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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5

       “아가씨.”

        

       한참 동안 머리카락을 만지던 양혜인이 말했다.

        

       사실 아까 전부터 헤어드라이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냥 머리카락만 손가락으로 슥슥 사략사략 만지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왠지 여기서 ‘머리카락 다 말린 거 아니에요?’하고 물어보면 안 될 것 같다. 지금 내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지금의 상황이 즐겁다고 생각하신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내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길이 멈춰서, 나는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양혜인은 뒤로 한 발 발자국 물러나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공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긴장을 완전히 푸시면 안 됩니다.”

        

       “…….”

        

       음, 뭐.

        

       맞는 말이기는 하다.

        

       “아직 최나경 회장은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어떤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무슨 뜻이죠?”

        

       “경찰들이 제대로 일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인터넷만 찾아보더라도 경찰 욕하는 글은 한가득하고, 가끔 정말로 대형 사고를 쳐서 뉴스에 나오거나, 경찰 몇몇이 인터넷에 헛소리를 써둔 것이 박제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양혜인이 하는 말은 그 뜻이 아닐 거다.

        

       나는 몸을 돌려서 의자 등받이에 옆구리를 대고 앉았다.

        

       “최나경의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뜻인가요?”

        

       “유진그룹과는 다른 형태로 남아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가씨는 아직 약혼이 깨지지 않으셨으니까요.”

        

       “……호명 그룹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1위와 이상할 정도로 차이가 나서 그렇지, 호명 그룹은 절대로 작은 그룹은 아니었다.

        

       만약 최나경이 호명 그룹과 손을 잡고 경찰들을 압박하고 있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을, 굳이 저와 둘만 남았을 때 꺼내는 이유가 뭐죠?”

        

       “전 아가씨의 메이드니까요.”

        

       양혜인은 고개를 들었다.

        

       깊은 눈동자 안에서는, 어떤 진득한 의지가 느껴졌다. 보통 이런 모습을 보면 깊고 어둡다고 느끼겠지만…… 내가 느끼는 감각은 ‘검고 진득하다’였다. 어째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제 친구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뜻인가요?”

        

       “어떤 의미로는, 그렇습니다.”

        

       양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아가씨께서 믿는 방식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

        

       그렇다고 내 행복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는 걸까? 친구들 사이에서 지내는 나의 모습이 즐거워 보여서 뒤로 미루고 미뤘을지도 모른다.

        

       “알았어요. 명심하고 있을게요.”

        

       사실, 그래.

        

       나도 잊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아직 완벽하게 끝난 것이 아니니까.

        

       생일 축하 파티 때 왔던 호명 그룹 회장은 뭔가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절대로 나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나의 대답에, 양혜인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

        

       “……멍청했어.”

        

       “그러게.”

        

       유하늘과 신소희는 이수아의 집에서 나오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수아가 정말로 잠깐 도망갈 생각이었다면, 당연히 어디로 갈지 말을 하고 갔을 리가 없다. 집으로 간다는 것은 그저 구실일 뿐, 버스 타고 십 분 정도만 이동해서 어디 카페라도 들어가 있으면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인 유하늘과 신소희가 이수아를 찾을 방법은 없었다.

        

       뭐, 이수아의 친구라는 이유로 무안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친구 없는 집에 친구를 찾으러 가는 것도 꽤 쪽팔린 짓이다. 너무 대놓고 확신을 하고 찾아가서 더 그런 기분이었다.

        

       “멍청하긴 뭐가 멍청해?”

        

       한탄하며 나오는 두 사람의 귀에 불쑥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수아였다.

        

       옆에는 지난번에 만났던 기자가 있었다.

        

       한밤중에 불려 나와서 그런지, 엄청나게 불만에 찬 표정이었지만 이수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너어…….”

        

       유하늘이 지친 목소리로 이수아를 부르다가,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 “응?”하며 잠깐 말을 끊었다.

        

       “왜 그래?”

        

       옆에 있던 신소희가 물었다.

        

       “……아니, 그냥. 협상을 피해서 도망갔으면 굳이 우리 앞에 나타날 이유가 없지 않나 싶어서. 우리가 사라한테 돌아간 다음에 나타나거나, 우리보다 먼저 사라한테 가서 같이 있으면 되는 일 아니야?”

        

       “…….”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자신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상기했다.

        

       그렇다. 두 사람이 쫓아오면, 이수아 입장에서는 그냥 사라한테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뭐, 양혜인이 있으니 단둘이 있는 상황은 있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협상 테이블이 펼쳐지는 것은 피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수아가 여기서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수아가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대체 어디서 기다리고 있던 거야?”

        

       신소희의 질문에 이수아는 가만히 뒤쪽을 가리켰다. 거긴 유하늘과 신소희도 한 번 타 본 경차 한 대가 서 있었다.

        

       “…….”

        

       그리고 엄청나게 뚱한 표정으로 서 있는 기자를 한 번 더 보고 나서야, 두 사람은 이수아가 차 안에서 쭉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유하늘과 신소희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굳이?

        

       만약 이수아가 원한다면, 사라 없이 세 사람이 함께 만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아니, 어쩌면 사라라면 오히려 숨 돌릴 틈이 생겼다고 내심 좋아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일부러 협약의 허점을 찾아 두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대놓고 도망까지 가버린 것은 어째서일까.

        

       “우리, 잠깐 대화 좀 하지 않을래?”

        

       머릿속이 복잡해진 두 사람을 보고, 이수아가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

        

       *

        

       한여름 밤의 끈적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바깥과는 다르게, 에어컨이 틀어진 카페는 무척 시원하고 상쾌했다.

        

       그런 프랜차이즈 카페 구석에 자리 잡고 앉은 이수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친구 맞지?”

        

       갑자기 그런 질문을 들은 유하늘과 신소희는 입을 살짝 벌린 채 잠깐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곧바로 ‘당연하지’라고 대답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

        

       “…….”

        

       친구, 맞겠지?

        

       사라를 중심으로 친해진 친구들. 지금까지 같은 방에서 지내면서도 크게 싸운 적이 없는 ‘친구들’.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사실 이 셋이 대놓고 싸우지 못한 이유는, 세 사람이 싸우면 가장 난처해질 사람이 사라였기 때문이다. 집에 멋대로 얹혀사는 주제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미움받기는 싫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세 사람은 과연 ‘친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협약을 맺은 이유가 그저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을까?

        

       “우리 모두 사라를 좋아하잖아. 하지만, 동시에 친구이기도 했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우정이 남아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수아의 말에, 유하늘과 신소희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대놓고 싸우지 않았을 뿐이지, 사라를 두고 다퉜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오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희들도 얼마든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 한두 번 정도는 괜찮아. 우리 모두 참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어떨까? 우리가 이대로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

        

       아니.

        

       아마 언젠가 시기와 질투로 결국 갈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구나.”

        

       유하늘은 이수아가 이런 만남을 가지려고 한 이유를 대충 알 것 같았다.

        

       “…….”

        

       신소희도 뚱한 표정으로 딱히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긴장을 풀고 다시 예전처럼…… 완전히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더라도, 우리가 친했던 시절처럼 지낼 수는 없을까? 사라도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누구랑 사귈 생각이 없는 것 같고.”

        

       이수아는 잠시 말을 쉬었다가,

        

       “……사라도 점점 지쳐가는 것 같아서.”

        

       “…….”

        

       “…….”

        

       잠시간의 침묵.

        

       “하아.”

        

       그렇게, 다 들으라는 듯 크게 한숨을 쉬어 침묵을 깬 것은 신소희였다.

        

       신소희는 조금 짜증 난다는 듯 의자를 벌컥 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녀가 이 자리에서 떠날 거라고 생각했는지, 이수아는 조금 안타까운 소리를 냈다.

        

       “…….”

        

       하지만, 신소희는 말없이 이수아의 옆자리로 걸어와 털썩 앉더니,

        

       “으읍!?”

        

       그대로 이수아를 덥석 잡아서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미처 몸을 빼지도 못하고 그대로 얼굴을 신소희의 가슴에 묻은 이수아는 엄청나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너,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늘 그런 짓을 했잖아. 밤새도록 지켜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거든?”

        

       이수아의 제안을 그대로 뭉개버리는 것 같은 말.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신소희— 아니, 소희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눈 밑의 눈그늘은 여전하긴 했지만.

        

       그런 소희와 수아를 보던 유하늘도,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수아 옆으로 갔다.

        

       그리고—

        

       음, 소희처럼 대놓고 안기는 조금 그랬다. 그래서, 유하늘은 그저 수아의 한쪽 손을 잡아들었다.

        

       “그렇구나. 우리 수아가 그렇게 생각했구나~”

        

       웃으면서 말한 유하늘은,

        

       “그런데,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있었던 일은 조금 더 상세하고 정확하게 해명해야 한다고 생각해!”

        

       밝은 목소리로 그렇게 덧붙였다.

        

       “우읍!”

        

       하지만 소희가 한동안 수아를 풀어주지 않아서, 그녀가 제대로 변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난 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은방울꽃님 후원 감사합니다!

    만약 악엄싫이 본편보다 먼저 끝나면 다른 외전을 포함해서 매일 3화씩 연재할 예정입니다. 다만 정말로 악엄싫이 먼저 끝난다면 중간에 잠시 쉬며 본편만 연재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이긴 하지만…

    과연 악엄싫이 본편보다 먼저 끝날까요? 사실 저도 처음엔 한 두화정도로 생각하고 썼는데, 쓰다보니까 뒤에 더 쓰고 싶은 상황들이 자꾸 생각이 나서 길어진 거라서요. 만약 정말로 본편보다 악엄싫이 먼저 끝난다면 진지하게 고민해보겠지만, 지금 상황으로만 봐서는 하루에 한 편씩 올라오는 악엄싫이 먼저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체 분량으로 보면 본편이 훨씬 길겠지만요. 만약 본편이 끝나면 연재주기는 다시 하루 두 편으로 돌아갑니다. 그때는 외전 하나 하나에 신경써서 외전을 두편씩 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의 소설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저의 소설에 투자하신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은 소설을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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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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