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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5

        날이 밝았다.

       

        평소처럼 방송을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인간들의 연락이 도착했다.

       

        “벨제투스가?”

       

        = “그, 그렇습니다.”

       

        헌터 협회의 회장이 모니터 화면 건너편에서 연신 고개를 숙인다.

        그런 그에게 나는 말했다.

       

        “인간 김두식이여. 네가 나에게 잘못한 일이 있느냐?”

       

        = “아,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냐?”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하다면, 이 세상의 인간들에게 ‘고개를 숙인다’라는 행동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행동을 하는 스스로에게 말이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행위.

        그렇기에 나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는 협회장의 모습에 나는 이리 물었고, 그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지 않나?

       

        “나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면, 그렇게 과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괜찮다. ”

       

        = “그, 그렇습니까?”

       

        “그래.”

       

        어차피 나는 드래곤이라서, 인간들이 나에게 고개를 숙여도 딱히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고개를 숙일 때마다 몸도 함께 숙여지는데, 내 경험상 고개를 숙이는 이들 중 태반이 ‘흉기’를 가리기 위해 몸을 숙이는 경우가 많아서…….

       

        ‘아니지. 이쪽 세상의 인간들은 그런 의미가 아니지.’

       

        불쑥 치솟으려던 경계심을 내려놓았다.

        내가 초월자가 되기 전에 호되게 경험을 치르어서 그런가?

        고개를 숙이는…… 아니, 그냥 몸을 접거나 웅크리는 등의 행위를 할 때마다 몸이 저절로 경계하기 시작한다.

        인간들의 단어로 말하자면, 이것이 바로 ‘트라우마’겠지?

       

        “그런데 벨제투스는 왜 아직도 나에게 오지 않는다는 것이냐?”

       

        나는 헌터 협회장에게 물었다.

       

        사실 그가 나에게 연락했을 때, 나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간 세상에 잠입하여 정보를 수집하던 이들로부터 벨제투스의 아바타가 한국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고, 이제 슬슬 벨제투스가 나를 찾아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터 협회장이 가져온 소식은 ‘벨제투스가 나를 찾는 것을 보류했다’라는 이야기였다.

       

        = “그게…….”

       

        내 질문에 협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벨제투스가 나를 찾는 것을 뒤로 미룬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도 내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 “멸천룡님의 막내 자제분이…….”

       

        “그렇군. 이해했다.”

       

        슈르네가 붙었다면 그럴 수 있지.

        나는 협회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듣기론, 헤니시아를 찾아가 놀아달라고 했다던데…….’

       

        그새 자기 언니랑 노는 것이 질렸는지, 아니면 벨제투스가 처음으로 인간의 아바타를 만들었다는 소리에 흥미가 돋은 것인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슈르네가 벨제투스에게 붙었다면 둘째 아들의 선택도 이해가 되었다. 그 정도로 슈르네는 가족의 악동이었으니까.

       

        솔직히 이제 와서 말하는 것이지만, 네 아이들을 키울 때 제일 키우기 힘들었던 것이 슈르네였다.

        만약 앞의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육아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가 체력의 소진이 존재하지 않았던 초월자가 되지 않았다면.

        만약 그랬었다면 나는 슈르네를 잘 키워낼 수 없었을 것이다.

       

        ‘제 언니 오빠들은 안 그러던데, 왜 그 아이만 유독 톡톡 튀는지…….’

       

        역시 부화 직전에 내가 초월자가 되어서 그런 건가?

        슈르네가 알에 있을 때 초월자가 된 내 영향을 받은 건가?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그렇다면 이전에 초월자가 된 남편의 영향을 받은 다른 아이들은 뭐냐… 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알에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대신 남편은 알이 태어난 이후부터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는데’라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이 생각만 할 때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슈르네가 독립하고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랄까?

       

        ‘게다가 벨제투스 그 아이는 워낙 기세가 약하니…….’

       

        지금이야 인간들은 물론이고, 형제들에게도 날을 세우는 벨제투스지만…… 그 아이는 본래 투쟁심이 약한 아이였다.

        나와 남편을 비롯한 블레이즈와 헤니시아가 전부 ‘육식’을 선택할 때, 그 아이만 유일하게 ‘초식’을 선택하여 진화했을 정도로 말이다. (슈르네는 잡식이다.)

        그랬던 아이가 지금처럼 변하게 된 것은, 역시나 남편이 죽었던 그 이후였다.

       

        지금 그 아이가 사방에 날을 세우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남편의 일로 생겨난 일종의 트라우마일 것이다.

       

        ‘벨제투스를 너무 오래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군.’

       

        둘째 아들의 명복(?)을 빌어 주며, 나는 협회장과의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방송을 켰다.

       

        – 라하!

        – 라하라하!

        – 라하

        – 라하

        – 용하

        – 라하

       

        “반갑구나 아이들아.”

       

        시청자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시청자들의 숫자를 확인했다.

        이제 막 방송을 시작했는데, 벌써 이 정도의 숫자가 모이다니?

       

        – 오늘을 기다렸다!

        – 라나님! 젭알 이야기!

        –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 빨리빨리요!

       

        “그래그래.”

       

        이제 막 방송을 시작했는데, 시청자들이 나를 재촉한다.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이야기해 줄 터인데, 왜 이렇게 날 재촉하는지 모르겠다.

       

        ‘겨우 10분도 되지 않…… 아닌가? 이들에겐 10분도 긴 시간인가?’

       

        기본적으로 몇백 년. 진화에 따라 천 년 이상까지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드래곤과는 달리, 인간들의 평균 수명은 대략 100년 내외다. 거기서 조금 더 길어져 봤자, 200년에서 300년 정도가 최선일 터.

        당연히 우리들 드래곤보다는 인간들에게 시간의 가치가 더 귀중할 것이다.

       

        – 뭐임?

        – ?

        – 뭔가 측은한 눈빛으로 보시는데요?

        – 무슨 생각을 하셨길래….

        – ?

        – 읭?

       

        “……아니다. 그저 인간들이 조금 딱해졌을 뿐이란다.”

       

        겨우(?) 100년 정도밖에 못사는 짧은 수명의 종족이란…….

        나는 측은함을 가진 채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 네네네네네ㅔㄴ네네ㅔㅔ네네네넨ㄴ네네네네!!

        – 야호!

        – 빨리빨리 좋아요!

        –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 감사! 압도적 감사!

       

        시청자들의 장난을 받아주며, 나는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            *

       

       

        신들의 연회가 시작되었다.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 소유의 신전 중 하나이자, 신들의 연회장으로 사용되는 건물.

        ‘□□□’라는 이름을 가진…….

       

       

        *            *            *

       

       

        “아. 건물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구나.”

       

        – 엌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괜찮아욬ㅋㅋㅋ

        – ㅋㅋㅋㅋ

        – 사소해. 사소해.

       

        내 말에 시청자들이 웃기 시작했다.

        그냥 웃고 넘기는 시청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혹시나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 하여 말을 덧붙였다.

       

        “그때 딱 한 번 들은 것이 전부이고,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서 기억에서 지운 것 같은데…….”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

        –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 ㅋㅋㅋ

        – ㅋㅋㅋㅋㅋ

       

        “뭐, 중요한 것은 아니지.”

       

        – ㄹㅇㅋㅋ

        – ㄹㅇㅋㅋ

        – 엌ㅋㅋㅋㅋㅋ

        – ㄹㅇㅋㅋ

        – 맞긴 함.

        – ㅋㅋㅋㅋ

        – 맞음

        – ㄹㅇㅋㅋ

        – ㄹㅇㅋㅋ

        – ㄹㅇㅋㅋ

       

       

        *            *            *

       

       

        삐리릴리~♬

       

        아하하하하!

       

        마셔라! 적셔라!

       

        크하하하!!

       

        연회장의 내부는 시끌벅적했다.

       

        하늘의 주신을 비롯한 10명의 상위신.

        그 아래에 속한 하급신.

        그리고 그들의 시종을 드는, 초월자들의 권속에 속한 이들.

       

        ‘생각보다 큰 무리를 이루고 있군.’

       

        이곳에서 제공한 연회용 의복을 입은 나는 연회장 내부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시종들의 안내를 받으며 연회장에 들어섰다.

        그러자 연회장에서 먹고 마시며 떠들던 신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 오오…….

       

        “제법…….”

       

        “누구지?”

       

        = 흐음.

       

        초월에 가깝게 다다른 식물과 동물로 만들어 낸 음식들을 즐기던 신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한다.

        그들은 이곳에 등장한 새로운 존재에 호기심과 경계심을 보내었다.

        그도 당연한 것이, 내가 이 신계에 모습을 보였을 때는 ‘본체’일 때뿐이었다.

        즉, 아바타의 모습은 푸푸르마나 페르제스를 비롯한 몇몇만 보았다는 것이다.

       

        슥!

       

        = 왔군! 멸천룡이여.

       

        “초대에 감사한다.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

       

        = 헉!

       

        “멸천룡?!”

       

        = 칼리파를 죽여 버린……?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던 페르제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했다.

        그제야 내 정체를 알아챈 신들이 사색이 된 채 나에 대한 경계심을 더더욱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페르제스와 같은 높이의 자리에 앉혀졌다.

        동시에 페르제스는 모든 신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 나의 손님이자, 멸천의 초월자인 ‘멸천룡 그랑 라그나’다.

       

        “반갑구나.”

       

        까닥.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신들에게 인사하자, 페르제스는 굳은 얼굴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의 일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 …….

       

        = 감히 내 손님에게 손을 대는 멍청한 놈들은 더 없길 바란다. 이상.

       

        = 아이아이!

       

        “물론입니다!”

       

        “아이아이!”

       

        과연, 신들의 우두머리라는 것일까?

        페르제스의 말에 술에 취해 있던 신들은 열렬하게 반응했다.

        이것은 우두머리가 무리의 구성원들을 꽉 휘어잡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모습이다.

       

        ‘훌륭하군.’

       

        페르제스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사이, 다시 자기 자리에 앉은 페르제스가 황금으로 만든 술잔을 나에게 내밀었다.

       

        = ‘보투르’라는 음료요. 우리 신들이 주로 마시는 신주(神酒)지.

       

        “잘 마시마.”

       

        주신이 권한 호의를 받아 입에 흘려 넣었다.

        초월에 다다른 식물을 이용해 만들어 낸 술인 것 같은데…… 그를 반증하듯 용금으로 만들어 낸 아바타에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용금에 포함된 남편의 초월이 반응하며, 마치 ‘취한 것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랄까?

       

        ‘이런 술은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일 텐데…… 생각보다 부유한 무리인 것 같군.’

       

        초월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반적인 동식물처럼 다룰 수 있는 존재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서도 가축이나 농산물처럼 다룰 수 있는 존재는 더더욱 희소하다.

        그렇기에 보통은 ‘초월’을 이용해 동식물을 권속으로 삼아 약간의 변질을 주는 정도가 한계일 텐데…… 이곳에 있는 음식들은 하나하나가 전부 초월에 든 동식물로 만들어져 있었다.

        즉, 이 차원에서 초월에 든 가축과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거나, 혹은 그런 것들을 다른 차원에서 사 올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맛있구나.”

       

        = 하하하! 얼마든지 마셔도 되오!

       

        내 말에 신들이 활짝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신들의 연회는 깊어져가기 시작했다.

       

       

        *            *            *

       

       

        “문제는 연회 3일 차가 되었을 때였지.”

       

        나는 손가락으로 턱을 문지르며 그 당시의 기억을 반추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때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글을 공장처럼 찍어내는 분들이 부러워지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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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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