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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5

     미래.

     그러니까 노스트럼이 멸망하고 제국이 노스트럼을 지배하며, 그 땅을 지배하던 시기.

     -황금의 운명이 끝난 순간, 노스트럼 또한 운명을 달리했다.

     라고 제국 신문에 헤드라인이 올라왔다.

     노스트럼의 땅에는 황금이 많이 묻혀있었으나, 황금은 무한이 아니다.

     금광에서 아무리 금을 많이 캐낸다고 하더라도 무슨 땅 전체가 금으로 되어있지 않는 한, 결국 금은 고갈되기 마련이다.

     만.

     노스트럼은 그렇지 않았다.

     “카르멘 어머님께는 모두 밝히도록 하죠. 이건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심지어 제국의 황제에게도 말하지 않는 내용입니다.”

     카르멘 왕비가 자세를 반듯하게 잡는다.

     무슨 기업의 사업설명회에 참가한 관계자와 같이, 피로감에 물들었음에도 눈은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우선 바르셀로나의 금광이 가진 의미에 대해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곳, 대대로 바르셀 후작가의 영지였죠?”

     “그랬지.”

     “간혹 그 자리를 다른 가문에 빼앗기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3대에 걸쳐 왕국 제1 기사단의 단장으로서 왕권에 가까이 있었던 가문입니다. 그렇지요?”

     “기사단장이 되지 못해서 제2, 제3 기사단으로 밀려났을 때도 권력에서 밀려난 적이 없었지. 황금의 힘으로.”

     카르멘은 바닥을 가리켰다.

     “왕국의 모든 땅은 국왕의 것이지만, 금광을 관리하는 일은 바르셀 후작가가 대대로 해왔으니까.”

     “모르가니아의 철광이나 금광과 비교를 하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가진 금광이 바르셀 만큼이나 많았다면, 제1 기사단도 흑장미가 먹었을 거야. 이곳, 바르셀에 있는 금광은 사실상 대륙 제일이지. 제국의 어느 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걸?”

     “예. 그렇죠. 그래서 전설 속에서는 ‘골드드래곤이 자신을 금으로 바꾸어 땅 속에 잠들었다’라고 하기도 하죠.”

     바르셀 매장되어있던 금은 화수분과도 같이 쏟아졌다.

     “그런데 카르멘 어머니. 과연 그 금이 무한하겠습니까?”

     “…….”

     “노스트럼은 수호룡으로 골드 드래곤을 두고 있고, 500년 동안 화폐를 단 한 번도 개혁하지 않은 채 계속 골드 체계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건 이 나라의 근본이 황금에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품에서 미리 준비한 1만 골드를 하나 꺼내 손가락에 끼웠다.

     “모든 금화는 말 그대로 금으로 만들어진 것. 500년 동안 한 나라의 화폐로 사용될 정도로 금을 사용해댔는데, 그렇게 캐내고 긁었는데도 아직 금이 나온다?”

     “…….”

     “제국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죠. 자원이라는 건 유한하기 마련인데, 이 미친 노스트럼은 금이 부족하면 일단 바르셀부터 파고 보면 금이 쏟아지니까.”

     “그레이.”

     카르멘 왕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와 이야기를 하면 언제나 느긋하게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주제가 주제다보니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래. 미안하지만, 그건 저기 네 기사를 상대로 이야기하렴.”

     이야기는 쉐프의 코스 요리와도 같다.

     음식을 준비하며 어떤 재료를 썼고 어떻게 조리를 했고, 맛을 느끼는 방법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는 또한 요리를 즐기는 것.

     “알겠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도록 하죠.”

     하지만 당장 배가 고파서 등가죽이 배에 붙을 것 같은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걸 보시겠습니까?”

     나는 미리 집무실에 준비한 상자 하나를 꺼낸 뒤, 그 안에서 자료 더미 하나를 꺼내 카르멘 왕비에게 건넸다.

     “나중에 차근차근 살펴보시겠지만, 8년 전부터 3년 전까지 5년 동안 채광된 황금의 양입니다.”

     “……처박혔네?”

     “예. 그래프가 우하향하는 걸 넘어, 아예 바닥으로 꽂히고 있죠.”

     “이거, 어디에서 찾아낸 거야? 도장이 찍혀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공식 문서…인데, 결재된 건 아니야. 초안이네?”

     “후작성 전체를 살피던 와중에 발견한 겁니다. 아마도 후작가에서 일하던 행정관 하나가 작성한 문건을 어디 몰래 보관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걸 도서관 서고에서 찾아냈죠.”

     어떻게 찾았냐고?

     언젠가는 찾게 되어있던 물건이다.

     “…바빴을 텐데.”

     “누군가가 숨겨둔 물건은 이질감이 있죠. 저 정도 되는 눈썰미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알고 찾아낸 거야?”

     “설마요. 음, 틀린 말은 아니군요. 바르셀 후작가의 죄를 가중시키기 위해 혹시 비리 같은 거 숨겨놓은 거 없나 찾아보다가 발견한 거니까.”

     문제가 있을 때 답을 도출하기 전까지 과정이 있겠지만, 나는 그 절차를 회귀자로서 생략했을 뿐이다.

     매국노 그레이와 모르가니아 총독.

     두 사람은 노스트럼의 기존 귀족들이 ‘관습’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제국에서는 명백한 비리로 여겨지는 것들을 조사하고 죄명을 낱낱히 밝히는 일을 주로 했으니.

     “제가 아니었더라도, 카르멘 어머니께서는 이것들을 찾아내셨을 겁니다. 그저 제가 먼저 발견했을뿐.”

     “……이거, 내가 지금 짧게 살펴봐서 어떻게 뭐라고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카르멘이 기가 차다는듯 헛웃음을 흘렸다.

     “왕실에 보고된 내용이랑 전혀 다르네?”

     “전후관계는 다르지만, 왕가를 능멸했으니 죽어도 당연한 거죠?”

     “…그러게.”

     왕가를 능멸하다.

     왕에게, 거짓 보고를 올리다.

     “이거 쓴 사람, 어떻게 되었어?”

     “죽었습니다. 3년 전까지 자료가 기록되어 있으니, 아마 3년 전에 죽었겠죠?”

     “……세인트 지오, 이 미친 놈이.”

     카르멘이 양피지를 쥐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금 자체가 화폐로 쓰이는 나라에서 금을 속여?”

     그렇다.

     “바르셀 후작가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수족이었던 가문. 바르셀 후작이 아는 걸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께서 모를 리가 없죠.”

     세상은 그를 무능왕이라고 불렀지만, 그 무능의 스펙트럼은 ‘국가의 정상 운영’에 맞춰져있다.

     “비리를 두고 급수를 책정한다면, 세인트 지오는 마스터 급일 겁니다.”

     “그러게. 꼬리 자르는 것도 아주 수준 급이야.”

     조작된 통계.

     정보의 은폐.

     “이해는 해. 왕국 최대의 금광이, 500년 동안 고갈되지 않을 것 같았던 금이 고갈되어버렸다고 한다면 그게 곧 국가위기사태지.”

     바르셀 후작가는 금광의 관리자이면서 남은 금의 양을 숨겼다.

     “너, 이거 팔려고 하는 거구나.”

     “흐흐흐.”

     “세상 모두가 금광이 멀쩡하다고 알고 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에게 채광권을 팔아치우려고 하는 거야.”

     “파낸 금의 일부는 수수료로서 바르셀이 조금 챙기고, 나머지는 채광한 자들 보고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죠.”

     “…대륙 경제가 박살날텐데?”

     “박살나겠죠.”

     영원히 반짝일 것 같은 황금향이 사라졌으니.

     “하지만 박살나는 건 대륙 경제지, 지브롤터와 모르가니아가 아니잖습니까?”

     “이제는 노스트럼도 좀 신경을 써주지 않을래?”

     “당연히 노스트럼도 박살나지 않을 겁니다. 파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아냈는데, 그 쓰레기같은 땅을 사들이는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하. 제국 사람들에게 팔아치우게?”

     “딱 좋죠.”

     노스트럼의 일부는 알고 있지만, 제국의 여러 기업들은 알지 못한다.

     금광이 거의 고갈되어, 더 이상 남아있는 게 없다는 것을.

     “카르멘 어머니. 제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투자는 개인의 책임이다?”

     “정확하게 짚으셨군요.”

     “너, 나중에 무슨 욕을 들으려고?”

     “그 때가 되었을 때의 변명은 이미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나는 두 손을 들었다.

     “저는 국가 공식 자료를 보고 ‘금광은 아직 남아있다’고 판단하여 채광권을 판매했던 겁니다. 잘못은 금광 고갈을 숨긴 바르셀 후작가에 있습니다.”

     “그거 밝혀지면 투자자들이 바르셀 후작의 묘를 파내서 능지처참 해버릴 걸?”

     “그러길래 처음 투자하러 올 때 면밀하게 살폈어야죠. 흐흐. 그리고 그냥 저만 이득 볼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가리키며 목을 그었다.

     “저도 제 사재를 털어, 맨 땅을 파낼 겁니다. 아무런 생산성도 없는 땅을. 말 그대로 돈을 땅에 버리는 셈이지만….”

     “무능한 총독이 되려고?”

     “무능한 건 아닙니다. 단지, 겉으로 보이기에는 저 인간도 항상 투자에 성공하는 건 아니구나. 그렇게 보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놓고는 정작 바지사장을 내세워서 뒤로는 이득 보려고 하는 거지?”

     “바지사장이라. 노스트럼의 고상하고 전통적인 표현인 ‘대리인’이라는 말이 있는데, 너무 제국적인 단어를 사용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쪽이 더 뜻이 명확한데 굳이 대리인이라니 돌려말할 필요는 없지.”

     카르멘 왕비가 양피지를 돌돌 말아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런데 이거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세인트 지오가 알고 있다면….”

     “카르멘 어머니.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고.”

     “…뭔데?”

     “그건.”

     나는 카르멘 왕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카르멘은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는지, 몸서리를 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정말이야?”

     “소신이 어찌 왕가를 능멸하겠나이까?”

     “장난치지 말고. 진짜야?”

     “물론입니다. 공식적으로 조사는 해봐야겠지만, 아예 없는 소리는 아니죠.”

     알아둬야 할 부분 하나.

     “노스트럼이라는 땅은 모든 것이 갖춰져있는 땅입니다. 금광이 고갈되었다? …불가능한 소리.”

     영웅이 우후죽순 필요할 때마다 등장하듯, 노스트럼은 언제 어디에서든 후손들이 결코 망하지 않게 되어있는 미친 땅이다.

     “카르멘 어머니. 우리 한 번, 가능성을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나리아 여왕의 집권 시기, 바르셀의 금광이 고갈되었다고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금이 나오지 않을 것 같고, 기존에 가지고 있는 금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금본위제로서 새로운 화폐를 만들어내거나, 제국 탈러를 도입하거나, 귀족 가문 중에서 금을 몰래 빼돌린 이들을 잡아다가 금을 확보하거나, 기존 금화로 이루어진 화폐를 개혁하거나.”

     “틀렸습니다. 노스트럼의 위기는 그런 식으로 넘어가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구리를 금으로 연성할 수 있는 연금술의 대영웅이 나타나기를 기도한다거나.”

     “…….”

     카르멘 왕비가 대놓고 얼굴을 찌푸렸다.

     “너도 참….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나고 그래?”

     “농담입니다. 구리로 어떻게 금을 만들어내겠습니까?”

     “그러면? 금맥 고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대영웅이 나타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니? 위기 상황 속에서?”

     “위기는 어차피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지금. 바르셀로나 총독이 채광권을 팔아 땅을 파기 시작한 이후, 하나둘 깨닫게 되겠죠. 어라, 금이 없네?”

     “국가의 위기를 스스로 초래하자? 해결책은 그저 영웅이 튀어나오기를 바라는 거야?”

     “아니죠. 영웅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나는 집무실 한쪽에 걸린 국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올렸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여왕전하가 말이죠.”

     “나리아가 뭔가 알고 있다는 건 아닐 것 같은데. …아하.”

     카르멘 왕비가 손가락을 튕기며 웃었다.

     “너. 나리아를 영웅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구나.”

     “…….”

     “나리아를 위해 밥상 다 차려준 다음, 그냥 포크만 들고 스테이크를 먹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렇지?”

     “아예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썰어달라고 해서 곤란한 느낌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합니다.”

     나리아를 노스트럼의 위기를 구하는 영웅으로 만든다.

     “저희는 위기 속에서 채광권을 팔아다가 돈을 벌어들이고, 나리아 여왕은 매국노 총독이 나라 말아먹을 불편한 위기를 드러낸 상황에서 멋지게 해결한다.”

     언제나 그렇듯, 노스트럼의 위기를 구하는 건 일차적으로 왕족이다.

     “그래요. 영웅이 새롭게 태어나듯, 노스트럼은 반드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왕족은 필요한 곳에서 적재적소에 인재를 구하기도 하지만, 왕족 본인이 위기를 해결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금광이 고갈된 상황에서, 바르셀로나 못지 않은, 아니 앞으로 500년은 더 먹고 살 수 있는 금광을 발견해내는 이가 곧 영웅이 되겠죠.”

     “……잠깐만.”

     카르멘 왕비가 비릿하게 웃으며, 내게로 다가와 내 어깨를 눌렀다.

     “땅 파는 거, 모두가 실패하는 건 아니라고 했지?”

     “당연하지요.”

     바르셀로나의 땅을 파는 99명이 실패하더라도, 1명이 그에 못지 않은 금광을 찾아내면 그게 영웅이 되기 마련.

     “우리 위대하신 수호룡께서 설마 후손들이 500년만 쓸 수 있는 금광만 남겨뒀겠습니까?”

     나는 카르멘 왕비의 손을 잡은 다음,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다.

     “이곳입니다.”

     “여기는….”

     “그리고 이쪽으로, 쭉.”

     바르셀로나의 외곽을 따라, 나는 그대로 쭉 선을 그었다.

     “500년 동안 그 어떤 개발도 이루어지지 않은 땅. 오직 국경의 수비에만 모든 것을 전념해야 했으며, 그 누구도 감히 개발하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땅.”

     “…지브롤터?”

     “카르멘 어머니.”

     나는 카르멘의 손가락을 어느 한 지점에 가까이 하며,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카르멘 어머니께서는 지브롤터 후작이 신경 쓰이지 않도록 지브롤터와 가까운 땅의 채광권을 사들였다가, 오랜 사랑에 대한 보답을 받으신 겁니다. 아시겠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일정이 있어서 정오보다 한 시간 일찍 왔습니다.
    다음 편은 자정 예약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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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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