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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5

       원더랜드에서 죽음은 무거운 주제가 아니었다. 사망일은 생일과 비슷한 개념으로 취급되었고, 사인은 대화할 거리가 떨어지면 나오는 단골 소재였다.

         

       웃는 표정으로 자식의 죽음을 얘기하는 솔라네의 태도는 산 자가 위화감을 느끼기 충분했다.

         

       그러나 레이나는 이미 이곳에 와서 ‘죽음의 순간 흉내 대회’ 따위도 관람한 몸이었다. 그녀를 동요시킨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엄마가 말한 내용 그 자체였다.

         

       그녀는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죽었다고?

       아니, 엄마는 그걸 죽고 나서 알았다고?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것을 반박하는 것은 간단했다.

       바로 가면을 벗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엄마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까 두려웠다. 아니, 그녀의 입에서 그 이상의 말이 나올까 두려웠다.

         

       그녀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어린 레이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때 말하는 거지? 엄마, 너무 나빴어!”

       “미안. 엄마가 또 사과할게, 응?”

         

       어린 레이나는 짐짓 삐친 척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큰 레이나의 시선을 느끼고는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입을 손등으로 가리면서 엄마에게 다 들리도록 속삭였다.

         

       “있지, 언니. 나, 엄마 몸에 붙어 있었을 때, 무서운 거 봤다.”

         

       나는 너보다 무서운 걸 보지 못했는데.

       레이나는 어린 자신을 밀쳐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말했다.

         

       “뭔데?”

       “가짜 레이나.”

         

       그녀의 말에 레이나는 뭔가 묵직한 것이 가슴에 떨어지는 충격을 느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간신히 호흡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가짜……라고?”

       “응! 나는 엄마 옆에 꼭 붙어 있는데, 엄마는 가짜 레이나를 우리 딸이라고 불러서 슬펐어.”

       “그때 일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이를 잃은 충격 때문인지 제가 엉뚱한 아이를 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몇 년이나.”

         

       레이나는 엄마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엉뚱한 아이라고? 아냐, 아냐.

       내가 엄마의 딸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럼 어떻게 설명할 건데. 내가 엄마랑 찍은 사진들을.

       그 사진 안에 있는 건 분명……분명…….

         

       “엄마가 속은 것도 이상한 건 아니야! 걔가 나랑 똑같이 생겼었거든.”

         

       예상했던 답변에 레이나는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것만 같았다.

       그녀의 입은 이제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멋대로 움직였다.

         

       “……그 애는 어떻게 됐죠?”

         

       원망이나 증오라 해도 좋았다. 자신에 대한 엄마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엄마와 쌓은 4년간의 기억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기대 역시 무참히 짓밟혔다.

         

       “몰라요. 솔직히 관심이 없다는 말이 맞겠네요. 딸아이에게 미안해서 의도적으로 신경 쓰지 않다 보니, 가짜에 대한 건 이곳에 오고 몇 개월 만에 싹 잊었거든요.”

       “히히, 내가 그러라고 했어. 안 그러면 엄마 용서 안 한다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엄마와 딸 사이였다.

         

       그 옆에 자신의 자리는 없었다. 처음부터 그건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런. 너무 우리 얘기만 했네요. 그러고 보니 손님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언니 이름이 뭐야?”

         

       두 사람이 자신을 바라봤다. 분명 순수하게 묻고 있는 얼굴인데도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보였다.

         

       “나는…….”

         

       호흡이 가빠져 왔다.

       레이나로서 살아왔던 14년의 삶이 부정당했다.

       모습을 닮은 가짜.

       행복했던 4년을 추억 삼아 괴로웠던 10년을 버텨왔는데…….

         

       -다시는 옛날얘기 따위 꺼내지 마라!

       -솔직히 관심이 없다는 말이 맞겠네요. 가짜에 대한 건 이곳에 오고 몇 개월 만에 싹 잊었어요.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부정당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지금껏 그녀를 지탱해왔던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그, 그러니까, 나, 나는…….”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나는 누구지?

         

       레이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을 내버려 두고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두 사람에게서 물러났다.

         

       “손님 괜찮으세요?”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레이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정원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선생님, 쉬는 시간 끝났어요!”

       “수업해요!”

         

       그 소음에 레이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 하며 도망치듯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달렸다.

       아무 목적지 없이.

         

         

       ***

         

         

       루미와 오베론은 친남매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건 요정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오베론이 어렸을 때, 인간 세상을 떠돌다가 위기에 빠진 것을 루미가 구해주면서 연을 맺게 된 것이었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지는 벌써 10년이 넘게 흘렀다. 요정에게는 길지 않은 세월이었지만, 루미는 인간의 시간 감각에 익숙했다. 오랫동안 그를 못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오베론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키도 덩치도 커졌고, 건방지게 수염도 길렀다.

         

       루미는 시가에 불을 붙이는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폐 썩는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지.”

         

       그는 담배를 한 모금 흡입하더니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자식이 허세는……. 단장 노릇도 할 만한가 봐?”

       “내가 뭐 하는 게 있나. 어차피 퍽 님이 다 하시는데. 누님은 어때?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루미는 그에게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흐음, 그 정도로 이렇게 대규모 전송이 이루어지려나? 뭔가 더 있을 거 같은데…….”

       “몰라. 때를 잘 탔겠지.”

         

       오베론은 손가락 사이에 시가를 빼 들었다.

         

       “그럼 그 허수아비까지 다 일행이라는 거지? 좋아. 비밀은 지켜주지. 그런데 그 다섯 곡예사 중에 환상 쓰던 하얀 여자애 말이야. 이름이 마야라고 했던가? 누님 친구들 딸이지?”

         

       오베론은 예전에 은막에 잠시 몸을 의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는 루미와 함께했던 두 인간을 기억했다.

       한 명은 곱상하게 생긴 화가였고, 한 명은 무뚝뚝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마법사였다.

         

       “맞아.”

       “핫, 생긴 것은 아빠 쪽을, 전체적인 느낌은 엄마 쪽은 닮았더군? 성격은 어때?”

       “제 엄마랑 판박이야.”

         

       이렇게 마주 앉아 옛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루미는 문뜩 자신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요 며칠 요정의 모습으로 다니면서 언니 소리 듣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정말로 자신이 젊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물론 그녀의 나이는 요정의 기준으로 젊은 편이 맞지만, ‘은막 아르노’는 인간 사회에서 엄연히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내일이면 이제 이 가면극도 끝이었다. 혹시나 돌아가서 실수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런데 그 허수아비는 누구지? 애인?”

       “애, 애인은 무슨! 아, 아니거든!”

         

       그녀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화내는 걸 보니 맞는 거 같은데 뭘.”

       “그, 근거 없는 찔러보기는 집어치우지?”

       “그 남자 바라보는 누님 눈빛이 아주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던데? 고작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누님이 그 사람 손을 몇 번이나 잡았는지 말해줄까?”

       “이 자식이!”

         

       루미의 머리 위에 나타난 백룡의 환상이 오베론을 향해 도약했다. 그는 흑룡의 환상을 만들어내 그것을 맞받아쳤다. 용 두 마리는 자기네들끼리 물어뜯고 할퀴며 바닥을 뒹굴었다.

       두 사람은 환상을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쳇, 코흘리개가 좀 컸다고 누나를 놀려먹긴.”

       “놀리다니. 내가 다 누님 걱정을 해서 하는 소리 아냐. 20년 동안 환상 속에 숨어 사는 페어리가 어디 있어? 방구석 폐인도 아니고. 솔직히 오랜만에 요정의 모습으로 화내고 웃는 거 보니까 좋더라.”

         

       그는 시가를 물며 쿡쿡 웃었고, 루미는 그 모습을 보고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애새끼가 왜 이렇게 징그럽게 늙었어?”

       “세월이라네.”

         

       그때,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그것은 환상으로 만들어진 용이 내는 소리였다. 백룡이 흑룡의 몸 위로 올라타서 마구 발톱을 휘둘렀고, 흑룡은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렸다.

         

       “내가 졌군.”

       “흥. 환상은 입담만큼 안 늘었네?”

       “쳇, 누님이랑 환상으로 비빌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 된다고 그래.”

         

       오베론은 손을 휘저어 흑룡을 없앴다. 루미는 백룡의 환상을 무릎 위로 불려 들어 놈의 목을 긁어 승리를 치하해주었다.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이어가던 두 사람은 이제 잠든 혼돈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다.

         

       “키르쿠스 문제 말인데, 트릴은 잔뜩 만드는 건 어때? 사도들이 그랬잖아. 세상을 내다보는 일종의 돋보기안경이라며. 그 눈 개수에 걸맞게 잔뜩 만들어주면 되잖아.”

         

       오베론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수 없는 도덕적인 이유와 물리적인 이유가 있어.”

       “도덕적인 이유?”

       “왜 트릴에 키르쿠스의 눈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생각해?”

         

       루미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금방 안색을 바꿨다.

         

       “눈……. 잠깐……설마?”

         

       오베론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그녀의 의심을 확인해 주었다.

         

       “맞아. 트릴의 핵심 재료는 바로 사람의 안구야. 키르쿠스의 눈을 타고난 사람의 것이 필요하지.”

         

       루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러면 얼마 전에 만들어졌다는 트릴도……?”

       “아마도 그랬겠지?”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던 루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유쾌한 척해봤자 마신은 마신이라는 건가? 잔인하네. 트릴을 더 만들 수 없는 물리적인 이유라는 건 역시 키르쿠스의 눈이 더 구해지지 않는다는 거겠지?”

       “맞아.”

         

       루미는 사도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10여 년 전부터 키르쿠스의 눈을 타고난 사람의 수가 급속도로 줄고 있다고 그랬다.

         

       그녀는 갑자기 끔찍한 상상이 떠올랐다.

         

       “혹시 누군가 트릴을 잔뜩 만들었다든가?”

       “그러면 사도들이 알았겠지.”

       “그러면 키르쿠스의 눈 동아리가 단체 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든가.”

         

       루미의 농담에 오베론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설명이 안 돼. 키르쿠스의 눈은 죽으면 자동으로 다음 태어날 사람에게 그 권한이 넘어가게 되어 있어. 그 순환 시스템을 끊었다는 건 분명 강력한 마도의 힘이 개입했다는 증거야.”

       “뭐 부두교나 나쁜 놈들이 이 세계에 한두 명이겠냐.”

       “그렇지. 그래서 이쪽에서 지켜주려고 해도……방법이 없단 말이야. 키르쿠스의 눈은 겉으로 봐서는 전혀 구별할 수 없으니까.”

       “그럼 사냥하는 쪽은 어떻게 하는 거지?”

       “몰라. 내가 아는 건 키르쿠스의 눈을 지닌 사람은 한 가지 특징을 타고 난다는 것뿐이야.”

       “뭔데?”

         

       오베론은 반쯤 피운 시가를 재떨이에 던져 넣으며 되물었다.

         

       “트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뭐라고 생각해?”

       “음, 재밌는 공연을 보면 붉게 변한다는 것? 초대 그랑프리는 그래서 누가 더 보석을 붉게 변하게 하는가로 경쟁했잖아.”

       “맞아. 그걸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지. 공연의 ‘상대적인 점수’를 측정할 수 있다고.”

       “음?”

         

       점수라는 단어에 순간 루미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랄한 10대 소녀의 것이었다. 그녀가 그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오베론이 설명을 덧붙였다.

         

       “키르쿠스의 눈을 타고난 사람은 말 그대로 키르쿠스의 눈을 대신하는 거야. 공연을 보는 순간 느낄 수 있대. 이건 몇 점짜리구나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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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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