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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4

   무언가 들려가는 기분 속.

   메이리는 희미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검푸른 머리카락을 마주 보았다.

     

   그 머리색을 보자마자 메이리는 기겁하며 숨을 삼켰다.

     

   자신을 두 번이나 정신을 잃게 했던 발하임의 색이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메이리는 서둘러 자신을 업어든 채로 뛰고 있는 이를 보았다.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크라슈 발하임.

     

   자신에게 영문을 모를 소리 하던 남자.

   메이리는 그가 자신이 아직 깼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그녀가 허리춤에 손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미리 말해두자면 나도 감지계 능력을 지니고 있어.”

     

   메이리의 몸이 멈칫하며 굳었다.

   그가 자신이 뒤에서 급습하려던 걸 눈치챈 것이었다.

     

   메이리는 조용히 자기 허리에서 손을 떼었다.

   허튼짓하려던 걸 들킨 순간 크라슈를 상대로 승산이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메이리는 자기 손목에 채워져 있던 팔찌가 이미 크라슈에게 빼앗긴 것을 눈치챘다.

   이쪽도 되찾는 건 금방 포기했다.

     

   “……절 어쩌려는 생각이죠.”

   “넌 백양단의 머리니까. 백양단이 정리될 때까지 다른 곳에 빼둘 생각이다.”

     

   크라슈는 그리 말하며 복도를 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라슈의 얼굴은 달갑지 못했다.

   그 이유는 메이리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주위가 온통 전투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백양단은 거해단과 인마단과 손을 잡았다.

     

   거해단의 경우 펠레이 혼자만 지원을 왔긴 하나 인마단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전력이 함께하고 있다.

   그들도 백양단과 함께 사자단을 무조건 꺾어야 하기에 전심전력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자단도 꽤나 고전하고 있다.

     

   원래도 인원수가 많은 백양단에 인마단까지 더해졌으니.

   수적으로 밀리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자단은 못 해도 한 사람당 세 명씩은 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크라슈가 얼굴을 찌푸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크라슈는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쯧, 많이도 몰려왔군.”

     

   왜냐하면 바깥에서 다수의 인원이 대거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다른 단들이었다.

     

   어쩌면 백양단과 사자단, 인마단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기회.

   그러니 그들은 두 단의 전투를 알아차리자마자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은 그만두고, 이쪽부터 공격해온 것이었다.

     

   메이리도 뒤늦게 감지를 통해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그녀는 경악한 눈으로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감지 영역은 라헬른 아카데미 최고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넓었다.

   실제로 감지 능력을 지닌 이들 중 그녀를 따라올 수 있는 이는 전 세계를 꼽아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크라슈는 메이리의 감지 능력만큼이나 멀리 있는 이들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메이리 같이 세세한 것을 알 수는 없으나 그 또한 감지 영역이 터무니없이 넓었다.

     

   그 증거로 다른 단들은 아직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대, 대체 정체가 뭐인가요?”

     

   메이리가 멍하니 중얼거리자 크라슈는 메이리를 힐끔 보았다.

     

   “크라슈 발하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그는 발하임이니까.

     

   크라슈는 멍해 있는 메이리를 두고, 창문에서 시선을 떼었다.

   왜냐하면 복도 앞에 한 인물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라슈는 그를 보자마자 살짝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창을 늘어트린 채 금빛의 기운을 흩뿌리고 있는 남성.

   그는 다름 아닌 메리 다이아나의 사촌 동생 글렌 다이아나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팔에는 얕은 상처가 하나 있었다.

   크라슈는 그런 그의 상처를 누가 새긴 건지 눈치챘다.

     

   ‘카란디스.’

     

   자신 대신 글렌을 묶고자 나섰던 그녀.

   그녀가 남긴 상처인 듯싶었다.

     

   “글렌, 카란디스는 어떻게 했지.”

     

   카란디스의 성격이었다면 제 몸이 움직이지 못하지 않는 이상 악착같이 글렌을 막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팔에 얕은 상처 하나만 입고 이곳에 있다.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글렌의 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팔다리를 부쉈다. 그러고도 일어나려고 하기에 벽에 검으로 박아뒀다.”

     

   글렌은 무척이나 덤덤하게 그 사실을 전했다.

   그러나 크라슈는 글렌이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일부러 말했음을 눈치챘다.

     

   저건 도발이었다.

   크라슈가 자신과 싸우도록 만든 도발.

     

   어쭙잖은 도발은 크라슈에게 통하지 않는다.

   도발은 이쪽 전문이지 당하는 건 취미 없으니까.

     

   하지만 크라슈는 메이리를 잡고 있던 손을 툭하니 풀었다.

     

   “꺅!”

     

   크라슈가 놓아줄 줄 몰랐던 메이리가 무심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크라슈는 그런 그녀를 두고, 우뢰성을 뽑았다.

     

   “메이리, 도망치면 지옥까지 쫓아가서 강제로 데려올 거다.”

     

   복도 안에 스산히 울려 퍼진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메이리는 크라슈라면 기꺼이 그럴 것임을 눈치채곤 움찔거리며 조용히 벽 한편에 기대었다.

     

   “……도망칠 기운도 없어요.”

     

   샬롯이 감지계를 한 번 망가트린 것부터 시작해 크라슈에게 얻어맞기까지 한 메이리다.

   메이리의 말마따나 실제로 그녀는 도망칠만한 기운이 없었다.

     

   그러니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결국 누가 구해주지 않는 이상 크라슈에게 도망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으니까.

     

   “글렌, 아까전에 질문을 하다 말았지.”

     

   크라슈의 검에서 흑염이 피어올랐다.

   그러한 흑염 속에서 크라슈는 글렌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너 왜 그런 꼴이 된 거냐.”

     

   크라슈가 봐온 글렌은 불의에 맞서는 이였다.

   실제로 크라슈가 제국파 일원에게 불의에 처했을 때 맞서 주었을 정도니까.

     

   그런 글렌은 지금 무척이나 괴로워 보였다.

   마치,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가문을 위한 일이다.”

     

   가문이라는 말을 듣고, 크라슈는 눈살을 서서히 찌푸리기 시작했다.

     

   그의 가문은 창술 명가인 다이아나다.

     

   지금까지 꾸준히 뛰어난 창술사를 배출했으며 과거 그들의 가문에서 배출된 메리는 신창이라 불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회귀 전과 지금의 상황은 달라도 너무 많이 달랐다.

     

   메리는 4황녀 시즐리 에파니아를 시해하려 한 죄로 감옥형에 처했으며 지금은 황가의 낙인까지 받은 상태다.

   당연히 황족 시해자를 배출한 다이아나 가문 또한 정계에서 밀려났다.

     

   다이아나 가문이 쌓은 창술 명가라는 명성은 한순간에 땅에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명성은 좀처럼 돌아올 생각 못했고, 다이아나 가문은 서서히 좀 먹어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나마 메리가 시그린의 곁에 있을 때는 나았다.

   시그린이 나름대로 다이아나 가문을 동조해주곤 했었으니까.

     

   그러나 시그린이 메리를 완전히 버려버린 이후.

   시그린은 다이아나 가문에도 더 이상 비호를 내리지 않았다.

     

   메리를 향한 보복이기도 했고, 그녀 나름대로 계산한 것도 있었다.

     

   메리는 필요 없을지언정 다이아나의 창술사들은 쓸만하다.

   그 판단으로 시그린은 다이아나에게서 한순간에 손을 떼버린 것이다.

     

   다이아나 가문이 이대로 몰락한다면 지금까지 손을 써줬던 이에게 가장 먼저 매달릴 거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유일하게 자신에게 비호를 내려주던 시그린의 손길이 없어진 그 순간.

   다이아나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몰락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귀족들과 상단은 다이아나 가문과의 거래와 계약을 연달아 끊기 시작했고.

   영지에 있던 영지민들도 물자와 상단이 들어오지를 않으니 다이아나를 뜨기 시작했다.

     

   다이아나 가문은 제국의 중심지에서도 북부 쪽 험준한 지형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니 스스로 자립이 불가능한 영지는 물자와 상단이 오지 않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꺾여 버린 것이다.

     

   당연히 다이아나 가문에서는 비상이 났다.

   그리고 시그린의 의도대로 가장 먼저 그들이 매달린 건 시그린이었다.

     

   메리가 황족 시해를 저지르고 난 후 어느샌가 그들과 거래를 나눴던 상단과 귀족들은 전부 시그린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이아나가 시그린과의 접점을 조금이라도 만들고자 붙인 인물.

   그것이 바로 라헬른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었던 글렌 다이아나였다.

     

   글렌은 시그린의 개가 되어야 했다.

     

   「다이아나 가문을 위해서 창을 든 당신이니 알 거예요. 다이아나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당신은 메리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걸 말이죠.」

     

   글렌은 그 말에 부정하지 못했다.

     

   비록 지금은 이렇다고는 해도 천무지체를 타고난 메리의 위상은 대단했다.

   어린 나이에 제국의 기사단을 상대로 홀로 압승을 거두는 그 모습은 글렌의 머릿속에도 단단히 박혀 있었으니까.

     

   지금은 많이 저평가받고 있긴 하나 글렌은 여전히 자신이 메리를 이기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제게 당신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수가 한 가지 있다고 한다면 따를 생각이 있나요?」

     

   가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애걸복걸하며 글렌의 앞에 무릎 꿇고 매달렸다.

   늘 자랑스럽던 부모님이 그토록 처참하게 자신에게 매달리는 모습은 글렌은 난생처음 보았다.

     

   평생을 살아온 가문의 몰락을 글렌은 저버릴 수 없었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짓밟았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시그린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강해지겠다.

     

   그리고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

     

   「예, 기꺼이.」

     

   그렇기에 그는 시그린의 개가 되기로 했다.

     

   글렌의 창에서 황금빛의 빛이 더더욱 거세게 쏟아나오기 시작했다.

     

   넘실거리는 기운에 닿은 벽들이 쩌적 하며 갈라져 나갔다.

   유리창에는 균열이 생기며 쨍그랑하고 깨져 나갔다.

     

   그만큼 글렌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강대하기 그지없었다.

     

   “크라슈.”

     

   글렌의 창이 크라슈를 향해 겨누어졌다.

     

   “나는 반드시 널 이겨야 한다.”

     

   시그린은 글렌에게 말하였다.

   이번 대항전에서 크라슈에게 승리하고 오라고 말이다.

     

   시그린도 크라슈의 강함을 모르지 않는다.

   아직 미완성인 글렌으로 크라슈를 꺾을 수 없을 거란 것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글렌을 보내었다.

   적어도 크라슈의 발목 정도는 잡을 거로 생각하고 말이다.

     

   그 사실을 눈치챈 크라슈가 눈을 와락 찌푸렸다.

     

   ‘시그린, 이 쌍년이.’

     

   후에 창공의 세대에 속할 글렌이라는 인물을 시그린은 그저 쓰기 좋은 패로 둔갑시켜 놓았다.

     

   그것도 오직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진작 망가져 가고 있단 거야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 여자는 정말로 멸망을 막을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크라슈는 시그린에게 묻고 싶어졌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모든 것을 다 부숴가며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거냐고.

   그러한 자리를 아무리 유지하고, 유지해봤자 결국 이 세계가 멸망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지 않았냐고.

   하다못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너도 아서의 옆에서 검을 든 것이 아니냐고.

     

   크라슈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결국 시그린, 너와 내가 걸어가는 길은 같은 방향이 아니라는 거겠지.’

     

   시그린 에파니아.

     

   그녀는 정말로 멸망을 막을 생각이 없다.

     

   미래의 멸망을 알고 있음에도 주변 모든 것을 망가트리고, 어쭙잖은 권력을 쥐며 자신의 자리를 보존할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최소한 아서가 선택한 인물로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거로 생각한 것이 우스웠다.

   아서는 그래도 멸망을 막고자 노력을 기울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긴, 진작 알고 있었지.’

     

   시그린은 리더쉽이 약하다.

   정확히는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그 방법을 모르기에 그녀는 목표를 향해 당당히 나아가는 아서를 넋 놓고 따랐던 거겠지.

   그녀의 눈에 아서는 무척이나 눈부셔 보였을 테니까.

     

   그리고 내심 스스로 만족감과 고양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서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칭송하고, 그녀라는 인물을 정의의 사도인 양 이야기했으니까.

     

   실상은 그 정도 그릇이 되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러냐.”

     

   크라슈는 시그린에 대한 모든 기대감을 저버리고 글렌을 보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음은 물론 미래까지 끌어다 쓰고 있는 글렌.

   지금 크라슈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럼 이겨봐라.”

     

   그의 전심전력에 응답할 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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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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