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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5

       “두 분 다,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만약 레오가 아니라 다른 귀족이 들었다면 레오처럼 잠깐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넘어가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으리라.

        

       아무리 인권 의식이 바닥이고 황권이 강력한 시대라도 선이라는 것이 있다. 원작 게임이 기본적으로는 전연령 게임인 이상 무슨 성인용 상업지에서나 나올법한 인간 목장을 운영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몰락시켰을지 모르는 황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내버려 둔 것은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어쩌면 황제가 자기 아이들에게 직접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나한테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진실을 밝혔지만, 그건 내가 다른 아이들에게는 사실을 밝히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황제 본인에 대한 도덕적인 문제는 둘째치고, 자신이 황제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안 ‘아이들’ 곁에 다른 귀족들이 붙어서 파벌을 형성하고자 한다면—

        

       —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벨라, 데미안, 루카스, 제이든 모두 성격이 제각각이라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네 사람 다 딱히 ‘황제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지금의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을지도.

        

       그중 가장 출세욕이 있는 존재는 역시 제이든이지만…… 제이든은 황제의 아이 중에서도 가장 평탄한 삶을 살았다. 일반적인 귀족 아이들보다는 당연히 어려운 생활을 했지만, 나머지 셋, 그중에서도 특히 나나 벨라에 비하면 고생은 하지 않은 편에 속한다.

        

       그런 성격 덕분에 아이 중에서도 가장 전면적으로 나서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아이들과 귀족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오히려 황제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겠지. 그런 귀족들을 모두 모아다가 한 번에 처리할 계획이라는 소리일 테니까.

        

       내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레오의 표정도 조금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여전히 금방이라도 식은땀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이긴 했지만 나와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는 아니었다.

        

       “음, 그게.”

        

       레오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클레어의 말대로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존댓말을 쓰지 않으셔도 상관없었습니다.”

        

       “그, 그럴까?”

        

       그래도 여전히 자기 위치에 대해서는 조금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하긴, 이런 건 굳이 레오가 아니더라도 아카데미의 다른 아이들도 비슷하게 느끼는 모양이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철저하게 존댓말을 썼다면 나중에 다시 만나서도 그냥 존댓말을 쓰면 되겠지만, 레오는 그런 성격은 또 아니었다.

        

       “그래서, 클레어의 말대로라는 뜻은 무슨 뜻이야?”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앨리스가 답답하다는 듯 되물었다.

        

       “클레어의 진짜 핏줄이 어느 가문의 것이라고 해도, 클레어는 여전히 내 여동생이라는 소리야.”

        

       마음을 다잡고 반말을 하기로 결심한 듯 레오가 그렇게 말하자, 클레어는 레오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다른 딴지를 걸지는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클레어를 키우면서 나와 차별하지 않으셨으니까. 물론 아들이냐 딸이냐는 것은 구분하셨지만, 그 구분에 클레어의 혈통이 들어가지는 않았어.”

        

       그레이스 남작 부부라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원작에서는 레오의 여동생이라는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굳이 그런 설정이 원작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올곧은 성격을 생각하면 필시 그랬겠지.

        

       “만약 클레어에게 황실의 피가 아닌 평민의 피가 흐른다고 했어도 클레어는 클레어야. 그러니까 그 진짜 아버지가 누구라고 하더라도 인제 와서 따지는 건 의미가 없겠지. 특히 클레어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레오…….”

        

       클레어는 정말 드물게도 레오의 말에 감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 표정은, 원작에서도 클레어가 레오한테 딱 한 번 지어 보였던 표정과 몹시 비슷했다.

        

       물론 이쪽의 표정이 훨씬 생동감 있었다.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개별 모델링이 존재하긴 했지만, 표정 프리셋 자체는 다소 돌려쓴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던 게임과 다르게, 이곳의 클레어의 표정은 훨씬 더 생동감 있었으니까.

        

       당연한 말이다. 게임 속이라는 사실을 마구 드러내는 듯한 장치와 설정들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곳의 인물들은 모두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문자 그대로 ‘살아있었다’.

        

       “그런데 그래도 내가 누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아니, 이제는 언제 태어났는지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슬슬 사실을 가려볼 때도 되지 않았어?”

        

       “말했잖아, 나는 팬그리폰이 아니라 그레이스라니까.”

        

       “……그런 식으로 따지면 그레이스 가에 더 나중에 들어온 쪽이 너니까. 네가 내 동생인 거 아니야?”

        

       그런데 그런 감동적인 장면 직후에 다시 이렇게 티격태격 싸우는 걸 보니, 역시 남매는 남매인 모양이다. 나는 진짜로 여동생이나 누나가 있어 본 적은 없으니 실제로 겪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레오의 특기이기도 했다. 본인도 미처 알지 못하는, 남들이 함부로 따라 할 수 없는 특기.

        

       원작에서 레오는, 사실 다른 캐릭터들과 그렇게 마구 얽힐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스토리는 철저하게 ‘보이 밋 걸’ 하렘물을 따라가고, 아카데미 귀족반 안에서는 그저 일개 하위 귀족가 아들이었을 뿐인 레오가 아카데미 안의 온갖 등장인물과 관계를 맺고 이런저런 상황에 휘말리면서 그 중심으로 서서히 끌려가는 것이 이야기의 진행 방식이었다.

        

       앨리스와 만나고, 그 앨리스와 라이벌인 클레어와 엮이고. 샤를로트나 미아와도 인연이 생기고, 심지어 선생들 쪽과도 엮이면서 온갖 사건에 휘말려 들고.

        

       본인은 정치적인 특장점이 하나도 없는 인물이지만, 그저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주고 뒤에서 든든하게 버텨주는 것으로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가는 이 레오라는 캐릭터를, 나는 꽤 좋아했다.

        

       부럽기도 했고.

        

       만약 클레어가…… 설령 내 덕분에 그런 암울한 과거에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그레이스 가가 아닌 다른 가문에 가게 되었다면 이렇게 밝게 자라날 수 있었을까?

        

       “…….”

        

       “어, 저기, 실비아?”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사람을 보고 있는 내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어느새 클레어와 레오는 말싸움을 멈추고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긴, 나름대로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이었는데 다짜고짜 자기네끼리 별것도 아닌 말싸움을 하고 있었으니 눈치가 보일만도 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시간이다. 오늘 당장 출정할 것도 아니니 시간은 무척 많이 남아있었다. 조금은 긴장을 풀고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조금만 있으면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흥이라는 건 한 번 깨지면 되찾기 어려운 법이다.

        

       마음속으로 조금 아쉬움을 느끼면서,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지보를 클레어 앞쪽으로 밀었다.

        

       대낮에도 그 푸른 빛은 선명하게 보였다. 여전히 클레어 쪽으로 향한 빛이 더 밝았다.

        

       이쯤 되면 이 지보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떠올릴 수 있다.

        

       클레어 쪽의 피가 더 황실과 가깝다는 뜻이다.

        

       앨리스가 입술을 살짝 깨무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일부러 못 본 척했다.

        

       “제가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내가 본격적으로 입을 열자, 세 사람 모두 말이 없어졌다.

        

       “황제는 그렇게 뿌려둔 자기 씨 중에서 능력이 있는 존재를 모아 ‘황제의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집단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 명칭 자체는 다른 이들이 앨리스와 저 같은 이들을 따로 칭하기 위해 임의로 붙였을 뿐입니다만.”

        

       “……하지만 이런 단체는 이전 대에서도 있었잖아. 그때도 이런 식으로 피가 섞여 있었을까?”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이미 그 이전 대의 사람들은 수십 년 전에 다 죽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번 대의 존재들에게 피가 섞였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황제의 아이 중에서 ‘저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황제의 피가 섞인 이들입니다.”

        

       레오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튀어 오르는 것이 보인 것 같다. 그제야 레오는 눈을 크게 뜨고 나와 지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보에서 나오는 빛줄기 중 내 쪽을 향한 것은 전혀 없었다.

        

       “그, 그렇다는 건……”

        

       “그렇습니다.”

        

       나는 다시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한 레오를 향해서 말했다.

        

       “황제는 저와 클레어를 착각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겠죠. 어린 시절 있었던 사건에서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결과, 저와 클레어가 있을 자리는 뒤바뀌어버렸습니다.”

        

       “…….”

        

       이미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을 앨리스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클레어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고, 레오는 저러다가 턱이 빠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 얼굴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상황이 참 개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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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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