만, 민간의 활동을 경직시키고 비생산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고.

     영주를 향한 욕설은 당연히 잡혀가는 게 상식이지만, 그래도 그게 ‘죽음’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잘 없었다.

     영주의 면전에다 욕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욕설을 듣고 잡아가는 병사들도 결국 영지 출신의 기사나 병사들이었으니까.

     “사람 사는 맛, 인가.”

     로버트는 거리에서 산 딱딱한 빵을 곱씹었다.

     그래도 왕국 3대 농경지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에서 재배된 밀이라 톱밥 씹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제국의 식품공장에서 생산되는 공장제 빵과 비교하면 매 번 먹고 싶은 빵은 아니었다.

     있으니까 먹는 거지, 대안이 있었으면 사지도 않을 빵들.

     바르셀 후작가가 그 어떤 곳보다도 가장 보수적이었기에 빵에 제국에서 들여오는 그 어떤 시럽도 묻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것도 달라지겠지.

     아무것도 모르던 하얗고 수수한 식빵의 위로 하얗고 걸쭉한 시럽이 뿌려진다거나, 그 빵 가운데 한가득 냉장보관되어있던 생크림이 한가득 들어와 빵을 가득 채워버릴 것이다.

     제국 사설 중 하나였다.

     세이레네 해협의 봉쇄가 풀리고 지브롤터 협곡이 열리며, 오로솔 아카데미가 열린 이후 노스트럼 왕국의 정세 변화에 대하여 논평한 이의 칼럼이었다.

     몇몇 이들이 불편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기는 했지만, 로버트는 그 사설을 읽자마자 ‘왕국의 현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으으, 제국 것들이 들어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분명 우리도 저기 지브롤터처럼 변해버리는 거 아니야?”

     “여기도 지브롤터야, 이 친구야.”

     “바르셀로나잖아.”

     “모르지. 지브롤터처럼 엄청 멋지게 바꿔줄 지도. 나는 좋은데? 적어도 황금여명 그 쓰레기 놈들이 패악질 부리는 건 이제 없을 거 아니야.”

     “모르지. 그레이 지브롤터가 황금여명처럼 행동할지도.”

     로버트는 순간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빵을 손아귀 힘으로 부숴버렸으나, 곧 떨어지려는 빵을 순발력을 발휘하여 양손에 붙잡았다.

     으적, 으적.

     스프 없이는 먹기 힘들 정도로 딱딱했지만, 로버트는 최대한 빵을 곱씹으며 계속 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걱정, 불안, 초조.

     그 어디에도 희망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그렇고, 반역자들이 저기 렘부르 군터 자작령으로 떠난 것도 그렇고.

     혹시나 잘못을 저질렀다가 살해당하지 않을까.

     다들, 그런 걱정만이 가득해보였다.

     “분명…도련님이….”

     로버트는 떠올렸다.

     절망으로 가득한 이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고.

     그 희망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파격적인 무언가를 제시해야 할 때가 있다고.

     “그 때, 분명…응?”

     저벅, 저벅, 저벅.

     군대가 걸어온다.

     군청색 제복에 회색의 선이 들어간 제복을 입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들이 오와 열을 맞춰 거리를 행진한다.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제국의 지원군…? 아니, 그 지원군이라는 표현이 진짜 군대를 말씀하신 건가?”

     위험하다.

     안 그래도 주민들이 두려워하는데, 제국식 복장을 갖춘 이들을 저렇게 떠들썩하게 움직이는 건 너무나도 위험하다.

     “……..”

     간언을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레이 지브롤터라면 모르고 행동하지는 않을 터.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 그레이 지브롤터를 위해서라도 한 번 물어보는 식으로 의사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아.”

     로버트는 보았다.

     제국군처럼 보이는 이들이 들고 있는 피켓을.

     “내년까지, 세금 면제…?”

     70%가 지워지고, 거대한 0%라는 숫자가 박혀있으니.

     “아니, 그.”

     “…저거, 무슨 미친 짓이야?”

     “…우리들이 내는 세금 70%가 0%? 안 내도 된다고? 무슨 소리야, 저게?”

     제국력으로 따지면 98년 10월.

     “총독이 미쳤나?”

     “쉬, 쉿…!”

     “아니, 미친 짓 아닌가. 세금을 안 거두겠다고? 제정신인가?”

     “제정신 아니더라도, 조용히 해! 괜히 그 소리 듣고 정신 차리기 전에!”

     “…아차!”

     약 1년 하고도 2개월 정도 되는 기간.

     “하, 하하…. 도련님. 그, 이런 건 진짜.”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이 선언했다.

     “이거, 맞는 겁니까…?”

     바르셀로나 총독령에 사는 모든 주민들에 대하여, 제국력 99년 12월 31일까지 세금을 거두지 않겠다.

     * * *

     “미쳤구나, 네가.”

     “네.”

     면세 선언 이후, 바로 세금 관련해서 한 소리를 하러 어떤 이가 찾아왔다.

     “총독부라고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여기도 엄밀히 따지면 후작령이야. 후작령을 운영하는 게 장난인 줄 아니?”

     “아니요.”

     카르멘 왕비가 왕궁에서 직접.

     “혹시 지브롤터 후작가에서 예산을 타오려고 한다거나, 왕궁 중앙으로부터 예산을 전부 뜯어내겠다는 건 아니지?”

     “설마요.”

     “그러면 총독부 운영은 뭐 땅 파서 먹여살리게?”

     “예.”

     모처럼 카르멘 왕비가 왔으니, 나는 카르멘 왕비에게 미리 준비한 사업 계획서를 제시했다.

     “땅 파서 먹고 살려고 합니다.”

     “……진심으로?”

     “예.”

     “…….”

     땅을 판다.

     황금여명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많은 금이 매장되어있는 바르셀로나의 땅을.

     “왕국이든 제국이든, 원한다면 마음대로 땅을 파게 해줄 겁니다. 바르셀로나 총독부는 ‘땅을 팔 수 있는 기회’를 팔 예정이고요.”

     남아있는 금광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성공하면 골드샤워, 실패하면 파산 아니겠습니까?”

     오직 나만이, 이 바르셀로나 땅의 지하에 매장된 금의 잔량(殘量)을 알고 있다.

     “카르멘 어머니.”

     회귀자인 걸 들켰다면.

     오히려 그걸 더 무기로 써먹으면 그만.

     “예쁜 쓰레기도 수요가 있다면 비싸게 팔리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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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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