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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4

   EP.234

     

   “그럼…… 지금까지 저에게 있었던 모든 일이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이었다는 겁니까?”

     

   기분이 묘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잘 각색된 시나리오처럼 흘러왔다는 사실이.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 현실은 조금 달랐던지,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은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렇지는 않아요. 물론 많은 일들이 당신의 계획안에 있기는 했지만 결국 선택은 당신이 한 것이죠. 어떻게 모든 미래를 알고 선택을 조율할 수 있겠어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렇다는 것은…?”

     

   「지금 여기까지 도달한 것은 순전히 당신이 과거의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탑의 어느 지점에 올랐을 때, 어떤 행동을 할지. 당신도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았나요?」

     

   모두 맞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했던 행동들을 단 한 차례의 삐걱거림도 없이 직진으로 선택했고 내가 한 행동들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었으니까.

     

   물론, 탈람바르의 무의 정원을 오를 때는 잠시 마음이 급해져 죽을 뻔했던 적도 있지만 그것 또한 나를 성장하게 만든 발판.

   내가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었기에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아무튼. 혹시 더 궁금한 것이 없으시다면 다음 층으로 올려 보내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함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만약 17층에서 조금 전까지 봐 왔던 모든 것이 환상이고 나는 환각 마법 따위에 걸려서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이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과거를 돌아봤다. 나의 성격을 봤고 나의 행동과 성장을 처음부터 다시 모든 것을 확인했다.

     

   튜토리얼, 동료들과의 만남, 탑을 오르고 만나게 된 모든 인연들.

   성좌와의 싸움이나 내가 했던 행동과 선택들 하나하나가 납득하지 못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제가 17층에 와서 다음 층으로 오를 만한 뭔가를 했습니까? 임무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는데요.”

     

   「제가 저를 소개할 때, 탑의 주인과 비슷한 존재라는 말을 했었죠. 당신은 이미 그 이전부터 당신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것을 해냈어요. 강한 힘을 가졌고 그 누구보다 올곧은 의지를 관철했으며 누구보다 지혜로웠죠. 제가 무엇을 더 요구하겠어요? 그건 그저 욕심일 뿐이죠.」

     

   그가 손을 휘젓자 바로 눈앞에 딱 머리까지 오는 적당한 크기의 포탈이 생성됐다.

     

   띠링!

     

   [17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18층으로 향하는 포탈이 생성됩니다.]

     

   「앞으로도 옳다고 여겨지는 길을 가세요. 당신은 당신의 길을 선택할 자유가 있고 당신을 막아서는 시련들을 무너뜨릴 자격이 있어요. 아, 그리고 18층에 가거든…… 아, 아니에요. 직접 가서 확인해 보시죠. 당신이라면 알 것 같으니까.」

     

   그의 말에 나는 잠시 의문이 피어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포탈을 향했다.

     

   한 때, 면접장이었던 스카이 게임즈 20층의 풍경이 스르륵 흩어지며 백색의 공간과 포탈만이 나의 눈앞에 남았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었으나 그나마 남았던 자신을 버리고 과거로 되돌아온 자.

   그리고 돌아온 이후로 자신을 버리며 모든 것을 구하고 자신까지 지켜낼 수 있었던 자.

     

   나는 망설임 없이 포탈을 통과했고 하얀 기운과 함께 18층으로 이동했다.

     

   ***

     

   [탑의 18층에 입장합니다.]

     

   “여긴……?”

     

   17층을 통과하고 18층에 도달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위를 살폈다.

     

   고오오-

     

   햇빛이 쨍쨍하게 드는 중세 도시의 광장.

   멀리 보이는 거대한 벽과 종탑, 그리고 성의 모습을 보니 굉장히 친숙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곳에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고 해서 이 장소를 잊을 만큼 내 기억력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우트라나?’

     

   튜토리얼을 마치고 처음 탑에 들어왔을 때, 나를 맞이했던 탑의 1층이자 탑의 6층부터 10층까지 내 성좌의 길을 시험했던 세상에 덩그러니 떨어진 것이다.

     

   “저기! 누구 계십니까?”

     

   나는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텅 빈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 뿐. 사람의 응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18층의 주인이 격을 보입니다.]

     

   하늘을 바라보자 구름이 좌우로 흩어지며 차원이 다른 격을 가진 존재가 하늘에서 천천히 강하한다.

     

   화려한 흑색 갑옷을 무장한 채 왕좌에 앉은 존재.

   피부가 백옥 같이 하얗고 덩치도 거대한 것이 얼핏 봐서는 악마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었지만 그리 두려울 것은 없었다.

     

   “당신이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이 말한 그 존재이십니까?”

     

   나의 머리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서 왕좌가 내려오기를 멈추자, 나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 뿐. 그리고 가만히 느끼고 있자니 그에게서도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튜토리얼 당시에 빌딩 20층에서 저를 바라봤던 성좌 중 한 분이군요.”

     

   「……꽤 똑똑하군. 아니, 감이 좋은 건가?」

     

   튜토리얼 당시 갑작스러운 미션으로 20층을 올랐던 기억.

   그리고 그곳에 도달했을 당시, 몇몇 성좌들이 격의 차이를 신경 쓰지 않은 채, 나를 훑어봤고 그 일로 사망할 뻔했던 나는 토끼가 건네준 엘릭서로 인해 목숨을 건졌다.

     

   “혹시 그때 그 일도 제가 부탁을 드렸던 겁니까?”

     

   「……꽤 건방진 발언이군. 세상의 모든 일이 너의 뜻대로 움직였으리라 보느냐? 나는 철 왕좌의 주인. 고작 너 같은 인간 하나의 부탁을 듣고 움직일 정도로 격이 떨어지진 않는다.」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이 왜 ‘18층에 올라가면 알게 될 것이라’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자는 나를 달가워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왜 날카로우시군요.”

     

   「당연하다. 탑의 주인은 세상을 짊어져야 하는 책임을 가진 존재니까. 나는 다른 두 놈을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두 놈의 제안을 받아들인 너에게도 그리 좋은 감정은 없다.」

     

   그의 말에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들이 나에게 그런 제안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과거로 돌아가 주변의 사람들을 구한다거나 어떤 목적이 있을 수 있었지만 그들이 뭐가 아쉽다고 탑을 오르던 나를 과거로 보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왭니까?”

     

   「너를 돌려보낸 이유가 뭐냐고 묻는 거겠지?」

     

   “예 그렇습니다. 설명해 주십시오. 당신들 같은 격이 높은 존재들이 뭐가 아쉬워서 저에게 기회를 준 겁니까?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은 제가 특별한 존재라 말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쯧. 귀찮군…」

     

   그가 짧게 혀를 차며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앞으로 나를 설득하거나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불가피함을 그 또한 느끼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은근히 짜증을 내면서도 나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스윽-

     

   나를 바라보던 그가 잠시 손을 들어 허공을 쓸었다.

   그러자 허공에 거대한 돌풍이 일어나기 시작하며 주변의 환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우선 앉아라.」

     

   1층의 연회장.

   정신계 공격이 난무하던 1층의 임무를 클리어하기 위해 진입했던 첫 번째 장소였다.

     

   「여기를 기억하느냐?」

     

   “네. 탑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도착한 장소였으니까요.”

     

   「네놈은 모르겠지만 탑의 1층은 실존하는 공간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튜토리얼을 마치고 올라온 존재들의 적응을 위해 만든 가상의 세상이지.」

     

   그의 말에 나는 의문이 생겼다.

   1층에서부터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제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 안에 클리어하지 못하면 사망하는 페널티가 있던 임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적응’이라고 언급한 그의 표현이 굉장히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설마 그때 받은 사망과 관련된 페널티는……”

     

   「그것 또한 네놈이 부탁한 페널티다. 본인은 그런 조건이 있어야 빨리 강해질 수 있다며 부탁한 것이었지.」

     

   과거의 나는 강해지는 것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있었던 것 같았다.

   물론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지만 여기에서 생기는 의문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항상 의문이 있었습니다. 탑이 도대체 왜 사람들을 시험하는 것인지 왜 그렇게 그들의 성장에 집착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재촉하지 마라.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자리를 마련한 거니까.」

     

   그가 다시 한 번 혀를 차며 착용하고 있던 갑옷을 한 꺼풀 벗어낸다.

     

   「우리는 전쟁 중이다.」

     

   “…전쟁? 누구와 싸우고 있었단 말입니까?”

     

   「그래. 정확히는 이계의 존재들과 한바탕 영역 싸움을 하던 중이었지.」

     

   그는 내가 알지 못 하는 세상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여러 차원이 존재한다. 한 차원에는 다양한 세상이 공존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기를 ‘좌표’라 명명하며 보호하고 있었다.」

     

   “그럼… 무림도, 아우트라나도, 제가 있던 현대도 모두?”

     

   「같은 차원에 속한 이웃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면 편하겠군. 그런데 보통은 다른 차원들끼리는 싸움이 잘 붙지 않는단 말이지…… 후우」

     

   그가 말을 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어 답답하다는 느낌.

     

   “자원의 부족으로 일어난 싸움입니까?”

     

   「우리도 이유 따위는 모른다. 그저 싸움을 걸어왔고 우리는 우리의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울 뿐. 이해하기 쉽게 지구 좌표의 상식으로 설명해 주마. 보통 바다의 고래와 육지의 코끼리 사이에 싸움이 성립되지는 않는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살고 있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다. 서로 먹이도 다르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건이 다르다. 애초에 서로 건드릴 이유 자체가 없지.」

     

   “그렇군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중요한 건 놈들이 건드려서는 안 될 영역을 침범했다는 사실이지.」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에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새로운 탑의 주인을 찾는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탑의 사주인 중 하나가 놈들의 습격으로 사망했다.」

     

   놈들의 공격으로 세상의 축이 뒤흔들리기 시작한 것.

     

   「우리는 성좌와 그들의 화신들과 함께 놈들과 전면전을 벌였다. 하지만 한 축이 붕괴된 이상 그 과정에서 많은 존재들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사망한 성좌의 자리에 마땅한 적합자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인 나.

     

   모든 것을 잃고 탑의 끝자락에 도달해 후회를 외치고 있던 건실한 성좌는 썩 나쁘지 않은 후보로 지명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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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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