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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4

    <234 – 같은 시간 다른 경험>

     

    스파이를 얻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다른 메이드 리프의 존재였다.

     

    “리프도 아카데미에 데려올 수 있어요? 리프도 메이드인데. 조나는요?”

    “실례지만 어떤 관계의 분들이신지.”

    “아카데미 들어오기 전에 밖에서 같이 훈련했던 집사랑 메이드요!”

    “무리입니다.”

    “치. 스파이 쓸모없네…”

    “…확답 드리기는 어렵지만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뭐 정말로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초등학생이라면 이 정도 투정은 해줘야지.

    외로운 아이의 모습도 신경 쓰는 디테일한 내 연기, 너무 훌륭해!

     

    “그럼 명부에 있는 장학생들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요?”

    “그거라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겠군요.”

     

    에이프릴의 도움으로 억까사냥은 한층 더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도전목표 악당 참교육(2)를 달성했습니다.]

    [900포인트를 습득합니다.]

     

    [도전목표 악당 참교육(3)을 달성했습니다.]

    [1800포인트를 습득합니다.]

     

    [도전목표 악당 참교육(4)를 달성했습니다.]

    [2700포인트를 습득합니다.]

     

    억까충 3명 억까하기 도전과제에 이어서 9명, 18명, 27명까지!

    수풀 속부터 쓰레기통 뒤, 옥상펜스까지 온갖 곳에 숨어서 열심히 모기를 조종한 보람이 있다.

    포인트를 덜 벌어도 사냥으로 가성비 좋게 대운동회를 즐기려고 했더니 에이프릴 덕분에 탐색효율이 굉장히 좋아져서 오히려 포인트를 더 벌고 있다.

     

    ‘이 페이스면 36명도 달성하겠는데?’

     

    지금도 이미 개인 최고 신기록이다.

    옥상에서 창가에 걸터앉은 장학생을 괴롭히는 것도 성공했겠다, 매달려있던 옥상펜스에서 폴짝 뛰어 옥상 안으로 도로 착지했다.

    나머지는 조금 느긋하게 찾아다닐까.

     

    “오크노디. 이런 곳에서 뭐하고 있지?”

    “앗.”

     

    긴장을 풀기 무섭게 물탱크 위에서 시니컬한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 담배를 든 지고쿠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봐, 봤어요?”

    “다 봤지.”

     

    망했다…

    하필이면 모기를 이용해서 억까충들을 괴롭히던 모습을 들켜버리다니.

    지고쿠가 학생회에 신고하면 현행범으로 대감옥에 수감되는 것은 확정이다.

    여죄가 밝혀지면 유미의 옆자리인 지하 2층 감옥이 아니라 3층까지 내려가겠지.

     

    “한 번만 못 본 척 해주시면 안 돼요?”

    “내가 왜?”

    “부탁할게요. 네?”

     

    지고쿠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학기 초처럼 허공에 총을 쏴대며 크레이지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 저 점잖은 침묵이 도리어 불길한 기분을 선사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여름방학에.”

    “넹?”

    “내 배에 놀러온다고 약속해. 그럼 비밀로 해줄게.”

     

    진짜로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이 타이밍에 동료이벤트에 초대를 해?

    싫은 건 아니다.

    <보물찾기> 모험부터 <유령선 잡기>, <항구습격>까지 다양한 해상이벤트를 갖춘 이벤트로 가성비 면에서 꽤 나쁘지 않은 편이다.

    다만 찝찝할 뿐.

    이유를 묻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일단은 상황부터 모면하고 봐야겠다.

     

    “그럴게요!”

    “그래. 그럼 가도 좋아.”

     

    그제야 지고쿠는 나를 보내주었다.

     

     

    * *

     

     

    아카데미 옥상.

    평상시에는 2학년과 3학년이 다니는 구역을 지나쳐서 옥상까지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만, 이번 대운동회 주간에는 실내운동을 위해 고학년 학생들의 교실을 망치와 못, 나무판자 따위로 봉인하고는 몇몇 공용시설을 개방했다.

    학년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이런 곳에서 이런 시설을 누릴 수 있음을 알려주는 방침이었고, 지고쿠는 이를 담배 피기 좋은 장소 찾기로 이용했다.

    옥상 물탱크 위는 탁 트인 경치에 드나드는 사람도 없어서 몰래 담배 피기는 좋았지만 평상시에는 시설이 폐쇄되니 다시 찾기는 어려워보였다.

     

    ‘2학년부터는 올 수 있으려나. 아니, 무린가. 역시 3학년의 복도를 지나쳐서 여기까지 올라오는 건 조금 그렇지.’

     

    느긋하게 담배 한 모금을 만끽하던 지고쿠는 와락 인상을 구겼다.

    누군가가 옥상에 올라왔다.

    일단 기척을 죽이고 경계부터 하려는데 올라온 사람이 아는 사람이었다.

    지고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 꼬맹이… 어디서 뭘 하다 온 거야?’

     

    교복은 흙과 풀물로 엉망이 되어있고 나무에 긁혔는지 팬티스타킹에는 구멍까지 송송 뚫려있다.

    어딘지 모를 허공을 바라보며 초점도 이상한데 옥상펜스를 향해 겁도 없이 다가가서는 펜스에 매달려 밖으로 고개까지 내밀었다.

     

    ‘자살시도!?’

     

    졸지에 굉장한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이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말리고는 싶지만…

    내 목소리를 듣고 놀라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때는 그대로 추락할 텐데?

     

    ‘제발 멍청한 생각은 말고 내려와.’

     

    믿는 수밖에 없었다.

    오크노디의 삶에 대한 의지를.

    가슴을 졸여가며 한참을 지켜보고 있자니, 저 밑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펜스를 쥔 오크노디의 손에 꾹 힘이 들어가더니 옥상바닥으로 도로 내려왔다.

    누군가가 내지른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투신자살에 대한 공포심이라도 일으켰나보다.

     

    “오크노디. 이런 곳에서 뭐하고 있지?”

    “앗.”

     

    오크노디는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봐, 봤어요?”

    “다 봤지.”

     

    언제나 자신감 넘치던 당찬 꼬맹이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한 번만 못 본 척 해주시면 안 돼요?”

    “내가 왜?”

    “부탁할게요. 네?”

     

    누구한테 무슨 짓을 당한 거야.

    설마… 아이를 건드리는 못된 녀석이 있었나?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오크노디는 강하다.

    빈말로도 남한테 엄한 짓을 당할 애가 아니다.

    잘 생각해보니 이 아이가 뭐가 아쉬워서 자살소동을 벌이겠나.

    진짜로 저 높이에서 추락하더라도 암흑마나를 사용하면 지면에 추락해도 살이나 까지고 말겠지.

    다시 보니 흔적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옷에 묻은 흙은 포복자세를 의미한다.

    옷에 배인 풀물은 수풀 속에 숨었음을 의미한다.

    옥상펜스에 매달렸던 것은 난간 밑을 내려다보기 위한 행동이다.

    세 행동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은신.

    염탐.

    숨어서 무언가를 저지르는 행동이다.

     

    ‘대운동회가 한참 진행 중인 이럴 때에? 남들의 눈을 피해서? 대체 뭘 하려고?’

     

    자신이야 담배를 피우고 다니느라 숨어있었지, 오크노디는 담배를 피우던 것도 아니었다.

    위험천만한 옥상펜스에 매달리는 주제에 남에게 들킬 위험이 있는 난간 밑을 내려다보았다.

    목적은 염탐 그 자체에 있었다.

     

    ‘그런 거였나!’

     

    깨달음은 벼락처럼 찾아왔다.

    오크노디는 엿보고 있던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을.

    포복자세로.

    수풀에 숨어서.

    옥상펜스에 매달려서.

    남몰래, 모두의 시선을 피해서.

    저 아이의 심정이 어쩐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더러운 촌민 주제에 축제에 발 들이지 말라고!

    -뭔가 훔쳐간 거 아니야?

    -저 꼬맹이를 봐. 돈을 들고 있어.

    -분명 어딘가에서 훔친 거겠지.

    -맞기 싫으면 당장 가진 돈 전부 내놔!

     

    궁핍한 벽촌.

    조개와 물고기를 팔아 번 돈으로 처음 축제에 놀러갔던 날.

    지고쿠는 세상의 악의와 조우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범죄자라고 재단했다.

    범죄자를 향한 범죄는 죄가 아니라고 정당화했다.

    축제음식을 사러 간 노상에서 돈을 빼앗기는 그녀를 지켜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녀는 더럽고 기분 나쁜, 언제라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아이게 불과했다.

     

    ‘쯧. 싫은 기억을 떠올렸어.’

     

    그런 과거의 자신이 괜히 겹쳐 보인다.

    모두가 즐기는 대운동회를 혼자 즐길 수 없다면 역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겠지.

    그녀는 재단의 아이니까.

    수군거림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약한 주제에 남을 헐뜯기만 좋아하는 놈들은 이 좋은 건수를 그냥 놓치지 않았겠지.

    그래서 오크노디는 숨어 다니기 시작했다.

    놀고 싶지만 놀 수 없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사람들이 배척해서.

     

    “여름방학에.”

    “넹?”

    “내 배에 놀러온다고 약속해. 그럼 비밀로 해줄게.”

     

    제안을 건넨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오크노디와 겹쳐 보이는 과거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바라는 축제 따위, 그리 대단하지도 않다고.

    직접 데려가서 겪게 해주겠다고.

     

    “그럴게요!”

     

    조심조심, 주저주저.

    눈치를 보며 호다닥 옥상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손에 든 담배는 이미 필터까지 재가 되어 흩어졌다.

     

     

    * *

     

     

    “오크노디. 오늘은 어디서 놀다 온 거야?”

    “여기저기요!”

    “줄곧 찾고 있었어. 도통 보이지가 않아서.”

     

    저녁시간이 되자 식당 앞에서 이사벨과 손오천, 지젤과 마주친 오크노디.

    그녀가 화기애애하게 상급반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에이프릴은 펜을 들었다.

     

    ━━━

    지원요청

    대운동회 도중 원인미상의 집중단속으로 인해 장학생들이 대거 작전실패 및 부상자가 속출.

    추후 교내 공작활동 단속강화에 대응할 수 있는 추가인력증원 요망.

    추가인력증원으로 전투메이드의 현장배치 및 집사급 관리자의 아카데미 현장투입을 요청.

    특히나 용사의 견제가 우려되는 수석장학생 오크노디의 신변보호를 위한 인원보충이 시급하다고 보임.

    ━━━

     

    동료들의 곁에 있는 오크노디는 밝은 표정으로 웃고 떠든다.

    본인도 그것이 싫지만은 않은 눈치지만 역시 자신을 훈련시키며 함께 자라온 전속집사와 메이드만큼의 유대를 얻지는 못하겠지.

    에이프릴의 눈에는 하루종일 수십 명의 장학생들의 음모를 격퇴하며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착한아이’ 흉내를 내며 동료들과 어울리는 오크노디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슬프게 보였다.

    오늘 그녀가 한 일은 저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추억을 공유하지 않는다.

    대운동회가 끝나는 금요일까지 앞으로 남은 4일간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집사와 메이드라도 아카데미로 불러낸다면 저분도 조금은 기뻐하시겠지?’

     

    용사의 이름을 팔기는 했지만 이 정도가 아니면 재단이 움직이지는 않겠지.

    합리적인 업무처리를 위해서는 다소의 허세나 과장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에이프릴의 지원요청서가 와이히엠하이 재단본부에 전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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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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