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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5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설산.

        

       폐허 같은 유적과, 높게 쌓인 눈의 벽이 만들어내는 스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전장이다. 그 깊고, 눈이 쏟아지는 격전지의 한 가운데. 거대한 대검을 역수로 쥔 기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는 예나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검 처형 자세다. 숱한 명장면의 마무리로, 온갖 지튜브에서 떠돌아다니는.

       

       다만, 정작 당사자는 딱히 그런 생각으로 취하는 자세는 아닌 고로.

        

       천천히 움직이는 기사의 눈이, 비참하게 바닥에 널부러진 피투성이의 적을 담았다. 

        

       끊기지 않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적의 손에는 아직 검이 쥐어져 있다. 그러나 기사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쇠붙이다.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잠시 살려둔 것에 불과하니.

        

       애초에 3합만에 결판이 나버린, 승부라 부르기도 민망한 결투였다.

        

       쓰러진 이의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그리 당한 것이 그 하나는 아니라는 점일까.

        

       《……자. 우리 우유꽈악님. 걱정은 좀 덜 수 있으셨나요. 아직 걱정되시면 말씀해주세요.》

        

       나긋하고 부드러운 미성이 설산에 울려퍼졌다. 벌써 몇 번째인지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반복된 질문. 딱히 답을 기대하고 던져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승리를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

        

       [우유꽈악(성기사): 아니]

       [우유꽈악(성기사): 왜 도적 안 해요]

        

       억울함이 가득 담긴 채팅이 올라오자, 그제야 만족스러운 웃음이 흘러나올 뿐.

       

       《격돌에선 도적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서요. 일대일은 원래 영웅폭, 빌드폭 싸움이기도 합니다. 아무튼……그러면, 우유꽈악님은 승복을 하신 것 같으니. 30일 밴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방송, 카페 동시 밴이에요.》

        

       그리 설명을 마친 그녀가, 무언가를 뜯어내는 소리가 들려오고-

        

       -찌이익

        

       『아』

       『마스터 미만은 그냥 튀고 영구밴 당하라고』

       『시발 3방컷당할거면 나가질 마라』

       『이런 새끼들이 센세 기사 기본기가 어쩌구 ㅋㅋㅋㅋㅋ』

       『그냥 캠 끕시다 씨부랄거』

       『지금도 안 보인다고 진짜로』 

       『얘 진짜 왜 이러는 거야』

       『조진교육』

       

       구경꾼들의 야유와 불평 속에서, 화면이 한 차례 더 흐려졌다.

        

       투명 테이프로 카메라 렌즈를 또다시 감싼 탓이다.

        

       처음에 한 겹의 테이프로만 가려져있던 카메라는, 그녀의 모습을 그럭저럭 비춰냈으나- 이제는 사람 실루엣을 잡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었다.

        

       한 명의 목을 베어낼 때마다 전리품마냥 겹겹이 더해진 테이프가, 벌써 무려 20겹에 이르렀으니.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아니 우리는 아무 잘못 없잖아요….】

       

       《연대책임이에요.》

        

       간단한 이유였다. 그다지 당당하게 얘기할 것도 없는.

       

       그럼에도, 예나는 차근차근 명단에 적힌 이들을 읽어내릴 뿐이었다. 이미 바닥에 20여구의 시체를 뿌렸음에도.

        

       《자. 그러면 다음이……‘괜히 대회 나가서 개쪽당하지 말고 아마 여고수 이미지나 지킵시다’, ‘어설프게 강호에 출도하는 여고수의 말로는…헉’이라고 적어주신, 카페 닉네임 ‘기뮨식’, 나오나 아이디 ‘무적기사윤식’님. 그런데……다이아시네요.》

        

       단 90분 만에 일어난 참사였다.

        

       《이제 규정은 대략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간단하게 다시 설명드리자면- 특별 시참에 참여하시게 되었습니다. 승리하시고 특별한 상품을 받아가세요. 기왕 당첨된 시참을 거부하시거나 패배하시면, 30일 밴을 받아가시면 됩니다.》

        

       -기뮨식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2만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치욕스러운 패배를 당하는 것보단, 빠른 사과가 싸게 먹히리라고 판단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으나-

        

       《음……의견 제시는 잘못된 게 아니에요. 사과하실 이유는 없는데. 자. 무적기사윤식님, 부담갖지 마시고 방제 dam12, 비밀번호 dam12로 와주세요.》

        

       -기뮨식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죄송합니다ㅠㅠ 드립 욕심이 과했어요】

        

       《그러면……우리 뮨식님이 뭘 잘못하셨길래 사과하시는지, 같이 좀 볼까요. 평소 죄질도 확인해야 형량을 정할 수 있으니까. 언제든지 중단을 원하시면 dam12로 들어와서 말씀해주세요.》

        

       그리 쉽게 넘어갈 리가 있나.

        

       상대가 방에 들어올 때까지, 그녀는 느긋하게 부검을 진행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화면에 큼지막하게 띄워진 채팅로그엔, ‘기뮨식’이 지난 몇 달 동안 남긴 흔적이 그득그득 남아있었다.

        

       [기뮨식: 사화고등학교 1학년 5반 파이팅!]

       [기뮨식: 사화고등학교 1학년 5반 파이팅!]

       [기뮨식: 북극곰 다 죽어요!!!]

       [기뮨식: 다이아 수준ㅋ]

       [기뮨식: 눈나ㅏㅏㅏㅏㅏ]

       [기뮨식: 아따먹은 아메리카노와 상관 없습니다~]

       [기뮨식: 아가맘마통 따스하게 먹고싶다]

        

       《……전과도 있으시네요. 마지막 채팅으로, 임시차단 14일. 아, 밴 기간 동안 화나셔서 카페에 글 쓰신 거구나. 음.》

        

       『우리나라 미래가 존나게 어둡구나』

       『좆오좆충 평균』

       『미성년자 나오나 금지해야된다 ㄹㅇ』

       『아니 뭔 고1이 벌써 트수질에 성칭찬에 지랄났네 진짜』

       『자라나는 새싹이 이미 노랗네요』

       『조진교육』

        

       미성년자의 느낌이 나는 로그 탓일까. 아니면, 최근의 기조에 반하는 성적인 채팅 탓일까.

        

       채팅창의 분위기는 영 좋지 않았다.

        

       《전과가 있어서 영구밴이 맞긴 한데……음. 정상 참작 사유가 있기도 하고, 미성년자이신 것 같기도 하니까. 30일 채팅 밴만 드릴게요. 대신 앞으로 카페에서 글을 쓰실 때는, 이 사진을 항상 서두에 넣으셔야 해요.》

        

       그리하여 제법 날선 욕설과 비난이 ‘기뮨식’을 향하는 상황에서, 예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채팅로그 창이 닫히고, 그림판이 떠올랐다. 조금 전 기뮨식이 보낸 2개의 사과 도네이션 중 ‘제가 경솔했습니다 죄송합니다ㅠㅠ 드립 욕심이 과했어요’라고 적힌 도네이션이 캡쳐되어 있는 화면.

        

       그 아래에는, ‘저는 결투를 피해 도망갔습니다’라는 문구가 추가되어 있었다.

        

       《명예형입니다. 지금 캡쳐해두세요. 앞으로 지켜볼 거예요.》

        

        

       * * * *

        

       과도한 걱정을 품은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결국 내 실력에 대한 이야기니까. 붙잡아다가 전장에 함께 들어가고 나서, 골고루 두드려주면 그만한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다만, 방송을 켜고 하는 고로……사소한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화면 너머에서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참여형이라고 언제까지 느낄 수 있을 지도 의문이고.

        

       자칫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시청자들을 위해서, ‘승리시 테이프 1면 추가, 패배시 테이프 모두 제거’ 조건까지 달아둔 채 진행하기는 했다.

        

       테이프를 떼어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몰입감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카메라 괜찮으려나. 이젠 거의 시골집 불투명 유리창보다도 뿌연 것 같은데.

        

       작은 걱정을 마음에 품은 채, 마지막으로 카페를 시찰하고 방송을 마무리하려던 찰나.

        

       [작성자: 갱생도질]

       [제목: 솔까 센세도 도적도 거품은 맞음ㅇㅇ 인정할 건 인정하자]

       [저도 시참이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왜 잘못한 새끼들이 상을 받는 겁니까ㅠㅠ

        

       우리 선량한 시민들은 저새끼들이 말도 좆같이 하고 나오나도 좆같이 해서 캠화면만 뺏겼습니다……

        

       억울합니다ㅠㅠ]

       –     도질육수야……

       –     아니 맞말이긴 해

       –     전혀 갱생하지 않았어……!

       –     ㄴ 아아, ‘광카콜라’로 돌아갈 때다

       –     ㄴㄴ 좆목 지랄났네 진짜

       –     어라……? 듣고 보니……?

        

       눈에 띄는 제목이 있어 홀린듯이 클릭하고 나니, 뒤늦게 작성자 명이 눈에 들어왔다.

        

       ……네가 그러면 어떡해.

        

       “……추가 시참은 다음에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볼게요. 일단, 오늘은 취지가 달라서.”

        

       기왕 이렇게 된 거, 테이프 그대로 붙여두고……다음엔, 고생한 매니저들과 격돌 연습을 해볼까.

        

       괜찮을 것 같은데.

        

       다음 방송에서……음.

        

       일단, 정리해둬야지. 잊어버리면 곤란하니.

        

       * * * *

        

       [아크: 예나얌]

       [아크: 너도 격돌 대회 나가지??]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네]

        

       [아크: ㅠㅠ]

       [아크: 일찌감치 포기하고 응원이나 할까…….]

       [아크: 아니다]

       [아크: 두 자리니 하나는 남는 거잖아]

       [아크: 나도 도전해볼게!!]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님이 메시지를 작성 중입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파이팅]

        

       [아크: 가슴에 진심을 조금만 더 담아줘]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한국 대표 법사 아크 파이팅……?]

        

       [아크: 오히려 줄어든거 같아..]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그건 정말 기분탓 아닐까요.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어요. 많이 필요하실 것 같기도 하고.]

       

       [아크: ……무슨 뜻인지 물어볼 뻔했네]

       [아크: 역시 포기하는게 맞으려나……챌린저들 우르르 나오겠지……]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음]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그래도 나가면 팬들은 좋아할 거예요]

       

       [아크: 그치? 그럴 것 같긴 한데……]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네. 저도 지니님 팬이었어서 잘 알아요.]

       

       [아크: 었어서……?]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이젠 팬보단 조금 더 전진한 느낌이었는데]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아닌가요]

       

       (아크 님이 메시지를 작성 중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Stormrage 님, 10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건강관리에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오전 7시 수정) 비몽사몽간 일부 수정이 덜 된 상태로 업로드되었습니다. 마지막 부분 등이 전체적으로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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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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